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이 막히게 강렬한 눈빛의 사내가 있다. 온갖 거짓과 허위를 단숨에 꿰뚫는 무섭게 차가운 얼음과 펄펄 끓는 불을 동시에 지닌 눈동자. 그는 지금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당당한 기운에 압도되어 순간 움찔한다. 왜일까?
자화상은 자기성찰이다. 자화상은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감추고 싶은 상처나 구차한 삶의 내력까지 정직하게 투영할 때 존재가치를 갖게 되는 고해성사다. 좀더 폼 나게 포장하려고 하는 순간 스스로 역겨워지고마는 침묵의 시간. 그것은 어두운 밤, 뭇별이 이끄는 길을 따라 끝도 없는 모래사막을 헤매던 사람들을 태운 낙타의 등을 닮았다.
공재 윤두서. 그는 혁명가의 얼굴을 지녔다. 불의와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권력이나 돈 앞에 비굴하지 않을 태생적 반골 기질을 지닌 사내.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설은 우습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그는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고루 갖춘 사람이다. 윤선도의 증손자로 태어나 일찌감치 막혀버린 출세길이 역설적이게도 그를 냉철하고 정의로운 사람으로 단련시켰다. 권력을 얻기 위해 담합을 일삼고 벗을 버리는 어지러운 시절, 그는 녹우당에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며 성호 이익 같은 실학자들과 위태로운 시간을 버텼다. 썩은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자신이 잃을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칼을 벼리듯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그것은 헛된 욕망을 버리는 단호한 싸움이기도 했다.
젊은 날 뜻을 함께 세운 벗들이 떠나간 자리를 홀로 지키면서 그는 무엇을 기다렸을까. 윤두서는 그 시대적 관점으로 보면 패배한 사람이다. 그러나 모든 혁명가가 그렇듯 그 역시 자신의 의지를 어떤 순간에도 후퇴시키는 일이 없었기에 오늘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말하고 있다. 그의 눈빛은 시대를 넘어 사람을 향하고 있어 온몸에 전율을 돋게 만든다.
그는 자신의 수염 한 올도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그렸다. 모든 선 하나하나가 살아 숨쉰다. 자신에게도 이렇게 엄격한 원칙을 지켜냈으니 누구의 말과 마음인들 허투루 지나쳤을까. 그는 분명 마음이 넓고 따뜻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말수는 적지만 신중하고 너그러운 사람. 아름다운 것에 민감하고 슬프고 여린 것들을 보호하려는 품이 넓은 사람. 초록 비가 뚝뚝 듣는 녹우당에서 섬세한 세필로 그는 불우한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
그런데 그의 눈시울이 붉다. 그것은 그가 오랜 세월 겪어낸 슬픈 상처의 기록이기도 하다. 스무 살을 넘긴 시절부터 마흔 가까이까지 계속 되어온 그가 사랑하던 사람들의 연이은 죽음. 그 애타는 속울음의 흔적이 이렇게 아프게 남아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그를 믿고 사랑한 사람들을 위해 그가 그려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림 속에 두 사람이 있다. 왼쪽 바위 위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은 바위 위의 정을 움직이지 않도록 붙잡고 있고, 그 맞은편에 있는 한 사람은 무거운 쇳덩이 망치로 이제 막 정을 내리치려 하고 있다. 바위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은 바위 쪼가리라도 튈까 걱정되는 표정으로 고개와 어깨를 모로 돌리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쇳덩이로 정을 내리치려고 하는 사람의 얼굴 표정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고, 등 근육 또한 마찬가지다. 계절은 늦봄이나 초여름일 것이다. 웃통을 벗고 있는 이의 바지 단이 올라가 있고, 풀들의 잎들이 무성한 것을 보면.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망치를 내리치는 사람의 등 근육, 그 사람 얼굴의 옆모습, 맞은편에 쪼그리고 앉은 사람의 표정, 그 사람이 고개를 반대로 빼고 있는 것이 모두 익살스럽고 따뜻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윤두서의 그림들은 <노승도>와 <진단타려도>, 지금 보고 있는 <돌을 깨는 남자>와 <자화상>, 그리고 <채애도>, <백마도>, <출렵도> 등등이 있다.
