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베네치아비엔날레의 첫 한국인 수상자는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이었다. 1993년 그가 최고상을 받고 자신의 작품 '마르코폴로 초상(肖像)'에 올라앉아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던 모습이 선하다. 이때의 수상은 '백남준의 영예'였지 '대한민국의 영예'는 아니었다. 한국은 독립된 전시관이 없어 백남준은 독일관으로 참가했던 것이다. 수상 소식을 듣고 그는 건축가 김석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한국 현대 미술에 기여한 게 없다. 이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백남준이 말한 '도움되는 일'은 베네치아비엔날레가 열리는 카스텔로 공원에 한국관을 여는 것이었다. 1895년 시작한 베네치아비엔날레는 2년에 한 번씩 미술전과 건축전을 번갈아 열어왔다. 1907년 벨기에를 시작으로 24개 나라가 독립된 전시관을 세웠다. 아시아에선 일본관이 유일했다. 갈수록 공원이 포화 상태인 데다 건축 요건도 까다로웠다. 1995년 베네치아비엔날레가 100주년을 맞아 국가관을 하나 추가하려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은 진시황릉전을 베네치아에서 열어주겠다며 달려들었다.
▶결국 백남준과 김석철의 국제적 인맥·열정이 합쳐져 하나 남은 베네치아비엔날레 국가관은 한국 차지가 됐다. 당시 한국은 경제가 뒷받침되면서 미술의 세계 진출도 활발하게 이뤄지던 때였다. 한국관은 조립식 건물이었다. 개관 예정 시각까지 건물 조립이 안 끝나 개관식을 세 시간 미뤄야 했다. 이 한국관에서 첫해 전수천을 시작으로 강익중 이불 등이 잇달아 특별상을 받았다.
▶어제 베네치아에서 기분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올해 건축 비엔날레에서 건축가 조민석이 주관한 한국관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베네치아에선 미술·건축·영화 분야마다 국제 예술제가 열리는데 어느 것이나 최고상은 황금사자상이다. '한반도 오감도'란 제목의 한국관 전시는 남북한 이념에 따른 건축의 이질화 문제를 깊이 있게 짚었다는 평을 받았다.
▶1990년 독일 통일 후 많은 사람이 동독 건축물을 보고 놀랐다. 바이마르에 있는 괴테의 집은 안내판 하나 없이 초라했고 라이프치히의 바흐 박물관은 술집이 돼 있었다. 그런 가운데 유서 깊은 라이프치히 도심엔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한 초고층 빌딩이 볼썽사납게 치솟아 있었다. 수령의 명령이 우선인 북한 건축이나 시장의 논리에 충실한 한국 건축도 세월이 흐르며 많이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의 첫 최고상 수상을 반기면서 이번 전시가 남북 건축의 벽을 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