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화수경 제9권
30. 불퇴전품[5]
[방음왕의 태자]
아난아, 지나간 세상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겁에 곧 이 세계 남섬부주에 큰 나라 왕이 있었으니, 이름은 방음왕(方音王)이었다.
대부인이 태자를 낳았는데, 때에 여러 하늘ㆍ신이 똑같은 소리로 말하기를
‘착한 법을 행할 사람이 이제 세상에 출현하셨다’고 하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놀라 괴이하게 여기면서,
‘무엇을 이름하여 법이라 하고, 무엇을 법 아니라 이름하는가’고 하였다.
아난아, 이 태자는 점점 자라고 커서 나이 일곱 살에 이르렀다.
부왕 있는 곳에 나아가서 머리를 땅에 대고 발아래 절하고 나서 한쪽에 서서 부왕에게 여쭈었다.
‘어떤 것이 법이며, 어떤 것이 법 아니겠나이까?’
때에 방음왕은 게송으로써 답하였느니라.”
보시하고 계를 지니고 애욕을 끊고
참음을 행하여 여러 선복(善福)에 굳게 머물러
살생ㆍ도둑질ㆍ음행 등 나쁜 짓 여의면
이를 이름하여 여러 성현들이 칭찬하신 법이라 하네.
“이때에 태자는 게송으로써 물었느니라.”
부모님이 말씀하신 법은
집에 있어 나라를 다스리면
두루 행할 수 있나이까?
원컨대 이 뜻 일러 주소서.
행할 수 있나이까, 행할 수 없나이까?
원컨대 사실대로 답하여 주소서.
진실한 말은 나쁜 길[惡道] 건너나니
지옥에 떨어질 것 무섭지 않습니다.
거짓말은 나쁜 데에 떨어지나니
무간의 옥고 반드시 받으리.
이런 까닭에 거짓말 마시고
사실대로 저를 위해 말씀하소서.
“때에 방음왕은 게송으로써 답하였느니라.”
만일 집에 있으면서 나라 다스리면
여러 가지 착한 일 갖추 할 수 없네.
칼과 회초리로 사람을 때리니
이 가운데 무슨 법이 있으랴?
만일 사람이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나는 화가 나서 욕을 퍼붓네.
남의 재물 억지로 빼앗고
결박하고 가두어 매질까지 하네.
내가 만일 대궐을 나서 노닐게 되면
백성들은 모두 무서워하고 두려워해
모두들 생각하기를
왕이 납시는데 우리는 벌을 받지 않을 것인가?
만일 내가 정좌하고 있으면
벼슬아치들이 죄인을 끌고 와서
내 앞에 꿇어앉혀
왕이 뜻대로 다스리라고 말하네.
나는 그 죄인의 허물을 심문한 후
곧 매질을 더하여 해치네.
다만 남의 일을 위하기 때문에
내 스스로 뭇 죄업을 짓는가?
죄를 늦춰 주면 서로 방해돼
국토가 곧 어지럽고 무너지리.
그러므로 내가 괴롭게 다스리면
백성들은 곧 무서워 떠네.
왕의 큰 위엄이라 말하는 것은
몹시 악하여 자비가 없네.
그 누구가 이 나라에 살면서
감히 교칙에 따르지 않으랴?
때에 태자 법행은
왕에게서 이 게송 듣고
싫은 마음 나서 왕께 여쭙기를
나는 법을 갖추 행하고자 하나이다.
나는 나라의 왕위를 탐내어
남 위해 죄업은 안 지으리.
마땅히 부모님 여의고서
출가하여 법을 갖추 닦겠나이다.
만일 왕께서 들어주지 않으시면
저는 여기서 반드시 스스로 해해
독약 마시거나 높은 데서 떨어지거나
혹은 칼로써 자살하겠소.
왕은 아들의 맹세를 듣고 나서
크게 근심 걱정되어 말하기를
그대는 뜻대로 즐겨 하라.
내가 나라 다스리는 일 담당하리.
마땅히 그대는 재산을 네 마음대로 하고
여러 숲에서 노닐지니
어째서 출가하여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려느냐?
젊었을 때엔 오욕을 받고
늙거들랑 꼭 출가하라.
목숨이 재촉하면 믿음은 보존키 어렵지만
억지로 싫은 생각은 내지 말라.
답해 말하되 세상 나가 받는 것이
싫은 건 없지만 화와 고통만 더해
출가하여 뭇 더러움 여의고
자비와 기쁨을 닦아 행하고저.
비고 한가한 들에 홀로 있어
여기서 깨끗한 업 일으켜
이곳에 의지하여
계를 갖고 범행을 닦아
대왕이시여, 같이 출가하소서.
나라와 백성이 우리에게 무슨 이익
남 위해 악업 짓고
지옥 고통 스스로 받아
뜨거운 무쇠 탄환 삼켜야 하고
끓는 구리쇠 물 마셔야 하오.
삿된 행으로 죄업만 일으켜
지옥 가운데로 옮겨 다니네.
무쇠 못으로 그 몸에 못질
뜨거운 쇠줄로 몸을 결박
또 쇠로 된 밭갈이 소로
갈고 찢어서 그 몸을 헐어
옥졸은 몹시도 무서워
푸른 눈 부라리는 노랑머리
사람을 끌고 확탕지옥에 가
쇠창으로 몸을 찌르네.
천만 세를 지나면서
여러 고통 갖추 받지만
죄업이 깊고 중한 까닭에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네.
만일 확탕에서 나온다 해도
큰 불구덩이에 다시 들어가
그 몸에 모진 불길 일어나
마른 대나무 숲 태우듯 하네.
