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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금 - 잊혀진 신비한 영약
* 수수께끼 약초 [울금]의 정체는 ?
울금의 원산지는 인도등의 열대아시아이다. 작은 공간을 생각하게 하는 폭이 넓은 잎이나 뿌리 속의 오렌지색은 아무래도 열대의 태양을 닮은 것 같다.
그러나 열대 아시아의 울금은 어떤 경로로 오키나와에 온 것일까. 그러한 울금의 경로는 많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일본인이 울금을 언제 알게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 위지위인전 ” 의 기술에서 아마대국에서는 이미 울금염색을 하였고 비미호(卑弥呼)가 중국의 왕에게 헌상했다는 설도 있다.
열대산의 식물이므로 키타큐슈(北九州)나 시코쿠(四国)주변에 자생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마대국(邪馬台国)에까지 등장했을 정도로 울금의 과거는 베일에 싸여 있다.
요즈음 의학적 약학적으로 울금은 커다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그 과거를 본격적으로 조사한 것은 의외로 없다. 최근에는 작가인 이노우에씨가 “ 울금의 수수께끼 “라는 책을 출간하여 울금 역사의 탐색을 시도했다. 아마 이것이 제일 자세하게 적은 울금의 역사서일 것이다. 이노우에씨의 저서를 참고하면서 잠시 울금의 정체를 알아내 보기로 한다.
*아율. 웨다도 사용했다.
울금의 고향 인도에서 울금은 “신성한 식물 ” 이었다고 한다. 인도는 불교와 힌두교의 발상지이지만 울금의 이름은 교전에도 정확하게 나와 있다.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는 것은 원시 불교의 연구자 나카무라 (中村元) 박사의 “ 불교식물산책 ”이다. “울금은 옛날 아율. 웨다의 의료에 사용되어 간장암. 건위. 이뇨. 구충제. 종기등에 널리 약효가 있었다. 울금은 또 화장하는데도 사용된다. 그리고 힌두교의 결혼식이나 그 외 힌두교의 의식에도 빠져서는 안되는 불가결한 것이다.”
아율. 웨다란 고대 인도에서 태어난 뛰어난 전승 의학자로 “생명의 의학”을 의미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울금은 간장병 치료. 건위등의 용도로 사용 된 듯하다. 다양한 데이터를 모으면서 울금의 약효를 탐색해 왔으나 이미 대부분은 수천년전의 인도 사람들에게는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또한 인도, 미얀마, 인도네시아등은 지금도 “신성한 식물”로서 의식이나 제사에 사용된다. 태국에서는 삭발한 승려의 머리에 울금 가루를 바르고 인도네시아에서는 결혼식 축연에 울금의 색을 물들인, 적색 밥이 아니, “ 황색 밥” 이 나온다고 한다.
그렇다 할지라도 왜 울금은 신성한 식물이 된 것일까. 약효가 뚜렷했다는 것도 이유의 하나이겠죠. 그러나 그것만으로 “의식에 불가결” 이 될 수 있을까. 일설에 의하면 뿌리에서 나오는 염료인 황색이 태양의 색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설은 기원전 35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중앙아시아에서 인도로 침입한 아리아인은 태양을 숭배하는 민족이었다. 인도각지로 흩어져 살던 그들은 거기에서 “태양의 황금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식물 울금을 발견하고, 이것을 신성한 식물로 보았다. 후에 불교나 힌두교에도 이것이 계승되었던 것이다.
*전국(戦国)시대에는 지혈제로 사용되었다.
인도의 울금은 결국 동남아시아로부터 중국으로 전파된다. 중국에서는 생약 강황으로서 , 중의학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한편, 유럽에서도 울금은 일찍이 알려져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디오스콜데스가 지은 “약물지(薬物誌)”, 고대로마의 유명한 박물학자 프리니우스의 “박물지(博物誌)”에도 울금에 관해 적혀 있다. 다만 유럽에서는 울금과 같은 약과 염료로서 사용된 사프란의 그늘에 가려져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울금의 영어는 타메릭인데 프랑스어로는 쿠루쿠마이다. 그 어원인 아라비아어 “쿠루쿠마”와 페르시아어인 “카루카무”에는 샤프란과 울금 양쪽의 의미가 있는 듯하다.
