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리역 (1951)
빨래하는 부녀자들 (1949) 지금의 태평극장 부근으로 멀리 보이는 것이 광주대교이다.
관덕정 (1955 ㅡ 사직공원)
(1955 ㅡ 광주공원)
광주공원에는 1940년 신사를 개수할 당시 한국의 각 도와 일본의 각 지방은 물론
멀리 몽골 만주 대만 남태평양 등의 아시아 여러곳에서 많은 종류의 나무를 옮겨심어
광주지방에서는 가장 많은 수종과 희귀한 나무가 밀집하여 마치 식물원을 방불케 했었다
그러던 것이 해방 후 사회의 혼란을 틈타 많은 수목이 도벌 당하고
공원도 황폐하여 옛 자취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나무장사 (1952)
한 아낙네가 시내에 나무를 팔러가고 있다. (학동 구 기마대 자리 하천변)
양동시장 (1940년대)
대인시장 입구 (1951)
계림극장과 중앙초등학교 사이에 있었던 동문다리 (현 대인시장 입구) 주변으로,
현재는 하천이 복개되어 그 모습을 찾아볼수 없다
이승만대통령의 중앙포로 수용소 방문 (1952)
이승만 대통령으로 옆의 안내 헌병은 초대 수용 소장인 송인섭 소령이다.
원효사에서 바라본 무등산 (1955)
지산동 꾓재 (1962)
무등산 다원 (1954)
증심사 대나무 숲 뒷편에 자리잡은 이곳은 운모질 부엽토로 된 토질이 깊은 지형으로 아침이면
산자락의 안개구름이 스치고, 낮이면 남향의 따스한 햇살이조화로운 천혜의 조건을 모두 갖춘 다원이다.
뽕뽕다리 (1960) 현재의 학림교가 가설되기 이전에는 방림동 주민이 이 다리를 많이 이용했다.
만수때의 경양지 (1946)
광주시에서 1967년에 태봉산을 헐어 메워 없어진 경양방죽은 조선 세종 때에 축조한 저수지였다.
이 경양지는 수심 약10m, 면적 약 5만평 이었으며,1967년 태봉산을 깍아 매립하여 인근 주택지를 조성했다.
미니 골프장 (1947) 계림동 경양호(경양방죽) 옆에 있었는데 산책 나온 시민들이 즐겨 이용 하였다.
봉선동 일대 (1956)
울렁촌을 중심으로 한 봉선동 일대의 모습으로 농부가 밭에 인분을 뿌리고 있다
(1951) 백운동에서 남광주역 쪽으로 바라본 방림동 일대의 모습
(1950) 사구동 일대의 모습으로 가운데 보이는 다리가 부동교이다
학강초등학교 일대 (1951)
학강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한 양림동 일대의 모습으로 지금은 사라져 버린 뽕뽕다리
(우측 하단 남광주철교 위)가 보이고 좌측 상단에 구 숭일중·고등학교가 보인다.
사직공원에서 바라본 시가지 (1951)
학동과 양림동 일대로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초가집이 태반이다.
중앙 우측에 남광주철교와 학강초등학교가 보인다.
광주역 주변 (1970)
1969년 준공 이전한 광주역 주변 전경으로 우측 상단에 보이는 건물이 효덕초등학교이다.
1969년 준공 이전된 광주역 광장의 전경으로 분수대의 물이 시원스럽게 뿜어나고 있으며,
우측 상단의 큰 건물이 아세아극장이고 중앙 상단의 둥그런 지붕이 광주공원에 있는 실내체육관이다
무등로 주변 (1969)
광주역 광장에서 무등산장 방향으로의 무등로 전경으로 우측에 보이는 건물이 광주광역시청이다.
(1976) 신안동 재매부락 전경으로 중앙이 신안교 뒤의 순환도로 개설공사
절개지이고,우측의 하얀건물이 신안교회이다
(1955) 지금의 광주역 뒷편 신안동 일대의 전경으로 좌측 상단에
구 광주 살레시오고등학교가, 그 옆에 태봉산이 보인다.
임동 일대 (1946)
전남방직 앞에서 무등산 쪽으로 바라본 임동, 유동 일대이다.
보이는 길이 유동 3거리에서 무등경기장 쪽으로 통하는 도로이고
멀리 보이는 건물이 와까바야시 제약공장으로 이 자리에 북성중학교가 들어서 있다.
관덕정 (1947)
새끼 제조공장 (1960)
광주천의 노천시장 (1965)
(1965) 수창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한 북동 일대의 전경으로
복개되지 않은 동계천이 수창초등학교 옆으로 흐르고 있다.
오치고개 (1968)
도로변에 재래식 변소가 설치되어 있고 촌로가 한복차림에 자전거를 타고 있다.
대야제 주변 (1968) 북구 생용동
지금의 패밀리랜드 입구에 있는 저수지의 전경
광송간 도로를 중심으로 한 시가지 (1966)
좌측의 광송간 도로를 중심으로 송정에서 시내쪽을 바라본 쌍촌·화정동 일대.
염주동 일대 (1955)
운천저수지 일대 (1970)
시민들의 위락공간과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사랑받았던 운천보트장의 모습
(1965) 유덕동 일대의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
동계천 (1970)
계림2동 동계천으로 지금은 복개되어 도로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의 동부소방서 뒷편)
사직공원에서 바라본 동구지역 (1947)
사직공원에서 바라본 시가지 모습으로 중앙 공터가 조선대학교 신축부지 이다.