윤두서는 조선 회화 역사상 한 획을 긋는 화가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그린 그림 덕분에 이후에 김홍도의 풍속화로 이어졌고, 그 덕분에 우리는 조선시대 서민들의 삶을 부분이나마 엿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조선시대 사실주의 회화의 선구자로 일컫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의 특징은 어느 정해진 틀을 벗어나 다양한 그림을 그렸다는데 있다. <노승도>에서는 굵고 대담한 선으로 표현한 옷과 세밀한 선으로 표현한 얼굴로 노승의 ‘선의 경지’를 표현했고, 왼쪽의 <돌을 깨는 남자>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서민들을 표현했고, <자화상>에서처럼 섬세한 선으로 모든 것을 처리할 정도로 창작을 위한 수련, 또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 성실한 성격의 선비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윤두서는 민중을 사랑한 화가다. 그래서 그를 우리나라 풍속화의 시원이라고 한다. ‘돌을 깨는 석공’은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한 땀방울을 생생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뛰어난 관찰력을 지닌 화가로 정평이 난 그답게 가장 현장감 있는 장면을 포착해냈다.
마음이 지극하게 깊어질 때 진실을 담아 써낸 작품은 세월을 뛰어넘어 언제나 상처 입은 시대를 어루만지고 각성하게 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노동에 대한 존엄한 자각이 없었다면 이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는 쇠망치로 돌멩이를 내려치고 있다. 처참한 가난과 벗어날 수 없는 신분의 족쇄를 깨부수듯 힘껏 돌을 깨고 있다. 그러나 돌멩이가 왜 돌멩이겠는가. 그것은 생각처럼 쉽게 깨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다시 어깨가 빠져라 힘을 쓰며 돌을 깨부순다. 조금 있으면 돌은 반드시 깨질 것이다. 그것은 마주 앉은 노인의 표정을 보면 안다. 돌의 파편이 튈까봐 정을 들고 조금 뒤로 주춤 물러앉는 듯한 자세의 노인. 그러나 노인이 뒤로 물러나 앉은 것은 자신의 안위 때문이 아니다. 혹여 자신이 다치기라도 해서 이 착한 젊은이가 뻔한 형편에 약이라도 지으러 가게 될까봐 조심하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읽어내는 윤두서의 속 깊은 표현력, 이것이 그가 열망한 아름다운 세상의 풍경이다. 그래서 이 그림은 초여름 어린 나무들이 자라나는 소리처럼 싱싱하다.
윤두서. 그가 그립다. 그의 자화상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눈앞의 이해득실을 좇아서 수시로 말을 바꾸는 이들이 여전히 득세하며 세상을 지배한다. 그들의 구차한 변절을 향해 호통을 칠 대장부. 강인하고 당당하게 마침내 역사가 된 사내의 사자후가 그립다.
<자화장>에서 보면 윤두서의 모습은 강직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그림 그림은 모두 따뜻하고 그윽하고 익살스러운 것이 많다. 그렇다면 그는 따뜻하고 익살스럽고 그윽한 사람이다. 글은 곧 사람이라고 했다. 그랬듯이 그림 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자신에게 보이는 세계를 그대로 그려낸 것이니 그건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역시 기록에도 ‘윤두서는 해남의 대지주로 노비들이 수백이었지만 인품이 후덕하여 아랫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그린 그림에는 <자화상>에서 보이는 강직함 뒤에 인간적인 수행의 경지에 이른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이런 존경할 수 있는 분들을 만날 수 있게 되려나…. 우리는 언제쯤 우리 스스로를 지식과 좋은 습관을 몸에 익혀 스스로 모범이 되려고 노력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려나…. 논어의 첫 구절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배우고 시시로 그 배운 것을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悅乎). 지금이 바로 이러해야 하는 때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