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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일아함경_20. 선지식품(善知識品)[3]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수없이 많은[無央數] 대중들에게 둘러싸여서 설법을 하고 계셨다.
그때 담마류지(曇摩留支)는 고요한 방에서 혼자 사유하다가 선삼매(禪三昧)에 들어, 자기 전생(前生)의 몸이 큰 바다 속의 물고기였는데, 그 몸의 길이가 7백 유순(由旬)이나 되었던 것을 알았다.
그는 곧 고요한 방에서 나와서, 마치 역사(力士)가 팔을 굽혔다 펴는 만큼의 아주 짧은 시간에, 저 큰 바다로 가서 옛날 자신의 시체 위를 거닐었다.
[0]
그때 담마류지는 곧 이런 게송을 읊었다.
무수한 겁(劫)을 나고 죽고 하면서
돌아다닌 것 헤아릴 수 없으니
사람마다 편안한 것을 구하지만
끊임이 없이 괴로움만 받는구나.
가령 내가 또 그 몸을 보고 나서
마음에 내가 살 집을 만들고 싶어할지라도
사지와 뼈마디가 모두 허물어져
완전한 형체를 얻을 수 없네.
마음이 이미 모든 행 여의었으면
애착도 아주 사라져 없으리니
다시는 이 따위의 몸 받지 않고
영원히 열반(涅槃)을 누리리라.
그때 존자 담마류지는 이 게송을 마치고 나서, 곧 그곳에서 사라져 사위국 기원정사(祇洹精舍)로 와서, 세존께서 계시는 곳으로 갔다.
그때 세존께서 담마류지가 온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담마류지야, 참으로 오랜만이로구나.”
담마류지가 세존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때 여러 상좌들과 모든 비구들이 저마다 이런 생각을 하였다.
‘저 담마류지는 항상 세존의 곁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는데, 지금 세존께서는,
〈훌륭하다, 담마류지야.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하고 말씀하시는구나.’
그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그 의심을 풀어 주기 위해 곧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담마류지가 오랜만에 왔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내가 이제 그 까닭을 말해 주리라.
[1]
과거 무수히 많은 겁(劫) 이전에, 정광(定光)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중우(佛衆祐)라고 부르는 분이 세상에 출현하셨다.
그는 발마(鉢摩)라고 하는 큰 나라를 다스리면서, 대비구(大比丘)들 14만 8천 명과 함께 계셨다.
그때 거기에는 사부대중들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래서 국왕ㆍ대신ㆍ관리ㆍ백성들은 모두 와서 공양을 올리고, 또 필요한 물건을 공급해 주었다.
그때 거기에 야야달(耶若達)이라고 하는 어떤 범지(梵志)가 있었는데, 그는 설산(雪山) 곁에 머물러 살고 있었는데, 비참(祕讖)ㆍ천문(天文)ㆍ지리(地理) 등 널리 해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 없었고, 문장과 글씨에도 다 능통하였으며, 시를 암송하는 것도 1구(句) 5백 언(言)이나 되었고, 큰 인물이 될 관상인지에 대해서도 척척 알아냈으며, 불의 신[火神]ㆍ해ㆍ달ㆍ별자리를 섬기면서 5백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야야달 범지에게는 운뢰(雲雷)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세상에 드물 정도로 안색과 용모가 단정했고, 털은 감청(紺靑)색이었다. 운뢰 범지는 총명(聰明)한 데다가 식견이 넓어 모르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야야달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잠시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때 그는 그 바라문이 할 줄 아는 주술(呪術)을 모두 배웠다.
그때 운뢰 범지는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이제 배워야 할 것을 이미 다 갖추어 배웠다.’
그리고 다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책에 실려 있는 여러 유학(有學) 범지들이 행하는 기술을 훨씬 능가하게 되었으니,
나는 지금 마땅히 스승님의 은혜를 갚아야겠다.’
그는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꼭 배워야 할 것은 다 배워서 모르는 게 하나도 없게 되었으니,
내 이제 스승의 은혜를 갚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러나 집안이 가난하여 스승님께 공양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마땅히 내가 다른 나라에 나아가 필요한 것을 구해 와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운뢰 범지는 곧 그 스승의 처소를 찾아가서 스승께 아뢰었다.
‘범지로서 배워야 할 기술들을 이제 다 배웠고, 또 책에 실려 있는 여러 유학들의 기술을 훨씬 능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스승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공양을 올릴 만한 금ㆍ은 같은 진귀한 보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른 나라에 나아가 재물을 구해 스승님께 공양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야야달 바라문(婆羅門)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운뢰 범지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제자이거늘 마음에서 떠나보낼 수 없다.
