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곳이지만 아무래도 여름에 제격이다. 낭만과 열정이 함께하는 해수욕장은 여름에 더욱 '제값'을 한다. 7월에 들어서면서 해수욕장들이 일제히 손님들을 맞는다. 경남도내 28개 개장해수욕장도 7월 1~14일 사이 피서객을 맞기 시작해 8월 20~22일까지 운영한다. 해수욕장 개장을 앞두고 통영의 '비진도 산호빛 해변'을 찾았다.
한쪽엔 천연모래밭…다른 쪽엔 몽돌밭
비진도 주변 바다는 유난히 푸르다. 섬 지명은 산수가 수려하고 풍광이 훌륭할 뿐만 아니라 해산물이 풍부하여 '보배(珍)에 비(比)할 만하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전해오는 말이 아니라도 청정바다만 봐도 '보배'라는 말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비진도를 찾아간 날 '산호빛 해변' 바다는 눈이 시릴 만큼푸르렀다. 그리고 호수처럼 잔잔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반원형으로 펼쳐진 백사장의 은빛이 대조를 이루며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비진도는 먼 곳에서 보면 두 개의 섬으로 보일 만큼 봉긋하게 솟은 두 개의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항과 외항으로 불리는 두 곳을 연결하는 해변이 마치 아령의 손잡이 같다. 두 곳을 남북으로 잇는 시멘트길을 중심으로 서쪽은 백사장, 동쪽은 몽돌해변이 전혀 다른 풍경을 연출하는 것도 비진도해수욕장만의 특징이다.
'비진도 산호빛 해변'은 청정 남해바다와 천연모래로 이루어진 한쪽의 백사장, 다른 한쪽의 몽돌밭이 어우러져 천혜의 자연해수욕장을 빚어낸다.
해수욕장 한곳에서 일출과 일몰 감상
서쪽 해안은 부드러운 은모래 사장과 잔잔한 바다 물결이 평화롭다. 동쪽 해변은 몽돌밭에다 거센 물결이 몰아치는 독특한 지형이다. 동쪽 해변의 먼 바다는 거제도 남쪽 끝자락을 거쳐 한일해협으로 이어진다. 서쪽 해변은 오곡도와 마주하고 있지만, 멀리 남해섬까지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다. 이런 지형 덕분에 해수욕장 한자리에서 동해의 일출과 서해의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해수욕장이 있는 외항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황원남(62) 외항마을 이장에 따르면 1987년 7월 15일과 2003년 9월 12일 각각 우리나라를 내습한 태풍 셀마와 매미 때 내항과 외항 두 섬을 잇는 시멘트길과 함께 서쪽 해변의 모래가 동쪽 몽돌해변으로 대거 쓸려갔다. 그전엔 모래톱이 지금보다 2m 정도 더 높았다고 하니 그 많은 천연모래가 어디서 오는지 궁금할 정도다.
지금도 비진도 백사장은 어느 해수욕장보다 모래가 곱고 넓다. 길이 550m에 폭 40m로 펼쳐진 백사장은 멀리서 바라보는 전경만으로도 장관이다. 거기에다 "비진도해수욕장에서 익사사고가 한 번도 없었다"는 황원남 이장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수심이 얕아 해수욕장으로 안성맞춤이다.
이런 조건 때문이었을까? 비진도해수욕장은 여가문화가 지금처럼 일반화되기 훨씬 이전인 1980년대부터 여름 한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수많은 피서객들로 붐볐다.
황원남 이장의 말을 빌리면 당시 소문이 자자했던 비진도해수욕장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그는 "80년대와 90년대에는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7월 24일쯤부터 8월 중순까지 20일 정도 기간에 피서객이 6만명 정도 다녀갔다"고 회상했다.
그때 외항마을 60여 가구의 모든 방이 꽉 차서 평상에 하늘만 가려도 3만원 정도 받았다고 한다. 백사장에 가로세로 6m 정도의 천막 10개를 마을사람들에게 입찰에 부쳤는데 개당 500만원에 낙찰되고, 천막 한 개의 하루 매출액이 300만원 정도 달했다는 게 황 이장의 말이다. 그는 당시 프로씨름단의 전지훈련, 현란한 조명과 음악으로 가득찬 '천막나이트클럽'을 떠올리기도 했다.
당시에는 통영에서 여객선이 하루 3번만 다녔는데도 피서객이 밀려들어 인근 다른 섬을 통해서 조그만 배로 실어 나르기도 했다. 바다를 구경하기 어려운 지역이어서인지 대구쪽 사람들이 많이 왔다는 게 황 이장의 기억이다.
해수욕객과 함께 탐방객들 많이 찾아 하지만 IMF가 터지면서 피서객이 순식간에 줄어들더니 그후에도 다른 피서지가 많이 생겨나면서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2008년 '한려해상 바다백리길' 비진도 구간인 '산호길'이 조성되면서 탐방객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
피서객도 점차 늘어나 요즘엔 펜션이 몇 개 들어섰는데도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한 달 정도는 예약하지 않으면 민박을 포함해 방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통영에서 40분 정도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섬 해수욕장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 데는 또 다른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비진도는 작은 섬이라 해수욕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다.
해수욕장 서쪽 해변에서 손닿을 듯이 보이는 부속 섬 춘복도는 잔잔한 바다의 단조로움에 변화를 준다. 외항마을 해변 언덕의 소나무 숲은 그늘을 이루며 운치를 더한다.
조금 시간 여유가 있다면 '산호길' 탐방을 권한다. 외항 선착장을 기점으로 해발 312m의 선유봉을 거쳐 도는 탐방로는 전체 5.2㎞ 구간이라 천천히 숲의 기운을 느끼고 통영 바다를 조망하며 걸어도 3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산호빛 해변' 조망점, 대나무숲길, 망부석전망대, 미인도전망대, 선유봉전망대, 갈치바위, 비진암, 소사나무숲길 등을 거치며 섬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섬마을 정취 간직·드라마 '백희가...' 촬영
비진도는 해수욕장으로 이름나 있지만 섬마을의 정취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산호빛 해변' 백사장과 외항마을은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된 한 방송사의 4부작 드라마 '백희가 돌아왔다'의 촬영지로 TV 브라운관을 타면서 그 전경을 전국에 알렸다.
난·온대 해양성 기후를 가진 비진도는 생달나무, 동백나무, 후박나무, 마삭나무, 광나무, 해송 등이 군락을 이루며 이국적 풍경을 연출한다. 해수욕장에서 1.5㎞ 남짓 떨어진 내항마을은 섬마을 정취를 더욱 풍긴다. 국내 자생지로는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는 이곳의 팔손이나무 자생지는 천연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진도는 섬 곳곳에 낚시터가 있어 해수욕과 낚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외항의 노루여를 비롯해 긴출여, 문둥여 등이 낚시 포인트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천혜의 비경과 조건을 갖춘 '비진도 산호빛 해변'은 가족 단위는 물론,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통영을 찾는 친구와 연인들이 피서와 함께 오래 남을 추억을 담아가기에 손색이 없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