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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산에서 장룡산으로
충북 영동군에는 8경만 여덟 곳이 있다하니 8x8=64경 인가? 그 중에서도 양산8경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천태산 일
원이다
천태산은 그 속살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곳 곳에 암릉과 암벽들이 아기자기함을 자랑한다
이 곳도 지자제 이 후 개발이되고 많은 음식점,위락시설들이 들어서있고 곳 곳마다 뚜렷한 이정표가 있기에 특별한
설명이 필요없다
하기야 천태산이야 소재지인 양산면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배상우님에 의해서 십 수년전부터 천태산 곳 곳의 등로가
개발되어 있었고, a.b.c.d코스로 구분 지어있고, 우회길과 더불어 바위를 직접 오르는 코스에는 로프 설치까지 오래
전에 설치되어 잇던 곳이다
그러나 이제는 산을 오른다기보다 행락지로 찾는이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천태산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에 위치한 대성산도 가파른 벼랑과 암릉으로 이우어진 산들인데 사실 빗속의 산행을 했기에 본인이 느낀 개요 운 운을 할 수 없고 지역에서 소개한 내용을 빌려온다
<옛날부터 큰 성인이 나타난다는 애기가 전해 내려오는 대성산은 겉에서 보면 남북으로 달리는 산줄기 가운데 머리를 세우고 있는 평범한 산 봉우리이지만 그 산자락을 헤치고 들어서면 별천지가 펼쳐지는 곳이다
깊은 암곡 여기저기에 기암괴봉이 늘어서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그 사이에 높다란 폭포가 줄줄이 걸려있어 하늘 나라 선원이 예 아닌가 싶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이 폭포는 그 아름다움을 시로 새겨놓은 비석이 있을 정도로 장관이다. 비석에 적힌 글귀다."낭떠러지 하늘 위험한 곳 찬 샘물 걸려 흘러내리니 은은한 천둥소리 연이어 치고 비의 근원이 산머리에 가득 몰린다." [絶壁堂空險 寒泉倒掛流 殷殷雷鼓轉 源雨滿山頭]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대성산 정상을 데구름, 데구리 또는 덕운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정상의 오른쪽은 호롱꼭지처럼 생긴 국사봉인데 옛날에는 이 봉우리에 쇠말(철마)가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산세를 지냈다 한다
원동마을 사람들은 계곡이 아름다워 삼계서원이란는 유명한 서원을 세웠다
지금은 그 터에 기념 비석만 외롭게 서 있지만 약수터와 길고 잘 쌓은 석축이 과거를 말해주고 있다>
대성산 북쪽에 자리한 장룡산은 자연 휴양림이있어 알려진 산이다
본인 스스로가 본 것이 없으니 역시 장룡산에 대해서 남의 글을 빌려온다
<충북 옥천군 군서면 금산리 장용산 휴양림은 요즘 보기 드물 게 산과 물이 어우러진 빼어난 풍광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인접한 서대산 능선을 타고 흐르다 우뚝 솟은 장용산은 소나무와 참나무 숲 사이로 왕관바위와 포옹바위등 절묘한 모습의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잔설이 덮인 천연림 사이로 기기 묘묘한 괴석이 수채화처럼 펼쳐지고 산까치 들의 날갯짓이 마냥 평화롭다>
-산행기-
2003년3월16일 (일) 날씨 : 하루 종일 비 내림
주차장-영국사-A코스- 천태산(714.7m)-북릉-x710m-x709m-대성산(704.8m)- 매봉-지내재-△546.7m-△574m-장룡산(656m)-휴양림입구
도상거리 : 16.5km
지형도 : 1/2만5천 이원
안성섭 대간거사 k 김재환 인치성 최미란 산둘 단풍 광인 (서울9명) 강산에(청주) 곰발톱(대전) 11명 산행
혼자 내지는 열차산행으로 많아야 4명이 가고자했던 산행이 결과적으로 10명이 넘는 대 부대가 움직이는 모양이되었고, 비록 빗속의 볼 수 없는 산행을 상쇄하고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net상에서 알게된 산꾼 여러분들과 우의를 돈독히 할 수 있었음이라
