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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영락경 제9권
26. 무착품(無着品)[1]
[집착 없음]
이때에 부처님께서 사부대중인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및 여러 보살마하살ㆍ하늘ㆍ용ㆍ귀신 등 8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일체지(一切智)에 미치고자 하거나,
보살의 지위에 오르고자 하거나, 금강삼매(金剛三昧)를 얻고자 하거나,
마군의 관속(官屬)을 항복시키고자 하거나,
일체 모든 법문의 총지(總持)에 이르고자 하거나,
피차(彼此)의 분별을 여의고자 하거나,
부처님의 나무[佛樹]를 장엄하고자 한다면,
선남자나 선여인으로서 마땅히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익혀야 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선남자나 선여인이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이 해서 중생을 교화하고, 한 부처님 나라로부터 한 부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면서 예경하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배워야 하느니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의 기특한 법으로 매우 존귀하고 소중한 것을 얻고자 하며,
또 어떤 중생이 삼계에서 색음(色陰)의 형상을 받지 않고 다섯 가지 근심[五患]을 여의고 5도(道)에 처하지 않게 하고자 한다면,
이런 선남자나 선여인은 마땅히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닦아 익혀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선남자와 선여인이여, 내가 반열반[般泥洹]을 한 뒤에 바른 법[正法]이 점점 쇠퇴하면, 많은 중생들이 법복(法服)에 의탁하여 적은 이양(利養)을 탐내느라고 도의 마음을 거짓으로 발하여 바른 법을 훼손하고 청정한 뜻이 없어지리니,
삼보(三寶)의 지극히 어진 행을 믿지 않는 이와 같은 무리의 사람들은, 비록 나의 대중 가운데 속해 있지만 나와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느니라.
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닦아 익히면, 비록 범부(凡夫)에 있으면서 보살 지위에는 못 올라갔더라도 마음을 굳건히 잡아서 도의 뜻을 버리지 아니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가령 억백천만 유순(由旬)밖에 있더라도 오히려 나와 거리가 가까우니라.
왜냐하면 이 선남자나 선여인은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닦아 익혔기 때문이니라.”
이때에 이름이 명관(明觀)이란 보살이 있었는데, 그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하고는 앞에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어떤 것을 이름하여 여래 지진의 집착 없는 행이라 하나이까?
오직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는 낱낱이 분별하시어 모인 이들로 하여금 각각 깨우쳐 이해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명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물으리니, 그대는 마땅히 나에게 답하여라.
어떠한가, 족성자야. 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명호를 명관(明觀)이라고 하였는가?
색(色)을 밝게 관찰하기에 그렇게 불리는 것이냐?
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 때문이냐?
몸으로 인(因)함이냐, 이름[名]으로 인해 그러한 것이냐?
무엇을 인해 명호를 명관이라 하였느냐?”
이때에 명관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색을 관하오니 색이 아니고 또한 색이 있지도 않나이다.
색의 성품은 스스로 공하여 또한 색이 있지 않나이다.
나의 색과 다른 색이 본래 있는 바가 없으며, 색의 공은 본래의 공이요 색의 성품은 스스로 공이옵나이다.
모든 법은 스스로 그러해서[自然] 다시 스스로 그러함이 없고, 온갖 법은 치연(熾然)해서 본래 스스로 그러함이 없나이다.
색을 관하오니 생겨남이 없고, 또한 생겨남을 보지 않나이다.
생겨남[生]이 스스로 생겨남이 없거늘 하물며 마땅히 색인들 있겠습니까?
다만 중생은 어리석은 마음에 젖어 있어서 능히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마침내 괴로움을 초래해서 생사(生死)에 떨어져 5도(道)를 헤매며, 몸이 죽고 이름이 멸하면 또다시 몸을 받나이다.
그러나 여래 대성(大聖)은 물들어 집착한 바가 없어서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를 알아 온갖 속박과 집착을 여의고,
뭇 행의 근원이 모조리 공에 돌아가니,
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또한 다시 마찬가지입니다.
식(識)을 관하니 식이 아니고 또한 식이 있는 것도 아니나이다.
식의 성품은 스스로 공하여 또한 식이 있지 않으며, 나의 식과 저의 식이 본래 있는 바가 없나이다.
