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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_아비달마구사론_6. 분별현성품(賢聖品), 22-23권
아비달마구사론 제22권
1)
중현은 본송의 후반구를 ‘견도는 성제(聖諦)를 관찰하는 것이고, 수도는 9품(品)을 닦는 것이다(見道見聖諦 修道修九品)’로 고쳐 짓고 있다. 즉 앞(권제19, p.865)에서 유정지(有頂地)의 견소단과 수소단의 수면은 오로지 성자만이 끊는 번뇌이고, 하 8지에 포섭되는 수면 중에서 견소단의 수면은 성자만이, 수소단의 수면은 성자와 범부 모두가 끊는 번뇌라고 하였다. 따라서 견도는 성자가 의지하는 도이기 때문에 오로지 무루이고(견도는 3계의 견혹을 단박에 끊기 때문에 무루도이지 않으면 안 된다), 수도는 범부와 성자가 다 같이 의지하는 도이기 때문에 유루와 무루 모두와 통한다는 사실은 이미 설명되었으므로 그것을 구태여 본송에서 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중현의 생각이었다.
2)
여기서 9품의 견혹이란 수혹을 상상품 내지 하하품의 9품으로 나누는 것처럼 견혹도 9품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보고 이같이 설한 것이다. 그러나 견혹은 3계 4부(고ㆍ집ㆍ멸ㆍ도)의 진리성의 인가[忍]와 인식[智]에 의해 단멸 이계된다. 즉 욕계 고법지인(苦法智忍)과 고법지(苦法智)에 의해 욕계 견고소단의 번뇌가, 고류지인(苦類智忍)과 고류지(苦類智)에 의해 상 2계의 견고소단의 번뇌가 단멸 이계되고, 나아가 도법지인(道法智忍)과 도법지(道法智)에 의해 욕계 견도소단의 번뇌가, 도류지인(道類智忍)과 도류지(道類智)에 의해 상 2계의 견도소단의 번뇌가 단멸 이계되어 도합 16찰나가 소요되지만, 거의 단박[頓]에 끊어지는 것이다.
3)
즉 본론 권제1 「분별계품」 첫머리(p.6ㆍ7ㆍ12)에서 설한 성도와 이계와 고ㆍ집과, 지금 설한 4제는 순서뿐만 아니라 그 자체의 의미도 다른 것인가 하는 물음.
4)
이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원인이 선행하고 결과가 뒤에 오기 때문에 고제는 집제 뒤에 설해야 할 것이고, 도제는 멸제 앞에 설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난문이다.
5)
염주란 3현위에서 5정심관 다음에 닦는 네 가지 관법으로(후술), 몸은 사대소조이기 때문에 청정하지 않은 것이며[身念住], 지각되어 알려진 소여의 생기는 반드시 소멸할 것이므로 괴로운 것이며[受念住], 소의ㆍ소연에 따라 끊임없이 부침하는 마음은 무상한 것이며[心念住], 그 밖의 모든 존재는 실체성이 없는 것이다[法念住]고 관찰하는 것. 이는 생겨나는 순서대로 설한 것이다.
6)
4정승(또는 正斷)이란 이미 생겨난 악을 끊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악을 생겨나지 않게 하며,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을 생겨나게 하고, 이미 생겨난 선을 증장시키는 것으로, 이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편의상의 순서이다. 즉 악이 선보다, 이미 생겨난 것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것보다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7)
『잡아함경』 권제15 제389경(대정장2, p.105상).
8)
여기서 ‘땅을 관하는 것’은 가행위(煖ㆍ頂ㆍ忍ㆍ世第一法의 4善根)에서의 4제의 관찰을 비유한 말이고, ‘말을 쫓아 치달려 가는 것’은 견도위에서의 4제 현관을 비유한 말이다.
9)
현관 16심(心)의 견도는 오로지 무루일 뿐이라고 앞의 본송에서 논설하였다.
10)
멸제란 택멸로서 무루의 무위이며, 도제는 유위이면서 무루이다. 즉 도제는 아직 열반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유위이지만 이미 번뇌를 떠나 있는 도정이기 때문에 무루인 것이다.
11)
이를테면 오로지 성자만이 이러한 4제에 대해 능히 성행(聖行)ㆍ성지(聖智)로써 진실되게 관찰할 수 있으며, 이생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성제라고 이름한 것이다.
12)
『잡아함경』 권제13 제308경(대정장2, p.88하), ‘현성(賢聖)이 괴로움이라고 여기는 것을 세간에서는 즐거움이라고 여기며, 세간에서의 괴로운 것은 성자에게는 즐거운 것이 된다.’
13)
보광에 의하면 여기서 유여사는 경부이다. 즉 경량부에서는 멸제ㆍ도제는 번뇌를 능히 끊는 성자만이 성취하고, 번뇌를 감출 뿐인 범부는 성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제이지만, 고제ㆍ집제는 범성(凡聖)이 모두 함께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제ㆍ비성제 모두에 통한다. 혹은 멸제ㆍ도제는 무루로서 성자만이 관찰하기 때문에 성제이나 고제ㆍ집제는 유루로서 범성이 다 같이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제ㆍ비성제 모두에 통한다고 하였다.(『구사론기』 권제22, 대정장41, p.333하)
14)
고ㆍ낙ㆍ불고불락(즉 捨)의 3수(受) 중 고수만이 괴로움 그 자체(즉 고제)이며, 낙ㆍ불고불락수의 경우 그 자체로서는 괴로움이 아니라는 뜻.
15)
고고성(duḥkha duḥkhatā)이란 그 자체가 괴로운 존재로서 바로 고수(苦受)를 말하고, 행고성(saṃskāra duḥkhatā)이란 무상[行]하기 때문에 괴로운 존재로서 사수(捨受)를 말하며, 괴고성(vipariṇāma duḥkhatā)이란 지금은 즐거운 것일지라도 마침내 괴멸하기 때문에 괴로운 존재로서 낙수(樂受)를 말한다.
16)
낙수 자체와 그것의 자구(資具)가 되는 유루행법을 ‘마음에 드는 것’이라고 한다.
17)
『중아함경』 권제58 「법락비구니경(法樂比丘尼經)」(대정장1, p.789하). 여기서는 3수의 구역어인 낙각(樂覺)ㆍ고각(苦覺)ㆍ불고불락각(不苦不樂覺)으로 설하고 있다.
18)
『잡아함경』 권제17 제474경(대정장2, p.121상), ‘我以一切行無常故, 一切行變異法故, 說諸所有受悉皆是苦…….’
19)
일체의 유루행법은 모두 찰나에 생멸하는 법이기 때문에 행고성(行苦性) 아닌 것이 없지만, 가의(可意)의 유루행법을 괴고성이라 하고 불가의(不可意)의 유루행법을 고고성이라고 하는 것은 별도의 갈래[別門]에 따른 설명이라는 뜻.
20)
보광에 의하면 이는 경부사 구마라다(鳩摩羅多, Kūmaralāta)의 게송이다.
21)
이는 즉 행고의 유위는 다만 괴로운 것이고 소멸되어야 할 것으로 관찰되기 때문에, 성도는 비록 유위이지만 행고성에 포섭되지 않는다고 하는 경증이다. 즉 ‘도’는 무루이기 때문에 그 같은 행고성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다.
22)
『대비바사론』 권제78(한글대장경121, p.62)에 의하면, 여기서 어떤 부류의 해석은 바로 유부 정설이다. “마땅히 이와 같이 설해야 할 것이니……예컨대 독이 든 병에 한 방울의 꿀을 떨어뜨린다 하더라도 적은 것은 많은 것에 따르기 때문에 다만 독병이라 이름할 뿐으로, 제온도 역시 그러하다.”
23)
이 역시 경부사 구마라다의 해석이다. 즉 유부에 의하면 고ㆍ낙ㆍ불고불락수는 각기 3고성과 부합하기 때문에 그것을 모두 고제하에 포섭시켰지만, 마치 색처의 자상인 청ㆍ황ㆍ적ㆍ백 등이 개별적으로 실재하듯이 그것들 각각은 ‘수’의 자상으로서 개별적 실재이다. 곧 유부의 대법사(對法師)는 낙수는 실재하지만(후술) 다만 그것이 괴고성과 부합하기 때문에 ‘고’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량부에 의하면 낙수는 실재하지 않으며, 세간의 일체 즐거움은 다만 괴로움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고’일 뿐이다. 이 같은 고인론(苦因論)은 이후에 논설하게 될 낙수부정론 즉 무락론(無樂論)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24)
‘항상하지 않는 것’이라고 함은 무위의 열반과는 구별된다는 말이며, ‘성자의 마음에 위배된다’고 함은 무루의 성도와 구별된다는 말이다.
25)
즉 색 그 자체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라고 하듯이, 낙수 또한 그 자체로서는 고수(예컨대 복통)와 다르지만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즉 行苦)이라는 뜻.
26)
상 2계에는 고수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색계ㆍ무색계의 온을 반연하여 괴롭다는 생각을 일으킬 것인가 하는 힐난.
27)
이 유여부에 대해 보광은 경부 대중부 등으로, 법보는 경부의 이사(異師)로, 칭우는 대덕(大德, Bhadhanta) 실리라다(室利羅多, Śrilāta)로 평석하고 있는데, 이 같은 낙수비실재론은 앞의 구마라다의 설을 발전시킨 것이다.
28)
『잡아함경』 권제17 제474경(대정장2, p.121상), “一切諸行變異法故, 說諸所有受悉皆是苦.”
29)
위의란 행(行)ㆍ주(住)ㆍ좌(坐)ㆍ와(臥)의 일상의 행동거지로서, 예컨대 오래 서 있던 자가 앉으면 당장은 즐겁지만 그것도 결국은 역시 괴로움이다.
30)
핍박은 그것이 해소된 상태인 기쁨을 예상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31)
『잡아함경』 권제17 제473경(대정장2, p.121상), “제행은 무상하며, 변이하는 법임을 아시기에 ‘수’는 모두 괴로움이라 설하신 것이니, 이는 바로 정각의 앎이로다(知諸行無常 皆是變易法 故說受悉苦 正覺之所知).” 이는 곧 낙수의 자상이 괴로움이라면 굳이 그 이유를 설할 필요가 없었을 것으로, 낙수의 자상은 즐거움이지만 무상 변이법이기 때문에 괴로움이라고 설하게 되었다는 뜻의 경증이다.
32)
즉 이미 일체의 수는 괴로운 것이라는 말을 밀의(密意)로서 한 이상 언설로서 드러난 3수설을 세속에 따른 것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
33)
여기서 5수근이란 우(憂)ㆍ희(喜)ㆍ고(苦)ㆍ낙(樂)ㆍ사수(捨受)를 말하며, 3결이란 유신(有身)ㆍ계금취ㆍ의견(疑見)을 말한다. 즉 낙ㆍ희근의 낙수가 실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같이 설할 까닭이 없다는 경증이다.
