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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을 위한 테제들
로렌 골드너
1) 사회적 재생산의 축소 (CONTRACTING SOCIAL REPRODUCTION)
지금의 위기는, 세계적 규모에서 보자면, 1914-1945년 시기의 파괴를 재건했던 전후호황이 끝나면서, 1970년 무렵에, 처음에는 미국에서 그리고 곧이어 유럽과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그때 이후 자본주의는, 사회적 재생산의 끝없는 하락을 통해, 가장 중요하게는 노동자계급 임금 총액(“V”) 그리고 고정자본과 사회기반시설 양자의 불변자본(“C”)에서 끝없는 하락을 통해, 스스로를 “재구성”하려고 몸부림쳐 왔다. 자본주의는 이것을 부채 피라미드 쌓기, 전 세계로 생산을 아웃소싱하기, (통신과 운송 그리고 기술주도 생산에서의) 기술적 혁신을 통해 수행했다. 이 모두는 “V”와 “C”를 “S”(잉여가치)로 이전하는 대신 노동력의 전반적인 비-재생산(NON-REPRODUCTION)을 강제한다는 같은 목표를 가졌다.
자본은 1914-1945년 시기에 얻었던 것과 같은 결과, 즉 새로운 확장에 필요한 적절한 이윤율의 재수립을, 아직까지는, 대규모 전쟁에 의지하지 않은 채 얻으려고 노력해 왔다. 자본은 몰락한 과거 동구권과 아시아(한국, 중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인도)에서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반면, 동시에 미국 중서부, 영국 중부, 파리 근교와 알사스, 루르 같은 서구의 기존 “노동자 요새들”을 해체하거나 축소시켰다. 자본은 ‘한 개의 급여봉투로 살아가는 블루칼라 가족’을 오래 전에 폐지했다. 자본은 출퇴근 시간을 엄청나게 늘리고, 주택비용을 전형적인 노동자계급 수입의 50%에 가깝게 만들며, 주요 도시들을 비생산적인 FIRE(Finance(금융) + Insurance(보험) + Real Estate(부동산)) 종사자들을 위한 테마파크로 바꿈으로써, 노동자계급을 뉴욕, 런던, 최근에는 파리 같은 “금융 중심지”로부터 추방했거나 추방하고 있다.
2) 상황 (CONJUNCTURE)
1929년 이후 최대였던 2008년의 폭락은 한편으로는 1980년 무렵(레이건, 대처) 이후 자본주의를 추동해 왔다고 여겨지던 “신자유주의” “금융화” 모델의 신뢰를 추락시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경기회복이 뒤따랐는데, 그 속에서 정부들은 어느 때보다 거대한 부채를 투입해서 이전의 상태를 되살려 내려고 시도했다. 이것은 “자본의 확장과 사회적 재생산의 축소”라는 1970-2008년의 경향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주식시장은 회복되었다. 은행은 손실을 잘라내고 강화되었다. 최상위 1% 부자들은 “소득 증가분” 가운데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비율을 계속 가져갔다. 반면 미국에서 “실물경제”는 침체 또는 하강했다. 대략 15-20%의 노동자들이 실업 또는 불완전고용 상태에 있다. 몇십 만 명이 압류와 퇴거로 집을 잃고 있다. 일본은 20년 동안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유럽에서는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영국, 그리고 남유럽권(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이 큰 타격을 받았다.
3) 가치의 진부화 (OBSOLESCENCE OF VALUE)
모든 겉모습의 밑에 깔린, 상황의 실체는, 상품 특히 노동력 상품의 재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시간이자, 인간의 확장된 물질적 재생산을 계속하기 위한 하나의 틀인, 자본주의 가치의 진부화이다. 위기에 빠진 자본은 급락하면서 사회를 잡아당긴다. 일반 이윤율이 새롭게 실질적 확장을 가능하게 할 때까지 노동력이든 자본설비든 소비재상품이든 현존하는 상품들의 가치를 하락시켜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노동자계급이 가치를 파괴해야 할 것이다.
4) 국가주의 대안의 몰락 (COLLAPSE OF STATIST ALTERNATIVES)
1970년 이후의 위기는, 과거에 대안으로 여겨졌던,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에 대한 신뢰가 더 폭넓게 추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이 축소되거나 사라진 가운데, 위기는 그들이 늘 무엇이었는가를 폭로했다. 그들의 역할은 (국가권력을 장악하거나 실질적 영향력을 획득한 나라들에서) 농업에서의 전(前)자본주의적 형태를 제거하고 토지를 농민에게 제공함으로써, 부르주아 혁명의 최소강령 가운데 한 측면을 완수하는 것이었다. (서유럽처럼) 그들의 과거가 껍데기나마 남아있는 곳에서, 그들은 오로지 위기 관리자로서 “우파”와 경쟁할 수 있을 뿐이었다.
5) 노동자계급에 맞서는 정당과 노조들 (PARTIES, UNIONS AGAINST THE WORKING CLASS)
1970년대의 전환점 이전부터, 좌파의 낡은 조직들과 그에 연결된 노조들은 노동자계급에 맞서 그리고 1950년대에 시작되고 1970년대 초중반에 절정이었던 노동자계급의 “현장반란”에 맞서 싸웠다. 그 시절부터 그들은 자본의 어떤 특권에 대해서도 도전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그것을 수용할 뿐이었다.