식의 공은 본래의 공함이요, 식의 성품은 스스로 공하며,
모든 법은 스스로 그러해서 다시 스스로 그러함이 없고, 모든 법은 치연하여서 본래 스스로 그러함이 없나이다.
식을 관하오니 생겨남[生]이 없고 또한 생겨남을 보지 못하며, 생겨남도 스스로 생겨남이 없거늘 하물며 식인들 있겠습니까?
다만 중생은 어리석은 마음에 젖어 있어서 능히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마침내 괴로움만 초래해서 생사에 떨어져 5도(道)를 해매며, 몸이 죽고 이름이 멸하면 또다시 형상을 받나이다.
그러나 여러 대성은 물들어 집착하신 바가 없어서 그 근원을 알아 온갖 속박과 집착을 여의시었고,
뭇 행의 근원은 모조리 공에 돌아가니, 집착함이 없는 온갖 행도 또한 다시 마찬가지이나이다.
스스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이루거늘, 하물며 선남자나 선여인이 듣고서 이내 불ㆍ법ㆍ승을 믿어 이해하는 것이겠나이까?
이것을 이름하여 집착 없는 행[無着行]이라 하나이다.”
이때에 명관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으로 하여금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듣게 하고 문득 그 가운데서 보살의 마음을 발하게 한다면,
비록 그런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또한 여러 부처님 세존께 공양하지 않으면,
이것은 여래의 집착 없는 행에 소모만 있을 뿐이나이다.
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서 집착 없는 행을 기꺼이 닦음을 감당하지 못하더라도,
능히 스스로를 극복하고 질책해서 집착 없는 행을 생각하여 일념 사이에도 잊어버리지 않으면,
문득 위없는 지극히 참된 도의 뜻을 발할 수 있거늘 하물며 독실하게 믿어서 받들어 행함이겠습니까?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의 금강삼매(金剛三昧)를 얻어서 크나큰 서원의 마음을 발하여, 이를 막거나 헐 수 없다면,
이것은 모두 여래의 집착 없는 성행(聖行)을 말미암아 성취하게 된 것이옵나이다.
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삼매(三昧)를 얻으면, 왕(王)삼매를 이름하여 분신용(奮迅勇)이라 부르는데,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문득 온갖 마군의 권속을 항복시킬 수 있나니,
이는 선남자나 선여인이 모두 집착 없는 성행을 말미암아서 이룬 것이나이다.
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공법(空法)의 한량없는 성행(聖行)을 믿을 수 있어서
4의지(意止)를 닦아 생각 생각마다 성취하고, 안팎을 분별하여 비고 고요해서 형상이 없다면,
이것은 모두 여래의 집착 없는 성현의 행을 말미암은 것이옵나이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4신족(神足)을 얻어서 심식(心識)이 자유로워 앉거나 눕거나 거닐거나에 걸림이 없고,
시방 한량없는 세계에 노닐면서 여러 부처님을 예배하고 섬기면서 공양한다면,
이것도 또한 다시 이 여래의 집착 없는 성현의 행을 말미암은 것이나이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 및 보살마하살이 4의단(意斷)으로부터 열여덟 가지 법[十八法]과 37(品)까지 획득하여 부처님 국토를 장엄해서 뭇 상호(相好)를 이루고,
여덟 가지 음성이 범천(梵天)보다 뛰어나서 그 중생이 부처님의 음향을 듣고 해탈을 얻는다면,
이것도 또한 다시 여래의 집착 없는 성현의 행이옵나이다.
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낱낱이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사유해서 다시는 물들어 집착함으로 옳고 그름의 상념을 일으키지 않으면,
이 세 가지 관[三觀]을 인연으로 마땅히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이루리니,
이것도 또한 다시 여래의 집착 없는 성현의 행이옵나이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무수한 온갖 부처님으로부터 보살의 수기[菩薩授記]를 받아 마땅히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이루어서 마침내 뜻이 굳건하여,
끝내 중간에서 물러나지 않고 또한 뭇 마군에게 능히 파괴되지 않는다면,
이것도 또한 다시 여래의 집착 없는 성현의 행이옵나이다.”
[명현 보살에게 수기하시다]
이때 명관보살이 이 여래의 집착 없는 성현의 행을 설할 때에 84억의 중생의 무리가 여래의 집착 없는 성현의 행을 기꺼이 원하면서 구하고자 하였고,
다시 수없는 무리가 명관보살에게 가까이 가서 스승[師宗]으로 삼을 것을 구하였다.
