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당집 제14권[2]
[삼산 화상] 杉山
마조의 법을 이었고, 지주池州에서 살았다. 이름은 지견智堅이며, 그의 실록을 보지 못해 생애는 알 수 없다.
운암雲巖이 달을 보고 선사에게 말했다.
“매우 좋은 달입니다.”
선사가 말했다.
“비추기는 하는가?”
운암이 고개를 숙여 버렸다.
선사가 남전에서 제1좌第一座로 있었는데, 남전이 수생(收生:중생교화)을 하면서 말했다.
“생生이다.”
선사가 말했다.
“무생無生입니다.”
“무생이라 하여도 역시 끝이니라.”
남전이 이렇게 말하고는 대여섯 걸음 걸으니, 선사가 “큰스님” 하고 불렀다. 남전이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어째서 그러는가?”
“그래도 끝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나중에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서 순덕順德에게 물었다.
“남전이 말하기를,
‘생이다’ 한 뜻이 무엇입니까?”
순덕이 말했다.
“급한 물결에 배를 띄우는 것이니라.”
“삼산이 ‘무생입니다’ 말한 뜻은 무엇입니까?”
“바람이 불지 않으면 나무 또한 움직이지 않느니라.”
“무생이라 해도 역시 끝이라 한 뜻이 무엇입니까?”
“칼날을 갈고, 칼끝을 문지르는데, 그대는 어떻게 피하려는가?”
“남전을 부른 뜻이 무엇입니까?”
“승전보를 들으려면 따로 행해 지녀야 하느니라.”
“남전이 고개를 돌린 뜻이 무엇입니까?”
“코끼리가 발길을 돌리니, 사자獅子가 신음을 하느니라.”
“‘끝이란 말씀을 마십시오’라고 한 뜻이 무엇입니까?”
“묘하게 몸을 피하니 고금에 드무니라.”
안국安國이 이 일을 들어서 명明 상좌에게 물었다.
“옛사람은 무생에 해당하는가, 무생에 해당하지 않는가?”
“무생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삼산의 뜻이 무엇인가?”
명 상좌가 대답이 없으니, 명진明眞 대사가 대신 말했다.
“그대가 들어 말해 보라.”
선사가 남전과 함께 불을 쪼이는데,
남전이 물었다.
“동쪽 서쪽을 가리키지 말고, 본분의 일을 곧장 일러 보시오.”
선사가 얼른 부젓가락을 집어 던지니, 남전이 말했다.
“그대가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왕 노사에 견주면 여전히 실 한 가닥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남전이 다시 조주에게 묻자, 조주가 손으로 원상圓相을 그리고 그 복판에 점 하나를 찍었다. 남전이 말했다.
“그대가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왕 노사에게 견주면 여전히 한 올의 실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나중에 운문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남전은 다만 한 걸음 한 걸음이 높은 곳을 향해 오르기만 할 뿐 허공 속에서 놓아 버릴 줄은 몰랐다.”
“어떤 것이 본래의 몸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온 세상에 그와 비슷한 것은 없느니라.”
선사가 고사리나물을 들어 보이면서 남전에게 물었다.
“이것은 공양하기에 딱 좋겠습니다.”
남전이 대답했다.
“그것뿐이 아니라 설사 백미진수라도 그는 돌아보지 않을 것입니다.”
선사가 다시 말했다.
“비록 그러나 저마다 그에게 갚아야 합니다.”
[명계 화상] 茗溪
마조의 법을 이었으나 행장을 보지 못해 그의 생애를 알 수 없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수행의 길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훌륭한 중아, 공연히 나그네 신세가 되지 말라.”
“끝내 어떠합니까?”
“가만히 놓아둘 수는 없느니라.”
선사가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에게 큰 병이 있으니, 세상 의원으로서는 고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이 말로써 선조산先曺山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에게 큰 병이 있으니, 세상 의원으로서는 고칠 수 없다’ 하였는데, 그게 어떤 병입니까?”
조산이 대답했다.
“활촉으로 뚫을 수 없는 병이니라.”
“일체 중생에게도 이 병이 있습니까?”
“사람마다 모두 있느니라.”
“일체 중생은 어찌하여 앓지 않습니까?”
“중생이 만일 앓는다면 이미 중생이 아니니라.”
“화상께도 이 병이 있습니까?”
“일어나는 곳은 바야흐로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느니라.”
“부처님들께도 이 병이 있습니까?”
“있느니라.”
“있다면 어째서 앓지 않습니까?”