카페에서 몇 일간 일요일의 천태-대성-장룡산 종주건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화제가 올랐었고, 한 두사람씩 참가인원이 불어난다
3월12일 가입한ㅊ이슬님도 참여한다며 이 글 저 글 올라오니 관심들이 지대하다
그러나 주말 일기예보를 보니까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나
차가운 봄비를 맞으며하는 산행이라니
대체적으로 초판이 벌어지는 초(?)산행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어쩌면 그런쪽으로 기대를하며 묘한 설레움으로 일요일을 기다렸는지도 ,,,
인원이 불어나니 열차보다는 15인승 승합차를 이용하자는 의견에 최기사의 랜트카와 당일아침 일찍 움직이자고 약속한다
참여할 꾼들에게는 각자 일인 일초(?)를 준비하라 이르고 비를 맞으니만큼 뜨거운 국물이라도 끓일 수있게 버너, 콕헬까지 준비하자고,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었는지 ㅊ이슬님은 일찍 나왔다가 다시 돌아간 사연하며, 아무튼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태우고 조금 늦은시간에 출발한다
경기도를 벗어나며 빗방울이 기어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더 남하 할 수록 비는 더 굵은 줄기를 뿌리기 시작한다
죽암휴게소에서 청주에 잠시 거주하고있는 대전의 강산에님과 조우하고 대전 진입로를 바로 지나니 빗속에서 한 말들이 막걸리통을 들고 기다리는 곰발톱 후배님을 태우니 차안에 막걸리 향이 아주좋다
맛이나 보자며 아침 해장으로 한 컵씩 나누어 마시는데 인치성님이 상당한 막걸리派 인 듯 막걸리 예찬론이다
옥천tg로 빠져나와 이원을 거쳐서 누교리의 천태산쪽으로 접어든다
10년도 넘었을 때 와본 천태산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져 버렸지만 어디 변한게 천태산 뿐이랴!
잘 지어진 현대식 건물의 식당과 상점들, 그리고 매표소까지, 비가 스며들지않게 스패츠까지 중무장을 하는 모습을 본 어느 사람이 몇 마디 충고(?)를 해준다
뭐 천태산 오르는데 그런 중무장을 하느냐 지도가 뭐 필요하냐 등등등
그 사람에게 대성산과 장룡산까지 이어간다는 설명을 해줘봐야 알아듣기나할까
09시40분
중무장을 끝내고 매표소입구를 출발한다
당연히 정상을 제일 빨리 오르는 A코스로 오를 것이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늘같은 날 이미 선답자인 강산에님만 뒤 따르자 ^^
아니! 그런데 초반부터 스피드를 내는데 초에 찌들은 이 몸이 쫏아가자니 숨이차서 헥~헥 거린다
상사바위를 지나고 삼단폭포도 지나고 영국사쪽 계단길을 오르니 저 앞에 이 곳의 그 유명한 영국사앞에 수령이 오래된 은행나무가 앙상한 뼈대를 보이고 있다
천태산임을 알리는 표지석위에 하얀 비둘기 한쌍이 비를 맞고 앉아있다
<삼신바위>를 지나니 계단길이 나타나고 다시 <삼단폭포>를 지나 계단길이다
사실 폭포라지만 올라가보면 논 밭 사이로 흐르다가 떨어지는 폭포다
산길은 십 수년전보다 훨씬 넓어져있고 이정표가 많다
하기야 십 수년전에도 양산면에서 약국을 경영하시는 “배상우”님에 의해서 천태산 곳곳이 소박한 이정표나 밧줄이 매어져 있었지만 지금의 모든 것은 그런
소박함이 없어져서 그런지 이 산도 오르는 산의 역할보다는 유원지화에 일조를 해버린 것 같은 심정은 굳이 이 산에서만 느낌이 아니리라
오후에 잠시 내린다는 비 예보가 옷을 흠뻑 적실정도의 비는 계속 내리고, 전면의 영국사가 보인는 넓은 지역으로 올라서고,
참으로 오랜만의 천태산행이라 영국사의 모습도 은행나무의 자태도 카메라에 담는사이 이 빠른 산 사람들은 이미 저 만치 앞서간다
<영국사는 분명치는 않으나 신라문무왕때 세워졌다는 설이 있다
보물 532호로 지정된 보리수 아래 이끼낀 3층석탑을 비롯 원각국사비(보물 534호) 부도(보물 532호) 망탑봉3층석탑(보물536호) 등의 문화재가 있으며, 절집을 대나무 숲이싸고 있다
