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운남성 여강 1
해발 5596m의 옥룡설산(玉龍雪山)이 보이는 이 도시는 해발 2400m의 고산도시로서 여강나시족자치현(麗江納西族自治縣)의 중심도시이다.
주민중 대다수는 나시족으로 대부분 동쪽의 구시가에 거주하고 있고 최근에는 한족의 유입도 많은데 한족은 서쪽의 신시가에 거주를 하고 있다. 그외에도 백족(白族), 이족(彛族)등 다양한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저위도지방에 자리하고 있지만 고도가 높아 연중 서늘한 기후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고 5월부터 8월까지는 연중 강수량의 대부분이 내려 거의 매일 흐린날과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이 이어져 맑은 날을 보는 것이 힘들 정도.
신시가지에서 보이는 옥룡설산.
여강은 중국내에서도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오지였지만, 지난 96년 300여명이 사망하고 16,000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진도7.2 의 강진으로 도시 절반 이상이 폐허가 되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된다. 당시 사람들은 지진의 참상속에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800년 동안 그 자리에서 있었던 여강의 모습에 눈을 뜬 것이다.
이 고도는 중국중앙정부의 지원하에 보수와 복원을 거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중국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지금은 중국에서도 유수의 관광지가 되었다.
필자의 견해이지만 북경의 고궁 다음으로 광객들이 북적거린 곳이 바로 이곳 여강 구시가지가 아닐까한다.
현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9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관광객들이 거의 안찾아오고 중앙정부의 행정력도 거의 미치지 못하는 조용한 오지의 소수민족 동네였는데 별안간 유명세와 더불어 중국인들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폭발적으로 방문객들이 늘면서 광관산업으로 먹고사는 동네가 되었다고 한다.
고성 구시가지 입구
구시가(고성)의 골목길.
기념품가게와 레스토랑, 여관이 늘어서 있다.
고즈넉한 고도의 분위기를 느끼며 조용히 미로와 골목길을 걷고 싶으나,
현실은 북적거리는 관광객들과 길양옆으로 펼쳐진 기념품가게에 둘러싸여 다소 정신없는 분위기이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언덕 사자산(獅子山)에서.
사자산은 날씨만 맑게 개인다면 고성뒤로 멀리 옥룡설산의 모습을 전망할 수 있는 절호의 전망대이다.
사자산을 경계로 동쪽은 구시가, 서쪽은 신시가로 나누어진다.
구시가 남쪽 최근에 새로 복원&신축되고 있는 거리.
여강은 '운남의 베니스'라는 별명이 붙어있을 정도로 운하가 거미줄처럼 구시가 일대를 흐르고 있다.
베니스처럼 수운이 발달할 규모의 운하는 아니어서 폭이 좁고 수심이 얕지만,
시내와 교외의 몇군데서 흘러나오는 샘과 연못으로 인해 수실은 상당히 깨끗한 것이 특징.
운하는 여강 시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식수원이자 생활용수원으로 이 물로 밥도 해먹고 빨래도 하고 야채도 씻고 한다.
주택가 한복판을 흐르는 운하
시장에서 구입한 채소를 집으로 가는 길에 운하위에서 씻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환경문제로 인해 요즘은 다소 보기 힘든 모습이 되었지만.....
과거에는 수로에서 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시내에 몇 개소의 물레방아가 있었다고 하지만,
관개기술의 발달과 펌프의 등장으로 모두 자취를 감추고 시내에 오직 2개만이 복원되어 옛 모습을 살리고 있을 뿐이다.
흑룡담공원(黑龍潭公園)
구시가의 북쪽 끄트머리있는 공원으로 원내에는 흑룡담과 동바문화를 소개하는 박물관이 있다.
연못의 물이 옥처럼 푸르다고 해서 옥천(玉泉)이라고도 불리는 흑룡담(헤이룽탄)은
여강 시민들의 식수원이자 여강 시내를 흐르는 운하의 메인수원지.
흑룡담 뒤로 보이는 옥룡설산의 모습은 여강을 알리는 여행책자나 엽서의 단골메뉴이지만
방문당시에는 아쉽게도 옥룡설산의 모습은 구름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백마룡담(白馬龍潭)
흑룡담 외에도 여강구시가의 안쪽과 주위에는 몇군데의 샘과 우물이 현재도 존재하며 주민들은 변함없이 이용을 하고 있다. 사진의 백마룡담은 그중 하나로 구시가 남쪽 한켠에 위치.
목부(木府)
여강 구시가의 남서쪽에 있는 과거 원나라시대부터 22대 470년간 나시족의 부족장 가문이었던 목씨의 저택 (木氏土司府).
대부분의 건물은 청말에 병화로 소실되었고 그나마 남아있던 석비들도 문화혁명시대에 훼손되었지만,
1996년 대지진을 통해 이곳의 가치를 인정한 세계은행의 지원아래 3년간에 대대적인 복원을 거쳐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궁전을 방불케할 정도로 한가문의 저택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크고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목(木)씨 가문은 여강을 통치하면서 중국의 여느 고성도시와는 달리 도시주위에 성벽을 치는 것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木'자에 성벽(口)을 둘러치면 곤란하다/어렵다/피곤하다 라는 의미의 곤(困)자가 되기 때문이었다고.....
때문에 구시가가 '여강고성'이라고 불리우지만 성벽이 없는 독특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목부
목부는 북경의 고궁과 흡사한 건물배치이나 남향배치의 고궁과는 달리 일출을 맞기 위한 동향배치라는 것이 특징.
동에서 서까지 전체 길이 369m. 46동의 크고 작은 건물로 구성.
고궁을 축소시켜놓은 듯 한 느낌도 든다.
과거 중국중앙정부의 영향이 이곳 운남의 오지까지도 미쳤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복원과정에서 나시전통건축보다는 중원의 한족건축문화를 오류와 과장이 많다는 평도 있다.
|출처: 사진으로 풀어가는 해외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