설령 내가 죽는다 해도 오히려 떠나보낼 수 없겠거늘, 하물며 지금 나를 버리고 떠나려 하는 것이겠는가?
내가 지금 마땅히 어떤 방편을 써야, 머물러 있도록 붙들 수 있을까? ’
그때 아야달 범지는 곧 운뢰에게 말하였다.
‘범지야, 너는 아직 바라문으로서 꼭 배워야 할 것이 남아 있다.
네가 오히려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러자 운뢰 범지가 곧 스승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부디 원컨대 가르쳐 주소서. 제가 아직 외우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
그때 야야달 범지는 곧 5백 언(言)의 송(誦)을 생각해 지어 가지고 운뢰에게 말하였다.
‘여기 5백 언 송이라고 하는 이런 글이 있다.
너는 이것을 공부해야 한다.’
운뢰가 아뢰었다.
‘원컨대 스승께서 가르쳐 주시면 제가 외우겠습니다.’
비구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때 야야달 범지가 이 5백 언 송을 가르친 지 며칠이 되지 않아 그는 그것을 다 외웠다.
그때 야야달 바라문이 5백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이 운뢰 범지는 모든 기술을 다 갖추어, 무슨 일이든지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초술(超術)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 초술 범지는 매우 재주가 뛰어나서, 천문과 지리를 널리 보아 알지 못하는 것이 없었고, 글씨와 문장까지도 다 깨달아 알았다.
그때 초술 범지는 며칠이 지나자, 다시 그 스승에게 아뢰었다.
‘범지로서 배워야 할 기술이란 기술은 이제 모두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 책에 실려 있는 모든 유학(有學)들의 기술을 훨씬 능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스승님께 공양을 올릴 만한 금ㆍ은 같은 진귀한 보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른 나라에 나아가 재물을 구해 스승님께 공양할까 하오니, 원컨대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자 야야달 범지가 말하였다.
‘네가 그때를 제대로 알 것이다.’
초술 범지는 앞으로 나아가 그 스승의 발에 예를 올리고 곧 물러나 떠나갔다.
[2]
그때 그 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발마(鉢摩) 대국이 있었는데, 그곳에 많은 범지들이 한 곳에 모두 모여 크게 제사를 올리고, 게다가 강론(講論)까지 벌이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8만 4천 명의 범지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그 중 제일가는 상좌(上座)로서, 또한 외도(外道)의 글들을 외워 밝게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고, 천문ㆍ지리ㆍ별자리들의 변괴 따위에 대하여 모두 밝게 아는 이에게 그 법회(法會)를 마치고, 서로 헤어질 때에는 금 5백 냥과 금 지팡이 하나, 금 물통 하나, 소 천 마리를 가지고 스승으로 받들어 섬기며, 그 제일가는 상좌에게 주기로 하였다.
그때 초술 범지는,
‘발마대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8만 4천 명의 범지들이 한 곳에 모여 기술을 시험해, 제일 뛰어난 사람에게 금 5백 냥과 금지팡이 하나, 금 물통 하나, 소 천 마리를 준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때 초술 범지는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무슨 까닭에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구걸하고 있는 걸까?
차라리 저 대중들에게 가서 기술을 겨루어 보는 것이 낫겠다.’
초술 범지는 곧 그 대중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때 많은 범지들이 멀리서 초술 범지를 보고, 저마다 큰 소리로 외쳐댔다.
‘훌륭하십니다. 제사 주인[祠主]이여, 이제 큰 이익을 얻게 되어, 범천을 몸소 내려오시게까지 하였습니다.’
8만 4천 명의 범지들은 저마다 일어나 함께 맞이하면서, 똑같은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큰 범신천(梵神天)이여.’
그때 초술 범지가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모든 범지들은 나를 범천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나는 범천이 아니다.’
그때 초술 범지가 여러 바라문들에게 말하였다.
‘그만두시오, 그만두시오. 여러분, 나를 범천이라고 부르지 마시오.
당신들은 듣지 못하였습니까?
설산 북쪽에 많은 범지 대중들의 스승이 계신데, 그 이름을 야야달이라고 하오.
그분은 천문과 지리에 대해 모두 환하게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소.’
모든 범지들이 말하였다.
‘우리들도 듣기는 했는데, 아직 만나 보지는 못했습니다.’
초술 범지가 말하였다.
‘나는 그분의 제자로서, 이름을 초술이라고 합니다.’
그때 초술 범지는 그 대중들 중 제일가는 상좌를 향하여 말하였다.
‘어떤 기술이든지 아는 것이 있으면, 나에게 말해 보시오.’
그때 저 대중들 중에 제일가는 상좌가 곧 초술 범지를 향해 3장(藏)의 기술을 외웠는데, 조금도 빠뜨리거나 실수가 없었다.