일본에 정식으로 울금이 도래된 것은 시쯔쵸우(室町)시대였다라고 한다. 귀중한 한방약으로 중국에서 수입되어 특히 시쯔쵸우(室町)말기에 전국을 휩쓴 전쟁 속에서 칼에 베인 상처에 바르는 지혈제로서 귀중하게 사용되었다. 필시 그 가루를 그대로 바른 것이겠죠. 정유나 쿠루쿠민의 자극으로 피부가 수축하고 출혈이 멈추었다라고 생각된다. 뛰어난 살균효과도 있으므로 파상풍 등을 막는 목적도 있을 터이다.
* 장군 요시무네(吉宗)의 시대 약초원에 심어졌다.
울금의 재배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한다. 에도(江戸)시대 중기의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図絵)” 라는 책에서는 “울금은 일찍이 샴에서 많이 왔지만 지금은 류큐에서 많이 운반된다.” 라는 것을 생각하면 1700년경의 오키나와에서는 울금이 산업으로 대대적으로 재배되어 그것이 에도로 옮겨져, 아마도 외국산보다 질이 좋다라는 평판을 얻었음을 엿볼 수 있다.
바로 그 무렵 8대 장군 도쿠가와(徳川吉宗)이 코이시가와(小石川)에 약초원을 만들고 그곳에 울금을 심었다는 것을 히라가 하라우치(平賀源内)가 책에 기술하고 있다.
도쿠가와는 에도 서민의 생활에 강한 관심을 기울여 같은 코이시가와에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의료 시설. 코이시가와 양생소를 만든 것도 알 수 있다. 당시의 에도는 지금의 동경보다 많이 추웠기 때문에 열대산의 식물이 약초원에서 어떻게 자랐을까는 의문이다. 그러나 야마모토(山本周五郎)의 소설 “적색 수염 진료담”의 무대인 양생소에서 적색 수염을 한 인자한 의사가 울금을 끓여 사람들을 병고에서 구했다라고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전매제에서 류큐(琉球). 사쯔마(薩摩)가 울금을 독점
오키나와에 울금이 상륙한 것은 1425 - 1570년 사이였다 라고 “ 울금의 수수께끼”의 저자는 추측하고 있다. 당시, 류큐왕국은 샴과 왕성하게 교역이 이루어졌고 사탕이나 향료, 후추 등을 수입하고 있었다. 거기서 울금도 섞여 들어왔음에 틀림없다라는 것이 이노우에씨의 추리이다.
그 다음에 일본술을 만드는 제조 기술도 그 때에 태국에서 오키나와로 유입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술에는 일본의 쌀이 아니라 태국 쌀이 사용된다. 본토에서도 애호자가 많아 그 깨끗하고 산뜻한 풍미는 태국 쌀로 빚어졌기 때문이다.
에도시대가 되자 류큐왕부는 귀중한 수출자원인 사탕과 울금에 전매제를 실시 판매를 독점하여 실시하도록 한다. 밭에서 울금 하나를 훔쳐도 엄한 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왕부에서 매입된 울금은 사쯔마의 상인에게서 온 것으로 그 때의 값어치는 매입의 6배였다고 한다.