신라 문무왕 8년 원각대사가 창건하고 효소왕이 육궁백관(六宮百官)을 인솔하고 피난했다는 전설이 있는 옥새봉과 육조골이 있고, 고려 문종때 대각국사가 국청사(國淸寺)라 한 것을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함으로써 국난을 극복했다 하여 영국사(寧國寺)라 개칭 하였다고한다>
<영국사>
차안에서 마신 막초 때문인가? 왜! 이리 숨이 차는겨 그러나 나만 마신게 아니라고 본다면 오늘 내가 임자 만나버렸다
영국사를 지나면 숲길이 이어지고 간간히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오늘따라 끓여먹을 거리를 준비해서 그런지 배낭가지 왜!이리 무거운겨 본격적인 바위 절벽코스를 오르는 곳에 도착하니 “곰발톱”후배님은 이미
올라가버린 상태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비가와서 미끄러우니 우회길을, 오랜만에 오는길이라 나만이라도 밧줄을잡고 오르기 시작한다
10시25분
완전히 오르고 내려다보니 벌서 저 아래가 까마득하다
<재미있는 산행을 하려면 저 바위를 타고오른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서 내려오는데 정상 가까이 올라가니 개스가 가득하고 바람도 제법 불어댄다
10시40분
정상에 오라서서 잠시 지체 후 표지석 직전에서 방향을 북쪽으로 바꾸며 내려서는데 이크! 북사면이라 그런지 푹푹 빠지는 눈길이 기다리네
아무튼 오늘같은 날씨에 이미 이 코스를 지나봤던 강산에님이 있으니 마음 푹놓고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정상 출발 5분여 후 바위봉을 올고 내려선다
11시05분
자욱한 안개속에서 전혀 볼 수는 없지만 능선의 날등이 폭이좁고 칼날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대체적으로 산세는 급격한 벼랑을 이루고있지않겠나는 느낌이다
암봉이 나타나는데 그 직전 우회길도 보이는 것 같았으나 그대로 지나보니 우측으로 바위사이로 급격하게 내려서게 되는데 밧줄이 설치되어있다
<최미란님>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절벽인지 모르니 내려서기가 쉽네요
<김재환님> 누구신지 집에서 무서븐 마눌님이 여기 밧줄을 설치하라고해서 누군가 요렇게 설치한게 아닐까요
한 사람씩 차분하게 내려선 후 통과하니 다시 전면은 암릉길이다
<천태산에서 대성산으로 향하는 초반의 암릉과 암봉들>
11시20분
여전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바쁜 걸음으로 무명봉을 지나가고, 잠시 후 <신안사>갈림길의 나무판이 붙어있는 지점을 지나간다
11시40분
x710m봉을 지나서 계속 전진이다
11시53분
밋밋한 봉우리에 오르니 능선이 두 갈래로 분기하는데 이 곳이 바로 서쪽의 국사봉을 경유해서 서대산으로 이어지는 분기봉이다
그러나 이미 먼저 올라선 일행들 몇은 조금은 뚜렷한 서대산쪽 능선으로 이미 내려서고 있었으니 오늘 몇 번은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은 자명하다
북쪽의 능선을 내려서기 시작하다가 10 여분 후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12시11분
또 하나의 분기봉에 올라섰더니 조금전의 그런 상황이 또 한번 벌어지고,
<김재환님> 그러니 앞서서 내려서지 말아야지 알바를 안 하지 ^^ 4분 후 내려선 x709m봉 직전의 안부가 평탄하고 바람이 덜해서 식사를 하고
가기로하고 각자 준비해온 버너에 불을 피우고 한느 사이 이미 곰발톱 후배님은 알콜도수 50도의 백포도주 원액을 한 잔씩 돌리는데 주저하지 않고 넙죽 받아 마실 수밖에 없음은 오늘 산행이 산행중 초질로 점철될 것이라는게 뻔한 것이
였기 때문이고 그래서 안주거리로 이 몸은 불괴기 사리안주로 분비하지 않았든가,
<봄비에 후줄근했지만 곧 독한 초가 들어가니>
아따~
속이 짜르르한 그 넘의 원액을 몇 잔 받아 마시고보니 알딸딸한데 이번에는 <산둘님>의 마오타이주가 나온다
중국과 수교하기전에 이미 등소평이 즐겨마시던 것이라하여 암암리에 사업차 중국을 드나들던 선배께 부탁하여 마셔본 마오타이주는 내 입맛에 맞는 편이다
그 넘의 마오타이도 또 몇 잔을 받아 마셔버렸다
<광인 왈> 난 지금부터 산행기 메모고 뭐고 않을테니 강산에님이 알아서하쇼
빗속에서 그 뻑저지끈한 초판이 한 동안 이어지고 다시 출발이 13시09분이다
그래도 이때까지만해도 간간히 기록이 잘되고 있었는데...
