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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릉(溫陵)은 조선 제11대 왕 중종(中宗)의 원비 단경왕후(端敬王后, 1487~1557) 신씨(愼氏)의 능이다
단경왕후 신씨는 1506년 중종반정으로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됐다가 고모와 , 삼촌 등이 연산군 폐위 때 축출되고, 아버지 신수근도 거사 당일 제거되고, 단경왕후는 죄인의 딸로서 왕비가 될 수 없다는 박원종 일파의 주장으로 왕비 생활 7일 만에 폐비가 됐다. 이후 신씨는 매일 아침 일찍 인왕산에 올라 중종과 함께 살던 때 자주 입었던 붉은 치마를 널었다고 한다. 이 소식이 궁궐의 중종에게 전해지자 임금도 자주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 쪽을 바라보며, 신씨를 그리워했다. 하지만 이런 임금을 신하들이 가만 둘 리 없었다. 중종은 결국 계비 장경왕후에게 새장가를 들었고, 문정왕후,경빈 박씨,창빈 안씨, 희빈 홍씨 등.. 10여명의 후궁을 맞아 신씨를 잊어갔다. 인왕산 성곽 답사길에서 본 (사직단)에 쓰인글 신씨는 임금이 사직단 제사를 지내러 올 때를 기다려 말죽을 쑤어 사직단 정문에서 기다렸다가 임금이 탄 말에게 먹이는 등 부부애를 과시했지만 끝내 궁궐로 돌아오지 못했고 .중종이 숨을 거둘때야 조강지처를 불러 상봉을 했다고 한다. 이후 영조 15년에 단경왕후(端敬王后)로 복권됐다. |
단경왕후 신씨의 능이다.
후미진 곳에 홀로 있어 찾는 이가 별로 없으며 더구나 비공개 지역이라 사전에 (서오릉 관리소)의
허가를 받아야 갈 수있는 곳이다.
왕비중에서 가장 불운한 여인중에 1명이다.
연산군만 아니었다면 화려한 궁중생활을 할 수있었을 것인데...
릉을 둘러보는 내내 같은 여인으로 가슴이 저며 왔다.
뒷쪽에서 바라본 전경
답사 가던날 관리인께서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셨다.
언젠가는 개방을 해야 되겠지만 지금으로선
여권상 어쩔 수 없다며 문화재청에서 많은 힘을 쓰고 있다고 하셨다.
인왕산 성곽 답사길에 (치마바위)에서 내려다 본 궁궐입니다.
꽤 위험한 코스로 그곳에서 내려다보면 과거 1번지나 현재 일번지가 한눈에 들어 옵니다.
치마바위가 부부의 아름다운 애틋함을 안고 있으나! 저는 비를 맞으며 죽을 힘을
다해 올라 갔기에 약간의 의하심이 ......
이곳도 북부지형이라 괴뢰군의 주둔지가 되었다고 한다.
석마 주둥이에 총뿌리를 겨누어 절반쯤 튕겨 나갔고 문인석 볼까지...
석호 꼬리가 등쪽으로 뻗어가고 있네요!!!
실제로 보니 귀엽게 생겼고 .석물을 작품화 할때 앉은 자세는 거의 같은데
꼬리의 각도가 릉마다 다르다는 것을 볼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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