6) 좌익 공산주의 (LEFT COMMUNISM)
우리는 스스로를 넓은 의미에서 좌익 공산주의자로 규정한다. 좌익 공산주의는 1차 대전 이후 혁명적 물결 속에서 하나의 자기의식적인 경향으로서, 특히 독일-네덜란드의 평의회 공산주의와 이탈리아의 공산주의 좌파(“보르디가주의”) 속에서 처음 출현했다. 그들 사이의 차이가 충분히 실질적인 것이긴 했지만, 러시아 혁명 직후 몇 년 동안에, 이들 두 경향은 볼셰비키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경계를 간단히 구분 지을 수 있었다. 이들은 러시아 혁명을 보편적 모델로 받아들이길 거부했으며, 농민과 동맹한 볼셰비키주의의 “이중 혁명”과는 다르게, 발전한 자본주의 서구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홀로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혁명의 주된 지속적 성과인, 농업문제의 해결은, 그와 연관된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부르주아 혁명의 과제들이다. 20세기의 “거대한 환상”은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이름으로 대신 수행된 다수의 부르주아 혁명들의 혼란이었다. (이것은 세계혁명의 실패가 러시아 혁명을 고립시키고 내부적 쇠퇴가 러시아 혁명의 프롤레타리아적 내용, 소비에트, 노동자평의회를 제거했을 때, 러시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진정한 공산주의 이론과 실천의 회복은, 2차 대전 이후 헤겔 르네상스와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마르크스의 다수 저작들에 대한 폭넓은 접근을 통해 1844년의 경제학·철학 수고, 그룬트리쎄, 자본론 1권의 미출간된 제6장, 비서구 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의 저작들 같은 많은 원천들에 힘입었다. 독일-네덜란드 좌파와 이탈리아 공산주의 좌파의 요소들에 덧붙여, 우리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대중파업 개념,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그룹, CLR 제임스, 상황주의자들, 이탈리아의 노동자주의(operaismo) 그룹, 초기 Camatte, 1968년 이후 프랑스의 신보르디가주의자들을 원천으로 인용할 수 있다. (이 리스트는 완전한 게 아니며, 배타적인 것도 아니다.) 이러한 회복은, 말할 것도 없이, 전후호황의 절정과 종결 속에서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역사적 발전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7) 계급 전체의 조직화 대 ‘혁명적 노동조합주의’ (CLASSWIDE ORGANIZING VS. ‘REVOLUTIONARY TRADE UNIONISM’)
우리는 1차 대전에 의해 시작된 시기가 자본주의 역사에서 질적인 변화를 보여주었다고 주장한다. 이 시기는 서로 다른 경향들에 의해 번갈아 “가치의 진부화”, “쇠퇴”, 또는 “자본의 실질적 지배”의 시대로 특징지어진다. 우리는 이 1914년 이후 시기를, 제1인터내셔널과 특히 제2인터내셔널에 의해 실행되었으며, 제3인터내셔널과 제4인터내셔널에서 뒤죽박죽이 된, (노동조합주의와 의회주의라는) 개량(reform)이 더 이상 전체 노동자계급을 위한 전진으로서 실행가능하지 않게 된 시기로 이해한다.
우리의 말은, 혁명적 분출의 시기가 아닐 때의 부분적인 투쟁들은 방어적이든 공격적이든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오로지 “자본의 왼쪽 날개”라는 규정에만 매달린 채 노동조합 내부와 주변에서 활동하는 것을 거부하는 부류의 좌익 공산주의 경향들에 동의하지 않는다. 가능한 곳에서, 우리는 노동조합 내부에서 활동하는 것에 찬성한다. 다만 우리는 늘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전망을 유지하며, 1934년 톨레도 오토라이트 파업이나 2004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지하철 파업 등을 모델로 삼아, 고립된 “즉자적 계급의” 투쟁을 다른 노동자들과 실업자들을 포괄하는 계급 전체의 투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동시에,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주창하는, 혁명을 위해 “노동조합을 장악한다”는 전망을 거부한다. 우리는 노동조합을 계급 전체의 조직으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8) 지정학 (GEOPOLITICS)
전개되는 지정학적 상황은 세계 경제위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 미래의 대규모 전쟁은, 위기에 대한 자본의 “해결책” 가운데 일부로서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세계 상황은 1970년대까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자본주의 패권국가였던 미국의 (상대적) 하락으로 특징지어진다. 현재로서는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만한 능력을 가진 민족국가나 블록이 전혀 없지만, 세계의 상황은 1970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다극 체제”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1945년 미국은 세계 생산의 50%를 차지했지만, 오늘날에는 20%만을 차지한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유럽과 일본의 “정상적인” 전후 재건 때문이고, 또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영국이 쇠퇴하는 시기에 해외투자가 늘어났던 것과 비슷한) 미국의 해외투자 때문이며, 또한 새로운 개발지역의 출현 때문이다. 동아시아는 1960년에 세계 생산의 5%만을 차지했지만, 오늘날 35%를 차지한다.