이 “ 불로 소득의 울금 ”의 매상에 주목한 것이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던 사쯔마이다. 왕부에 의해 전매를 실시하여 류큐시대의 울금을 모두 매입하여 당시 최대의 상업도시였던 사카이(堺)로 운반하는 것을 생각하였다. 사카이에서의 울금의 가치는 사쯔마항이 왕부에 지불하였던 대금의 10배에서 20배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사람들이 얼마나 울금을 귀하게 생각하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울금의 전매를 시작으로 하는 여러 가지 경제개혁에서, 사쯔마는 그때까지 수백만량이었던 빚을 불과 10년만에 변제하였다. 더구나 그 후 10년 동안 50만량을 저축하여 그 경제력이 명치 유신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울금도 배후에서 유신의 일면을 담당하고 일본의 근대화에 공헌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 근대화로 인해 울금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지게 되었다.
* “문명개화”속에서 잊혀진 울금
명치시대가 되자 서양화의 물결이 갑자기 밀어닥쳤다. “ 외국산 물품 ” 이라면 누구라도 고급으로 생각을 하고 전통적인 것이나 동양적인 것은 일단 나쁘다라고 업신여기는 풍조가 생겨났다. 의료에도 그 물결의 여파가 정면으로 미쳤다. 유럽의 실증적인 의학이 들어오자 일본이나 중국의 경험적 의료는 “ 비과학적이며 저급 ” 하다라고 간주되었다. 한방을 중심으로 한 동양의학은 공공학문에서 배척 당했다. 동양의학, 그것만으로 어쩐지 의심스럽다라고 생각되게 되었다. 생약과 민간약의 불우한 시대였다.
긴 역사속에서 쌓아온 경험적인 “의학 ”의 지혜가 단절되는 것은 의학에 있어서도 불행한 일이다.
서양의학 일변도, 합성약 신앙의 시대가 메이지(明治), 타이쇼(大正), 쇼와(昭和)를 거쳐 지속된다. 그러한 시대 물결에 울금도 떠밀려졌고, 점차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갔다. 오직, 유일한 예외가 울금의 산지 오키나와였다. 울금의 약효를 체험적으로 잘 알고있었던 오키나와사람들은 극히 자연적으로 생활 속에 받아들여 활용하였던 것이다.
* 거듭되는 약의 해로움(薬害)으로 인해 재평가되는 생약
생약의 정의는 “ 천연에서 얻어지는 조약물(粗薬物)”이다. “ 조 ”는 화학적으로 추출한 순수한 약에서는 없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자연소재를 활용한 약이라는 것이다. 천연물이므로 취급이 어렵고 보관도 합성약품보다 오래도록 신중함이 요구된다. 기온이나 습도에도 민감하다. 그런 의미에서 생약은 “ 살아있는 약 ” 인 것이다.
재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우리들 인간도 살아있다. 더욱 건강하게 살고싶은 마음에 약을 사용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여러 가지 약해가 생겼다. 예를 들면, 93년의 소리부진의 약해(薬害)사건에서는 15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대상포진의 치료에 사용되는 소리부진과 어떤 항암제를 함께 복용하여 두 개의 약이 상호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살아있다는 관점에서 환자의 전체를 보고 있었다면 방지할 수 있었던 비극이다. 이러한 약해가 회를 거듭할수록 서양의학 일변도, 합성약 신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인간에게는 살아있는 약이 좋지 않을까? 자연의 일부인 사람의 몸에는 자연의 약이 맞지 않을까 하는 반성이 드디어 나온 것이다.
옛날에는 가짜로 불려졌던 한방도 재평가되어 현재는 210종의 한방약이 보건진료에 포함되어 있다. 결국 병원의 처방전이 있으면 한방약에서도 보건혜택을 받도록 되었다. 한방약을 취급하는 병원이나 의사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말하면 생약의 르네상스이다. 그러한 의식의 변화가 사람들에게 울금을 다시 떠올리도록 한 것이다. 제 1 장, 제 2 장에서 말한 울금에 대한 기대감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나온 것이다.
*건강은 긴 안목으로 전체적으로 생각한다.