비오는 날의 남동 (1947) 동구 광산동
도청에서 전대병원 가는 거리의 비오는 날 한적한 모습
(1950년대)
지금은 사라져 버린 경양호에서 바라본 계림동 일대의 모습으로 중앙에 무등산이 보인다.
(1965)동명동으로 통하는 광주여고앞 도로다.
도내기 시장 (1970)
서석동과 동명동 사이 조선대 후문 입구에 있었는데
1987년 조선대∼법원 구간의 순환도로(필문로) 개설시 철거되었다.
동구 학동 확장전의 남문로 (1973)
남광주에서 화순쪽을 바라본 것으로 남문로가 확장되기 전의 모습이다.
지산동 주변 (1962)
지금의 지산유원지 주변 모습으로 여학생들이 소풍을 가고 있다
(1947) 학생의 날 기념행사로 광주 북중(지금의 북성중학교) 학생들이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1960년 4.19 의거 당시 광주고등학교 학생들의 시위 모습으로
교문 앞에서 교사와 경찰의 제지를 받고 있다
1963. 6. 3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를 시위를 벌이는 군중들이 전남도청으로 들어가고 있다.
(1946) 광주역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배달꾼들의 모습
전남대학교 (1959)
1952년 5개 단과 대학과 대학원으로 개교한 전남대학교의
모습으로 가운데 본부 건물과 박물관이 있다.
조선대학교 (1951)
이 고장 최초의 사립종합대학인 조선대학교는 1946년 박철웅에 의해 4학부 12개 학과로 설립 되었다.
산의 동남쪽 해발 950미터의 층암괴석을 규봉이라 부른다.
원래는 규봉사 입구에 우뚝 솟은 세개의 돌기둥을
규봉이라 했다 하는데, 이 바위를 삼존석 이라고도 한다.
삼존석의 왼편 바로 밑에 넓은 반석이 있는데 이것은 입석 서석과 함께
무등산의 3대 석대의 하나인 광석대(廣石臺)다.
이곳에서 발아래를 내려다 보면 동복수원지와 화순의 물염적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용추계곡
용추계곡은 무등산 남쪽으로 머무는 계곡으로 장불재에서 흘러내린 물이
샘물을 이루다가 치마바위를 거쳐 용추폭포의 절경을 이룬다.
무등산 유일의 천연폭포로 높이 9.8m 로 양편에 각종 활엽수가 무성하여
여름에는 무성한 녹음을, 겨울에는 활짝 핀 설화가 매우 아름답다.
산신에게 제사를 올려야 수확할 수 있는 진상품이었다.
무등산 수박은 일명 '푸랭이 수박' 이라고도 불리운다.
8월 중 하순에야 그 거대한 자태를 나타내 여름철 미각의 꼬리를 장식해 준다.
온상에서 키워 초여름 부터 시중에 나도는 개량종과는 달리
고집스레 옛 전통을 이어 재배되는 재래종 수박이다.
무등산 중턱의 안개와 이슬을 머금으면서 낙엽으로 형성된 비옥한 토질속에서 재배되기 때문에
특수한 향기와 맛이 별미인 무공해 수박으로 큰 것은 무게가 30Kg 이나 나가고
보통은 4∼5Kg 이며 껍질이 두꺼워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거죽도 알록달록 하지 않고 진짜 수박색 한 빛깔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무등산에서 수박을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한말 무렵에는 진상품 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수박은 재배에 엄청난 정성을 기울여야 된다. 이른봄에 깊이 1m 이상의 구덩이를 파고 그 구덩이를
퇴비로 가득 채워야 했으며 그 위에 씨를 뿌려 수박을 가꾼다. 수박이 열리면
가장 확실한 좋은 것 만 하나 남겨두고 모조리 움을 따 버린다.
또 수박은 한번 경작하면 다음해에는 땅 기운이 없어 매년 재배지를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가꾼 수박을 칼로 쪼개면 하얀 서리발이 서는데, 아무래도 진귀한 산물이 아닐 수 없다
|
첫댓글 이서방!우리에게는 너무도 정겨운 사진같아서 보내네.
영원한 광주사람으로 주장하는 저로서는 귀한 모습에 감사드립니다. 어려서 뛰어놀았음직한 장소도 보이고,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곳들도 많아요. 생용저수지로 알고있었는데 대야저수지(울아버지3형제와 우리 사촌들의 인생에서 커다란 바탕되었던 곳), 구역, 경양방죽, 대인시장 가는 길목, 잠시나마 행복합니다.
오치고개 영감님 지나가는 사진은 월산부락 앞 신작로 같습니다. 오치고개는 차돌고개아니면 매마리 고개일겁니다.
너무너무 정겨운사진들이네. 과거에한두번 다녔던 길이많구만. 우리가 옛추억을그리워하는것은다시돌아갈수 없기때문이겠지 하지만 오늘 이시간도지나면 과거가돼듯 우리훗날 오늘을자랑스러운추억거리로 만들도록 열심히 살아갑시다 ~~~~~~~~
그렇지요? 그래서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것이겠지요. 하루 하루 열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