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기행> 3. 후베이성(湖北省)
<1> 우한(武漢)과 웨이양(岳陽)
보수 중인 악양루 / 악양루(岳陽樓)와 동정호(洞庭湖) / 미인의 고향 항주(杭州)
장가계 관광이 끝나고 나 홀로 여행을 다시 시작했는데 우선 우한(武漢)과 웨이양(岳陽)을 보기로 했다. 우한(武漢)은 후베이성(湖北省)의 성도(省都)인데 장강(陽子江)과 한수(漢水)의 합류지점으로, 한수(漢水) 북쪽은 한커우(漢口), 남쪽은 한양(漢陽), 장강의 동쪽은 우창(武昌)으로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뉜다.
주변에 수많은 호수가 널려있고 세 도시가 거의 맞닿아 있어 합치면 어마어마하게 큰 대도시겠다.
세계 제2차 대전 때, 일본이 난징(南京)을 함락하자 국민정부가 한커우(漢口)로 철수하여 우한(武漢)은 중국 저항운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그러나 1938년 한커우마저 일본군에게 넘어갔고 1945년 일본군이 철수한 뒤, 한커우(漢口)는 국민당(國民黨)이 차지했으나 우한(武漢)은 중국공산당이 접수하는 등 정치의 소용돌이가 심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우한(武漢)으로 이동할 때는 2층 침대버스를 이용했는데 버스안은 2층 침대를 세 줄로 배치했고 나는 가운데줄 아래층인데 발을 뻗으니 닿고 옆도 좁아 꼭 관(棺) 속에 누워있는 기분이다.
그래도 몸을 누일 수 있다는 것이 고맙다. 오후 7시 10분에 출발하여 우한에 도착하니 새벽 3시 30분으로 8시간 20분이나 달려온 셈이다. 너무 이른 새벽에 도착하니 갈 곳도 마땅찮아 버스터미널 앞에서 5元짜리 국수로 속을 데우고 벽에 기대앉아 날이 새기만 기다렸다. 다행히 나와 같이 벽에 기대어 날이 새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몇 명 있다. 아침 7시, 버스터미널 문이 열리자마자 우선 웨이양(岳陽)을 다녀오기로 하였는데 고등학교 시절 너무나 귀에 익숙한 악양루(岳陽樓)와 동정호(洞庭湖)를 꼭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한에서 악양까지 버스로 5시간 걸리고 차비는 80元이다. 오후 1시에 웨이양(岳陽)에 도착하여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곧바로 악양루(岳陽樓)로 향하였는데 악양루 입장료는 80元이다.
동정호(洞庭湖)를 바라보며 우뚝 자리 잡은 악양루는 고대로부터 수많은 시인(詩人), 묵객(墨客)들이 아름다움을 칭송한 곳이다. 악양루는 여러 번 고쳐 지었는데 현재의 악양루는 1880년 청나라 광서제 때 다시 중건한 것으로, 누각의 높이는 20m, 3층 목조건물이고 현재 수리 중이었다.
이 악양루는 동오(東吳)의 명장 노숙(魯肅)이 수군(水軍)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볼 목적으로 세운 열군루(閱軍樓)를 716년 당나라 때 악주(顎州) 태수 장열(張說)이 수리하여 다시 세우면서 악양루(岳陽樓)라고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악양루는 다섯 번 고쳐 지었다는데 당시의 모습들을 작은 미니어처로 만들어 정원의 작은 연못 둘레에 세워놓았다. 그 중, 송나라 때 있었던 악양루가 가장 멋져 보인다.
또 정원 한쪽에는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쓴 악양루와 동정호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글들을 비석에 새겨 세워놓았는데 그중 두보(杜甫)의 오언절구(五言絶句) 한편을 소개한다.
登岳陽樓<등악양루> 악양루에 올라-두보(杜甫)
昔聞洞庭水(석문동정수) 오래전에 동정호에 대하여 들었건만
今上岳陽樓(금상악양루) 이제야 악양루에 오르게 되었네.
吳楚東南瞬(오초동남순) 오(吳)와 초(楚)는 동쪽 남쪽 갈라 서 있고
乾坤日夜浮(건곤일야부) 하늘과 땅은 밤낮 물 위에 떠 있네.
親朋無一字(친붕무일자) 친한 친구에게조차 편지 한 장 없고
老去有孤舟(노거유고주) 늙어가며 가진 것은 외로운 배 한 척
戎馬關山北(융마관산북) 싸움터의 말이 아직 북쪽에 있어
憑軒涕泗流(빙헌체사류) 난간에 기대어 눈물만 흘리네.
악양루 공원의 가장 안쪽에 소교(小喬)의 사당과 묘(墓)가 있다. 중국 삼국시대, 천하절색으로 강남이교(江南二喬)로 불렸던 두 여인은 교국로(喬國老)의 딸들인데 언니인 대교(大喬)는 오의 장사환왕(長沙桓王) 손책(孫策)의 부인이 되고, 동생 소교(小喬)는 오의 장수 주유(周瑜)와 결혼을 한다.
천하절색 소교(小喬)의 묘 / 악양루(岳陽樓)의 변천모습 / 당(唐)의 대시인 두보(杜甫) 초상화
적벽대전(赤壁大戰)이 발발하기 전, 촉한(蜀漢/유비)의 책사(策士) 제갈량(諸葛亮)은 손권(孫權:손책의 동생)을 찾아가서 참전을 유도하고자 계책(計策)을 쓴다.
당시 이들의 적이었던 조조(曹操)의 아들 조식(曹植)이 지은 동작대부(銅雀臺賦)에 조조가 대교(大喬)와 소교(小喬)를 탐하고 싶다는 내용을 슬쩍 집어넣어서 들려주었다고 한다. 격노한 손권은 전쟁을 결심하여 적벽대전(赤壁大戰)이 일어나고 조조는 촉(蜀)과 오(吳)의 연합군과 맞서다 적벽대전에서 대패한다.
삼국지 적벽대전을 생각하며 잡초만 무성한 소교의 묘를 둘러보니 인생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웨이양(岳陽) 관광을 마치고 우한으로 되돌아오는데 그곳에서 만난 한 젊은 중국여성이 영어를 썩 잘한다. 버스로 가기보다 동악양역(東岳陽驛)에서 열차를 타는 것이 훨씬 편할 것이라고 한다.
택시비 15元을 내고 동악양역에 내려 열차표를 구입했는데 1등석이 108元으로 조금 비싸다. 그런데 타고 봤더니 쾌속(快速)열차로 자기부상(磁器浮上)열차다. 80元 짜리 버스로 5시간 걸렸던 거리를 시속이 364km로 단 45분 만에 주파한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중국도 많이 발전했다.
우창역(武昌驛)에 내려 호텔을 찾으니 대도시인 탓으로 조금 비싼 편이다. 싼 곳을 찾아다니다 목란 비지니스호텔(沐蘭商務賓館)에서 잤는데 1박에 188元(3만4천 원)에 아침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