현재 성인병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일본인의 병이 현재와 같은 성인병의 형태가 된 것은 1960년대이다. 그때까지 늘 사망률의 상위에 올랐던 결핵과 폐렴이 후퇴하고 이어서 암. 심장병. 뇌졸중이 일본인 사망률의 상위 3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대다수의 결핵과 폐렴은 세균에 의해 발생된다. 말하자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병이다. 그러나 성인병은 그 형태가 틀리다. 오랜 시간의 식생활이 영향을 주며, 몸 안을 서서히 좀먹듯 해친다. 그러므로 결핵과 폐렴처럼 “완치”가 어렵다.
일단 병이 시작되어 버리면 원 상태로 돌리기 어려우며, 수술과 약으로 증상을 없애더라도 그 병을 평생 짊어지고 가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병의 예방 제일은 라이프 스타일을 건전하게 해야 한다. 발병하고 나서 당황하지 말고 평상시 폭음, 폭식, 과도한 칼로리 섭취를 삼가하고 염분의 과다 섭취, 운동 부족에도 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 결핵, 폐렴과 다른 것은 몸 안 어딘가의 장기를 손상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신장병과 뇌졸중일 경우는 혈관이 노화되고 전신이 건강을 잃어버린다. 암도 언제 어디서 발생하는 지 알지 못하며 어디로 번지는지도 불분명하다.
성인병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생활 속에서 건강도 전체적으로 생각하녀 긴 안목으로 건강을 지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未病”을 치유하는 것이 제일 중요
성인병의 경우, 확실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병이 꽤 진행되고 나서이다.
오랜 시간을 걸쳐 조금씩 몸이 손상되어 그것이 어떤 선을 넘으면 증상이 갑자기 나타난다. 40대를 넘으면 매년 검진을 받으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의학에서는 “ 未病 "이라는 단어가 있다. 병은 아니지만 건강하지는 않다. 검진과 단기 종합 정밀 건강 진단 의 검사에서는 이상한 수치는 나오지 않지만 그 다음해가 되면 나올지도 모르는, 병이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태이다. 이것을 치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동양의 의학에서는 생각되어져 왔다.
왠지 몸이 나른하거나, 잠이 오지 않는다거나, 의욕이 안생긴다거나, 식욕이 없다는 등 무심결에 간과하기 쉬운 증상이 나타나는 반쯤 진행된 병, 혹은 그 이전의 아직 어떤 자각증상도 없는 발병 전의 단계에서 치료해 가자는 발상이다.
한방이 다시 검토하게 된 이유의 하나도 여기에 있다. 오랜 시간을 걸쳐 은밀하게 진행되는 성인병은 병이 발생하지 않는 (未病) 동안에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약이라고 불리는 것 가운데 “上薬”, “中薬”, “下薬”의 3가지가 있다고 했다. 울금도 상약에 속하는 이러한 未病을 치유하기에 적합한 약인 것이다.
* 울금은 “어혈을 푼다”
울금이라는 생약은 한방의 고향, 중국에서는 “破血祛瘀(파혈거어)”의 작용이 매우 강하다고 되어 있다. “ 祛 ”는 “ 푼다 ”는 것. “ 瘀 ”라는 것은 “ 막히다 ” 또는 “ 정체되다 ”, “ 밀리다 ” 등을 의미한다. 결국 정체된 혈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 파혈거어 ”이다.
동양의학에서는 혈의 순환에 이상이 생겨 정체된 상태를 어혈이라고 한다. 현재의 의학용어라면 혈행장해 또는 혈행불량이라고 할 수 있다. 혈행장해 또는 혈행불량이라고 말해도 잘 못알아 들을 수도 있으나, 실은 문제가 되는 성인병의 대부분이 중국사람들이 어혈이라고 부르는 혈액의 정체상태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심장 근육에 혈액을 보내는 동맥이 막히기 쉬운 상태가 되면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같은 심장병이 된다. 뇌혈관에 피가 막힌 뇌경색. 작은 뇌경색이 장기간 동안 회를 거듭하여 발생하는 혈관성 치매증. 이러한 혈액의 막힘이나 정체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 동맥경화나 고콜레스테롤혈증이다.