34)
즉 하품의 고에서 낙각(樂覺, 즉 낙수)을 일으키고, 상품의 고에서 고각(苦覺)을 일으키며, 중품의 고에서 사각(捨覺)을 일으킨다고 할 경우, ‘낙’에도 역시 세 가지가 있을 수 있으므로 하품의 고에서 상품의 낙각을, 상품의 고에서 하품의 낙각을, 중품의 고에서 중품의 낙각을 일으킨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힐난.
35)
즉 하품의 고수에서 낙수를, 중품의 고수에서 사수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낙수가 일어날 때에는 분명하고 맹리하기 때문에 능히 알 수 있지만, 중품의 고수인 사수가 일어날 때에는 미열(微劣)하여 능히 알 수 없다. 그럴 경우 중품의 수가 하품의 수보다 미열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지만 어찌 중품이 하품보다 미열할 것인가? 따라서 이와 같은 논의는 이치에 맞는 것[應理]이라고 할 수 없다.
36)
『잡아함경』 권제3 제81경(대정장2, p.21상).
37)
무락논자(無樂論者)는 의복이나 음식 등은 괴로움의 원인도 되기 때문에 즐거움의 원인은 결정적이지 않다고 하였지만, 추위나 허기 등 소의신이 처한 상태도 즐거움의 한 조건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조건에 근거할 경우 즐거움의 원인은 결정적인 것이라는 뜻.
38)
그러나 색계 이상에는 고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세 정려는 아래 세 정려. 제4정려에는 사수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39)
즉 어떤 괴로움에 핍박되는 바가 없이 오로지 직접적으로 수승한 향ㆍ미 등을 수용함에 따라 즐거움이 생겨나는 경우에는 어떠한 괴로움이 대치되어 낙수가 일어났고 해야 할 것인가? 따라서 괴로움의 대치에 관계 없이 낙수는 실재한다는 것이다.
40)
만약 거친 괴로움[麤苦, 즉 앞에서 언급한 하품의 괴로움]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향ㆍ미 등에서 생겨난 좀더 덜 거친 미세한 괴로움[微細苦, 즉 상품의 괴로움]이 대치하며, 세상 사람들은 다만 이 같은 미세한 괴로움을 즐거움이라고 생각할 뿐이기 때문에 낙수는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같은 미세한 괴로움이 소멸하여 더 이상 생겨나지 않는 상태에서는 마땅히 지극한 즐거움이라고 해야 할 것인데, 그 때는 무엇이 대치되어 즐거움이 생겨났다고 해야 할 것인가? 따라서 오로지 향ㆍ미 등을 수용하여 괴로움을 대치할 때만 즐거움이 생겨나는 것은 아닌 것이다.
41)
어깨를 바꾸어 멜 때의 즐거움이 괴로움(즉 상품의 괴로움)에 근거한 상대적 소극적 즐거움(즉 하품의 괴로움)이라고 한다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차 괴로움은 감소하고 즐거움은 증가해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따라서 그 때의 즐거움은 그 자체로서 실재하는 적극적 즐거움이라는 뜻.
42)
오래 서 있다가 앉으면 즐겁지만 그것도 오래 지속되면 괴로운데, 앉을 때의 즐거움이 상대적 즐거움이 아니라 절대적 즐거움이라고 한다면, 다시 말해 그 같은 즐거움은 괴로움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면 오래 앉아 있을 때의 괴로움은 어디서 생겨난 것인가 하는 난문.
43)
『중아함경』 권제7 「분별성제품」(대정장1, p.468중하), “제현(諸賢)이여, 무엇을 애습고습성제(愛習苦習聖諦)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중생에게는 실로 애(愛)의 내6처가 있으니,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처가 그것으로, 이에 대해 애호함이 있고 더러움[膩]이 있고 물듦이 있고 집착함이 있으면 이것을 ‘습’이라 한다. 제현이여,……이것을 애습고습성제라고 한다.”
44)
『잡아함경』 권제13 제307경(대정장2, p.88중), “……이러한 것(중생ㆍ나라ㆍ마나바 등의 관념)들은 모두 고음(苦陰)에 의해 생겨난 것, 온갖 업과 애와 무명이 원인이 되어 타세(他世)의 음(陰)을 쌓는도다.”
45)
『잡아함경』 권제2 제39경(대정장2, p.8하-p.9상), “다섯 가지 종자가 있으니, 무엇이 다섯인가? 이를테면 뿌리[根] 종자와 줄기[莖] 종자와 마디[節] 종자와 저절로 떨어지는[自落] 종자와 열매[實] 종자가 바로 그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는, 종자는 취음(取陰)과 구유하는 식(識)을 비유한 것이고, 지계(地界)는 4식주(識住)에 비유한 것이며, 수계(水界)는 탐(貪)과 희(喜)에 비유한 것이다.” 본론에서의 ‘유취의 식’이란 유루의 식온을 말한다.
46)
상동. 이는, 색ㆍ수ㆍ상ㆍ행은 식이 머무는 근거[因]가 되듯이(4식주, 본론 권제8 참조), 종자가 싹의 원인이 되듯이, 업과 애와 무명 등은 원인으로서 바로 집제이지만, 난문자가 인용한 계경은 다만 밀의로서 ‘애’만을 설하여 집제라 하였다는 경증이다.
47)
『잡아함경』 권제13 제334경(대정장2, p.92중), “이것은 이른바 유인유연유박(有因有緣有縛)의 법에 관한 경이니, 무엇을 일컬어 유인유연유박의 법에 관한 경이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안근이 유인유연유박의 법이다. 무엇이 안근을 인으로 하고, 안근을 연과 박으로 삼는 것인가? 이를테면 안근은 업의 인이 되고, 업의 연이 되며, 업의 박이 된다. 무엇이 업을 인으로 하고, 업을 연으로 하며, 업을 박으로 삼는 것인가? 이를테면 업은 애의 인이 되고, 애의 연이 되며, 애의 박이 된다. 무엇이 애를 인으로 하고, 애를 연으로 하며, 애를 박으로 삼는 것인가? 이를테면 애는 무명의 인이 되고, 무명의 연이 되며, 무명의 박이 된다.……”
48)
앞의 경에 따를 경우, 본론에서의 실마리[緖]는 아마도 박(縛)의 오사(誤寫)일 것이다.
49)
즉 어떤 존재가 욕계 인취(人趣)의 태생(胎生)으로 출현하는 것을 ‘생겨나는 것’이라고 하며, 인취로서 찰나찰나 상속 생기하는 것을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50)
어떤 사물의 내용이 파괴됨으로서 그것에 대한 지각이 상실되는 법을 세속제(saṃvṛti-satya)라고 한다. 예컨대 숲을 구성하는 개별적인 나무가 파괴되어 제거되면, 숲이라는 지각도 상실된다.
51)
어떤 화합된 적취물은 파괴되어 다수가 되었을지라도 그것에 대한 지각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 예컨대 물 따위와 같은 존재가 바로 그러하다. 물을 분할하면 감각적으로 역시 물이지만, 그것을 혜(즉 판단력)로 더욱 분석하면 색ㆍ향ㆍ미ㆍ촉 등의 요소로 환원되고, 거기에는 더 이상 물이라고 하는 관념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즉 물이라고 하는 것은 색ㆍ향ㆍ미ㆍ촉의 화합물로서 일시 설정된 언설 관념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세간의 언어적 약속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정당하고 거짓이 아니기 때문에 세속제이다.(후술)
52)
색 등의 법은 뛰어난 혜에 의해 극미로 분석될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색이기 때문에 색 등의 법은 궁극적인 승의의 법이다.
53)
수(受)ㆍ상(想) 등은 공간을 점유하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쪼개져 극미에 이르게 할 수는 없지만 뛰어난 혜로써 분석하여 일찰나의 그것에 이르게 할 수는 있으며, 그렇더라고 그 같은 수 등에 대한 지각은 여전히 존재한다.
54)
다시 말해 일체의 시간에 걸쳐 그 본질[體]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승의(paramārtha)라고 이름한 것이다.(『현종론』 권제29, 한글대장경201, p. 272)
55)
여기서 선대 궤범사는 보광에 의하면 경부(經部) 중의 선대 궤범사이며, 법보에 의하면 경부 이사(異師)이다. 즉 제법분별을 교학의 일차적 과제로 삼는 유부에 있어 승의제란 두말할 것도 없이 더 이상 분석 환원될 수 없는 존재의 구성요소인 법[勝義有]에 대한 것이지만, 이 같은 유부의 승의유에 반대하는 경량부에서는 다만 무루정에 의해 획득된 지식 즉 무루관지(無漏觀智)와 출정(出定) 후에 획득된 세간정지(世間正智)에 의해 인식된 제법을 승의제라고 하였다. 즉 정지(正智)에 의해 파악된 제법은 전도된 것이 아니므로 승의제이며, 비(非)정지에 의해 파악된 것은 진실하지 않기 때문에 세속제라고 하여(『구사론소』) 승의ㆍ세속에 특정의 교학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56)
『대비바사론』 권제42(한글대장경119, p.397) 참조. 즉 세 가지 혜라고 하는 것은 말[名, nāma]과 뜻[義, artha]에 따른 이해 판단력의 차별로 말미암아 분류된 것으로, 문소성혜는 다만 말만을 대상으로 하여 생겨난 것이며, 사소성혜는 말과 뜻을 대상으로 삼아 어느 때는 말을 통해 뜻을 추구하고, 혹은 뜻을 통해 말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수소성혜는 오로지 뜻만을 대상으로 하여 획득된 판단력이다. 이는 마치 물에 빠진 이가 수영하는 법을 알지 못하면 부목(浮木)에 의지해야 하고, 일찍이 배웠더라도 익숙하지 못하면 그것을 버리기도 하고 혹은 의지하기도 하지만, 완전히 배운 이는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자력으로 건너가는 것과 같다.(후술)
57)
『현종론』에서는 서로 뒤섞여 머무는 것에서 떠나는 것을 나쁜 친구[惡友]를 멀리하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권제29, 앞의 책, p.278) 그리고 ‘심(尋)’은 부정지법의 하나로서, 마음으로 하여금 뭔가 감각적 대상을 추구하게 하는 보다 거친 의식작용, 즉 전5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의식작용을 말한다.
58)
“즉 온갖 유정으로서 생을 자조(資助)하는 도구들을 많이 추구하는 자들은 낮에는 나쁜 패거리들과 가까이하고, 밤에는 산란한 생각[尋思]을 일으키니, 이로 말미암아 마음은 선정을 획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현종론』, 앞의 책, p.279)
59)
4성종(ārya vaṃśa)이란, 의복희족성종ㆍ음식희족성종ㆍ와구(臥具)희족성종ㆍ요단수(樂斷修).(후술)
60)
요단수란 번뇌를 끊을 성도를 닦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이러한 능(能)대치가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 역시 무탐을 본질로 하는 것이다.