전면의 가파른 능선을 오르니 곧 이어 x709m봉을 지나간다
아무래도 걷는 균형이 평소같이 물 흐르 듯하는 부드러움이 없어진다
14시20분
송전탑이 있는 지역을 지나 다시 오름이 이어지니 시설물이 나타나고,
14시30분
서쪽으로 분기하는 봉우리를 지나니 시설물이 나타나고 곧 이어 표지석이 서있고 <이원303, 1980년 재설>의 삼각점이있는 대성산 정상이다
여전히 시야는 가려있고 그냥 느낌으로 급격한 벼랑을 이루는 일대라고 생각되는데 우리가 가야할 장룡산 방향은 시설물쪽으로 몇 걸음 되돌아와 동북쪽으로 내려가야하는데 성질급한 몇 은 서북쪽 능선을 향하다 바로잡는다
<대성산 정상>
14시50분
대성산을 내려서서 다시 방향을 잡아가는데 마신 독주에 거의 능선의 가닥만 놓치지않으려 정신만 차리지 흔들리는 몸 중심은 어쩔 수 없는게 내 경우 다
15시10분
블록으로 H표시가 된 헬기장을 지나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는게 매봉쪽이다
10분 후 올라선 봉우리가 매봉인가? 했으나 다시 올라선 봉우리가 매봉으로 판단되는데 특별한 것이없기에 확인할 방법이없다
15시38분
매봉을 지나 양쪽으로 분기하는 능선을지나 내려선 곳이 <지내재>다
헤롱 헤롱 하면서도 능선찾기에는 정신을 차린다
그러나 몸의 중심은 아무래도 평소보다 가누기가 어려워서인지 어느 지점인지 기억은 없어도 주-욱 미끄러지면서 넘어지는데 내가 생각해도 360도 회전을하며 넘어지는데 정확히 양다리를 하늘쪽으로 치켜들며 돌아간 것 같다
한 바퀴 구르고 나무를잡은 상태에서 내려보니 반 바퀴만 더 돌았으면 둔덕진 곳으로 떨어져 내렸을 것 같은데 나중 뒷풀이 때 <곰발톱>후배님의 말을 빌리면
<뭐 넘어지며 회전허는 것도 아름답게 예술적이라나>
서로 좋은사람들끼리 같이하니까 모든게 좋아 보여서이리라
이 후 거의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가는데 대체적으로 대간거사 안트콩 k님 곰발톱 단풍님들이 부지런히 앞장을서서 가는편이고 최미란님을 신경쓰며 산둘님과 김재환님이 그룹을 이루고, 강산에님은 모두를 신경쓰는 듯 항상 뒤에서 신경을 쓰며 말 없이 가는 모습이 많은 배려를 하는 것같다
16시50분
오른 봉우리가 삼각점이 표시된 △546.7m봉일 것으로 확신하는데 삼각점을 확인하지 못하고 지나치고 7분 후 무명봉을 지나서 서쪽으로 내려선다
3분여 후 무명봉을 지나고,
17시13분
<이원409 1980년 재설>의 삼각점이 확실하게있는 △574m봉에서 방향은 북쪽으로 향하는데 시간상 거리상으로 보아도 16시50분 지나온 봉우리가 △546.7m봉은 틀림없다
이제 장룡산은 북쪽으로 약1km 거리에 있는 것으로 지도상에 나타나는 547m봉은 서쪽으로 내려서면 계곡을 건너 x590m봉을 올라서면 <서대산△903.7m>주릉으로도 연결되는 것으로 보아 날이 맑다면 서남쪽으로 서대산의 웅장한 모습이 보일 것은 자명한데 아무것도 볼 수없음이 안타까운데 언제 천태산-서대산 종주를하며 일부 못보고 지난온 천태-대성산 사이의 암릉지대를 느끼고 보고 해야겠다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지역이 간간이 나타나는 장룡산가는 능선이다