흔히 떠드는 “중국의 부상”은 과장된 것이지만, (7억 5천만 명이 여전히 토지에 묶여 있고 1억 명이 떠돌이 임시직 이주 노동자로 살아가는 상황을 해결할 능력을 중국은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간단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45년 이후 일본, 한국, 대만, 중국의 전체 산업화를 함께 고려한다면, 권력의 중심 또는 더 거대한 권력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된 게 아니다. 독일, 동아시아, 브라질, 인도는, 40~50년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미국의 지배로부터 독립한, 서로 다른 유형의, 각기 독자적인 또는 잠재적인 축이 되었다.
경제적이고 지정학적인 위기의 한 측면은 기축통화로서 미국 달러의 문제투성이 세계 지위이다. 이 지위는 미국에게, 다른 어떤 채무국도 누릴 수 없는 특권인, 대외부채를 지불하기 위해 돈을 찍어낼 수 있는 능력을 유일하게 부여해 준다. 또한 주기적으로 외국이 보유한 (1970년대 초반에는 독일과 일본이, 1985년에는 일본이 보유한) 달러의 가치를, 즉 대외부채의 가치를 하락시킬 수 있는 능력을 유일하게 부여해 준다. 그러한 지위는 더 나아가 미국의 영원한 재정 적자를 해외에서 보유한 달러의 순환으로 충당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데, 이제 미국의 국가부채는 15조 달러에 이른다. 1945년과 대조적으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의 국제적 무게는 전체 세계 생산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무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러한 불비례는 이러저러한 국제적 행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위기와 폭락 그리고 (아마도) 대규모 전쟁을 통해서 해결될 것이다.
9) 새로운 산업 노동자계급 (NEW INDUSTRIAL WORKING CLASSES)
세계 경제의 점증하는 다극성은 전 세계 임금노동 프롤레타리아의 집중이 지정학적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반영된다. 몇몇 추산에 따르면, 오늘날 전체 노동자의 60%가 아시아에 있다. 이것은 아시아의 계급투쟁이 날카로워짐을 뜻한다. 2010년 중국 혼자서 10만 건 이상의 (주로 지방 수준의 폭동과 대결을 뜻하며, 꼭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포함하는 것은 아닌) “집단소요”를 경험했다. 베트남은 지난해 336건의 파업을 경험했는데, 그 가운데 상당수가 비공인파업이었다. 방글라데시에서도 (주로 직물 노동자들에 의해) 그리고 인도에서도 (델리 주변의 산업지대에서) 노동자의 소요가 분출되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도, 노동자들은 튀니지와 이집트의 반란에서 그리고 터키에서 일어난 중요한 파업들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과거에 (농민적-관료적 운동과 혁명인) “제3세계주의”라는 신기루와 관련되어 있던 나라들에서 일어난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투쟁들은 계급투쟁의 “지정학”에서 헤아릴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진 이동이다.
10) 영속혁명 (PERMANENT REVOLUTION)
우리는 최근 몇십 년 동안 자본주의 투자의 확산에 의해 창출된 새로운 산업 노동자계급의 점증하는 중요성을 인정하고 환영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유럽, 미국·캐나다, 일본 같은 축적의 “기존” 중심지들에 있는 임노동 노동력이 어떤 성공적인 세계 혁명에 있어서도 중심적이라고 여긴다.
공산주의의 역사를 큰 견지에서 바라보자면, 두 번의 국제적인 혁명적 물결이 있었다. 1848년과 1917-1921년의 혁명적 물결이 그것이다. “1968”과 연결된 국제적 물결도 덧붙일 수 있겠다. 1848년과 1917년에는, 특히, (나중에 트로츠키가 더 발전시켰던) 마르크스의 영속혁명 이론의 올바름이 입증되었다. “중심”에서의 노동자계급 고양은 축적의 신흥 “약한 고리”에서의 독자적인 노동자계급 고양의 출현에 의해 보완되었다.
첫 번째 경우에, “중심”은 1848년 1월 정점에 이르렀던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이었으며, 또한 6월 파리의 공산주의자 봉기였다. “약한 고리”는 독일이었다. 두 번째 경우는 더 오래 계속되었는데, “중심”은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이었으며, “약한 고리”는 러시아였다. 두 경우 모두, 혁명의 승리에 필요한 “크로스오버”(crossover)가 실패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크로스오버”야말로 근본적인 것으로 여긴다. “중심”에서의 성공적인 혁명은 “약한 고리”에서의 노동자계급과 농민이 관료적 전제국가를 통한 “사회주의적 축적”의 고초를 피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가치 법칙”은, 특히 세계 시장을 통해, 신흥 세계로 전파되었는데, 자본주의 “가치 법칙”의 극복은 기존 “중심”과 신흥 “약한 고리” 양자 모두에 있는 노동자들의 과제여야 한다. 중개발과 저개발 세계에서 성공적인 스탈린주의 또는 제3세계주의 혁명들의 역사는, 세계 시장의 압력 아래서, 한 나라만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함을, 또는 심지어 실질적인 자본주의 발전조차 불가능함을 되풀이해서 보여주었다.