61)
『중아함경』 권제21 「설처경(說處經)」(대정장1, p.563중하), “……아난이여, ……만약 이러한 4성종을, 젊은 비구들을 위해 그들에게 가르친다면, 그들은 곧 안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을 것이며, 몸과 마음이 번민하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하게 될 것이다.”
62)
여기서 계경이란 『대집법문경(大集法門經)』(대정장1, p.229하)으로, 의복애ㆍ음식애ㆍ와구애ㆍ무유애(無有愛, 비존재에 대한 애착)에 대해 설하고 있다.
63)
신기가 청정하게 되었으면 이제 바야흐로 견도의 본격적인 준비단계, 즉 가행위에 들어갈 수 있다. 가행위에는 3현위(賢位)와 4선근(善根)의 일곱 가지 방편도가 있다. 3현위는 아직 깨달음 밖의 단계이기 때문에 성자와 구별하여 ‘현위’ 혹은 외범위(外凡位)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는 5정심관(停心觀)과 별상염주와 총상염주 세 가지가 있다.
64)
즉 수소성혜의 ‘수’에 들기 위해서는 신기(身器)를 청정히 한 다음, 먼저 부정관(不淨觀)ㆍ자비관(慈悲觀)ㆍ인연관(因緣觀)ㆍ계분별관(界分別觀)ㆍ지식념(持息念, 또한 數息觀)의 5정심관을 닦아야 하지만, 세친은 이 중에서 정심위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문[要門]으로 부정관과 지식념만을 언급하고 있다. 참고로 부정관은 자타의 백골을 관찰하여 탐욕심을 정지시키는 관법이고, 자비관은 일체의 중생을 자신의 부모같이 경애상(敬愛想)으로 관하여 진에심을 정지시키는 관법, 연기관은 12연기의 이치를 관하여 우치심을 정지시키는 관법, 계분별관은 자아란 지ㆍ수ㆍ화ㆍ풍ㆍ공ㆍ식의 6계가 인연에 의해 일시 화합한 것일 뿐이라고 관하여 아ㆍ아소에 대한 악견을 정지시키는 관법, 수식관은 들숨과 날숨을 헤아림으로써 산란심을 정지시키는 관법이다.
65)
즉 부정관(aśubha-bhāvanā)이 소의신의 형색과 현색 등의 차별을 관하는 것인 반면 지식념(ānāpāna-smṛti)은 다만 호흡을 대상으로 하는 관법이기 때문이다.
66)
현색탐(구역은 色欲)은 청ㆍ황ㆍ적ㆍ백 등의 색상에 대한 탐욕, 형색탐(또는 形貌欲)은 용모에 대한 탐욕, 묘촉탐(또는 觸欲)은 신체상의 좋은 감촉에 대한 탐욕, 공봉탐(또는 威儀欲)은 표업에 따라 일어나는 탐욕으로, 말하자면 행동거지나 신분ㆍ지위에 대한 탐욕이다. 즉 이러한 네 가지 탐을 대치하기 위해 내부의 시체[內屍, 자신의 시체, 이근자의 경우]와 외부의 시체(둔근자의 경우)를 관찰하는 것이 부정관이다.
67)
『현종론』 권제29(앞의 책, p.287)에서는 다음과 같이 논설하고 있다. “현색탐을 대치하기 위해서는 청어상(靑瘀想)과 이적상(異赤想)을 닦아야 하며, 형색탐을 대치하기 위해서는 피식상(被食想)과 분리상(分離想)을 닦아야 하며, 묘촉탐을 대치하기 위해서는 파괴상(破壞想)과 해골상(骸骨想)을 닦아야 하며, 공양탐을 대치하기 위해서는 방창상(膖脹想)과 농란상(膿欄想)을 닦아야 한다.” 여기서 ‘청어상’이란 아무리 미인이라 하더라도 죽으면 피고름이 엉켜 푸르죽죽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이적’이란 본래의 색과는 달리 불그죽죽하게 된 것을 말하며, ‘피식’이란 짐승이나 조류 혹은 구더기에게 뜯어먹히는 것, ‘분리’란 사지의 뼈마디가 떨어져 나가는 것, ‘방창’이란 시체가 팅팅 부어 가죽자루처럼 되는 것, ‘농란’이란 고름이 흐르며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말한다.
68)
제1구:어떤 부정관은 소연은 적지만 자재는 적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작의가 이미 성숙한 상태에서 자신의 골쇄만을 관찰하는 때가 그러하다. 제2구:어떤 부정관은 자재는 적지만 소연은 적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작의가 아직 성숙하지 않은 상태(이 때 자재는 적다)에서 소연의 골쇄가 바다에 이르기까지 충만한 것을 관찰하는 때가 그러하다. 제3구:어떤 부정관은 소연과 자재가 모두 적은 경우가 있으니, 작의가 아직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골쇄만을 관찰하는 때가 그러하다. 제4구:어떤 부정관은 소연과 자재가 모두 적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작의가 이미 성숙한 상태에서 골쇄가 바다에 이르기까지 충만한 것을 관찰하는 때가 그러하다.
69)
부정관은 탐욕을 거역하려는 작의[違逆作意]에 의해 인기된 것으로, 탐욕을 능히 직접적으로 대치하기 때문이다. 즉 탐욕은 청정상이라 생각함으로써 일어나는 것으로, 그러한 생각은 이 같은 관법에 의해 제거되기 때문이다.
70)
즉 무색계에는 색법이 존재하지 않아 그것을 소연으로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여기에 무색정을 제외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의 9지에서 일어난 부정관은 정심(定心)이지만, 오로지 욕계로부터 일어난 부정관만은 산심(散心)이다.
71)
부정관이 욕계 색처, 즉 현ㆍ형색을 소연으로 삼는다고 한 이상 말[名, 불상응행법의 하나]과 뜻[義] 중에서 말은 소연의 경계로 삼지 않을지라도 말의 내용이 되는 뜻은 그것의 소연이 된다는 것 역시 자명한 사실이라는 뜻.
72)
북구로주에는 천취와 마찬가지로 푸르죽죽한 어혈[靑瘀] 등의 부정상이 없기 때문이다.
73)
즉 연이 결여되어 생겨나지 않은 필경불생법으로서의 부정관일 경우, 그 대상은 3세에 걸친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74)
즉 부정관은 가상(假想)으로써 부정이라 관하는 유루의 승해작의에 포섭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실지견하는 견도 16행상의 부정[共相作意]과는 달리 오로지 유루일 뿐이다.
75)
일찍이 획득한[曾得] 부정관은 이염득으로서 하지의 염오를 떠나는 단계에서 상지의 부정관을 획득하며, 일찍이 획득한 일이 없는[未得] 부정관은 가행득으로서 대가행을 일으켜 그 힘에 의해 낳아진다.
76)
『잡아함경』 권제29 제802경, 제803경(대정장2, p.206상), “세존께서 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마땅히 안나반나념(安那般那念)을 닦아야 할 것이니, 만약 안나반나념을 수습하기를 많이 수습할 경우, 몸이 지식(止息)되고 마음이 지식되며, 유각유관(有覺有觀, 즉 有尋有伺)이 적멸 순일하여 분명한 상(想)을 수습됨에 만족하게 되리라’고 하셨다.”
77)
이러한 들이쉬고 내쉬는 숨(入ㆍ出息)을 관찰하는 것은 혜(慧)이지만(후술), 염(念) 심소의 도움으로 관찰하기 때문에 ‘지식념’이라고 하는 것이다.
78)
지식념의 자성이 혜(慧)임에도 (지식)‘념’이라고 한 것은, ‘염(smṛti)’의 힘으로 말미암아 들숨과 날숨의 양을 기억하여 지니기 때문이다. 즉 숨을 소연으로 하는 정혜(定慧)의 획득 성취는 염의 공능에 의한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 그것을 ‘염’이라고 설한 것으로, 이는 마치 역시 혜를 본질로 하지만 그러한 혜가 염의 힘에 의해 대상에 머물기 때문에 ‘염주’라고 하는 것과 같다.(4념주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23, p.1033 참조)
79)
지식념은 이 같은 5지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이러한 염은 사수(捨受)와 상응할 뿐이기 때문에(왜냐 하면 욕계의 고수ㆍ낙수는 尋을 인기하고, 색계의 희수ㆍ낙수는 專注에 위배되지만, 이러한 지식념은 ‘심’을 대치하고 경계에 전주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욕계 고ㆍ낙수와도, 색계 희ㆍ낙수와도 상응 구기하지 않는 것이다) 앞의 세 가지 근본정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제4정려 이상에는 비록 사수만이 존재할지라도 숨[息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80)
그러나 다만 숨쉬는 바람[息風]을 소연의 경계로 삼을 뿐, 말을 인기하려는 마음에 의해 일어나는 발어풍(發語風), 고수를 제거하려고 할 때 이는 제기풍(除棄風), 모공에 따라 일어나는 수전풍(隨轉風), 몸을 격동시켜 표업을 일으키는 동신풍(動身風)을 소연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현종론』 권제29, 앞의 책, p.295)
81)
그러나 중현에 의하면 지식념은 오로지 가행에 의해서만 획득된다. 왜냐 하면 이것은 아직 염오를 떠나지 않은 자의 선정으로, 가행에 의해 현재전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는 다만 근분지에 포섭될 뿐 근본정려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라고 이미 설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위의 책)
82)
또한 그들 외도에게는 아집(자아에 대한 집착)이 있기 때문에 아집과는 상반되는 이 같은 지식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앞의 책)
83)
참고로 숨을 헤아릴 때에는 들숨부터 먼저 헤아려야 하는데, 그것은 생을 처음 시작하는 단계[初生位]에서는 먼저 들숨을 쉬고, 나아가 죽을 때에는 최후로 날숨을 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죽고 태어나는 상태를 각찰(覺察)하기 때문에 점차로 비상(非常)의 상(想, 다음에 설할 총상념주의 하나)을 능히 수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84)
여기서 1책(vitasti)이란 손을 폈을 때 엄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의 길이를 말하며, 1심(혹은 弓)은 여덟 자 혹은 열 자의 한 길을 말한다. ‘심’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12 주6) 참조.
85)
풍륜은 세간의 하방의 극점이며, 폐람바(vairambha, 구역에서는 鞞嵐婆風)는 해와 달을 운행하는 바람으로 상방의 극점이다.
86)
지식념의 근거로서 이 같은 ‘전’과 ‘정’을 설한 것은, 그것이 다음에 설할 4선근과 견도의 방편(가행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으로, 유부교학 상에서 볼 때 지식념 그 자체로서는 의미 있는 수행도가 아니다.
