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방가르드’예술에 대해서 설명하시오.
‘아방가르드’는 원래 프랑스 군사용어로, 전쟁에서 본대에 앞서 적진의 선두에 나가 적의 움직임과 위치를 파악하는 척후병을 뜻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정치나 사회혁명의 급진파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된다. 19세기 말 예술계에서는 전통과 관습 등 고정관념의 해체를 목표로 하는 전위적이고 급진적인 예술의 사조를 혁명기의 급진파에 빗대 아방가르드 예술이라고 불렀다. 아방가르드 예술을 '전위' 예술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이런 어원에서 나온 것이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기존의 정형미, 서사를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되므로 아방가르드 그림이나 패션 디자인은 매우 기괴하고 아방가르드 문학, 영화의 경우엔 장면과 장면이 연결이 안 되고 기괴한 영상이 흐르며 스토리가 거의 없다시피한 경우가 많다. 음악의 경우엔 소음에 가깝게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듯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에 중심을 두므로 감상의 주안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에 둬야한다. 아방가르드 예술계에서는 언어와 정형미 외의 방법으로 사람의 뇌와 감정을 자극하는 수단을 여러 가지로 연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미술에 있어서는 쉬르리얼리즘(초현실주의), 추상주의(입체파, 미래파)를 총괄하는 뜻이고, 음악에 있어서는 과거의 모든 음의 소재를 부인하여 피아노 줄에다 나무토막이나 고물을 매고 소리를 내거나 악기가 아닌 빈병, 톱, 쇠판 등의 물체를 소재로 하는 음악 사조를 뜻한다.
그렇다면 패션에서 아방가르드함은 무엇일까? '아방가르드 패션'은 일반적인 옷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는 디자인의 옷들을 말한다. 대체로 패션에서 아방가르드는 해체주의라 말하는데 옷에서 해체는 옷의 겉과 속을 뒤집거나 일부로 찢는 등 옷을 만드는 기존 질서에 혼란을 주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브랜드로는 마르지엘라가 있으며 마르지엘라는 빈티지 의류 및 원단, 볼펜 뚜껑, 페이퍼 타월, 플라스틱, 종이 등을 사용해 기존의 소재를 사용하는 고정관념을 부시고 버려진 것들을 횔용해 많은 재료들로 다양한 의복 아이템을 탄생시켰다.
건축물에서도 아방가르드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위치한 댄싱빌딩이다. 댄싱 빌딩은 마치 오른쪽건물은 턱시도를 단정히 차려입은 남자가, 왼쪽의 곡선의 형태를 띈 건물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치맛자락이 펄럭거리는 느낌 이 든다. 오른쪽 빌딩의 꼭대기에는 구 형태의 조형물을 설치했는데 그 부분에서 독특하다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렇듯 아방가르드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사용하는 예술적 분야이다.
2. 백남준 작품 중 하나를 선택하여 그것의 예술적 의미에 대하여 서술하시오.
-백남준의 다양한 작품들 중 ‘다다익선’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그의 다다익선은 높이가 18.5m 지금이 7.5m인 비디오 작품이다. 이것은 크고 작은 텔레비전에서 각기 다른 영상이 난무한다. 마치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삶의 현상을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1003개의 화면을 하나씩 살펴보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3개의 테이프가 방영하는 이미지들을 최신 기술을 사용해 반복, 병치시킨 규모나 시각적 효과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각 화면의 영상은 줄거리나 메시지가 없이 뒤섞인 비디오 이미지를 거침없이 번쩍인다. 고속의 편집은 즉흥적 연주가 갖는 폭발적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의 전통 탑 형식을 모델로 삼아 제작했다. 그는 10월 3일 개천절을 상징하기 위해 1003대의 모니터를 6단 원형으로 쌓아올려 거대한 비디오 작품을 구성해 한민족의 예술적, 기술적 신기원을 이룩하려는 염원을 담고자 했다. ‘많을수록 좋다’는 뜻의 사자성어 ‘다다익선’은 양적 확대를 통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열고자 하는 백남준의 비디오 철학이 담겨있다. 즉 정보의 작가가 관람객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그의 신념으로 오늘날 매스커뮤니케이션의 구성 원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다익선’은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공감하는 사회, 즉 그런 미래사회의 상징이다. 또한 그는 많은 영상 메시지 중 하나라도 우리에게 의미를 전달해줄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도로 작품명을 정했다고 한다.
백남준은 콜라주 기법이 유화의 기법을 대신하였던 20세기 초의 캔버스 표면에 대해 백남준은, 장차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라고 하였다. 즉, tv 모니터는 화가의 캔버스와 같고, 화가들이 물감에 붓을 묻혀 캔버스에 표현하는 작업은 신시사이저가 대신한다는 것이다. <다다익선>의 tv모니터는 그들이 가진 요소를 시간으로 분해하여 색채들로 재구성된 현대 회화인 셈이다. 그것은 시간 축으로서의 공시적 대립과 통시적 균형의 컴포지션으로 비유된다.
