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歷史)의 고도(古都) 강화(江華)
4. 참성단(塹星壇)에 관한 기록
- 참성단(塹星壇/參星壇) 일명, 마니산 천제단(摩尼山 祭天壇)<사적 제136호>
마니산 참성단(塹星壇) / 마니산 등산로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이라고 하면 우선 백두산(白頭山)을 꼽겠는데 그와 더불어 강화도(江華道)에 있는 마니산(摩尼山)은 우리나라 제2의 성산(聖山)이라고 꼽히는 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대한민국 최고의 생기처(生氣處)로 알려진 곳이며 개천절에는 이곳 참성단에서 천제(天祭)를 올리고 전국체전(全國體典)의 성화(聖火)를 이곳에서 채화(採火)한다.
이때, 강화여고의 학생들이 선녀 옷을 차려입고 춤을 추는 가운데 채화를 하는 모습이 감동을 준다.
예전에는 강화도 자체가 김포에서 짠내(鹽河)를 건너와야 했던 섬이었다.
마니산과 참성단이 있는 화도면(華道面)은 지금은 강화도와 붙어있지만, 옛 기록을 보면 강화도와 떨어진 별개의 섬으로 고가도(高駕島)라는 이름이었으며 좁다란 뱃길이었던 가릉포(嘉陵浦)와 선두포(船頭浦)를 막고, 그 사이 뱃길을 메워 강화도와 연결되었는데 지금은 넓은 논과 밭으로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수많은 배들이 오가던 뱃길이었다고 한다. 고가(高駕)는 천자(天子)의 수레를 의미한다고 할까...
옛날에는 강화도에서 마니산의 참성단을 오려면 양도면의 도장리(道場里) 부근까지 와서 다시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했으며, 양쪽 해안의 포구에는 주막과 여각(旅閣)들이 즐비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화도면 덕포리(德浦里)는 당시 떡전거리로 유명하여 떡포라고 했다는 데서 그 지명이 유래되어 덕포리(德浦里)가 되었는데 지금까지 옛 자취가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두 섬이 하나로 되면서 고가도(高駕島)는 하도(下道)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일본 교장 야마모토(山本)가 ‘하늘에서 도가 내린다.’는 뜻의 하도(下道)를 빛날 화(華)로 바꾸어서 화도(華道)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덕포리와 인접한 사기리(沙器里)는 그릇을 굽는 옹기점이 있었고, 이곳 출신으로 조선 말기의 문신(陽明學의 대가)이자 안핵사(按覈使), 관찰사(觀察使) 등을 역임하였던 영제(寧齊) 이건창(李建昌)이 태어난 곳이기도 한데 마을 앞에 있는 자그마하지만 뾰족한 산봉우리를 초피봉(椒皮峰, 붓끝)이라 불린다. 마니산의 옛 명칭은 ‘머리, 으뜸’을 뜻하는 마리산(麻利山) 이었다고 하는데 후일 마니산(摩尼山)으로 고친 것은 불교 영향인 듯(摩-갈 마, 尼-여승 니).... 정상 참성단(塹星壇)의 높이는 472m이다. 우리 민족 제2의 성산(聖山) 마니산(摩尼山)에 대하여 역사적인 고찰을 더듬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