11) 민족주의 (NATIONALISM)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시대에 민족주의는 반동적인 것이라고 여긴다. 프랑스 혁명에서 대략 1차 대전까지 시기의 민족주의는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또는 심지어 (부르주아 혁명의 시기에는) 혁명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독일이나 이탈리아처럼) 기존 왕조 질서로부터 생존 가능한 민족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여전히 가능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민족자결권”이, 늘 하나의 국제적 계급으로 존재하는 노동자계급의 통일이라는 지정학적인 전략적 방향으로부터 분리된 채, 하나의 추상적 원칙으로서 혁명적 전통의 일부가 되었던 적은 결코 없다는 것을 말한다. 마르크스는 영국의 지배에 맞서 아일랜드의 민족주의를 지지했으며, 러시아의 지배에 맞서 폴란드의 민족주의를 지지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팽창주의에 맞설 오토만 제국이라는 방어벽을 약화시킬 발칸 민족주의는 반대했다.
1차 대전 이후 (호엔쫄레른, 합스부르크, 로마노프, 오토만) 제국들의 몰락으로부터, 또는 1945년부터 1975년 사이에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포르투갈 제국들의 해체로부터 등장한 민족들 또는 유사 민족들은, 거의 예외 없이, (부재한) 영속혁명의 동학에 따라, 부르주아 혁명의 “과제들”을, 가장 직접적으로는 농업혁명의 완수라는 과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 (한국이나 대만 같은) 몇몇 예외들은 아시아에서 (중국, 북한, 베트남의) 스탈린주의 혁명들과 경쟁하는 “쇼윈도우”(showcases)였기에 상당한 토지개혁을 실행하면서 과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미국의 상당한 군사적 지원 아래서만 생존 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다.
12) “반(反)제국주의” (“ANTI-IMPERIALISM”)
이러한 사태전개에도 불구하고, 모종의 “반(反)제국주의”가 1970년대 후반의 퇴색을 경험한 뒤에 다시 부활했다. 그것은 더 이상 중국의 ‘맨발의 의사들’이나 인민공사, 또는 안데스 산맥의 게릴라 부대, 또는 다양하고 잡다한 “삼대륙의” “민족해방전선”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베네수엘라의 석유-페론주의자 우고 차베스의 주도 아래, 쿠바, 에콰도르, 볼리비아, (때때로) 브라질 같은 나라들의 느슨한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이란 이슬람 공화국 같은 중동의 훨씬 더 의문스러운 세력들로 확장되고 있다. 전선에서 좀 더 떨어진 곳에는,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에서 실패하여 피와 돈을 낭비하고 (터키와 파키스탄을 비롯한) 지역 전반에서 영향력이 쇠락하는 것을 은근히 즐겁게 지켜보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이 있다.
이러한 “반(反)제국주의” 세력들은 세계사회포럼과 그 무리들인 NGO들에게서 환영받고 있다. 미국의 노동조합 운동가들은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에 가서, 공식적인 국가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차를 마신다. 노동자들이 자주적인 노동조합을 조직하려고 시도하다가 투옥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말이다. 아마도 탈레반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다면, 그들 또한 세계사회포럼에서 이 “진보적인 반(反)제국주의 세력들”에 합류할 것이다.
13) 인종, 계급, 젠더, 성적 지향 그리고 ‘정체성의 정치’ (RACE, CLASS, GENDER, SEXUAL ORIENTATION AND ‘IDENTITY POLITICS’)
우리가 집중되어 있는 것이 보여주는 바처럼, 적어도 당분간은, 미국에서 “인종문제를 무시하는”(color-blind) 마르크스주의는, 다시 말해서 ‘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이며 프롤레타리아이다’ 같은 주장을 되뇌는 다수 좌익 공산주의 경향들의 마르크스주의는, 간단히 말해서... 눈먼(blind) 마르크스주의일 수밖에 없다고 우리는 인식한다.
(미국 인구의 1%를 차지하는) 감옥 인구의 대부분이 흑인과 라티노라는 점, 또는 매년 끊이지 않고 흑인 또는 라티노 청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쓰러지지만 경찰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은, 350년 동안의 백인 지배라는 미국 역사의 유산이, 1960년대 이후 다소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훌륭한 “첫 번째 근사치들”이다. 비슷하게, 젠더와 “성적 규범에 관한” 문제들은 계급 내부에서든 더 큰 사회에서든 거의 해결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1960년대 이후 이 문제들에 관해 증대된 진보의 대부분이, 비록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주로 흑인, 라티노, 여성, 게이 가운데 “중간계급적”이고 “전문직업적”인 요소들로 폭넓게 특징지을 수 있는 층에게 혜택이 돌아간 것을 우연이 아니라고 여긴다. (여기서 우리의 단어 사용은 노동자계급을 언급할 때 “중간계급”이라 부르는 역겹고 이데올로기로 충만한 미국식 용법과 혼동되지 않아야 한다.)
계급과 인종, 젠더, 성적 지향 사이의 동학은 구체적 상황에 따라 폭넓은 다양성을 갖는다. 그러나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모호하게 마르크스주의적이거나 사이비 마르크스주의적인 풍조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이후, (이 시기 흑인과 라티노 민족주의자들을 비롯한) 이들 피억압 집단들의 다수가 자신들의 의제를 폭넓은 (주로 스탈린주의 또는 제3세계주의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내부에서 분명히 표현할 의무가 여전히 있다고 느꼈을 때, 1970년대 후반에 시작된 “정체성 정치학”(identity politics)의 출현은 그러한 틀을 완전히 필요 없게 했다.