당뇨병은 실명이나 신장장해, 발의 괴사등의 합병증이 무서운 병이지만 그러한 합병증도 미세혈관의 혈행장해에서 일어난다.
일반적인 성인병과는 조금 다르지만, 여성의 생리불순도 여기에 포함해도 좋다. 생리불순의 경우에 눈 밑에 생기는 기미도 어혈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현대인을 괴롭히는 수많은 성인병은 이처럼 어혈의 상태에 이상할 정도로 들어맞는다. 여기서 “ 파혈거어 ”의 작용이 매우 강한 울금이 주목되는 것이다.
* 생활 안에서 친밀해 진 장수와 건강의 약
인도나 오키나와의 시장에 가면 여기저기에서 울금을 팔고 있다. 토산물상점에 다른 것처럼 제품화 된 울금도 있으나, 커다란 바구니나 포대에 가득 들어있는 생것을 저울에 재어서 파는 것도 있다. 그 중에서 손님은 울금을 500g이나 1kg 등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다.
그 옆에 늘어서 있는 것은 무, 동아(식물), 덩굴여지 등의 야채. 훌륭한 생약이 야채감각으로 취급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오키나와의 식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특별한 건강식품으로서 마시거나 먹는 것이 아닌 당연한 “ 식(食) ”의 풍토 속에 있다. 상약으로서 올바른 사용방법이 그곳에 있다.
* 생산지의 사람들은 이런식으로 먹어왔다.
추측컨대 예전부터 산지 사람들은 울금차를 마셔 왔을 것이다라고 우리들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산지 사람들도 손쉽게 울금차를 마셨을 리가 없다. 매우 쓴맛이 강하고 일상적으로 마시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서이다.
바이오 기술로 쓴 맛과 독특한 향을 제거한 발효 울금이 등장하고 겨우 일본의 녹차와 같은 형태로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오키나와의 술집에서는 페트병의 발효 울금차로 “ 울금을 묽게 탄 ” 술을 내는 집도 있다. 이것도 생활과 잘 융화된 울금의 새로운 활용법일 것이다. 산뜻한 술의 투명한 색에 울금의 연한 호박색의 맛과 향이 더해진 , 이 술은 꽤 일품이라 할 수 있다.
손쉽게 마시게 된 것이 최근이라면 원래의 울금을 먹는 방법, 마시는 방법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중 몇가지를 소개해 보겠다.
우찡차 : 울금 그대로의 껍질을 1cm정도의 두께로 잘라 천천히 삶아낸다. 뿌리의 성분이 녹아 나와 뜨거운 물이 맥주 색깔이 되면 완성. 잘라진 건조 울금이라도 마찬가지로 삶아내서 만든다. 한방약을 끓일 때와 똑같다.
우찡주 : 중국의 시인. 이백의 “객중행” 이라는 시에서 “ 蘭陵의 美酒, 欝金香 ”의 일행이 있다. 여행의 지루함에 울금주의 향과 색을 즐기며 읊은 시인데, 이 울금은 울금이 아니고 사프란이라고, “울금의 수수께끼“ 의 이노우에(井上)씨는 지적하고 있다. 오키나와의 우찡주는 건조 울금을 잘라서 술로 담근 것이다. 성분이 녹아 나와 마실 수 있게 되는 것은 4, 5년 후, 이것을 1잔 마시는 것만으로도 4, 5개월 정도는 몸 상태가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우찡쥬시: 오키나와에는 쥬시라는 향토요리가 있다. 본토에서 말하는 혼합밥이다. 닭고기 혹은 어육을 작게 자른 것과 마늘, 녹미채, 표고버섯등을 차례로 기름으로 볶고 울금을 갈아 내린 즙으로 밥을 짓는다. 울금이 고기 냄새를 없애고 식욕을 돋우는 향기로운 향으로 변하게 한다.