17시30분
80 ld라는 커다란 숫자가있는 헬기장에서 마지막남은 간식을 먹으며 또 조금 남은 참초까지 꼴작대며 10분간 소요한 후 발길을 재촉하며 가파르고 낙엽이 푹신하게 밟히는 능선을 오르니
17시50분
아무 표시도없고 두루뭉술하니 평범한 장룡산 정상이다
장룡산 정상만큼은 강산에님이 설명하지 않았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냥 지나치고말 그런 봉우리다
<아무 표식도없이 평범한 장룡산>
이 후 내리막을 모두가 뛰다시피 내려간다
뚝 떨어져 내렸다고 생각을 할 즈음 넓은 길이 나타나고 곧 이어 튼튼하게 생긴 철 다리를 건너니 깨긋하게 포장된 도로가 나타난다
18시20분
도로를따라 잠시 걸으니 <장룡산 휴양림의 매표소>가 나타나며 오늘의 산행은 끝이난다
사실 대성산 이 후는 거의 기록이 부실했는데 설명없이 시간상의 기록과 간간이 찍어놓은 사진으로 기억을 떠 올려 이 글을 기록한다
장룡산 휴양림 바깥에 대기하고있던 최기사 曰
조금이라도 걸음을 덜어주고자 하산지점까지 차를 대려고 들어가려는데 휴양림 직원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라고 하더란다
<최기사> 아 ~ 저 천태산에서 돈내고 들어간 산에에 내려오는 사람들 태우러간다
<직 원> 뭐라고 어디서 오는 산 타는 사람이라고?
<최기사> 아! 천태산서 산타고 이리 하산한다더라
<직 원> 이 양반이 돈 안낼려고 거짓말을해도 적당히 알아들을 거짓말을
해야지 당신 천태산이 어딘지나 알고하는 소리냐?
<최기사> 그 사람들은 그렇게 타는 사람들이라니까 거 몇 푼 안줄려고 거짓말 하나
<직 원> 이리 들어와서 이 지도를 봐라 천태산은 충북 열동군 이 지점이고 여기는
충남 금산군 이 지점이다 그사람들이 신이 아닌이상 이 날씨에 여기까지
어떻게 온단 말이냐 설사 천태산에서 진짜로 그 사람들이 산에 올랐다면
다시 천태산 아래로 돌아가봐라 보나마나 그리로 내려올테니까
<최기사> 우쒸! 진짜라니까 그러네 그 것보다 더 먼데서도 오는 사람들인데 중얼중얼
위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전의 뒷풀이장소로 이동한다
사전에 연락된 청주의 심산님도 오랜만에 조우를하고 아침에 곰발톱 후배님이 준비해온 한말들이 막걸리통을 들고 들어간다
<저걸 다 먹으려면 배가 불러서 안되니 일부는 나누어서 가져가고 일부는 마시자>
처음에는 그렇게 이야기들을 하면서 마시기 시작한는데
그러나 이내 말통의 막걸리는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고,
특히 막걸리를 좋아하는 인치성님 연신 막사발을 비우고,
이 초 저 초 온갖 잡초를 가리지 않는 이 몸도 연신 막사발을 비우다보니,
산 사람들 이야기의 소재야 오로지 산 밖에 없는데 마르지 않고 계속 다른
이야기들로 시간 가는줄 모른다
기분좋은 곰발톱 후배님과 작별하고 죽산휴계소에서 강산에 심산님과 안녕하고
빗속을 달려서 서울로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