재단 기금에 의해 뒷받침된 NGO들의 전체 산업은 분할된 서로 다른 집단들을 결합시키고 계급의 문제를 땅에 묻기 위해 등장했으며, 그래서 중요한 반(反)노동계급 세력으로서, 서로 다른 공동체 속에서 공산주의 정치에 맞서는 제일 방어선이 되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와 이들 NGO들 그리고 재단들이 백인이든 흑인이든 갈색인이든 노동자계급의 생활수준을 심각하게 악화시킨 패배, 퇴행, 양보, 공장폐쇄의 수십 년 동안 출현하고 번성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진정한 계급적 기초 위에서 통일된 운동이란, 가장 가난하고 짓밟힌 집단들을 문제설정의 중심에 두는 운동을 뜻한다. 그러한 운동은 날렵한 이론적 정식화에 의해서 해결되지 않으며, 투쟁 속에서의 실천적 경험을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든 그러한 투쟁들을 기록하는 것, 가능한 곳에서는 그 투쟁에 참여하는 것, 그리고 분열적인 반(反)노동계급 “정체성”의 이데올로그들과 그들의 재정적 (그리고 정부의) 후원자들을 폭로하는 것을 <반란자들의 기록>은 자신의 책무로 여긴다.
14) 이주 (IMMIGRATION)
미국과 유럽 양자에서, 이주의 문제는 인종, 계급, 젠더에 의해 제기된 문제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1930년대 이후 최악의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점증하는 대중적 분노의 물꼬를, “조국이 없는” 노동자계급의 “본토박이”와 “이주민”들이 서로 싸우는 쪽으로 돌려버리기 위한 가장 유력한 수단으로서, 이주자들을 공격하는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동원이 등장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중동, 아프리카, 상당수 아시아에서 몇십 년 동안 서구의 정책에 의해 지원된, 또한 그 지역의 부르주아지와 국가엘리트들이 집행한, “개발”의 절망적인 실패는 몇천 만의 프롤레타리아와 준-프롤레타리아가 사회경제적 진공상태로부터 탈출하는 난민이 되도록 만들었다.
반(反)이주자 정서를 중심으로 조직된 극우 집단들은 사실상 모든 유럽 국가에서 중요한 돌파구를 만들어 냈으며, 미국에서도 (특히 멕시코 국경을 따라) 비슷한 발전을 이루며 지배적인 쟁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주류 자본가들은 값싼 노동력의 원천으로서 이주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주자에 대한 공격을 극우 선동가들에게 넘기고 있지만, 계급 적대가 심각하게 격렬해지면 거의 틀림없이 그 쓸모를 알게 될 것이다.
국제연대를 위한 선의의, 그러나 공허하고 추상적인 호소로는, 거의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고 1차 대전 이전과 이후에 미국의 계급투쟁에서 초기 이주자들의 물결이 수행한 중심적 역할을 떠올려 본다면, 이주노동자들이 다시 전위적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강령적 접근으로서, 자본주의로부터 이행하는 과정에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개발” 계획이 만들어 낸 지역들 사이의 거대한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목표를 두고 지구를 재건해야 한다는 우리의 전망을 제시한다. 이러한 지구적 재건의 전망은 세계의 서로 다른 부분에 있는 노동자들 사이에 궁극적인 실천적 공통기반이 될 것이다.
15) 강령 (PROGRAM)
우리는 자본주의로부터 이행을 위한 강령의 수립을 우리의 과제들 가운데 핵심으로 여긴다. 좌익 공산주의와 초좌익 그리고 자유의지적 공산주의 대열 안에서 조직 형태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그리고 “가치”를 둘러싼 매우 추상적인 주장으로 귀속되는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개념을 둘러싸고 너무 많은 토론이 펼쳐졌다. 우리는, 정치적 경제적 권력이 자본가들로부터 제거되었을 때 수행되어야 할, 가치의 (즉 사회적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시간에 의해 삶이 규제되는 것의) 실질적 폐지를 위해 필수적인, 이행의 “물질적 내용”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미국과 영국을 필두로, 쇠퇴가 매우 진행된 서구 상황에서, 그것은 “생산을 장악하는 것”과 “노동자 통제”를 수립하는 것의 문제가 더 이상 될 수 없다. (정말로 그 문제였던 적도 결코 없었다.)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FIRE - 금융, 보험, 부동산) 부문들, 또는 (군대와 무기생산 같은) 사회적으로 유해한 부문들, 또는 (아주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자동차(와 연관) 산업에 그렇게 높은 수준의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소요로부터 승계된, 그와 같은 비전은 거의 의미 없는 것이다. 더 많은 작업장이 “노동자 통제” 아래 놓이기보다는 혁명에 의해 폐지될 것이다.