그리고 다시 한량없는 중생이 저마다 이런 생각을 내었다.
‘오늘 명관 보살마하살은 오래 있으면 마땅히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이룰 것이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대중들의 마음이 저마다 이런 생각을 내는 것을 아시고는 문득 명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제 능히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펼쳐서 창달하였으니, 여래의 거룩한 지혜[聖慧]는 다할 수 없느니라.
앞으로 수없는 아승기겁 후에 여기서 위쪽으로 50항하 모래 수효의 여러 부처님 찰토(刹土)를 지나가면, 부처님의 이름이 무구(無垢)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신데, 순전히 1승(乘)만으로 중생을 교화하므로 연각(緣覺) 제자의 이름은 듣지 못하느니라.
이곳에서 그대는 마땅히 부처가 되어서 그 이름을 명관(明觀)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라 하고, 불세존(佛世尊)이라 호칭하리라.
그대가 마땅히 부처가 되면, 그 명호가 이와 같으니라.”
[수기의 여덟 가지 인연]
그때에 모인 온갖 중생은 여래께서 명관보살에게 수기[決]를 주는 것을 보고는 깨달아 아는 중생도 있고 깨달아 알지 못하는 중생도 있었다.
이때에 부처님께서는 사람들 마음에 저마다 의심을 품은 것을 관찰하셨으며,
부처님께서는 그 뜻을 아시고 문득 명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 대중 속에서 보살에게 수기를 주었는데, 깨달아 아는 이도 있고 깨달아 알지 못하는 이도 있다.
이에 여덟 가지 인연[八因緣]이 있으니, 어떤 것이 여덟인가?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의 수기를 얻어 마땅히 위없는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無上平等正覺]을 이루게 되었는데, 온갖 대중이 능히 아는 자가 없다면,
이것을 소위 여래가 중생에게 수기를 주지만 자기 몸은 스스로 깨달아도 나머지 사람은 모른다고 이르느니라.
다시 명관아,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대중 속에 있으면서 여래에게 수기를 받았지만,
나머지 사람은 모조리 보아도 자기는 깨달아 알지 못하면,
이것을 소위 여래가 중생에게 수기를 주지만 나머지 사람은 다 보아도 자기는 깨달아 알지 못한다고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명관보살마하살아,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러 부처님에게 수기를 받게 되어서
‘너는 마땅히 부처를 이룰 것이고, 그 명호는 이와 같으니라’고 하면,
자기도 수기 받은 줄 알고 나머지 사람들도 또한 본다면,
이것을 소위 여래가 중생에게 수기를 주시자 자기도 스스로 깨달아 알고 나머지 사람들도 또한 본다고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명관보살마하살아,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여래에게서 수기를 받게 되는데,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 나머지 사람들도 또한 알지 못하면,
이것을 소위 여래께서 중생에게 수기를 주시는데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 나머지 사람들도 또한 알지 못한다고 이르느니라. ”
부처님께서 다시 명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여래의 수기를 받는데,
그러나 이 수기를 받은 이는 말석[末行]에 있어서 여래를 가까이하지 못하고,
여래를 가까이하는 이는 스스로 내가 수기를 받았다고 이르니,
이것을 소위 여래가 중생에게 수기를 주시는데, 멀리 있는 이는 깨달아 알고 가까이 있는 이는 깨닫지 못한다고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명관보살마하살아,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여래에게서 수기를 받게 되는데,
여래를 가까이한 이는 문득 스스로 깨달아 알아서 ‘오늘 여래께서 나에게 수기를 주었다’ 하고,
여래를 멀리한 이는 다시 스스로 일컫기를 ‘여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수기를 주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중생은 응당 수기를 받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소위 여래가 중생에게 수기를 주시는데, 가까운 이는 깨달아 알고, 멀리 있는 이는 깨닫지 못한다고 이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명관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러 부처님께 수기를 받게 되어서
‘장차 부처를 이룰 때에 그 명호가 이와 같다’고 하시면,
가까이 있는 이는 깨닫지 못하고 멀리 있는 이도 또한 알지 못하니,
이것을 소위 여래께서 중생에게 수기를 주시는데, 멀고 가까운 중생이 모두 깨달아 알지 못한다고 이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명관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여래에게 수기를 받게 되는데,
가까운 이가 깨닫기도 하고 먼 이가 알기도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
이것을 소위 여래의 여덟 가지 인연법[八因緣法]으로 중생에게 수기를 주는데,
가까운 이가 깨닫기도 하고 먼 이가 알기도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고 이르느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사부대중인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와 보살마하살ㆍ하늘ㆍ용ㆍ귀신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등 사람과 사람 아닌 이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명관보살이 수기를 받는 것을 보았느냐?”