87)
즉 숨은 그것의 근거가 되는 몸이 있어야 하고, 바람의 길[風道, 이를테면 코나 입]을 통하여야 하고, 모공이 열려야 하고, 들숨ㆍ날숨과 동일한 지의 거친 마음이 현전할 때 비로소 일어나는 것으로, 이러한 네 가지 인연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결여될 경우 일어나지 않게 된다.(『대비바사론』 권제26, 한글대장경119, p.10) 따라서 무색계에는 이러한 네 가지 인연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갈랄람 등에서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인연이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무심정 등에서는 네 번째 인연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숨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88)
즉 감각이 없는 무정수의 몸에는 숨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이는 비록 숨이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라 할지라도 내부에 계속(繫屬)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89)
반대로 몸이 쇠퇴, 소멸할 때에는 숨이 증장하기(가빠지기) 때문에 소장양이 아니다.
90)
여기서 등류성이란 원인과 동류의 성질을 지닌 결과, 즉 등류과를 말하고, 소장양은 이를테면 음식 등에 의해 장양되는 후천적 결과를, 이숙생이란 전생의 업에 의해 초래되는 선천적 결과를 말한다.
91)
이를테면 제2선에 태어나 초선심을 일으키는 것이 위의심ㆍ통과심인데, 위의심은 차기식(借起識)으로, 오로지 초선의 색ㆍ성ㆍ촉을 소연으로 삼아도 식심(息心)을 소연으로 삼지 않는다. 또한 통과심은 천안통의 경우 색ㆍ성을, 변화심의 경우 색ㆍ성ㆍ미ㆍ촉을 연으로 삼아도 식심을 소연으로 삼는 일은 없다.
아비달마구사론 제23권
1)
부정관과 지식념에 의해 욕탐의 마음과 산란된 마음이 억지[止, 혹은 奢摩他, śamatha]되었으므로,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몸[身]과 감각[受]과 마음[心]과 그 밖의 제법[法]에 대한 보편적인 상[共相]과 개별적인 상[自相]을 관찰[觀, 혹은 毘鉢舍那, vipayan]해야 하는데, 이 같은 마음의 억지와 관찰은 해탈의 자량이 되기 때문에 ‘순해탈분’이라고 한다.
2)
자상(svalakṣaṇa)이란 독자상 혹은 개별상으로, 일체 현상의 조건이 되는 신(身)ㆍ수(受)ㆍ심(心)ㆍ법(法)의 자성을 순서대로 염(染)ㆍ고(苦)ㆍ무상(無常)ㆍ비아(非我)로 관하는 것을 ‘자상으로써 관하는 것’이라고 하며, 공상(sāmānya lakṣaṇa)이란 보편상으로, 현상의 모든 존재를 비상ㆍ고ㆍ공ㆍ무아로 관하는 것을 ‘공상으로써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3)
‘수’의 자성은 촉에 따라 영납(領納)하는 6수신(受身)이며, 마음의 자성은 6식신(識身), 법의 자성은 앞의 3법을 제외한 그 밖의 제법으로, 이를테면 색ㆍ수ㆍ식온을 제외한 상온과 행온 그리고 3무위법을 말한다.
4)
이를테면 몸의 자성인 대종과 5근ㆍ5경을 공간적으로 1극미에 이를 때까지 분석하고,
5)
자성염주의 본질은 문ㆍ사ㆍ수소성의 세 가지 혜로서, 4념주는 각기 이러한 혜를 본질로 하여 성립하기 때문에 역시 세 가지 종류로 분류된다. 상잡염주란 혜와 상응ㆍ구유하는 심ㆍ심소법과 득(得)과 4상을 말하며, 소연염주란 혜에 의해 관찰되는 몸ㆍ수ㆍ마음ㆍ법 등을 말한다. 즉 염주는 그것을 소연으로 하여 성립하였기 때문이다.
6)
『잡아함경』 권제24(대정장2, p.171상, p.상), “이른바 4념처가 있으니, 무엇을 네 가지라고 한 것인가? 몸을 몸이라고 관하는 염처이며, 지각을 지각으로, 마음을 마음으로, 법을 법으로 관하는 염처가 바로 그것이다.” 『중아함경』 권제24 「염처품」(대정장1, p.528) 참조.
7)
염주의 본질이 혜라면 왜 ‘혜주(慧住)’라고 이름하지 않고 ‘염주(念住)’라고 이름한 것인가 하면, ‘염’이 증대하여 그 힘에 의해 혜가 소연에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주 세친은 이와 반대로 염은 혜에 의해 관찰된 것만을 능히 명기(明記)하는 것으로, 혜의 힘이 ‘염’을 소연의 경계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염주’라고 이름한 것이라고 하였다.(후술)
8)
『잡아함경』 권제19 제535경(대정장2, p.139중). 여기서 무멸은 존자 아나율(阿那律, Aniruddha). “무엇을 일러 4념처를 즐기는 것이라고 하는가? 존자 대목건련이시여! 만약 어떤 비구가 몸을 몸으로 관하는 염처[身身觀念處]에서 마음이 몸을 소연으로 삼아 정념(正念)으로 머물어 조복받고 지식(止息) 적정(寂靜)하여 한 마음이 증진(增進)하면, 이와 마찬가지로 수ㆍ심ㆍ법념처에서 정념으로 머물어 조복받고 지식 적정하여 한 마음이 증진하면 이를 4념처를 즐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본론의 뜻은 혜의 심소가 순신관에 의해 몸을 관찰할 때 동시에 염의 심소가 혜의 심소가 관찰한 바를 기억하여 그 소연(즉 몸)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이다.
9)
『잡아함경』 권제11 제281경(대정장2, p.77하), “어떻게 4념처를 닦아 7각분의 원만함을 획득하는 것인가? 목건련 비구는 이와 같이 몸에 따라 신관(身觀)에 머무니, 그는 몸에 따라 신관에 머물 때 기억[念]을 모아 안주하여 결코 잊지 않았다.(云何修四念處得七覺分滿足? 目揵連比丘如是順身身觀住, 彼順身身觀住時 攝念安住不忘.)”
10)
『잡아함경』 권제24 제609경(대정장2, p.171상). 즉 음식에 의해 몸이 생겨나고, 촉에 의해 수가, 명색에 의해 마음이, 작의에 의해 법이 생겨난다. 따라서 음식이 멸하면 몸이 멸하고, 내지 작의가 멸하면 법이 멸한다.
11)
4념주 각각의 명칭은 소연에 따른 것으로, 이를테면 몸을 소연으로 하는 염주를 신념주라고 하며, 여기에는 다시 자신의 몸을 소연으로 하는 자신염주(自身念住)와 다른 이의 몸을 소연으로 하는 타신염주(他身念住)와 양자 모두를 소연으로 하는 공신염주(共身念住)가 있는 것이다.
12)
신념주는 몸을 부정한 것으로 관찰하여 그것이 청정[淨]하다는 전도를 대치하며, 수념주는 감각을 괴로운 것으로 관찰하여 그것이 즐겁다[樂]는 전도를 대치하며, 심념주는 마음을 무상한 것으로 관찰하여 그것이 영원하다[常]는 전도를 대치하며, 법념주는 제법을 무아라고 관찰하여 그것이 자아[我]라는 전도를 대치한다.
13)
여기서 잡연이란 신ㆍ수ㆍ심ㆍ법의 네 가지를 관찰함에 있어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네 가지를 함께 관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말하며, 부잡연이란 오로지 한 가지만을 관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14)
즉 부정관과 지식념의 두 가지 가행을 완전히 닦고 나서 소연이 섞여 있지 않은[不雜] 신ㆍ수ㆍ심ㆍ법의 염주를 각기 차례로 일으키며, 다시 소연이 섞여 있지 않은 법념주와 무간에 소연이 섞여 있는 잡연의 법념주를 닦은 다음에는 그 모두를 소연으로 하는, 다시 말해 총연(總緣)을 대상으로 하는 공상(共相)의 법념주를 닦아야 하는데, 이를 총상염주(總相念住)라고 한다.
15)
이상의 부정관과 지식념, 4념주, 그리고 총상염주를 3현위(賢位, 현자의 세단계), 또는 외범위(外凡位, 깨달음 밖의 단계), 또는 순해탈분(順解脫分, 해탈에 수순하는 단계)이라고 하는데, 이 같은 과정을 『대비바사론』 권제188(한글대장경125, p.290-291)에 의거하여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정관ㆍ지식념(염주의 가행)……자상(또는 別相, 즉 不雜緣)염주 중의 신ㆍ수ㆍ심ㆍ법념주……잡연(雜緣)의 법념주……3의관(義觀)ㆍ7처선(處善)……총상염주의 가행(즉 고ㆍ집ㆍ도제의 4상을 소연으로 하는 문소성의 신념주……이와 무간에 3제의 각 4상을 소연으로 하는 문소성의 수ㆍ심념주……이와 무간에 4제의 4상을 소연으로 하는 문소성의 법념주……이와 무간의 문소성과 동일한 형식의 사소성의 신ㆍ수ㆍ심ㆍ법념주)……고제의 4상을 소연으로 하는 수소성의 법념주(總緣 共相의 법념주). 이 같은 법념주의 최후 상상품에서 마침내 순결택분(順決擇分)으로 일컬어지는 4선근(善根)의 첫 번째 단계인 난위(煖位)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3의관은 온ㆍ처ㆍ계의 뜻을 관찰하는 것. 7처선이란 색 등의 온은 고(苦)이고, 집ㆍ멸ㆍ도ㆍ애미(愛味)ㆍ과환(過患)ㆍ출리(出離)라고 관찰하는 것. 여기서 앞의 네 가지는 4제를 관찰하는 것이며, 뒤의 세 가지는 색의 집ㆍ고ㆍ멸제를 거듭하여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3의관과 7처선은 4념주를 관찰하고 나서 총상염주의 가행으로서 닦아야 한다.
16)
모든 대상의 공상(共相, 즉 비상ㆍ고ㆍ공ㆍ비아)을 소연으로 하는 법념주를 수습함에 있어 처음의 하하품으로부터 점차 상상품으로 승진하여 관지(觀智)가 차례로 성숙하면, 그러한 상상품 염주의 다음 찰나에 순결택분의 첫 번째 단계인 ‘난법(uṣmagata)’이라는 선근이 생겨난다. 이는 마치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킬 때 먼저 따뜻함이 생겨나듯이 성도의 불길이 일어나기 전의 따뜻한 상태이기 때문에 ‘난법’이라고 이름한 것이다.(후술)
17)
5취온 등의 현행의 결과[苦果, 즉 고제]는 인연생기하였으므로 영속적인 것이 아니며[非常, anitya], 본질상 변괴 핍박하는 것이므로 괴로운 것[苦, duḥkha]이며, 실체성이 없는 것이므로 공(śūnyatā)이며, 나 혹은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아(anātmaka)이다.