그러자 초술 바라문이 다시 그 상좌에게 말하였다.
‘1구 5백 언을 나에게 외워 보시오.’
그때 그 상좌는 말하였다.
‘나는 그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어떤 것이 그 1구 5백 언입니까? ’
초술 범지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잠자코 내가 말하는 1구 5백 언으로 된 대인(大人)의 모습에 대해 들으시오.’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때 초술 범지는 곧 3장의 기술과 1구 5백 언으로 된 대인의 모습에 대해 외웠다.
그때 8만 4천 명의 범지들은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던 내용이라고 찬탄하였다.
‘참으로 기이하고 매우 특별한 일입니다.
우리는 1구 5백 언으로 된 대인의 모습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 존자는 제일가는 상좌로서 우두머리가 되셔야 합니다.’
그때 초술 범지는 그 상좌의 자리로 옮기고, 자기가 제일가는 우두머리의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그 대중들의 상좌로 있던 이가 심한 원한을 품고 이런 서원을 하였다.
‘이제 이 사람이 내가 앉는 자리를 밀어내고, 제가 그 자리에 앉았다. 내가 지금 경전을 암송하는 것과 고행하며 계를 지키는 것이, 만일 장차 어떤 복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다 걸고 이렇게 서원을 할 것이다.
이 사람이 어떤 곳에서 태어나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나는 그때마다 그 공을 부숴 버릴 것이다.’
그때 그 모임의 시주는 곧 금 5백 냥과 금 지팡이 하나, 금 물통 하나, 소 천 마리와 미녀 한 사람을 뽑아 이 초술 상좌에게 주며, 주원(呪願)을 해 달라고 하였다.
그때 이 초술 상좌가 시주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이 금 5백 냥과 금 지팡이와 금 물통만 받아 내 스승님께 공양할 것이오.
그리고 이 여자와 소 천 마리는 시주님에게 도로 돌려주겠소.
왜냐하면 나는 탐욕을 익히지 않았고, 또한 재물을 쌓아두지도 않기 때문이오.’
[3]
그러고 나서 초술 범지는 그 금 지팡이와 금 물통만 받아 가지고 발마대국으로 갔다.
그 나라 왕의 이름은 광명(光明)이라고 하였는데, 그때 그 국왕은 정광(定光)여래와 비구 대중들을 초청하여 의복(衣服)과 음식(飮食)을 공양하려 하였다.
그래서 그 국왕은 성 안에 영(令)을 내렸다.
‘어떤 백성이든지 향(香)과 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두 그것을 팔지 말라.
만일 파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엄중한 벌을 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사서 다시 다른 곳에 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백성들에게 칙명(勅命)을 내려 길을 깨끗이 쓸게 하고, 청소하여 흙ㆍ자갈과 그밖에 더럽고 흉악한 물건을 다 치우고, 비단으로 만든 번기와 일산을 달고, 향즙(香汁)을 땅에 뿌리고, 광대와 기생으로 하여금 음악을 연주하게 하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그때 저 범지는 이것을 보고 나서, 길을 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오늘이 무슨 날이기에, 이처럼 길을 깨끗이 쓸고 더러운 물건을 치우며, 비단으로 만든 번기와 일산을 다는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분주하니, 장차 국왕이나 태자가 결혼이라도 하는 것입니까? ’
길을 가던 사람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범지께서는 알지 못하십니까?
발마대국의 왕이 지금 정광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초청하여 의복과 음식을 공양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길을 닦고 비단으로 만든 번기와 일산을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지비기(梵志祕記)』에도 또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시는 것을 만나기는 매우 어렵다. 오랜만에 나타나는 일이라 참으로 만날 뵐 수가 없다.
비유하면 마치 우담발화(優曇鉢華)가 아주 오랜만에 한 번 피는 것처럼,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는 것을 만나는 것도 참으로 어렵다.〉
또 범지의 책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만나기는 참으로 어렵다.
어떤 사람이 그 두 사람인가?
여래(如來)와 전륜성왕(轉輪聖王)을 말하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이 세상에 출현하는 것을 만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때 그 범지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빨리 스승님의 은혜(恩惠)를 갚을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은 우선 금 5백 냥을 정광여래께 바치리라.’
[4]
그리고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책에 기록된 것을 보니, 여래는 금ㆍ은 같은 진귀한 보물 따위는 받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그러면 나는 이 금 5백 냥으로 꽃과 향을 사서 여래 위에 뿌리리라.’
그때 범지는 곧 성안으로 들어가 향과 꽃을 사려고 하였다.
그러자 성안의 길을 가던 사람이 말하였다.
‘범지는 알지 못하십니까?
