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경 제5권
45. 불설범지경(佛說梵志經)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유행하시면서 대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이때 세존께서는 새벽 일찍 옷을 입으시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성에 들어가셔서 차례로 걸식을 하셨다. 이렇게 음식을 구하며 돌아다니시다가 범지의 집 앞에 이르게 되셨다.
그때 그 범지는 멀리서 보니 세존께서는 그 위신이 높고 그 모든 감관이 적정하며, 마음이 매우 고요하여 여러 감각기관을 조복 받아 다시는 6쇠입(衰入)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마치 산등성이에서 떠오르는 해와 같았고,
보름달이 여러 별들 사이에서 홀로 빛나는 것과 같았고,
제석궁의 도리(忉利)에 있는 것과 같았고,
범천왕이 여러 범(梵) 가운데 있는 것과 같았고,
높은 산 위에 있는 대적설(大積雪)이 사방 먼 곳을 비추는 것과 같았고,
나무에 꽃이 무성한 것과 같았고,
그 마음의 담박함이 맑은 물과 같았다. 32상(相)이 몸을 장엄하며 80종호(種好)가 몸을 두루 싸서 위신(威神)이 빛나는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어 마치 해를 보는 것과 같았다.
그는 권속들과 함께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 맞이하며 부처님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특별한 자리에 앉으시도록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곧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그때 범지와 범지의 아내는 마음이 매우 기뻐 여러 종류의 음식과 향기롭고 정갈한 반찬을 마련하여 손수 지극하게 공양을 올렸다. 부처님께서 공양을 드시는 것을 마치고 발우를 거두시고 손을 씻으시자 그는 부처님께 경전의 설법을 청하고 자신은 낮은 자리를 취해 앉았다.
이때 세존께서는 즉시 범지와 그의 처자와 부리는 종복들을 위하여 경전을 설하셔서 그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시고 그 뜻을 분별하셨다.
모든 부처님의 도를 그 본원에 따라서분별하여 연설하시고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일심(一心)ㆍ지혜(智慧)를 설하시어 병에 따라 약을 주듯 하시니, 즉시 마음이 열려 고(苦)ㆍ습(習:集)ㆍ진(盡:滅)ㆍ도(道)를 깨달았다.
이에 범지와 그의 처자와 종복들은 곧 그 자리에서 4성제(聖諦)를 체득하고 그 말의 요지를 터득했다. 그리하여 즉시 천안(天眼)을 얻고 불(佛)ㆍ법(法)ㆍ승(僧)에 귀의하고 5계(戒)를 받들어 수지하였다.
이에 범지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큰 성인의 넓은 은혜로 이로운 뜻을 얻었으니, 이것이 오늘의 큰 수확입니다.
여러 가지 걱정거리를 벗어나게 하시니, 이것이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께서 구제해주신 것입니다.
마치 큰 구름이 허공 가운데 있어서 천하에 널리 비를 뿌려 많은 곳을 윤택하게 하는 것과 같이 세존께서도 이와 같이 늘 크게 가엾게 여기시고 지극한 자비심으로 널리 큰 법을 설하십니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오늘 범지가 한 말을 들었느냐?”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미 보고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이 범지는 여러 권속들과 함께 큰 이익을 얻어 이와 같이 구족하였느니라. 나는 다른 세상에서도 이 범지에게 널리 이익을 얻게 하였느니라.
과거 아주 오랜 옛날 세상에 바라내성(波羅柰城)에 소수(所守)라고 하는 한 존자가 있었는데, 그는 범지(梵志) 종성이었다. 지혜가 뛰어나고 총명하며 의리(義理)를 식별해서 잘 알고 그와 마주하여 이야기를 하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부드럽고 아름답기에 왕은 그를 존경하여 항상 왕의 마음으로 가상하게 여겼다.
그 나라에는 포도와 술과 마실 음료와 먹을 것이 고루 갖추어져 있어 왕과 백성들은 먹고 마시는 것을 즐겼다. 그때 범지는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어서 즐길 수 있는 것을 많이 만들어서 왕을 놀라게 하고 기쁘게 하였다.
왕이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많은 것을 하사하려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범지가 왕에게 말했다.
‘제가 집에 가서 아내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 오겠습니다.’
왕이 그러라고 허락하였다.
범지는 즉시 집으로 돌아가 그 아내에게 물었다.
‘내가 특별한 기술로 왕을 기쁘게 해드렸더니 내게 소원을 물으셨소.
당신은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내게 솔직히 말하면 그대를 위하여 내가 그것을 가져오리다.’
아내가 범지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원하시는데요?’
그 남편이 대답하였다.
‘나는 현(縣) 하나를 원하오.’
그 아내가 대답하였다.
‘당신이 현읍을 원하신다면 저는 온갖 종류의 영락 장식과 팔찌와 머리에 꽂는 장식과 여러 가지 의복과 노비와 우유와 소락과 제호와 음식을 원합니다.’
이때 범지는 그 아들에게 다시 물었다.
‘너는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 아들이 대답하였다.
‘제 소원은 걸어다니지 않아도 좋게 말이 끄는 수레를 얻어서 왕태자나 대신들과 함께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범지는 다시 딸에게 물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 딸이 대답하였다.
‘제가 원하는 것은 보석으로 제 몸을 장식하고 좋은 옷을 입어서 천 명의 여자 가운데 홀로 뛰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소원이 있겠습니까?’
이때 범지는 다시 노비에게 물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남자 종이 대답하였다.
‘저는 수레와 소와 밭을 갈고 경작하는 도구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자 종이 말했다.
‘저는 방아를 얻어 봄에 곡식을 갈아서 가루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4대(大)로 된 사람은 먹을 것을 얻지 못하면 기쁘지 않고 스스로 편안함이 없습니다.’
그때 범지는 왕에게로 돌아가서 그 전말을 자세히 말했다.
그 처자와 노비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했다.
그리고는 게송으로 다시 읊었다.
대왕이시여, 소원을 들어주소서.
소원이 각각 다르나이다.
제 가족들의 마음이 각각 다르니
아내는 온갖 종류의 영락을 원하고
아들은 말이 끄는 수레를 타기 원하며
딸은 보배 장식을 원하고
저에게는 노비가 있는데
밭가는 기구와 방아를 원하나이다.
이에 왕이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그대가 원하는 대로 주는 것이
내 마음과 어긋나지 않느니라.
마땅히 범지로 하여금
모두 기쁘게 하리라.
왕은 모두 이를 하사하여
각각 원하는 대로
뜻하는 바대로 구족하리니
기뻐서 한점도 여한이 없으리.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때의 국왕이 누구였었는지 알고 싶으냐? 이는 나였느니라.
그때의 범지는 지금의 범지였고, 그때 범지의 아내는 지금의 범지의 아내이며, 그때의 아들은 지금의 아들이며, 그때의 딸은 지금의 딸이며, 그때의 남종은 지금의 남종이며, 그때의 여종은 지금의 여종이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