18)
5취온 등의 현행의 원인[苦因, 즉 집제]은 언젠가는 발아할 씨앗처럼 당래 고과(苦果)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인(hetu, cause)’이며, 번뇌와 업이 동등하게 결합하여 생기하는 것이므로 ‘집(samudaya, arising)’이며, 씨앗에서 싹ㆍ줄기 등이 연속하여 생겨나듯이 끊임없이 3유의 과보를 상속하여 낳기 때문에 ‘생(prabhava, successive appearance)’이며, 진흙ㆍ물ㆍ막대ㆍ물레 등의 조건이 화합하여 항아리가 생기하듯이 고과의 두드러진 조건이 되기 때문에 ‘연(pratyaya, efficient condition)’이다.
19)
5취온 등의 소멸(즉 멸제)은 일체의 온갖 유루온의 상속이 다한 것이므로 ‘멸(nirodha, extinction)’이며, 탐ㆍ진ㆍ치의 3재(災)가 종식된 것이으므로 ‘정(śānta, calm)’이며, 어떠한 괴로움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므로 ‘묘(praṇīta, excellant)’이며, 모든 괴로움의 원인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리(niḥsaraṇa, salvation)’이다.
20)
5취온 등의 소멸을 획득하는 번뇌대치의 성도(즉 고멸도제)는 열반으로 가는 길이므로 ‘도(mārga, path)’이며, 정리(正理)에 계합하는 것이므로 ‘여(nyāya, truth)’이며, 올바른 열반의 획득으로 나아가는 것이므로 ‘행(pratipatti, obtaining)’이며, 현행의 고과를 영원히 초출(超出)하는 결정적인 방법이므로 ‘출(nairyāṇika, difinitive release)’이다.
21)
정법(mūrdhan) 또한 수소성의 순결택분으로서, 공상(共相)을 모두 소연으로 하는[總緣共相] 법념주의 또 다른 상태이다.
22)
정법은 동선근(動善根 즉 물러남이 있는 선근으로, 난ㆍ정의 두 선근을 말한다. 이에 반해 不動善根은 다음에 설할 忍法과 世第一法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있어도 뒤로 물러남이 없는 법이다) 중의 가장 뛰어난 것이기 때문에 ‘정법’이라 이름한 것으로, 세간에서 최고에 이르렀을 때 ‘정상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즉 정법은 난법과 마찬가지로 4제를 관찰하여 16행상을 닦는 것이지만, 난법보다 더욱 뛰어난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정법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23)
인가(kṣānti)란 사제의 이치를 인가 자증하는 것으로, 이는 난법에 비해 그 강도가 강할 뿐더러, 세제일법 역시 뛰어난 인가이지만 그것이 고제에 국한되는 것임에 반해 이것은 4제 전체에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4제이치의 인가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진리의 인가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인가(忍可)이다. 따라서 이 또한 수소성의 순결택분으로서, 공상(共相)을 모두 소연으로 하는[總緣共相] 법념주의 또 다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24)
이 같은 인법은 무루의 견도와 유사하기 때문으로, 견도위는 오로지 법념주일 뿐이다. 이에 반해 난ㆍ정법은 처음에는 법념주에서 출발하지만 증진위에 이르러 4념주를 갖추게 된다.
25)
앞에서 설한 난ㆍ정법 역시 두말할 것도 없이 욕ㆍ상계의 16행상, 즉 4제의 32행상을 소연으로 한다는 뜻.
26)
이는 문장상으로는 간단하지만, 그 뜻은 매우 복잡하여 고래로 감연감행(減緣減行)의 금두(金兜)라고 하여 『구사론』상의 가장 난해한 문제 중의 하나로 여겨졌다. 여기서 ‘소연’이란 욕계와 상 2계의 4제소단법 여덟 가지를 말하고, 행상이란 그러한 여덟 가지 소연 각각의 4행상 즉 32행상을 말하는데, 이러한 32행상으로써 상ㆍ하 8제를 관찰함에 있어 점차 줄여 관찰하는 단계를 ‘감연감행’의 중인(中忍)의 수행이라고 한다. 먼저 욕계 고제의 4상을 관찰하고, 상 2계 고제의 4상을 관찰하며, 나아가 욕계 도제의 4상을 관찰하고, 상 2계의 도제에 있어 마지막 ‘출’행상을 줄여 관찰하는 것을 제1회[周]의 감행이라고 한다. 이리하여 제4회의 감행(상계의 도제 4상을 줄여서 관찰하는 것)에 이르게 되면 1소연을 줄여(즉 ‘감연’) 관찰한다. 이리하여 욕계 도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3회 감행하고 제4회째 감연하며, 계속하여 마침내 31회에 이르러 남은 욕계 고제의 ‘비상’의 행상을 심려(審慮)와 결정(決定)의 두 마음(고법지인과 고법지의 상태와 같은 경우임)으로 관찰할 때를 중인이 원만하게 성취된 상태라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 『현종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의 하ㆍ중ㆍ상품은 어떻게 분별되는가? 바야흐로 하품의 인은 여덟 종류의 마음을 갖추고 있다. 이를테면 유가사는 네 가지 행상으로써 욕계의 고제를 관찰하는데, 이것을 일컬어 한 종류의 마음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관찰한 다음에 색ㆍ무색계의 고제를 관찰하고, 집ㆍ멸ㆍ도제에 대해서도 역시 이와 같이 관찰하여 여덟 종류의 마음을 성취하게 되니, 이것을 일컬어 하품의 인이 라고 한다. 그리고 중품의 인의 경우에는 행상과 소연을 감소시켜 나가니, 이를테면 유가사는 네 가지 행상으로써 욕계의 고제를 관찰하고, 나아가 네 가지 행상으로써 욕계의 도제를 관찰하고, 상계의 경우에는 하나의 행상을 감소시키는데(세 가지 행상으로써 상계의 도제를 관찰함), 이 때를 일컬어 중품의 인이 시작하는 때라고 한다. 이와 같은 순서로 행상과 소연을 점차 감소시켜, 마침내 최소한으로 오로지 두 찰나의 마음으로써 욕계의 고제를 관찰하게 되는데, 이를테면 고법지인과 고법지의 상태와 같은 이러한 단계를 일컬어 중품의 인이 원만하게 된 때라고 한다.”(한글대장경201, p.312-313)
27)
세제일법(laukikāgradharma)은 공상을 모두 소연으로 하는 법념주의 또 다른 형태로서, 성도의 문을 최초로 열며, 세간의 공덕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선근이자 순결택분에 포섭되는 최상의 선근이다. 그래서 세제일법(世第一法)이다.
28)
세제일법은 무간에 견도의 무루지를 인기하는 유루지로서, 그 같은 무루지의 동류인이 아니기 때문에 ‘동류인을 떠난 것’이라고 하였으며, 그럼에도 무루지는 세제일법에 의해 인기되기 때문에 ‘사용의 힘으로써’라고 말한 것이다.
29)
즉 4선근은 모두 반드시 수전색(隨轉色)과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30)
이는 본송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4선근의 행수(行修)와 득수(得修)를 밝힌 것으로, 여기서 ‘행수’란 현재 실제로 수행하는 것이며, ‘득수’란 그러한 현재의 수행력에 의해 획득하게 되는 미래의 수행을 말한다. 먼저 3제를 소연으로 하여 현재 닦는 법념주의 수행력은 미래 4념주를 인발하는 힘으로 장양되기 때문에 미래의 득수는 4념주 전체에 미치게 된다. 또한 현재 닦는 한 행상에 의해 미래 4행상만을 득수할 뿐 16행상 전체에 미치지 않는 까닭은, 이 단계에서 처음으로 4제를 관찰하였으므로 관지(觀智)가 아직 약해 동분(自界 自諦의 행상) 이상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31)
난법에 처음으로 안족할 때 오로지 동분만을 닦는 것은 일찍이 이와 같은 종성을 아직 획득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모든 제(諦)로 수행이 확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진위(增進位)에서는 이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그것이 동분이든, 동분과는 다른 것이든 모두 닦게 되는 것이다.(『현종론』, 앞의 책, p.314)
32)
즉 인법의 총상(總相)에 의거하여 설하는 경우라면, 앞의 논설과 같아야 하겠지만, 만약 각각의 단계로 차별하여 설할 것 같으면, 소연을 줄여 나갈 때에는 그것의 소연이 감소됨에 따라 그 행상을 닦지 않게 된다. 이를테면 4제를 소연으로 할 경우에는 16행상을 모두 닦으며, 만약 세 가지ㆍ두 가지ㆍ한 가지의 제를 소연으로 할 경우에는 각기 열두 가지ㆍ여덟 가지ㆍ네 가지의 행상을 닦게 된다.
33)
즉 세제일법에서는 고제 이외 다른 제를 소연으로 삼는 일이 없기 때문에 오로지 고제를 소연으로 하는 4행상만을 닦게 되는 것이다.
34)
난법과 정법은 동(動)선근으로 하위로 물러나는 경우가 있는 선근이기 때문에 하품에 포섭된다.
35)
견도는 무색정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견도의 권속인 4선근 역시 그것에 의해 일어나지 않는다. 즉 무색계의 정심(定心)은 일찍이 욕계의 고제를 변지하였고 집제를 끊었기 때문에 욕계법을 소연으로 하지 않으며, 따라서 무색계에는 견도가 없고, 견도가 없기 때문에 4선근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36)
즉 4선근은 온갖 존재(욕ㆍ색ㆍ무색유)를 매우 싫어하고 원적(圓寂, 열반)을 좋아하기 때문에 색계의 5온의 이숙을 초래하는 데 보조적인 원인은 될지라도 그것의 중동분(衆同分)을 능히 견인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것을 초래하게 하는 실제적인 원인은 되지 않는다.
