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년 | 기해(己亥) 1599년 |
합격연령 | 26세 |
본관 | 정의(旌義) |
거주지 | 제주(濟州) |
전력 | 교생(校生) |
[부] 성명 : 안의인(安義仁)품계 : 효력부위(効力副尉)
갑자증광문무과방목(甲子增廣文武科榜目)〉
居제주(濟州) |
効力副尉 禦侮將軍 |
1派17世감찰공파安成逸1 |
居제주(濟州) 己亥1599生 |
仁祖甲子武科 교생(校生) |
1派18世감찰공파安義仁1 |
본래 제주 동도(東道)였는데 1416년(태종 16) 이 중 한라산 남쪽의 토산(兎山)ㆍ호아(狐兒)ㆍ홍로(洪爐) 등을 통합하여 정의현을 신설하였다. 현의 치소는 처음에 고정의(古旌義)에 있었는데 바다에 가까워 바람이 심하고 왜구의 위험이 있다 하여 1423년(세종 5) 진사성(晉舍城)으로 옮겼다.
1895년(고종 32) 군으로 승격되어 제주부에 속하였고, 이듬해전라남도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제주군에 병합되었고 1931년남제주군에 들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이 지역의 자체 방어계획에 의하여 옛 정의현의 치소였던 고정의성(古旌義城)은 고려 때 원나라가 설치한 목장을 관리하는 만호가 있었던 곳으로 태종 때 축성하였고, 읍성은 세종 때 쌓았다.
수군의 주둔지로 수산진(水山鎭)과 서귀포진(西歸浦鎭)이 있었고, 해안에는 호촌(狐村)ㆍ자배악(自盃岳)ㆍ토산(兎山)ㆍ달산(達山)ㆍ남산(南山)ㆍ성산(城山) 봉수가 이어졌다. 당시에는 해안도로와 함께 한라산 동쪽 기슭을 넘어 제주를 잇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한라산 기슭 전체가 목장이었는데, 수산평(水山坪 : 지금의 성산읍 수산리)은 원나라가 처음으로 소ㆍ말ㆍ낙타ㆍ나귀ㆍ양 등을 방목했던 곳이다. 당시의 행정구역에서 우도(牛島)가 양분되어 제주와 정의지역으로 나누어진 것이 흥미롭다. 지금의 성산읍과 표선면 지역으로 추정된다.
순흥안씨 각파후손 도별 분포현황
順興安氏 各派後孫 道別 分布現況
제주도 지역 분포현황
제주도
감찰공파
제주시 제주면 화북리
신좌면 선흘리
순흥안씨약사(順興安氏略史)에서 발췌
제주도 | 1 | 무안군 이로면 부주리 | |||
1 | 감찰공파 | 제주시 제주면 화북리 | 1 | 함평군 학교면 춘동 | |
1 | 신좌면 선흘리 |
순흥안씨 집안 유물 제주시에 기증 청동유개합 등 8점..조선초기 유물 추정
▲ 안흥용씨가 이날 제주시에 기증한 유물 ⓒ제주시청 제공
조선초기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도자기 등 최소 400여년 역사의 유물이 제주시에 기증됐다.
제주도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 회장이자 산천단유원지 개발 업체인 ㈜부건 대표 안흥용씨(62)는 순흥안씨(順興安氏) 입도조(入島祖)인 안수도(安秀道.~1529년) 공의 부인과 아들 묘에서 출토된 유물 8점을 13일 제주시에 기증했다. 이날 기증된 유물은 구경 16.8㎝ 높이 8㎝의 청동유개합, 분청인화문 병, 흑유 병, 동제수저, 금동이식일괄 등 5종 8점이다. 유물은 올 여름 문중 묘역 이전 과정에서 출토된 것으로 제주시는 안수도 공의 생존연대로 미뤄 이들 유물이 조선초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시는 이날 안씨에게 감사패를 수여하고, 기증된 유물은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목관아전시관에 전시할 예정이다.
|
| |||||||||
제주세거 입향 시조로 하는 성씨-順興安氏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
감찰공파(監察公派)의 안수도(安秀道)는 연산군 10년(1504) 무오사화로부터 가문을 지키기 위해 낙향하여 납읍에 정착
안수도(安秀道)
1派13世-감찰공파(監察公派)
世祖戊子生 제주입향시조 |
戶曹參判 |
1派13世-감찰공파安松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