“또렷또렷하기 때문이니라.”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바른 수행의 길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열반한 뒤에야 있음직한 것이다.”
“어떤 것이 열반한 뒤에 있음직한 것입니까?”
“씻을 얼굴이 없는 것이니라.”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얼굴이 없어서 씻으려 해도 씻을 수 없느니라.”
[석공 화상] 石鞏
마조의 법을 이었고, 무주撫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혜장慧藏이며, 출가하기 전에 사슴을 쫓아 마조의 암자 앞을 지나다가 물었다.
“스님, 사슴이 지나가는 것을 보셨습니까?”
마조가 말했다.
“그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예, 저는 사냥꾼입니다.”
“그대는 활을 쏠 줄 아는가?”
“압니다.”
“한 화살로 몇 마리의 짐승을 잡는가?”
“한 화살로 한 마리를 잡습니다.”
“그대는 전혀 활 쏠 줄을 모르는구나.”
이에 석공이 말했다.
“스님께서도 활을 쏠 줄 아십니까?”
“안다.”
“한 화살에 몇 마리나 잡으십니까?”
“한 화살에 한 떼를 잡는다.”
“피차가 모두 같은 생명인데, 어찌 그들을 쏘십니까?”
“그대가 이미 이와 같음을 아는데, 어째서 자신을 쏘지 않는가?”
“저 자신을 쏘라고 하시지만 손 쓸 곳이 없습니다.”
이에 마조가 말했다.
“이 놈의 무명번뇌가 한순간에 몽땅 사라지는구나.”
선사가 즉석에서 활과 화살을 꺾어 버리고, 칼을 뽑아 머리를 깎고 마조에게 귀의하여 출가하였다.
그 뒤의 어느 날, 부엌에서 일을 하는데,
마조가 물었다.
“무엇을 하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소를 먹입니다.”
“어떻게 먹이는가?”
“한번 풀밭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얼른 콧구멍을 잡아 끌어냅니다.”
이에 마조가 말했다.
“그대는 참으로 소를 먹일 줄 아는 사람이다.”
선사가 서당에게 물었다.
“그대는 허공을 잡을 줄 아는가?”
서당이 대답했다.
“잡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잡는가?”
서당이 손으로 허공을 잡는 시늉을 하니, 선사가 말했다.
“그래 가지고 어떻게 잡겠는가?”
서당이 되레 물었다.
“스님은 어떻게 잡으십니까?”
선사가 서당의 코를 잡아끄니, 서당이 아픔을 참으면서 끙끙 소리 내어 말했다.
“지독하게 사람의 코를 잡아끌다니, 당장 놓아주시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반드시 이렇게 허공을 잡아야 한다.”
언젠가 스님이 와서 뵈니, 선사가 말했다.
“아까는 어디를 갔더냐?”
스님이 대답을 했다.
“여기에 있었습니다.”
“어디에 있었는가?”
스님이 손가락을 튀겨서 대답을 대신했다.
어떤 스님이 절을 하니,
선사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아무아무 곳에서 옵니다.”
“그것을 얻어 가지고 왔는가?”
“가지고 왔습니다.”
“어디에 있는가?”
스님이 손가락을 두세 번 튀겨서 대답을 대신했다.
삼평三平 화상이 선사를 뵈니, 선사가 화살을 당기면서 외쳤다.
“화살을 보아라.”
삼평이 가슴을 벌리고 받는 시늉을 하니, 선사가 얼른 화살을 던지면서 말했다.
“30년 동안 여기에 있었지만 오늘에야 겨우 반 토막의 성인을 쏠 수 있었다.”
나중에 삼평이 주지住持가 된 뒤에 말했다.
“그날에는 내가 덕을 봤다고 여겼는데, 지금 살펴보건대 도리어 덕을 잃었다.”
석문이 이 일을 들어 명진明眞에게 물었다.
“어떻게 말했어야 반 토막의 성인이란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습니까?”
명진이 할을 하면서 말했다.
“이 들여우 요괴야.”
이에 석문이 말했다.
“알았다 해도 좋은 솜씨를 놀리지 말아야 합니다.”
선사가 농주음弄珠吟을 읊었다.
밝디 밝은 명주가 온 누리에 빛나니
삼라만상이 거울 속에 나타난다.
광채는 삼천세계를 꿰뚫어 대천大千을 넘으니
4생生과 6류流가 같은 신령한 근원이다.
범부도 성인도 구슬에 대해 들으매 누가 부러워 않으랴마는
잠시라도 마음을 내어 구하면 전혀 보지 못한다.