37)
그러나 대법(對法)의 모든 논사들은 그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으니, 그것은 문소성과 사소성의 순결택분이 아니기 때문이다.(『현종론』 권제30, 앞의 책, p.317)
38)
왜냐 하면 이 세 가지는 뛰어난 소의신과 뛰어난 염잡작의(厭雜作意)가 존재하는 곳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서, 악취에는 전자를, 천취에는 후자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대비바사론』 권제7, 한글대장경118, p.156)
39)
4선근을 획득할 수 있는 자는 남ㆍ여의 근을 갖춘 자로서, 선체나 무형자(無形者)는 획득하지 못한다. 그리고 난ㆍ정ㆍ인선근의 경우, 남성ㆍ여성일 때뿐만 아니라 전근(轉根) 변성하여 여성ㆍ남성이 되었을 때에도 역시 그것에 의지하는 선근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남성ㆍ여성은 자신의 성에 의지하는 선근과 바뀐 성에 의지하는 선근을 모두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세제일법의 단계가 되면 여성은 남성으로 전근하는 경우가 있어 남성의 몸에 의지하는 그것도 획득할 수 있지만, 남성은 더 이상 여성으로 변성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남성에 의지하는 그것만을 획득할 뿐 여성에 의지하는 그것을 획득하는 일은 없다. 다시 말해 난ㆍ정ㆍ인의 단계에서는 남녀 공히 변성이 인정되지만, 세제일법의 단계에 이르면 남성은 이미 여성의 비택멸을 획득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변성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40)
4근본정에서는 지(止)ㆍ관(觀)이 균등하여 어떠한 노력 없이도 저절로 일어날 뿐더러(그래서 이를 樂通行이라 함) 생사를 싫어하는 마음이 치성하여 필시 이 생에서 견도에 들 수 있지만, 미지정과 중간정에서는 관만이 증성하여 그것을 낳는 데 노고가 따라야 하며(그래서 이를 苦通行이라고 함), 생사를 싫어하는 마음도 역하기 때문에 이 생에서는 견도에 들 수 없는 것이다. 낙통행ㆍ고통행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25(p.1150)의 ‘4통행(通行)’을 참조할 것.
41)
혹은 앞서 버린 것에 대해서는 공경하지 않기 때문이다.(『현종론』 권제30, p.319)
42)
전생에 ‘난’ 등의 선근을 획득하였으나 명종함으로써 그것을 버리게 된 경생(經生)의 성자는, 숙주지(宿住智)로써 그 같은 수행 정도를 아는 설법자가 설한 ‘정’ 등의 법을 듣고서 금생에 ‘정’ 등의 선근을 바로 획득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다시 난법부터 닦아야 한다는 뜻.
43)
즉 물러남은 반드시 허물을 일으킴으로써 획득되지만, 상실함은 공덕의 증진으로 말미암아 획득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견(물러남)에 의해 선근을 버리고, 득과(得果, 하지를 상실함)에 의해 하지의 선근을 버리게 되는 경우가 그러하다.
44)
난법에는 여섯 가지 과실과 한 가지 공덕이 있다. 곧 난법을 획득하였더라도 은복해 있던 견혹을 일으켜 거기서 물러나는 일이 있으며, 인과부정의 사견을 일으켜 생득선을 끊고, 무간업을 짓고, 3악취에 떨어지고, 명종(命終) 시에 난선근을 버리고, 항상 이생에 포섭되지만, 이 같은 과실에도 불구하고 오래 유전하는 일 없이 열반에 들게 된다.
45)
정법에는 다섯 가지 과실과 두 가지 공덕이 있다. 곧 정법을 획득하였더라도 거기서 물러나는 일이 있으며, 무간업을 지으며, 악취에 떨어지며, 명종 시에 정선근을 버리고, 항상 이생에 포섭되지만, 이 같은 과실에도 불구하고 오래 유전하는 일 없이 열반에 들고, 필경 선근을 끊는 일이 없다. 즉 정법위에서는 삼보의 수승한 공덕을 관찰하고, 그것을 인연으로 삼아 청정한 믿음의 마음[淨信心]을 인기하였기 때문이다.
46)
인법에는 두 가지 과실과 다섯 가지 공덕이 있다. 곧 정법은 목숨을 마치면 버리게 되고 이생에 포섭되는 것이지만, 정법을 획득하게 되면 오래지 않아 열반에 들게 되고, 필경 선근을 끊지 않으며, 물러남으로써 그것을 버리는 일이 없으며, 무간업을 짓지 않고,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다.
47)
난생과 습생은 많은 우매함에 의해 태어나기 때문에, 무상천과 대범천은 편벽된 견해[僻見]의 처소이기 때문에(본론 권제24, p.1086 참조), 북구로주에는 4제의 현관(現觀)이 없기 때문에, 선체(扇搋) 등은 번뇌가 많기 때문에, 욕계에서 여러 생을 거친 성자[經生聖者]는 반드시 제7의 존재, 즉 무소유처에서 열반에 들기 때문에, 견소단의 번뇌는 필시 다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인위(忍位)에서는 그것의 무생법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현종론』 권제30, 앞의 책, p.321)
48)
세제일법에는 한 가지 과실과 한 가지 공덕이 있다. 즉 이생에 포섭되고, 능히 견도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49)
4선근에는 각기 하ㆍ중ㆍ상의 세 품류가 있어 상품의 그것은 불승(佛乘)의 가행이 되고, 중품은 독각승의 가행, 하품은 성문의 가행이 된다. 그럴 때 각 승의 선근가행은 다른 승의 가행으로 바뀔 수 있는가? 이를테면 성문승의 가행이 독각승이나 불승의 그것으로 바뀔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 본 단의 문제이다.
50)
성문이 난선근과 정선근을 일으켰을 경우 무상정각(즉 佛乘)의 난ㆍ정을 낳을 수 있지만, 이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라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렇지만 인선근을 일으켰을 경우, 그는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보살행을 닦을 수 없으며, 따라서 빠른 시간 안에 불승의 그것으로 전향할 수 없다.(후술) 즉 인위(忍位)는 성문승의 가행 중에서 가장 오래 걸리는 것이기 때문에 필시 60겁을 지나야 자신의 과보가 성취될 수 있으며, 따라서 그 이후라야 비로소 전향이 가능한 것이다.
51)
즉 성문의 종성에게 이미 인법이 생겨났을지라도 그것이 독각의 보리(菩提)를 능히 장애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역시 독각의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52)
독각승에는 인각유(麟角喩)와 부행(部行) 두 가지가 있는데, 인각유독각이란, 기린의 한 뿔은 다른 한 뿔과 결코 만나지 않듯이 무불(無佛) 시대에 태어나 홀로 수행하여 부처가 된 이를 말하며, 부행독각이란 다른 이와 함께 수행하여 홀로 깨달은 이로서 앞서 언급한 성문을 말한다.
53)
제4정려에 의거하여 신념주로부터 진지와 무생지(금강유정)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한 자리에서 보리를 성취하였음을 말한다.(『현종론』, 앞의 책, p.323)
54)
세친은 이처럼 초생에서 순해탈분을 일으키고, 제2생에서 순결택분을 획득하며, 제3생에서 열반에 드는 것이라고 하였지만, 유부 비바사사(毘婆沙師)는 씨앗을 뿌리면, 싹으로 성숙하고, 마침내 열매를 맺게 되듯이, 초생에서 순해탈분을 심고, 제2생에서 그것을 성숙시키며, 제3생에서 순결택분을 일으켜 성도(聖道)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기 때문에 이 같은 비유를 ‘전설(傳說)’로 언급한 것이다. 이에 대해 중현은 “세친의 설에 따를 경우, ‘근본지(根本地)에 의해 난(煖) 등의 법을 일으킨 자라면, 그는 반드시 이 생에서 견제(見諦)에 들 수 있다’고 한 앞의 설과 서로 모순되며,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는 마땅히 가장 빠르게는 두 번째 생에 해탈한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두 번째 생에서 근본지에 의해 난법 등을 일으킨 자라면, 그는 필시 그 생에서 성도에 들어 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비판하고 있다.(『현종론』 권제30, 한글대장경201, p.324) 참고로 여기서의 ‘전설’은 보광에 의하면 앞의 비유에 대한 전설이지만, 법보에 의하면 다음에 논설할 순해탈분의 체(體)에 대한 전설이라고 평석하고 있다.
55)
즉 의업은 바로 직접적으로 문ㆍ사소성혜와 상응하기 때문이다.
56)
세 악취에서는 고(苦)를 염리하는 의업은 강하지만 반야 즉 지혜가 저열하며, 천취에서는 반야의 지혜는 수승하지만 괴로움이 적어 염리심이 부족하다. 그리고 북구로주에서는 염리심도 부족하고 지혜도 저열하다. 따라서 순해탈분의 종자를 뿌릴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인취의 세 주뿐이다.
57)
이에 대해 중현은 부처가 세간에 출현하였거나 혹은 부처가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다 같이 순해탈분을 능히 뿌리고 심을 수 있다고 하였다.(『현종론』, 앞의 책, p.325)
58)
여기서 ‘무루’라고 하는 말을 설한 것은 세제일법과 구별하기 위해서로서, 세간의 인(즉 순결택분의 인법)에 따라 이것도 무루의 인이라고 하였으며, 욕계의 고법(苦法, 즉 현행의 苦果)을 소연으로 삼았기 때문에 ‘고법인’이라고 이름하였다. 다시 말해 무시 이래 유신견으로써 아(我)ㆍ아소(我所)라고 미혹 집착하였던 고성제의 법에 대해 처음으로 그것을 오로지 고법(苦法)의 성질(즉 비상ㆍ고ㆍ공ㆍ비아)로 관찰하여 인가(忍可)ㆍ현전한 것이므로 ‘고법인’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능히 후에 고법지의 생(生)을 인기하며, 바로 그러한 지가 생겨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을 대치하기 때문에 다시 ‘고법지인’이라고 이름한 것이다.(앞의 책, p.326)
59)
즉 유부에서는 미래의 등불이 생상을 획득하여 현전할 때 비로소 어둠을 지멸하는 작용을 갖게 되듯이 이러한 고법지인도 세제일법의 단계로부터 생상위에 이를 때 이생성을 버리는 작용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이생성을 버리는 작용은 오로지 고법지인만이 갖는다. 그러나 논주 세친은 이 같은 생(生) 등의 유위4상의 실재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다만 ‘인정[許]한다’고 말한 것이다.
60)
세제일법도 이생성도 다 같이 세간법 즉 유루법이기 때문에 유루의 세간법으로써 세간법을 버린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뜻.
61)
고법지인이 욕계 고법(苦法)에 대한 인가(認可)의 혜를 획득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고법인에 의해 관찰된 욕계의 고제에 대한 결단(決斷) 간택(簡擇)의 혜를 획득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법지’이다.
62)
여기서 제법의 참된 이치란 고제를 비상(非常)ㆍ고(苦)ㆍ공(空)ㆍ비아(非我)라고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63)
이는 칭우에 의하면 법밀부(法密部), 보광에 의하면 대중부의 설로서, 그들은 1찰나의 마음에 의해 4성제를 현관한다는 돈현관(頓現觀)을 주장한다.(『이부종륜론』; 『대비바사론』 권제51, 한글대장경120, p.15 참조)
64)
후술하듯이 현관에는 견현관(見現觀)ㆍ연현관(緣現觀)ㆍ사현관(事現觀) 세 가지 종류의 차별이 있는데, 그 부파에서는 어떠한 현관에 근거하여 그 같은 주장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다시 논구해 보아야 한다는 뜻. 여기서 견현관(darśanābhisamaya)이란 오로지 무루혜만으로써 성제를 관찰하는 것이고, 연현관(ālamvanābhisamaya)은 무루혜와 그 상응법인 심ㆍ심소가 동일한 성제를 소연의 경계로 삼아 관찰하는 것이며, 사현관(kāryābhisamaya)은 무루혜를 중심으로 하여 심ㆍ심소와 도공계(道共戒)와 4상(相) 등이 동일한 성제를 대상으로 하여 그 작용[事業]을 행하는 것으로, 그러한 작용에는 고의 변지(遍知)와 집의 영단(永斷)과 멸의 작증(作證)과 도의 수습(修習)이 있다.