“못 보았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여래에게 수기를 받는데, 처음 도의 마음을 발할 때부터 수기를 받음이 같지 않느니라.
이제 이 명관보살이 여래의 수기를 받으매 자기는 스스로 깨달아 알았으되 나머지 사람은 깨닫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사람은 여래의 4무소외(無所畏)를 얻지 못해서 마음을 발하여 스스로 서원하지만 널리 중생에게 미치지 못하고, 또한 훌륭한 권도의 방편도 얻지 못하였느니라.
이런 까닭에 수기를 받아도 자기 스스로는 깨달아 알지만 나머지는 깨닫지 못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의 수기를 받으매 뭇 사람은 모두 보지만 자기는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한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뜻을 발함이 크고 넓어서 널리 중생에게 미치고, 4무외를 얻어서 마음을 발함이 넓고 크며, 훌륭한 권도의 방편이 있어서 중생을 교화하나니라.
이런 까닭에 수기를 받으매 나머지는 모두 깨닫지만 자기는 스스로 알지 못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에게서 수기를 받으매 자기도 스스로 알고 나머지 사람도 또한 본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7주지(住地)에 있으면서 공관(空觀)을 분별해서 중생에게 물들어 집착하는 상념[染着想]이 있음을 계교하지 않고,
처음 도의 마음을 발해서도
‘내가 나중에 부처를 이루면 저 처소의 중생은 제도하고 저 처소의 중생을 제도하지 않으리라’라는 생각을 내지 않고,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무너뜨릴 수 없다.
그리하여 여래의 4무외를 얻고, 공관삼매(空觀三昧)와 훌륭한 권도의 방편을 얻으니,
이런 까닭에 수기를 받으매 자기 몸이 스스로 알고 나머지 사람도 또한 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의 수기를 받으매 자기 몸이 깨닫지 못하고 나머지 사람도 알지 못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7주(住)의 불퇴전 경지[不退轉地]에 있지 못해서 비록 훌륭한 권도의 방편으로 3존(尊)을 믿어 즐기고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지만,
그러나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얻지 못하여서 능히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하고 중생을 교화하지 못하나니,
이런 까닭에 수기를 받지만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나머지 사람도 보지 못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의 수기를 받으매 먼 곳에 있는 이는 수기를 얻고 가까운 곳에 있는 이는 얻지 못한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미륵(彌勒)의 몸에 해당되느니라. 왜냐하면 이 선남자나 선여인은 갖가지 근(根)이 갖추어져서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버리지 아니하기 때문이니라.
이런 까닭에 수기를 받으매 먼 데 있는 이는 스스로 깨닫고, 가까이 있는 이는 알지 못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에게 수기를 받으매 가까이 있는 이는 깨달아 알고 먼 데 있는 이는 보지 못하며, 또한 모인 대중이 능히 헤아릴 수 없다고 하면,
이와 같은 무리의 사람은 보살의 지위가 있지만 아직은 성현의 행을 능히 연설하지 못하나니, 지금의 사자응(師子應)보살에 해당되느니라.
뭇 상을 갖추어서 법의 근본을 버리지 않고, 상념 없는 법 가운데서 법의 성품을 헐지 않으니,
이런 까닭에 수기를 받으매 가까이 있는 이는 깨달아 알고 먼 데 있는 이는 보지 못하고, 또한 모인 대중이 능히 헤아릴 수없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에게 수기를 받으매 가까이 있는 이도 알고 먼 데 있는 이도 본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뭇 행이 갖추어져서 부사의한 한량없는 불사(佛事)를 행하여 생사의 바다를 초월해 무위의 경지[無爲岸]에 이르느니라.
왜냐하면 이 선남자나 선여인은 갖가지 근이 갖추어져서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버리지 않고,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고, 부사의함을 일으켜 부처님의 신령한 덕을 드러내기 때문이나니, 지금의 유순(柔順)보살이 이에 해당되느니라.