3.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를 문학적으로 분석하시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들 중 하나를 꼽기 어려웠지만, 그 중 하나를 꼽아보자면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OST 중 ‘어른’이라는 곡이다. 손디아 (sondia)의 깨끗하고 담담한 음색이 돋보이는 이 곡은 ost라는 특성에 맞게 극 중 인물이 화자가 되어 가사를 진행한다.
“웃는 사람들 틈에 이방인처럼/ 혼자만 모든 걸 잃은 표정/ 정신없이 한참을 뛰었던 걸까/ 이제는 너무 멀어진 꿈들”
다음 가사는 드라마 속 ‘이지안’의 모습과 속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적혀있다.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아무도 내 맘을 보려 하지 않고”라는 대목 역시 지안의 삶과 닿아 있다. 또한 이 가사는 드라마 속 세 형제의 이야기라고 해도 말이 된다.
<나의 아저씨>는 현실적인 드라마이다. 생계의 고단함은 여러 인물의 삶을 통해 빚더미,실직, 별거, 과로, 부모의 타는 속 등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런 팍팍한 현실을 적절한 은유로 풀어내며 가사 속에 녹여냈다. 드라마가 ‘보여주기’ 방식으로 인물들의 고단한 삶을 그렸다면 ost ‘어른’은 ‘말하기’방식으로 이지안의 속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연극의 독백처럼 말이다.
“아플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
“눈을 감아 보면/ 내게 보이는 내 모습/ 지치지 말고/ 잠시 멈추라고/ 갤 것 같지 않던/ 짙은 나의 어둠은/ 나를 버리면/ 모두 갤 거라고”
다음 가사를 보면 절망에 몸부림치는 지안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내가 되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잠들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 바보 같은 나는...”
이 부분에서는 질척거리는 현실의 어둠을 옮기는데 머물지 않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같은 환상적이고 승화적인 표현으로 아름다움을 담는다. 뿐 만 아니라 화자는 나로서 살아가는 꿈을 꾸지만 밑바닥 인생 안에서 결코 나는 내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는 고백이다. 이 가사는 바닥의 바닥, 절망의 가장 어두운 골짜기에 있는 주인공의 심정을 아프게 보여준다. 이 후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희망의 여지를 살짝 드러낸다. “어떤 날 어떤 시간 어떤 곳에서/ 나의 작은 세상은 웃어줄까”하고 쓸쓸하게 노래는 끝이 아니만 쓸쓸함 뒤에는 세상이 웃어주는 그런 날도 오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희망도 내포돼 있다.
지안과 동훈은 서로에게 웃어줄 ‘작은 세상’으로 조금씩 자리매김해가는 것이다. 지안은 동훈에게 “성실한 무기징역수”같다고 말한다. 이 한마디는 동훈에게 너무 정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로로 다가온다. 부모도, 형제도, 아내도 모르는 나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봐주고 알아주는 사람이 세상이 있다는 것. 이 사실에 동훈도 조금씩 자신을 치유하고 ‘네가 되는 날’을 꿈꾸기 시작한다. ost ‘어른’은 어떻게 보면 지안이 뿐 아니라 동훈을 대변하는 노래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Q. 깜짝 퀴즈; 아래의 기사는 어제에 올라온 것입니다. 이 기사를 굳이 4주차 강의에 올린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연관성에 대해.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이면서 20세기가 낳은 최대 영웅인 비틀즈의 리드 싱어의 존 레논의 부인이면서 일본의 반전주의자 화가인 오노 요코는 플럭서스(fluxus) 일원 중 한 명이다. 결혼할 때 즈음 비틀즈의 불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비틀즈 해체의 원인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다. 실제로 존이 비틀즈보다는 개인 위주의 활동을 하게 만드는 데 요코가 기여했다는 설이 돌기도 한다. 또한 요코가 비틀즈 팬들에게 가장 비난을 받는 지점은 비틀즈 멤버도 아니면서 그들의 음악 활동에 지나친 월권 및 간섭을 했다는 점이다. 악기 연주는 평범한 수준이고 가창력은 최악이나, 음악에 대한 욕심 때문에 계속 비틀즈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몇몇 팬들은 요코가 비틀즈의 해체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여기며 ‘마녀’, ‘일본 잡귀’라 비난하기도 한다. 이후 존은 뉴욕에 있는 자택에서 요코가 지켜보는 가운데 총에 맞아 죽게 된다. 다음 아래 기사에 나온 마크 채프먼이라는 인물이 존을 살해한 사람이다. 아직까지도 그가 존을 죽인 이유에 대해 아직 여러 가지 설이 돌고 있다. 그의 황당한 살해 동기로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을 뿐 만 아니라 그의 아내인 요코 앞에서 살해를 했다는 점이 가장 충격을 주었다. 요코의 앞에서 요코의 남편을 살해한 마크 채프먼은 현재 40년째 복역 중이며 매번 가석방을 신청하지만 허용되지 않았다. 오노 요코는 그의 가석방을 항상 반대하며 “그런 일을 한 사람이니 다시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듯 다음 아래의 기사에 나온 마크 채프먼은 이번 강의에서 나온 플럭서스 일원 중 한 명인 오노 요코의 남편인 존 레논을 살해한 사람이며 요코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사람이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