우리는 지구적 규모의 사용가치 관점에서 미래 사회를 상상하는 것을 근본적인 것으로 여긴다. (개별적인 주택 소유와 한 가족이 차량 두 대를 굴리는 것 같은) 서구의 1945년 이후 소비 모델이 전 세계로 직선적으로 확산되는 것은 얼핏 보더라도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어리석은 일이다. 그에 대한 대안 프로그램은 몇몇 세계 개혁가의 머리로부터 완전한 형태로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몇천 만의, 궁극적으로는 몇십 억의 사람들이 수립해 가는 “진행 중인 작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본적인 필수요소들의 대략적인 윤곽은 말할 수 있다. 자동차-철강-석유-고무 복합체를 해체하고 이를 크게 개선된 대중교통과 철도수송으로 대체한다면, 이는 운송의 문제를 훨씬 넘어서서, 도시와 농촌 사이의 관계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사회적 공간의 조직화에, 환경적 측면에, 출퇴근 시간과 관련된 거대한 사회적 낭비에, 새로운 에너지 원천에 대한 방향전환에,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교외화와 난개발로 초래된 사회적 원자화와 사회적 비용의 극복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오늘날 국가와 기업의 관료기구, 군대와 군수생산, FIRE(금융·보험·부동산) 부문, 경찰·정보기구·감옥에 고용되어 있는 몇천 만의 사람들이 그 일을 그만두고 사회적으로 쓸모있는 일을 하게 만든다면, 이는 공산주의 강령의 핵심 부분, 즉 노동일의 획기적 단축을 실현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진정으로 사회적인 (즉 세계적인) 범위에서 사용가치 관점을 갖고 필요한 일을 자유롭게 재설정하게 된다면,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실천적 지식이 그와 같은 대략적인 윤곽의 실행을 충분히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은 혁명 이후 소비에트에서 잘 해결될 것이다”라는 식의 오래된 관념들에 맞서서, 이러한 토론을 지금 시작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여긴다. (국유화 더하기 국가계획이라는 과거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의 비전이 폭넓게 공유되었듯이) 획기적으로 다른 사회 질서에 대한, 폭넓게 공유되는 일정한 비전을 가진 활기찬 경향 없이, 성공적인 혁명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16) 부분적인 투쟁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HOW WE RELATE TO PARTIAL STRUGGLES)
지금부터 혁명까지 사이에, 자본의 전복을 목표로 하는 공공연한 투쟁을 결여한, 지역적이고 부분적인 투쟁들은 지금도 출현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출현할 것이다. 좌익 공산주의 계열 가운데 일부는 그러한 투쟁들에 “당신들이 소비에트를 건설할 준비가 되었을 때, 만나도록 하자”는 식의 태도를 갖고 관계 맺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ICC를 하나의 극단으로 간주할 수 있지만, 그들만 그러는 게 아니다.) “거대 이론” 뒤에 숨어서 평범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부터 유리되어 있음을 감추는, 그러한 종류의 가식적인 기권주의를, 우리는 거부한다. 이러한 가식은 40여 년의 황무지 같은 세월에서 초래된 것인데, 그동안 적어도 서구에서는, 이런 그룹들이 잡지를 발행하고, 신문을 판매하며, 우편사서함을 (더 최근에는 웹 사이트를) 유지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과 같은) 거리의 대중운동이 거의 없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러한 투쟁들에 관계 맺는 데에는 심각한 어려움이 부상한다. 그것들은 통상 제기되었던 것처럼, 무엇보다 여전히 트로츠키주의와 마오주의를 떠드는 극좌 그룹들이, 누군가가 과거에 말했던 것처럼 “죽은 짐승 주위를 도는 독수리”처럼 등장해서, 그러한 투쟁들 주위를 돌며, 복잡하게 뒤얽히는 것으로 대표되는 문제들이다. 특히 트로츠키주의자들은 그러한 투쟁들과 경쟁하는 그룹들을 “개량주의”로 성격 짓는다. 반면 우리의 출발점은 필연적인 개량주의의 불가능성에 대한 분석이다. (후자는, 우리가 그러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더 거대한 패배들 가운데서도 작은 일시적인 승리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는 다른 어떤 것이다.) 그러한 그룹들은 여전히 기껏해야, 베른슈타인에 맞서 논쟁하던 로자 룩셈부르크를 비롯해서 1914년 이전 혁명가들의 세계관이었던 개량과 혁명의 변증법, 즉 ‘개량을 위한 투쟁을 통한 혁명’(revolution THROUGH the struggle for reform)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러한 세계관을 가진 이들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오늘날에는 계급 전체를 위한 개량주의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위기는 40년 전에 시작되었으며, 오로지 심화되어 왔다. 이미 1970년대에 서구의 “좌파” 정당들은 “개량”(reform)에 대한 어떤 약속들로부터도 뒷걸음쳤다. 