이런 까닭에 가까운 데 있는 이도 또한 알고 먼 데 있는 이도 또한 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부처님에게서 수기를 받으매 가까이 있는 이는 알지 못하고 먼 데 있는 이도 보지 못한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뭇 행을 갖추지 못했고 훌륭한 권도의 방편도 얻지 못해서 비록 5욕(欲)의 한가운데를 떠났다 하더라도 여래의 법장(法藏)을 능히 갖추지 못하니,
지금의 등행(等行)보살이 해당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여덟 가지 인연법을 받들어 지니면서 닦아 익힌다면, 내가 이제 그를 내 몸과 다름없이 볼 것이며, 그는 또한 시방의 여러 부처님에게 옹호를 받게 되리라.”
그때에 석제환인(釋提桓因)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하고는 한쪽에 서 있었다.
잠시 후에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서 꿇어앉아 합장한 채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의 이름은 구익(拘翼)이요, 호는 천제석(天帝釋)이옵나이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여쭈는 바를 들어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구익아, 의심나는 것이 있거든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여래의 집착 없는 행을 일으켜 나타내고, 수기를 받는 여덟 가지 인연법을 갖춘다면,
저희들 모든 하늘들은 마땅히 이 선남자나 선여인을 옹호할 것이며,
마지막 성취에 이를 때까지 끝내 중도에서 물러나 나한이나 벽지불의 도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나이다.”
그때에 석제환인이 곧 부처님 앞에서 찬탄하는 게송을 읊었다.
본무(本無)는 집착한 바 없어서
온갖 나쁜 갈래 영원히 여의었는데
어째서 여래께서는 지금
수기 주시는 데 높고 낮음이 있나이까?
옛적 수없는 겁으로부터
공훈을 헤아릴 수 없으니
공을 쌓고 뭇 덕을 모아
일체의 뭇 상호 갖추셨네.
여래는 모든 법의 근본
나고 멸하고 집착하고 끊음이 없으니
존자께서 이제 수기를 주시면서
높고 낮은 모습을 논하시네.
정(定)을 얻어 상념을 일으키지 않고
나고 멸함에 있는 바가 없으니
온갖 법은 허깨비 같아서
명호는 진실이 아니라네.
본래 온 바를 알아서
무생(無生)의 법을 원하고 즐기며
세 가지 통달한 지혜를 연설하시어
한계로부터 무한에 이른다네.
이제 제석천을 위하여
온갖 결박을 풀고 맺힘을 없애 주시고
원컨대 세존이시여, 수기를 주십시오.
오래도록 한결같이 하여 정각에 미치겠나이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석제환인에게 답하셨다.
그대 지금 천제석이여
공덕과 뭇 행이 지극하니
바로 무수한 세상으로부터
덕을 쌓은 광명존(光明尊)이라네.
이제 천제의 몸 되어
크고 작은 겁수를 거치면서
36가지의 성패(成敗)가 있었지만
본래의 요긴한 서원은 버리지 않았네.
천 명의 부처 형제가 지나가고
다시 현겁(賢劫)의 이름은 없으며
중간이 영영 끊어져서
24중겁(中劫)이 되었네.
그 후에 곧 부처님이 출현하시니
10력(力)과 무소외(無所畏)
청정한 덕을 갖춘 보존(普尊)이고
찰토(刹土)의 이름은 보인(普忍)이네.
그 부처님 지극히 장수하여
세상에 7겁이나 사시면서
교화를 두루 마치고서
길이 적멸하여 멸도를 취하니,
법을 남겨 세상을 교화하면서
또한 다시 7겁을 지나는데
점점 법이 다해 없어지니
3존(尊)의 이름도 듣지 못하네.
중간이 다시 끊어져서
다시 5겁을 지나야 하지만
그대는 저 찰토에서
반드시 여래의 지위를 이으리라.
내 이제 너에게 주는 수기는
본무(本無) 여래의 인(印)이고
명호는 무착존(無着尊)이니
삼계에서 가장 으뜸가리라.
홀로 걸으며 동등한 짝이 없고
법을 설하매 다함이 없어서
장차 아승기겁에 걸쳐서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리라.
그때에 석제환인이 부처님께서 이미 수기를 내리심을 듣고는 땅에 엎드려서 발아래에 절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을 에워싸고 세 번을 돌고 나서 도로 제자리에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