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서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따라 사랑하며 이단을 경계하라
(찬송 220장)
2024-2-29, 목
맥락과 의미
오늘 말씀은 진리와 사랑에 대해서 잘 가르치고 있습니다. 진리 속에서 사랑하고 사랑 안에서 진리를 가지라고 합니다.
1. 문안 인사 (1-3절)
2. 진리와 사랑 가운데 행함 (4-13절)
3. 끝인사 (12-13절)
1. 문안 인사 (1-3절)
첫 번째 말씀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1절은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 여기 부녀는 여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주인/주님”의 아내인 “여주인”입니다. 요한이서는 어떤 믿는 여성에게 보낸 편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녀(여주인)”는 교회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아버지와 주님이 되시고, 교회는 성도의 어머니와 여주인과 같습니다. 이 교회의 자녀는 바로 성도입니다. 어머니 교회의 사랑은 직분자를 통해 나타납니다.
사도 요한은 교회의 장로 중 한 사람으로서 같이 택하심을 입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편지합니다. 장로는 가르치는 장로와 치리하는 장로가 있습니다. 가르치는 장로를 요즘은 목사라 하고, 치리하는 장로를 “장로”라 합니다. 사도들은 자신을 “장로”로 소개합니다(벧전 5:1). 말씀을 가르치는 사도들의 일을 목사들이 계승합니다.
우리는 교회가 어머니라는 사실을 잘 기억합시다. 어거스틴, 칼빈 등 신앙의 선배들도 교회는 성도의 어머니라고 고백했습니다. 교회는 인간이 세운 기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낳고 기르시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진리와 사랑 가운데 우리와 함께 있을지어다”(3절).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를 성도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보낸 서신서는 이 축복을 교회에 전합니다. 편지를 쓰는 자와 편지를 받는 자, 축복을 주는 자와 축복을 받는 성도가 함께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받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나 뿐만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들이”(1절). 사랑과 진리, 이 두 단어가 핵심입니다. 성도가 성도를 서로 축복하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왜 사랑합니까? 진리를 함께 알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복음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은 서로에게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전합니다. 말로 축복할 때, 하나님께서 그 복을 전달해 주십니다.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에게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구원받는 은혜를 주시기 원합니다. 그 은혜 때문에 마음의 평안과 강함과 물질적 복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은혜와 평강은 진리와 사랑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오직 복음을 바로 알 때 그 사랑 안에서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 안의 은혜와 평강에는 고난도 포함됩니다(빌 1:29).
2. 진리와 사랑 가운데 행함 (4-13절)
4절에서 감사합니다.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것을 우리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사도의 기쁨은 성령님의 기쁨입니다. 성도의 행함 때문에 오는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행하는 자라야 기뻐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계명 안에 있는 진리는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형제자매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도는 교회가 이 사랑의 계명을 듣기만 하지 않고, 그 가운데 행하는 것을 심히 기뻐했습니다.
5절에서 ”부녀여” 즉 교회여, 서로 사랑하자고 합니다. “이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이 아니라 옛날부터 받은 계명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것은 구약 성경에서 하신 말씀이요(레위기 19:18), 예수님께서 다시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22:39).
사도 요한도 옛 계명을 계속해서 교회에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서 분명히 가르치시고, 십자가에서 모범을 보이신 그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6절, 요한복음 14:15).
우리는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서로 사랑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을 통해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게 합니다. 지금까지도 우리가 사랑해 왔지만 오늘도 서로 사랑하고 말씀에 계속해서 순종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완전의 관점에서 보면 계속 불순종하고 계명을 지키지 않습니다. 사랑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온전히 순종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첫 번째 명령에 이어서 진리를 꼭 붙잡으라고 두 번째 명령을 합니다. 7절에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바른 교훈을 부수는 미혹하는 자가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입니다.
그때에 영지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까 육체를 입으실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사상의 영향으로 교회 공동체 성도들 중에서도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실제로 몸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금욕적이고 생활이 신실하고 착하게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실제 사람의 몸을 가지지 않으셨다면 몸을 가진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벌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없습니다. 이런 주장들은 우리 몸으로 일하고, 먹고, 결혼생활하는 것들을 무시합니다. 성도의 거룩한 삶을 무너뜨립니다.
그들은 적그리스도입니다. 9절에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교훈, 계시의 말씀 바깥으로 지나쳐 나갔습니다. 진리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주변의 세속사상을 따라 갔습니다(신플라톤주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테두리 안에서 무엇이든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부인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멸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단들을 어떻게 대해야 됩니까? 인사도 하지 말고 집으로 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인사하면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니라”(11절). 그런 사람들에게 잠자리나 먹을 것을 제공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혹은 교회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말하는 뜻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도 이단을 경계해야 합니다. 목사는 올바르지 않는 교리에 빠진 교인을 바르게 자세히 가르쳐야 합니다. 계속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그들을 교회에서 추방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지 않으셨다.” 지금도 성도들 가운데 그런 위험한 생각이 조금씩 일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신앙을 추상적으로 이해하는 잘못을 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육체를 가진 사람이 되시고 사랑을 하시며 사셨음을 바로 알 때 우리의 삶이 많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음을 인정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것(죄짓는 것은 제외)을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으로서 다 경험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셨음을 알기에 우리도 일상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과 관련된 소중한 순간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일상 가운데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빌립보서 2:8). 가사일 하고 직장에서 일하고 학생들은 공부하는 그 모든 과정 가운데서 하나님께 복종하며 서로를 섬깁시다. 그렇게 하여 그리스도를 경배하기를 바랍니다.
3. 끝인사 (12-13절)
성도들끼리 기쁨을 가지고 인사하고 문안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13절에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들이 네게 문안하느니라.” 요한이 있던 곳의 자매, 즉 교회의 자녀, 성도들이 문안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이렇게 서로 문안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새 백성이 되었고 한 지체가 되었기 때문에 서로를 정말 소중히 여깁시다. 서로에게 부족함을 볼 때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신 사실을 알고서 진리 안에서 서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합시다. 사랑 가운데 문안하면서 기쁨이 충만한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평화, 긍휼을 서로에게 말해 주며 축복합시다. 진리를 잘 배우며 하나님을 굳게 믿읍시다. 참 믿음 가운데 서로 사랑합시다. 성경과 어긋나는 가르침은 항상 경계하고 진리 안에 살아갑시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셔서 살아가신 것과 동일한 삶을 우리도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삶의 순간 순간을 복종하며 소중히 여기고 기쁨으로 살아갑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참고> 1절, 부녀
부녀(큐리아)는 여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16장에 사라를 하갈의 “여주인” (창 16:4,8,9)이라고 합니다. 부녀는 단순히 여성이 아니라, 한 집의 여주인입니다.
“큐리아”의 남성형 “큐리오스”는 “주인,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를 ‘여주인’이라고 하는 것은 ‘주인/주님’이신 하나님과 짝을 이루는 표현입니다. 하늘에 계신 주인님/주님의 몸인 교회는 ‘여주인’입니다. 교회는 모든 성도의 여주인이요 어머니입니다.
<참고> 3절, 긍휼과 은혜와 평강
사도들의 편지들은 대개 인사말에서 “은혜와 평강”을 말합니다. 개인을 향해 쓴 편지에는 “긍휼”을 더 추가합니다(요한이서 3절, 딤전 1;2, 딤후1:2, 참고: 유다서 2). 요한이서도 “긍휼”이 추가된 것으로 보아 개인에게 쓴 편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편지들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고 하는데, 요한이서는 ”우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