65)
즉 계와 생상 등도 바로 현관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현관 중에 그것들의 개별적인 작용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들에 대해서도 역시 ‘현관’이라는 명칭을 설정할 수 있는 것이다.
66)
이를테면 고제를 관찰할 때, 무루혜가 고제를 추구(推求)하는 것은 견현관이고, 혜와 더불어 심ㆍ심소가 고제를 동일한 소연으로 삼는 것은 연현관, 혜와 상응 구기법이 동일하게 작용하여 두루 아는 것[遍知]은 사현관이다. 그리고 고제에 대한 무루혜가 현전함으로써 집을 끊고[斷集], 멸을 작증하며[證滅] 도를 닦기[修道] 때문에 나머지 세 가지 제(諦)도 사현관된다. 따라서 사현관에 근거하여 ‘단박에 현관한다’고 말하였다면, 그것은 마땅히 선설(善說)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67)
견현관은 점진적인 것으로, 온갖 진리의 행상에는 열여섯 가지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이치상 1찰나에 다수의 행상을 관찰하는 것은 ‘이심불구기(二心不俱起)’의 원칙에 따라 있을 수 없다.
68)
수도(bhāvanā-mārga)란 견도를 반복하여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견도가 차제(次第) 현관이라면 수도 역시 그렇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69)
제 부파에 따라 현관하는 도중에 출관(出觀)하는 경우가 있다고도 하고 없다고 하기 때문에 각각에 대해 별도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뜻.
70)
『잡아함경』 권제14 제435경(대정장2, p.112하), “世尊! 此四聖諦爲漸次無間等, 爲一頓無間等? 佛告長者 此四聖諦漸次無間, 非頓無間等.”
71)
위의 경 제435-437경. 가는 나뭇잎을 모아서 만든 그릇에 물을 담아갈 수 없듯이 고제를 무간에 알지 못하고 집ㆍ멸ㆍ도성제를 알지 못하며……, 연꽃잎을 합하여 만든 그릇에 물을 담아 갈 수 있듯이 고제를 무간에 알고 나서 집제 등을 안다.(제435경) 전당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첫 번째 계단을 오른 뒤에 순서대로 올라가야 한다.(제436경) 전당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계단씩 올라야 한다.(제437경)
72)
같은 경 제420경(대정장2, p.111상), “만약 고제에 대해 의혹이 있는 자는 부처에 대해서도 의혹이 있을 것이고, 법(法)과 승(僧)에 대해서도 의혹이 있을 것이며……고제에 대해 의혹이 없는 자는 부처에 대해서도 의혹이 없을 것이고, 법(法)과 승(僧)에 대해서도 의혹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 부처는 무루법으로 도제에 포섭되는 것이다. 따라서 고제에 의혹이 없으며 도제에 대해서도 의혹이 없는 것이므로, 이는 바로 돈현관의 경증으로 인용한 경문이다.
73)
고제에 대한 의혹을 끊을 때에는 도제에 대한 의혹이 현행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함께 끊는 것은 아니다. 즉 그것은 현행하지 않는 것이면서 마땅히 끊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은밀하게 그같이 설하였다는 뜻.
74)
즉 4정려와 미지정과 중간정이 바로 그것이다. 본권 p.1046을 참조하라.
75)
3계의 제 번뇌는 고법지(苦法智) 내지 도류지(道類智)가 지식으로서 인가되는 순간, 말하자면 고법지인 내지 도류지인의 순간 끊어지며[斷, 여기서 ‘끊어진다’고 함은 번뇌의 제 심소가 심상속과의 구생의 관계를 떠난다는 말이다], 고법지 내지 도류지는 그 같은 번뇌의 단절을 확증하여[證] 이계를 얻게 한다. 따라서 8인에 의한 번뇌의 단절은, 이를테면 도둑을 잡아 문 밖으로 쫓아내는 것에 비유되고, 8지에 의한 단절의 확증은 문을 닫아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에 비유된다. 본론 권제21(p.970)에서는 무간도를 단대치(斷對治)로, 해탈도를 지대치(持對治)로 논설하고 있다.
76)
해탈도도 이계득과 구생하는 것이면서 역시 또한 번뇌를 끊는데 능히 간격과 장애가 없기 때문에 무간도라고 할 수 있지 않는가 하는 힐난.
77)
만약 무간도만이 존재하고 해탈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제2찰나는 고법지가 아니라 고류지인이 되어야 할 것이며, 그럴 경우 욕계의 고제에 대한 의혹을 끊었다고 확증짓는 지(智)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왜냐 하면 고법지인의 찰나는 의혹과 함께하는 찰나이며, 고류지인의 찰나는 욕계의 그것을 소연의 대상으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78)
여기서 본론은 『발지론』 권제5(한글대장경176, p.107), “아홉 종류의 결(結)이 있으니, 이를테면 고법지소단(苦法智所斷) 내지는 수소단(修所斷)이 바로 그것이다.” 즉 여기서 9결취란 4법지소단과 4유지소단, 그리고 수소단의 결을 말한다. 따라서 8인만이 번뇌를 끊는다고 하는 것은 근본 아비달마에 어긋난다는 힐난.
79)
즉 제16 도류지에 이르렀을 때, 비록 일찍이 알지 못하였던 제(諦)는 남아 있을지라도 일찍이 관찰한 적이 없었던 제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으니, 일체의 인(忍)은 모두 ‘견(見)’을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4제의 관찰은 제15 찰나의 마음에서 마치게 되고, 상 2계의 도제를 관찰하는 제16 찰나에서는 제15 찰나의 마음을 거듭 관찰하여 아는 것이기 때문에 ‘견도’라고 하지 않고 ‘수도’, 즉 반복된 관찰[重見]이라고 하는 것이다.
80)
견도위에서는 예컨대 고법지가 현재전할 때 미래 생상위의 고법지와 고제하의 4행상만을 득수(得修)할 뿐 그 밖의 7지와 12행상은 득수하지 않으며, 도류지인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도류지의 경우 미래 생상위의 도류지나 도제 4행상뿐만 아니라 8지 16행상을 모두 득수하기 때문에 수도에 포섭된다.
81)
견도 15찰나의 인(忍)ㆍ지(智)는 모두 오로지 1찰나이지만, 제16 도류지는 수도와 마찬가지로 다찰나에 걸쳐 상속하며 일어난다.
82)
유부 법상에 의하면 견도는 물러남이 없지만 수도는 물러남이 있는데, 도류지의 경우는 비록 수도이지만 견도소단의 택멸에 의해 설정된 것이기 때문에 물러남이 없다.
83)
만약 도류지가 견도소단의 택멸을 지니기 때문에 견도라고 한다면, 일래과 등의 성자도 역시 그것을 지니기 때문에 견도위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모순을 초래하게 된다.
84)
만약 일찍이 관찰한 적이 없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 견도라고 한다면, 혹은 일찍이 관찰한 성제를 다시 관찰하는 것을 수도라고 한다면, 고법지 내지 도법지의 7지(智) 역시 전찰나의 인(忍)이 관찰한 제(諦)를 거듭 관찰하는 것이므로 수도에 포섭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난문.
85)
견도위에 든 자로서 일찍이 이생위에서 믿음과 공경[信敬]의 힘에 의해 가행을 수습한 둔근의 성자를 수신행(隨信行, śraddhānusārin)이라고 하며, 일찍이 계경 등의 법을 열람하며 가행을 수습한 이근의 성자를 수법행(隨法行, dharmānusārin)이라고 한다. 즉 이 같은 종성의 차별은 법이(法爾)로서 타고 난 것이다.
86)
성과(聖果)의 증득에는 차제증(次第證)과 초월증(超越證) 두 가지가 있다. 즉 견도에 들어 견혹을 끊고 나서 수도에 들어 수혹을 끊어 성과(聖果)에 이르는 4향(向) 4과(果)를 차제증이라고 하며, 일찍이 이생위에서 유루의 세속도로써 욕계 수혹의 일부 내지 전부를 끊고 난 다음 견도와 수도에 들어 견혹과 나머지 수혹을 끊는 이를 초월증이라고 하는데(이러한 이는 견도 16심에 이르러 견혹을 끊을 때 예류과를 초월하여 바로 일래과 또는 불환과를 증득한다), 이하의 논설은 후자에 대한 것이다. 즉 일찍이 이생위에서 유루도로써 욕계 수혹을 끊은 상태에 따라 수신ㆍ수법의 두 성자는 예류과향 등의 세 가지 향(向)으로 설정된다.
87)
예류과(혹은 須陀洹, srotāpanna)에 대해서는 본권 말미(p.1072)에서 상론된다.
88)
일래과(sakṛdāgāmin, 혹은 斯陀含)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24(p.1078)의 초반에서 상론된다.
89)
여기에는 욕계 수혹의 9품을 끊은 자와, 4정려와 공무변처ㆍ식무변처ㆍ무소유처 각각의 1품 내지 9품의 수혹을 끊은 자 등 도합 64가지 유정이 있다.
90)
불환과(anāgāmin, 또는 阿那含)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24(p.1081 이하) 참조. 참고로 유루도는 유정(有頂)의 혹을 끊을 수 없기 때문에, 또한 아라한과는 제16심에서 획득될 수 없기 때문에 초월증에는 아라한향ㆍ과가 없다.(후술)
91)
아라한과는 초월증(超越證)에 의해 직접적으로 바로 획득되는 일이 없으며, 반드시 불환과를 획득한 후 유정처(有頂處, 비상비비상처정)의 수혹을 끊고 나서야 비로소 획득될 수 있다.
92)
둔근자의 과위를 ‘신해(śradhādhimukta)’라고 하는 것은 믿음의 증상력으로 말미암아 승해(勝解)가 나타났기 때문이며, 이근자의 과위를 ‘견지(dṛṣṭy-āpti)’라고 하는 것은 혜의 증상력으로 말미암아 정견(正見)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즉 수신행 위(位)의 믿음이 이 단계에 이르러 더욱 증장하여 무루의 승해를 처음으로 일으켰기 때문에 신해라고 한 것이며, 수법행위의 혜가 더욱 증장하여 정견의 혜로 현현하였기 때문에 견지라고 한 것이다.