얼굴을 맞대고 구슬을 보면서도 구슬인 줄 모르나니
구슬을 찾아 물건을 쫓으면 즉시에 변화한다.
천 가지, 만 가지로 구슬을 비유하나니
구슬은 백비百非를 떠나고 4구句를 초월한다.
이 구슬이 생겼다지만 생긴 것 아니요,
무생無生을 위함이 아닐 때 구슬은 비로소 존재한다.
여의주如意珠ㆍ대원경大圓鏡이여,
또한 인간 속의 본성이라고도 불린다.
몸을 백ㆍ억 세계로 나누는 것, 내 구슬의 본분이나
예부터 본래 맑은 것, 지금껏 청정하다.
일상생활의 참 구슬이 부처님이시니
어찌 수고로이 사물을 따르기에 허둥대는가?
숨었건 드러났건 두 모습 아니니
얼굴 맞대고 구슬을 보라. 알아볼 수 있던가?
[자옥 화상] 紫玉
마조 대사의 법을 이었고, 양양襄陽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도통道通인데, 행장을 보지 못해서 그의 생애를 확실히 알 수 없다.
양양襄陽의 염사廉師 우적于迪 상공相公이 자기 관내에 명을 내리기를,
“우리 관내에서 행각行脚하는 스님이 있거든 모두 쫓아가서 한 스님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라” 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무수히 했다. 선사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그 상공을 만나러 가기 위해 대중에 같이 동행할 사람을 모으니, 열 사람이 나왔다. 선사가 열 사람을 거느리고 마침 그 경계 앞에 이르니, 열 사람은 겁이 나서 아무도 더 이상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이에 선사가 홀로 경계 안으로 들어갔다. 군인들이 선사가 오는 것을 보고 붙들어다가 칼을 씌워서 관아로 보냈다. 선사가 칼을 쓰고 문 밖에 이르러 가사를 수하고 대청으로 오르니, 상공이 검을 뽑아 들고 거만하게 걸터앉아서 호통을 쳤다.
“에끼, 이 중아, 양양의 절도사가 함부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
선사가 대답했다.
“법왕은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화상의 머리에도 귀가 있는가?”
“눈썹과 눈이 서로 장애하지 않듯이, 내가 상공을 만나는 데 무슨 장애가 있으리오?”
그러자 상공이 문득 칼을 버리고 관복을 정돈하고서 절을 한 뒤에 물었다.
“듣건대 경전에서 말하기를,
‘거센 바람이 배를 불어 나찰귀국羅刹鬼國으로 떨어뜨린다’ 하였다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우적于迪아” 하고 부르니, 상공의 얼굴빛이 변하였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나찰귀국이 멀리 있지 않느니라.”
상공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선사가 “우적이여” 하고 불러 상공이 대답을 하자, 선사가 말했다.
“다른 곳에서 구하지 말라.”
상공이 이 말에 크게 깨달아 절을 하고 스승으로 모셨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약산에게 이야기하니, 약산이 말했다.
“그 놈을 결박해 죽였어야 했을 것이니라.”
스님이 물었다.
“화상께서는 어떠하십니까?”
약산이 말했다.
“이게 무엇인고?”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찌하여야 삼계를 벗어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그 안에 얼마나 있었던가?”
“어찌하여야 벗어날 수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푸른 산은 흰 구름이 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느니라.”
[남원 화상] 南源
마조의 법을 이었고, 표주表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도명道明이며, 동산洞山이 처음 남원에 와서 법당으로 오르는데, 선사가 동산을 보자 말했다.
“이미 만나 보았으니, 더 올라올 필요가 없다.”
동산이 이 말을 듣고 바로 방으로 돌아갔다.
그런 뒤에 다시 조실로 찾아와 물었다.
“아까 말씀하시기를,
‘벌써 만났다’ 하셨는데, 어디가 저와 만난 경지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마음과 마음이 끊임없이 성품의 바다로 흘러 들어가느니라.”
“놓칠 뻔하였습니다.”
닷새가 지난 뒤 동산이 선사에게 하직을 고하니, 선사가 말했다.
“그대 편에 부탁할 일이 있는데, 되겠는가?”
동산이 절을 하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선사가 말했다.
“불법을 많이 배워서 널리 이익을 펼쳤다.”
“불법을 많이 배우는 일은 그만두고, 어떤 것이 널리 이익을 펴는 일입니까?”
“한 물건도 위하지 않는 것이니라.”
동산은 그 뒤로 두 해를 더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