오늘날의 “개혁”(reform)은 주로 우파의 구호인데, 과거의 복지국가와 노동관계법 가운데 남아 있는 부분마저 뿌리 뽑겠다는 뜻이다. 1970년대 이후 공식 좌파가 자신의 이미지를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더 다정하고 온화한 얼굴로 바꾸었다는 것은 전혀 비밀이 아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민주당(클린턴, 오바마)과 그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자들에게 신경 쓸 필요를 거의 느끼지 않는다. 유럽에서처럼, 미국에서도, 권력을 “개량주의자”가 잡든 “보수파”가 잡든, 가장 부유한 1%와 나머지 전체 사이의 계속 늘어나는 격차는 1968년 이후 무자비하게 확대되어 왔다. 프랑스의 미테랑, 스페인의 펠리페 곤잘레스, 독일의 슈뢰더, 영국의 블레어, 그리고 지금 그리스의 파판드레우까지, 이 모든 “개량주의자들”은 모두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대폭 하락시킨 “신자유주의자들”이라는 말 외에 한 마디라도 더 붙일 가치가 거의 없다. 우리는 2001-2002년 아르헨티나의 피케테로, 2007년 와하카, 2008년 이후 모든 운동들과 혁명들(이를테면 2010년 가을 프랑스의 대중시위, 2011년 튀니지, 이집트, 메디슨, 마드리드, 그리스의 투쟁들—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세계 금융과 경제의 붕괴와 연결되어 있다)처럼 최근의, 이질적이지만, 다소 비슷한 몇몇 투쟁들을 숙고해 보고자 한다. 이 투쟁들 대부분은, 점점 더 폭발적인 상황에서, (또는 그리스의 경우,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에 대한 직접적이고 야만적인 공격이 펼쳐지는 상황에서), 몇몇 “불꽃”의 촉발로 “자발성”이 거대하게 분출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시위는 경제가 전면적으로 붕괴하고 정치세력도 붕괴하면서 시작되었지만, 피케테로(그 대부분이 미래가 없는 노동계급 젊은이들로서, 몇 년 동안 크고 작은 행동 속에서 전술을 발전시켜 왔던)에 의해 결정적인 국면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와하카는 지역 교사노조가 벌이는 통상적인 단체교섭의 초기 국면에 주 정부가 도발하면서 시작되었다. 튀니지는 매일같이 경찰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대졸 실업자의 절망적인 분신자살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이집트는 경제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국가의 일상적인 “통상적” 잔혹행위들이 튀니지로부터 건너온 “투쟁의 전염”과 뒤섞이고 결합되면서 시작되었다. 메디슨은, 와하카처럼, 공공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주 정부의 도발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모든 운동들은 지역적 저항 형태들로부터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거대한 자발적 분출로 창조적으로 “도약”했다는 특징들을 갖고 있으며, 지역적 저항 행위들이 늘 예견할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운동들 가운데 대부분은 패퇴했으며, 튀니지와 이집트 같은 경우는 얼굴만 바꾼 기존 질서 세력에게 갇혀 버릴 위험에 놓여 있다. 아르헨티나의 피케테로는 재건된 페론주의 국가에 흡수되거나 탄압을 받고 흩어졌다. 와하카의 운동은 멕시코의 나머지로부터 고립된 가운데 정면으로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 (그리스 상황은 이 글을 쓰고 있는 2011년 7월 일시적 소강상태에 있다.) 프랑스 정부는 2010년 가을의 가두투쟁에 완고하게 맞서서 승리했다. 메디슨의 운동은 민주당과 노조의 개입을 결코 벗어나지 못했으며, 그 결과 주된 흐름이 스스로 “반(反)공화당” 소환 캠페인으로 빠져버렸다. 스페인의 사회당 정부는 “분노한 자들”(indignados)이 50개 도시의 중앙 광장을 한 달 동안 점거하도록 (비록 경찰의 공격과 도발이 있긴 했지만) 허용했는데, 결국 운동은 다른 많은 경우들처럼, 공공장소를 점거하는 창조적인 첫걸음은 내딛을 수 있었지만 이를 확장할 능력을 갖지 못한 채, 몇몇 분파적 악다구니와 함께 스스로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붕괴했다.
공산주의는 자본이 “노동자계급에게 행하도록 강요하는”(마르크스) 것에 근거한 구체적인 가능성이다. 위에 서술한 상황 속에서, “개량”과 혁명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엄청나게 거리로 쏟아져 나가기 전에, 혁명가들은 이러저러하게 일어나는 투쟁들에 “전 계급적인” “톨레도 오토라이트 식의” 전망을 갖고 참여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핵심은, 늘 노조나 국가 같은 기성 제도들 그리고 그러한 제도들에 순응하는 사이비 좌파 정치세력들과의 “단절”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한 경계를 만들 역량이 아무리 작다 해도, 전망은 늘 “이중권력”이어야 한다. 그러한 입장의 결과는 늘 유동적이다. 혁명가들은 늘 전체 운동 속에서 “대자적 계급”을 자극하려고 말한다. 혁명가들의 목표는 특정한 “요구”나 몇몇 경우들에서 일시적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 사이에, 또는 노동자들과 실업자들 사이에, 나아가 인종적 성적 차별 속에 존재하는 장벽을 부수는 경험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강화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거리로 쏟아져 나올 때, 아르헨티나 또는 그리스 또는 이집트와 같은 곳에 서 있을 때, 유일한 진짜 문제는 국가권력의 문제다. 이는 어떤 반란의 모험을 지지하는 문제가 아니다. 거기에는 강제될 수 없는, 살아 움직이는 동학이 있다.
