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사랑 61번 천금순 시집 {아코디언 민박집』
보도자료
천금순 시인은 서울에서 출생했고, 1990년 <동양문학>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마흔세째의 아침],『외포리의 봄], {두물머리에서],『꽃그늘 아래서』등이 있다. 천금순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인『아코디언 민박집}은 일종의 국토순례의 시라고 할 수가 있다. 그의 시들은 조금도 과장되거나 허풍이 없으며, 이 정직함에 의해서 그의 시는 현실주의의 전형이 된다. 제주도 강정마을, 굴업도, 지리산 오지마을, 단양과 괴산의 사람들, 강원도 영월과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며, 우리 인간들의 모든 소망을 기원하게 된다. 천금순 시인은 사랑과 평화와 행복의 전도사라고 할 수가 있다.
산과 산 사이 마을과 마을 사이 개울을 건너 노루목마을에 닿았다. 삼산리 인동할매가 소개해 준 오래된 팽나무 그늘, 그 그늘 어디쯤 아코디언 민박집 마당엔 늦은 고사리를 꺽어 말리고 안주인은 대나무밭에서 따온 죽순을 손질하고 있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며 칙술과 고사리나물을 내왔다. 늦은 저녁을 마치고 벽에 걸린 퇴색한 낡은 옛 사진처럼 민박집 주인은 옛 노래 한가락을 연주하고 있었다. 이제껏 걸어온 지리산 자락의 둘레길처럼 때로는 힘겹게 때로는 가볍게 아코디언을 접었다 폈다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인생역정을 연주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리고 내가 머문 방 어둠 속 무화과나무로 깍아 만든 뱀을 밟고 서 있는 까만 이의 노인. 조각해 만든 커다란 악어의 무서운 이빨, 작은 창으로 바람에 쓸리는 대나무소리 휙휙 문 위의 금장을 두른 긴 장검이 놓인, 잠이 오지 않는 나는 목욕탕의 타올 두 개를 걷어 거기에 덮어 씌웠다. 어둠 속 반짝이는 두 눈동자 문 밖으로 삵괭이 지나는 소리.
----[아코디언 민박집] 전문
금순형의 노작(勞作) 한 판이로다. 참 많이도 걷는구나. 걸을 때마다 시가 절로 뒤 따르는구나. 무슨 까닭으로 족근통으로 침 맞아가며 이 걸음 멈출 줄 모르는고. 정녕 무슨 까닭이 있을진저. 이 길들이 이내 조국강토의 산야를 깨우치는 길이므로! 나 자신을 만나는 길이므로! 우리 금순형의 시가 이토록이나 길 위에서 태어나 한층 견실한 바에 삶의 가물과 세상의 장마가 서로 맞선 질곡을 떨치는 힘 아니랴.
저 제주 일주로 한라와 마라마저 말 디디는 곳이고 저 설악 태맥 소백 비로와 마고 할멈의 지리까지 가슴에 퍼담는구나. 저 동해 강릉 울진과 울릉도와 영월 단양도 저 서해 굴업도까지 어디까지 싸지르며 천왕봉 이하 87봉을 다 불러내고 탐라 1만 8천 귀신의 묵은 잠결도 두루 건드리는구나. 그러고도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하고 비 맞은 떠돌잇길을 내일도 모레도 가려는구나. 실로 여러편의 극명한 작품들이 자랑스럽거니와 그 중에는 단 네줄의 '도동항에서'는 이내 가슴에 못 박혀 버리고 마는구나.
----고은 시인
지나치게 솔직하다 싶을 정도로 액면 그대로의 삶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천금순 시인의 시편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잃어져가는 인간의 진정성과 끈끈한 온기를 되찾게 한다. 이번 시집 에서도 그런 촉촉한 흡인력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국토 순례라는 단일 주제를 통해 사람과 자연에 대한 뜨거운 겸애兼愛의 시학을 이전보다 훨씬 힘차게 드러내고 있음에서 한층 심화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거룩한 성인의 탄생지나 기적의 장소를 찾아가는 성지순례만이 ‘순례’의 길이 아님을, 천 시인은 여류 ‘천삿갓(千笠)’이 되어 관통해 간 모든 길들 위에서 깨닫는다. 그가 그린 진경산수에는 아름답고 훈훈한 풍경뿐만 아니라, 강정 마을, 굴업도 같은 문제적 이슈의 현장들도 등장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의 ‘순례시편’을 가벼운 낭만주의적 여행시와는 구분되는 정신적 구도求道의 시 혹은 현실적 삶의 ‘지평地平찾기’의 시로 읽어야 마땅할 것이다.
-이가림 (시인, 인하대 명예교수)
지혜사랑 61번 천금순 시집 {아코디언 민박집}, 도서출판 지혜, 4X6 양장본 값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