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력
김수영/남해해성고등학교 2학년
초록빛 이파리 사이로 뜨겁게 내리쬐던 햇볕의 강렬함을 사라지고 색바람이 불어와 햇볕을 식히며 또 한번의 계절이 찾아왔다고 속삭인다. 세상의 빛을 바꾸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신록으로 펼쳐졌던 산등성이들은 금세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강물의 물이 하염없이 보이지 않는 끝을 향해 내달리듯 흘러간 시간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매번 옷을 갈아입고 변화하는 세상의 모습을 바라 볼 때마다 기뻐했다. 그리고 “이젠 괜찮아.”라고 혼잣말 하며 웃어보일 수도 있었다.
올해 나의 달력에는 여러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날들은 물론이고 소소한 추억들마저 기록하는 것이 나의 특기이다. 이번 달력에는 다른 해와는 다르게 특별히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그려둔 날이 있다. 내 생일보다 더 중요하고 잊을 수 없는 날이다. 2월의 첫 날, 동생이 태어나던 날이었다. 17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이 세상의 빛을 보던 날은 내 일생의 달력 중 최고의 표시로 남게 될 것이다.
동생이 태어난 후 커다란 기쁨을 안겨 준 복덩이었지만 기쁨도 잠시 엄마에게 짙은 먹구름과 같은 우울증이라는 녀석이 찾아 온 것이다. 우울증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 온 나는 덜컥 겁부터 나기 시작했다. 늘어만 가는 엄마의 한숨과 눈물, 결국 이겨내지 못한 엄마는 동생을 두고 자리를 떠났다. 그것이 동생이 태어난 후 두 장의 달력을 뜯은 후이다. 다시 돌아 올 것이란 말도 확실하지 않았다. 막막한 상황에 내려 앉은 아빠와 나, 그리고 어린 동생. 다행히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셔서 힘을 내고 일어날 수 있었다. 엄마의 빈자리를 메워보고자 두 팔 걷고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동생을 바라 볼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는 아빠와 할머니. ‘어떻게 저렇게 예쁜 아이를 두고 갈 수 있었나.’ 라는 생각이 자꾸만 반복되었다. 내 발을 넣고도 한 뼘 정도나 남는 엄마의 뾰족구두를 신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시려오는 마음과 아직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구두를 신고 있는 나의 상황에 휩싸여 하루를 보내야 했다. 엄마가 동생을 돌볼 때 봐둔 것이 있어 아는대로 차근차근 시작했다. 달력에도 하나씩 새겨두었다.
‘오늘은 우유 800ml, 기저귀는 6번.’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9시였고 그 뒤로 공부보다는 동생을 돌보는데 바빴고 순에 펜을 들기보다는 기저귀를 먼저 들었고 젖병이 들려 있었다. 장사로 피곤하신 아빠는 매번 ‘내가 재우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도 어느새 잠들어 계셨다. 동생은 늦게 잠들었다. 재우기도 쉽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절로 흘러내리는 눈물.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새벽에도 마치 알람을 맞춰 놓은 듯 동생의 울음소리로 일어나게 되었고 장사를 하러 나가신 아빠와 할머니, 편찮으신 할아버지 때문에 학교에 늦은 적도, 심지어는 깨어있는 동생을 유모차에 태워두고 혼자 남겨놓고 학교에 나선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감기는 눈을 막지 못했다. 항상 무거웠던 눈꺼풀. 친구에게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다. 그저 동생이 잘 자라고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것이 전부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하나 모든 것이 소중해 보였다. 빈자리가 컸던 탓일까. 매 순간은 1분이 1년인 듯이 아주 느리게만 느껴졌지만 동생의 웃음 띤 얼굴에 금방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모두 그랬다. “내가 동현이(동생) 보는 맛에 살지.” 내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대단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닥치면 모든 사람들은 나와 같이 대처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석달이 지나던 그 날, 달력에는 빼꼼히 나의 기록들이 남았고 지나간 시간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동생도 부쩍 많이 자란 듯 싶었다. 다시는 연락도 하지 않을 것 같던 엄마의 소식이 들려왔다. 친정에 있던 엄마를 아빠가 데리러 가신다는 것이었다. 어린 동생이 내 손에서는 자랄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아빠가 몇일 전부터 전화로 타이르신 것 같았다. 그렇게 햇볕 뜨겁던 날, 엄마는 돌아왔다. 빈자리를 메워 주셨다. 나의 걱정 또한 민들레 씨앗이 하늘을 날아다니듯 저리로 저리로 가버렸다.
어제, 올해 들어 달력의 아홉 번째 장을 뜯었다. 힘겨운 날들이 지나갔다. 동생의 해맑은 미소도 더욱 커져 간다. 엄마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힘써서 동생을 키우신다. 엄마가 없었던 그 석달 동안, 나는 아주 많이 성숙했다.
올해 나의 달력은 절대로 버리지 못할 것 같다. 나의 소중한 추억, 슬프고 힘겨운 일이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오히려 큰 성숙의 계기가 되었으니까.
“이젠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