그러나 국가에 맞선 투쟁에서 성공하고 국가를 (소비에트든, 노동자평의회든, 그리고 새롭게 등장할 수 있는 어떤 형태든) 전 계급적인 제도들로 대체하는 것은 (앞서 토론한 것과 같은) 강령과 이 강령을 수행하는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미리 형성되어 있는 경향을 필요로 한다. 이 경향은 가장 전투적이고 의식적인 요소들의 네트워크들로부터, 투쟁의 부침 속에서, 시간을 두고 출현하며, 다른 어떤 형식을 갖춘 조직에 속하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후자, 즉 형식을 갖춘 조직은 투쟁의 극대화된 리듬이 그것을 요구할 때 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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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곳에서, 우리는 노동조합 내부에서 활동하는 것에 찬성한다(....노동조합을 계급 전체의 조직으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금부터 혁명까지 사이에, 자본의 전복을 목표로 하는 공공연한 투쟁을 결여한, 지역적이고 부분적인 투쟁들은 지금도 출현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출현할 것이다. 좌익 공산주의 계열 가운데 일부는 그러한 투쟁들에 “당신들이 소비에트를 건설할 준비가 되었을 때, 만나도록 하자”는 식의 태도를 갖고 관계 맺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ICC를 하나의 극단으로 간주할 수 있지만, 그들만 그러는 게 아니다.) “거대 이론” 뒤에 숨어서 평...토론 필요
"노동조합 내부에서 활동하는 것" 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어떤 노조'이냐? '무슨활동'이냐? 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어쨋건 저는 노조가 계급전체의 조직으로 대체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목표는 쇠퇴하는 자본주의하에서의 계급투쟁 형태, 그리고 새로운 노동자조직의 상과 어긋나는 점이 많아 심화된 토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 주시길...어리님^^
전, 내부 활동 무필요다. 조직률 10%도 않되고, 그보다도 더 ~
의회주의와 마찬가지로 의지와 관계없이 구조에 갇힐 수밖에 없는...
(개량주의, 실리주의, 실적주의, 상설화 따른 조직 보위, 보신, 이기주의, 자기통제와 알아서 기기, ......)오히려 그 에너지로 근본 질문과 비판, 견인 함이 계급의식에 도움 된다. 생각 물론 어떤 동지처럼 내부활동이 생계. 직업 수단이면 다른 차원 얘기지만 어차피 자본이 벌려 논 판에 품팔아야 입에 풀칠 할바엔 관심분야에서 품파는게 임도보고 뽕도따고 일석이조.. 배가 좀 고픈게 문제긴 해도. 무조건 노조와 무관계가 아니라 실리주의, 개량주의를 비판, 정세에서 자칫 반동으로 빠짐 막음
위 테제에 나와 있듯이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전망을 유지하며" 노조 내부에서 활동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런 활동이 가능하다면 노조안에 있어도, 노조를 넘어서는 활동이기에 문제가 없을것 같은데, 현실은 노조내부 활동 자체가 구조적으로 조합주의(기껏해야 전투적조합주의), 개량주의에 갇히게 한다는 말씀인데, 일정부분 맞기도 하고 아닐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노조운동은 1) 역사적으로 서구에서 이루어진 '노조의 국가기구화'가 짧은역사임에도 급속히 진행된 측면이 있고,
2) 한편으로 서구와 달리 노조조직률이 낮고 산별조직이 아닌 개별기업단위의 조직형태라서 일상적인 경제투쟁에서도 압도적인 자본의 힘의 우위와 작은연대라는 취약한 조건에 처해있습니다. 그래서 투쟁도 개별자본가와 직접 맞서는 투쟁에서 부터 궁극적으로는 국가(법제도, 기구)와의 싸움일수 밖에 없기 때문에, 국가기구화라는 것도 상층부/대규모 사업장 정규직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고, 여기서 소외받은 중소영세 비정규직 노조들과 강경한 자본가를 만난 노조들은 여전히 일정수준 전투성을 띨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습니다. 게다가 미조직노동자들은 노조를 통하지 않고서 투쟁해본 경험과 새로운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고
상징적인 노조들의 투쟁 결과에 자신들의 싸움을 대리하거나 조직화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개별노조의 싸움들도 계급의식의 발전과 계급의 조직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단 이것이 노조의 틀에 갇히거나 노동자의 연대를 가로막는 조합주의에 가로막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3)아직(앞으로도?) 한국의 노조는 외국과 같이 다양한 형식(업종, 기업별 조직을 넘는 정치, 지역, 일반, 실업, 연령, 각종 연대노조등)의 조직들이 활성화지 않고 있고, 투쟁도 비공인파업 투쟁 형태가 극도로 제한 받고 있기 때문에, 노조조직률 상승과 노조의 계급성 회복은 더욱 어려워질 것 입니다.
헐, 댓글로 달다보니 이야기만 길어졌네요. 그래서 결론은 다시 테제로 돌아가서 " '즉자적 계급의투쟁'을 다른 노동자들과 실업자들을 포괄하는 계급 전체의 투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에 방점을 두고, 노조 안이던 노조 밖이던 공산주의자로써의 역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맛이 가버린(가버릴) 노조에는 눈길도 주지말고 노조와 조합주의에 맞서 투쟁하고, 아직 물들지 않았거나 투쟁말고는 답이 없는 노조에는 적극 참여하여 투쟁을 확산시키고 전 계급적 연대로 넓히는 일에 역할을 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둘다의 경우에 노조를 개조한다거나 노조를 장악하려는 목표는 갖지 않는것이 기본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