불구덩이에서 나오면
다시 불산으로 떨어져
불산 밑에서 나온다 해도
끓는 똥구덩이로 다시 들어가네.
여기서 끓는 불길 일어나
쇠 벌레가 몸을 빨아
한량없는 억천 세를 두고
그 가운데서 솟았다 빠졌다 하네.
혹시 여기서 벗어나더라도
대[竹]로 찌르는 숲으로 다시 들어가
맹렬한 불이 큰 불길 일으켜
뜨거운 숯으로 몸을 태우네.
이 숲 속에 들어갈 때엔
사방에서 큰 바람 일어나
이 대숲 흔들어 움직이면
그 몸을 찌르고 베네.
혹시 여기를 벗어나더라도
즉시 칼산으로 다시 들어가
가지와 잎이 칼과 창
칼이나 창과 같아.
이 숲 속에 들어갈 때엔
사방에서 모진 바람 일어
바람 따라 여러 가지 날카로운 칼이 쏟아져
몸뚱이를 조각조각 베고 끊네.
이렇게 쏟아진 칼과 검이
몸을 베어 끊을 때
한량없는 억천 세에
고통을 참을 수 없다.
혹시나 여기서 벗어나더라도
잿물 강[灰河]으로 이내 들어가
가죽과 살은 모두 썩게 하고
뼈만 남아 앙상히 이어 있네.
한량없는 세월 지나면서
뭇 고통을 갖추 받다가
혹시 여기서 나오더라도
끓는 구리쇠 강[鎖銅河]으로 다시 들어가
녹인 구리쇠가 가득 차 넘어
물결 칠 적에 큰 소리 나네.
백천 둘레를 돌고 돌며
물결이 솟고 파도가 높이 날려
흘러서 지옥 구덩이로 지날 제
죄인은 모조리 이 가운데 들어가
이 속으로 떨어질 적엔
파도에 밀려 엎치락뒤치락.
언덕이나 밑에 닿을 수 없어
중류에 떠다니며 빠졌다 솟았다
혹시나 여기서 벗어나도
나찰 귀신이 언덕에서 기다리네.
노란 눈에 이빨은 긴데
그만 잡더니 마구 결박
그가 잡고서 묻기를
그대는 무엇을 요구하느냐?
답하기를 나는 굶주렸다
오직 먹을 것 찾는 게 급하다.
즉시에 악독한 나찰은
뜨거운 무쇠 땅바닥에 놓더니
뜨거운 무쇠 탄환 삼키게 하여
오장을 태워 익혀버려
안팎을 함께 태워 놓았네.
멀리 큰 잿물 강을 보고서는
서늘하고 찬 샘이라고 말하니
달려가서 스스로 몸 던지네.
만일 여기를 벗어나도
끓는 똥못으로 도로 들어가고
칼산과 불구덩이로
이런 뭇 고통에 돌고 도네.
왕의 부귀는 무상한 것
머지않아 반드시 패하고 허물어지네.
몸과 목숨 그리고 부귀는
모두 무상하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셔
그러니 저의 말 받으셔서
나라 버리고 같이 출가하소서.
목숨 마치면 반드시 하늘에 나고
뭇 고통도 또한 여일 수 있어
출가하여 공한(空閑)한 곳에서
깨끗한 계와 선정 닦으소서.
언제나 자비를 즐겨 행하고
공한 적멸도 또한 닦아
그때엔 저절로 알게 되리.
더불어 같을 이 없는 것을.
고요하고도 즐거움과
편안함을 얻은 것은
마치 대범천왕의
안락한 것과 같으리.
태자의 이와 같은 말에
그때의 왕과 부인과
아울러 나머지 온갖 무리들은
능히 막아 만류하는 이 없었네.
왕자는 출가하고 나서
법을 구하고 선정을 닦아
5신통을 갖추어
중생 위해 법문 연설하였네.
적멸의 마음 닦아 행해
공(空)ㆍ무아(無我)의 여러 가지 법
얽거나 풀 것 없음을 즐겨 설명
언제나 이 같은 법 설하였네.
여러 사람아, 이제 모두
일심으로 법을 바로 보라.
이 음(陰)ㆍ계(界)ㆍ입(入) 가운데
어디에 나와 내 것이 있는가?
백천억의 중생들이
법 듣고 나서 출가하였고
부왕과 부인도
법에서 또한 출가했네.
이 사람 출가하고 나서
이런 서원 말하였네.
왕자가 구한 법을
원컨대 나도 모두 얻기를.
이 보살을 따라 배워
위없는 마음 모두 발하네.
그가 말한 법에 따라
부처 이루어 열반에 들었네.
아난아, 저 왕자는
법 구해 부모 교화하여
불법에 머무르게 한 이니
다른 사람이라 하겠느냐?
아난아, 그대는 의심 말라.
곧 지금의 내 몸이 바로 그이니라.
중생 위해 큰 이익을
불법 가운데 머무르게 했다.
나는 뜻을 발한 때로부터
언제나 한마음으로 법을 구해
부지런히 정진하고 힘이 굳세어
마침내 게을러 쉰 때가 없었다.
나는 언제나 이 법 닦되
게으른 마음 없었네.
마침내 의심조차 안 냈으니
불도를 마땅히 얻었을 것 아니냐?
늘 보리를 즐겨했고
훌륭한 정진 닦아 익혔네.
기쁜 마음으로 법을 구했기 때문에
가장 훌륭한 지혜 얻었네.
만일 누구든지 법 구하거든
마땅히 나처럼 닦아 배우라.
마침내 물러서 이로움 잃지 않고
부처 이루어 법 바퀴 굴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