93)
즉 일찍이 이생위에서 욕계 1품 내지 5품(혹은 7ㆍ8품, 혹은 초정려의 1품 내지 무소유처의 9품)의 수혹을 끊고서 견도에 들어 제16 찰나인 도류지의 마음에 이르게 되면 예류과(혹은 일래과ㆍ불환과)인 동시에 일래과(혹은 불환과ㆍ아라한과)의 ‘향’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난문. 즉 본단에서는 주과(住果)가 향이 아닌 까닭에 대해 밝히고 있다.
94)
승과도란 향도(向道)를 말하는 것으로, 선행한 과도(果道)보다 뛰어난 도라는 뜻이다. 혹은 후에 초래되는 과보를 ‘뛰어난 것[勝]’이라 이름하며, 그것으로 나아가는 도라는 의미에서 승과도라고 이름한 것이다. 따라서 초과(初果, 즉 예류과) 등을 일으키는 단계에서는 오로지 그러한 과보만을 획득할 뿐, 아직 그러한 과보로부터 뛰어난 도(즉 일래향)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과위에 머무는 자[住果]’라고 이름할 뿐 ‘향하는 자[向]’라고는 이름하지 않는 것이다.
95)
이는 초월증으로서 과위를 획득한 성자는 현생에서 다음 과위의 향도(向道, 즉 승과도)를 일으키게 된다는 사실의 예시이면서, 『발지론』 권제6(한글대장경176, p.131)의 “변정천(제3정려 제3천) 이하와, 성자로서 그 이상(즉 제4정려)에 태어나는 자는 무루의 낙근을 성취한다”는 사실을 해명하는 근거로서 논설한 것이다. 즉 일찍이 이생위에서 아래 세 정려의 염오를 떠난 이는 유루의 낙근도 끊었는데, 만약 이러한 이가 그 후 제2정려나 초정려 혹은 미지정 등의 하지에 의거하여 견도 제16 찰나의 마음을 획득(즉 불환과)하고서 향도를 일으키지 않고 그대로 죽어 제4정려에 태어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무루의 낙근을 성취할 수 없게 되고 만다. 왜냐 하면 이미 유루의 낙근은 끊어졌고, 사지(捨地)인 제4정려 이상에는 낙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곧 『발지론』에서 그같이 말한 것은 결정코 현생에서 승과도를 일으켜 무루의 낙근을 성취할 것을 예상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대비바사론』 권제90, 한글대장경121, p.327-328 참조)
96)
‘선구’란 구박의 성자를 말하는 것으로, 특히 견도에 들기 전에 욕계 수혹 중 1품도 끊지 못한 자, 다시 말해 욕계의 수혹을 모두 갖춘 자를 말하며, ‘배리욕’이란 욕계 9품의 수혹 중 일부분(6ㆍ7ㆍ8품)을 끊은 자를, ‘전리욕’이란 9품 전체를 끊은 자를 말한다. 이들은 모두 초월증의 성자이다.
97)
수신행과 수법행의 세 가지 과향(果向)을 논설하면서 욕계 9품의 수혹을 분별하였다. 따라서 3계 9지(욕계와 4정려ㆍ4무색정)에는 모두 81품의 수혹이 있으며, 그 대치도인 수도(修道)에도 81품이 있다.
98)
3계 9지에 각기 9품의 수혹이 있기 때문에 모두 81품의 번뇌가 되며(즉 견혹은 돌이 깨어지듯이 단박에 끊어지기 때문에 그 수를 번뇌 자체에 근거하여 헤아리지만, 수혹은 연근의 심줄이 끊어지듯이 점진적으로 끊어지기 때문에 품류에 근거하여 헤아린 것이다), 그것을 끊고 임지하는 것은 무간도와 해탈도이기 때문에 대치도는 모두 162찰나의 마음이다. 곧 최후의 1찰나의 마음은 무학도이지만, 견도 제16심이 수도이기 때문에 수혹의 대치도는 162찰나가 된다.
99)
견도 제16 찰나 도류지에 이르러 일체의 견소단의 번뇌를 끊고 수도위에 든 자를 예류과(預流果)라고 하는데, 이는 말 그대로 ‘불법의 흐름에 이른 자’로서 더 이상 악취에 떨어지는 일이 없으며, 최대한 인ㆍ천을 일곱 번 왕래한 후 반열반을 성취한다. 그것은 아직 끊어지지 않은 욕계 9품의 수혹 중 상상품의 혹이 2생을 초래하고, 상중ㆍ상하ㆍ중상의 3품이 각기 1생을 초래하며, 중중ㆍ중하품이 1생을, 그 밖의 하 3품이 1생을 초래하기 때문이다.(후술)
100)
『중아함경』 권제1 「수유경(水喩經)」(대정장1, p.424하), “ 極受七有, 天上人間七往來已便得苦際.”
101)
만약 처음으로 무루도를 획득하였을 때를 ‘예류’라고 한다면, 견도의 첫 찰나의 마음에 의해 처음으로 무루성도를 획득하기 때문에 이것을 예류향이라고 이름해야 한다. 즉 예류향은 견도 첫 찰나에서 제15찰나에 걸쳐 있는 초과(初果)의 성자로서, 4향 4과를 아라한과로부터 헤아려 나아갈 때 여덟 번째 성자라고도 한다.(『대비바사론』 권제46, 한글대장경119, p.495) 또한 만약 처음으로 과위를 획득하였을 때를 ‘예류’라고 한다면, 유루 세간도로써 욕계 6품의 수혹을 끊은 자가 도류지의 단계에서 일래과를 획득하였을 때(배리욕)에도, 또한 9품의 수혹을 모두 끊은 자가 도류지의 단계에서 불환과를 획득하였을 때(전리욕)에도 역시 처음으로 과위를 획득한 것이기 때문에 예류과라고 이름해야 한다는 힐난.
102)
즉 배리욕과 전리욕의 행자가 도류지에 이르렀을 때에는 처음으로 획득된 과위가 아니라 일찍이 이생위에서 수소단의 혹이 끊어진 것에 근거하여 설정된 것이기 때문에 일래과와 불환과라고 하지 ‘예류과’라고는 이름하지 않는다.
103)
즉 도류지의 단계(제16심)를 예류과라고 하는 것은 그 때 향ㆍ과의 무루도를 획득하고, 견ㆍ수도를 획득하며, 4제현관의 16심(8忍ㆍ8智)을 획득하기 때문이지만, 제8 예류향의 단계(제1 고법지인에서 제15 도류지인)에서는 아직 이 세 가지 인연을 충족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류과라고 이름하지 않는 것이다.
104)
5온의 각각을 고ㆍ집ㆍ멸ㆍ도ㆍ애미(愛味)ㆍ과환(過患)ㆍ출리(出離)라는 일곱 가지 관점에서 관찰하는 것을 ‘35처선’이라 하지 않고 7처선이라고 하는 것은 ‘칠’이라는 수가 공통되기 때문이다. 또한 칠엽수의 잎은 대단히 많지만 한 가지에 일곱 잎만이 달리기 때문에 칠엽수라고 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류과를 획득한 이는 이후 최대한 인ㆍ천에서 각기 일곱 번의 생유와 중유를 향수하지만(28有) ‘칠’이라는 수가 공통되기 때문에 ‘극칠반생’이라고 한 것이다.
105)
『중아함경』 권제48 「다계경(多界經)」(대정장1, p.724상), “若見諦人受八有者 終無是處. 若凡夫人受八有者 必有是處.” 보광은 이를 미사새부(彌沙塞部, Mahāśāsaka) 즉 화지부(化地部)의 물음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이 부파에서는 극칠반생의 7생을 인ㆍ천을 합한 7생(인4 천3, 혹은 인3 천4)으로 이해하였다고 하였다. 참고로 화지부에서는 중유(中有)의 실재성을 부정하는데, 이에 대한 유부의 답변에서 유추하여 그같이 해석한 것으로 생각된다.
106)
즉 계경에서는 인취 혹은 천취 중 어느 하나에 근거하여 설한 것으로, 표면으로 드러난 경문의 언사에만 집착할 경우, 부처는 중유의 존재도 부정하고 오로지 생유의 7생만을 인정하였다고 말해야 한다는 힐난.
107)
견도가 원만하게 성취된 이는 하나의 취(趣)에 근거하여 여덟 번째의 생은 더 이상 받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경의 뜻이라면, 무잡수(無雜修) 정려를 닦아 욕계에서 몰한 후 5정거천을 제외한 색계천에 두루 태어나며, 명종하고 나서 3무색정에 순서대로 태어난 후 마침내 유정천에서 반열반에 드는 상류반(上流般) 불환의 경우, 그 역시 견도가 원만한 자임에도 여덟 번, 열번 이상의 생을 받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하는 난문. 상류반 불환과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24(p.1083) 참조.
108)
즉 욕계의 한 취(趣)에 국한하여 여덟 번째 생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라는 뜻.
109)
『별역잡아함경』 권제8(대정장2, p.434중), “如來記, 彼得須陀洹, 於人天中七生七死, 得盡苦際.” 그러나 이 『별역잡아함경』이 음광부 소전(所傳)인지 아닌지는 알려지고 있지 않다.
110)
이는 여덟 번째 생을 받지 않는 이유를 밝힌 것으로, 만약 여덟 번째 생을 받을 경우 인취에서 예류과를 획득하고서 천취에서 반열반하게 되는 모순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111)
어떤 뱀에 물리면 반드시 일곱 걸음 안에 죽는 것처럼, 어떤 학질에 걸리면 반드시 4일째 되는 날 발작하는 것처럼 예류과의 소의신은 제7 생에 이르면 반드시 성도를 성취하여 법이로서 능히 온갖 번뇌를 다하기 때문에 여덟 번째 생은 더 이상 상속하지 않는 것이다. 그 같은 법이에 대해서는 주99)를 보라.
112)
5하분결 중의 유신견ㆍ계금취ㆍ의(疑)의 3결은 견도로써 끊어지지만 그 밖의 수혹인 탐(貪)ㆍ진(瞋)의 2결과 상계에 수순하는 색ㆍ무색계의 2탐과 도거ㆍ만ㆍ무명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13)
불법이 유통되지 않는 시기에는 출가의식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말해 오로지 부처가 세상에 출현한 때만 별해탈률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114)
『잡아함경』 권제43 제947경(대정장2, p.242중), “斷此三結(身見ㆍ戒禁取ㆍ疑)得須陀洹, 不墮惡趣法決定正向三菩提, 七有天忍往生, 究竟苦邊.”
115)
그러나 허공은 열반(즉 택멸)과 마찬가지로 무위로서 결코 지어지는 것[所作]이 아니다.
116)
즉 성자가 아닌 범부도 역시 최대한 일곱 번 생을 반복하여 상속이 성숙해짐에 따라 반열반을 획득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결정적 사실이 아니다.(『현종론』 권제31, 앞의 책,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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