우찡 된장국 : 된장국에 울금을 갈아 넣은 것. 숙취 다음날과 피로할 때 원기 회복제로 자주 마셨다. 생선 등, 냄새가 강한 것을 국물에 넣을 때는 역시 냄새 제거제로서 울금을 넣는다.
우찡의 설탕튀김 : 울금의 생 뿌리가 있으면 꼭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 이 튀김이다. 설탕과 갈아낸 울금, 계란 소맥분과 베이킹 파우더를 섞어 직경 3cm 정도의 재료를 만들고 낮은 온도에서 튀긴다. 도중에 재료가 꽃처럼 갈라지므로 불이 켜진 채로 꺼낸다. 울금과 조화된 단 맛도 좋고, 귀여운 형태도 좋고, 아이들의 간식에는 최고이다.
*병자가 제일 적은 인도와 오키나와
이처럼 생산지의 식생활에는 울금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생약. 약초가 들어가 있다. 일본 제일의 장수 마을, 바꿔 말해 세계 제일의 장수 마을이 오끼나와 라는 것도 매일 매일 식생활에 녹아 든 울금등의 식물의 힘이 컸음에 틀림이 없다.
96년 9월에 발표된 후생성의 조사를 기초로 한 일본인의 평균 수명은 남성 76.04세, 여성 82.07세였다. 스웨덴과 아이슬란드를 눌러 당당히 세계 1위이다. 오키나와만을 보면 남성 76.67세, 여성 84.47세. 일본인의 전국 평균 수명을 크게 상회하는 것은 놀랄만한 숫자이다.
오키나와 사람의 장수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백세 장수율일 것이다. 10만명당100세를 넘어 장수하는 사람이 몇 명일까를 조사하면 오키나와는 15.79명. 전국 평균은 불과 3.36명. 제2위인 타카치현(高知県)에서도 9.45명이므로 한 무리를 덜어 낸 것과 같다.
게다가 그것만이 아니다. 아무리 장수한다고 해도 병으로 괴로워하며 장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키나와에서는 병이든 사람도 그 수가 적다.
전국으로 보면 인구 1000명 중 288명이 어떤 병을 앓고 있다. 그런데 오키나와에서는 203명.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3%나 적어진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아무래도 건강하게 장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메오스타시스의 기능을 회복하고 생명의 근본을 치유한다. 조금 전에 이러한 내용을 적었다. 과장 아닌가 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숫자들을 보면 그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울금의 고향에서는 암, 성인병, 치매도 적다.
오키나와의 마을을 걸고 있으면 노인이 꽤 많음을 눈치챌 수 있다. 다른 지방 도시와 마찬가지로, 동경 과 오오사카로 진출하는 젊은이가 많다는 사정도 있겠지만 본토의 지방과는 분명히 뭔가가 틀리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본토라면 집에 틀어박혀 있는 고령의 노인이 태평하게 나가 걷거나,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 나하의 시장등으로 나가 보면, 꽤 많은 고령자가 남쪽 사람의 특유의 그을린 얼굴로 장사에 열심이다. 숫자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오키나와 사람들의 장수와 건강을 실감한다.
오키나와에서는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적은 것을 말하였으나 암과 함께 3대 성인병으로 알려진 심장병, 뇌졸중도 압도적으로 적다. 둘다 전국에서 제일 적고, 심장병은 전국평균의 66%, 뇌졸중은 53% 적다.
또한 오키나와는 치매노인의 수가 적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전 페이지의 그래프에 표시한 것은 동경과 오키나와의 치매노인 출현율을 비교한 것이다. 특히 80세 이상의 출현율에 차이가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더욱이 동경의 데이터에는 노인보호시설등의 노인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데 비해 오키나와는 그런 사람들을 포함한 수치이다.
고령화사회가 도래하여 얼마나 건강하게 늙는가 하는 것이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 오키나와의 사람들의 건강과 장수의 비밀을 알면 우리들도 성인병이나 치매에 이렇게 겁내지 않아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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