지금 국왕이 영(令)을 내려, 그 누구든지 향이나 꽃을 파는 사람이 있으면 중한 벌을 내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초술 범지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복이 엷어서 꽃을 구하려고 해도 얻을 수가 없구나.
어쩌면 좋을까?’
도로 성을 나와 성문 밖에 서 있었다.
그때 어떤 바라문의 딸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선미(善味)라고 하였다. 그는 물병을 가지고 물을 길러 나오는 중이었는데, 한 손에 다섯 송이의 꽃을 들고 있었다.
범지는 그것을 보고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누이여, 나는 지금 꽃이 필요합니다. 바라건대 누이여, 나에게 그 꽃을 파시오.’
범지녀(梵志女)가 말하였다.
‘내가 언제부터 당신의 누이란 말입니까?
제 부모님을 알기라도 하십니까? ’
초술 범지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여자는 성품과 행실은 관대하지만, 장난치려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
다시 그녀에게 말하였다.
‘현녀(賢女)여, 내가 꽃값을 지불할 테니, 이 꽃을 그냥 보시한다고 보지 마시오.’
범지녀가 말하였다.
‘당신은 어찌 꽃을 팔지 말라고 하는 대왕의 엄명을 듣지 못했습니까? ’
범지가 말하였다.
‘현녀여, 그 일은 그리 어려울 게 없습니다. 대왕이라 한들 그대한테까지야 어떻게 할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지금 급하게 그 다섯 송이 꽃이 필요합니다. 내가 그 꽃만 얻는다면, 그대는 귀한 대가를 받을 것입니다.’
범지녀가 말하였다.
‘당신은 그렇게 급하게 꽃을 구해서, 무엇에 쓰려고 하십니까? ’
범지가 말하였다.
‘내가 오늘 좋은 땅을 발견했습니다. 그 꽃을 거기에 심으려고 합니다.’
범지녀가 말하였다.
‘이 꽃은 이미 뿌리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라서, 결국 살지 못할 것입니다.
무슨 방법으로 내가 심으려고 한다고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
범지가 말하였다.
‘내가 오늘 발견한 좋은 밭은 죽은 재를 심어도 오히려 살아날 것인데, 하물며 이렇게 좋은 꽃이겠습니까? ’
범지녀가 물었다.
‘어떤 좋은 밭이기에 죽은 재를 심어도, 곧 살아날 것이라고 하십니까? ’
범지가 대답하였다.
‘현녀(賢女)여, 정광(定光) 불(佛)ㆍ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셨습니다.’
범지녀가 말하였다.
‘정광여래는 어떤 분이십니까? ’
범지가 곧 그녀에게 대답하였다.
‘정광여래는 이와 같은 덕(德)이 있으시고, 이와 같은 계(戒)를 지니셨으며, 온갖 공덕을 성취하신 분이십니다.’
범지녀가 말하였다.
‘만일 그런 공덕이 있는 분이시라면, 그분에게서 어떤 복을 구하려고 합니까? ’
범지가 대답하였다.
‘나는 후생(後生)에 꼭 저 정광 여래ㆍ지진ㆍ등정각처럼 되고 싶고,
또 금계(禁戒)와 공덕도 그와 같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범지녀가 말하였다.
‘만일 당신이 나와 태어나는 세상마다 부부가 되겠다고 허락해 준다면,
나는 곧 이 꽃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범지가 말하였다.
‘내가 지금 수행하고 있는 것은, 마음이 탐욕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범지녀가 말하였다.
‘제가 지금 당장 이 몸으로 당신의 아내가 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생에 당신의 아내가 되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초술 범지가 말하였다.
‘보살이 닦는 행은 애욕과 아까워하는 것을 없애는 데 있습니다.
만일 그대가 내 아내가 된다면, 반드시 내 마음을 무너뜨리고 말 것입니다.’
범지녀가 말하였다.
‘나는 결코 당신이 보시를 하려고 하는 뜻을 무너뜨리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내 몸을 가지고 남에게 보시한다 하더라도, 나는 끝내 그 보시할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범지는 곧 5백 금전(金錢)을 주고 그 다섯 송이 꽃을 사 가지고, 그 여자와 서로 서원(誓願)을 하고는 제각기 헤어져 갔다.
[5]
그때 정광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때마침 비구 스님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발마대국으로 들어가고 계셨다.
그때 초술 범지는 멀리서 정광여래를 보았다. 용모가 매우 단정하여 보는 이마다 모두들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모든 감각기관[根]은 고요하였으며, 걸음걸이도 어지럽지 않았고, 32상(相)과 80종호(種好)를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물이 맑아서 더럽고 흐림이 없고, 광명이 두루 비쳐 걸림이 없는 것 같았고, 또 보배 산[寶山]이 여러 산 위에 우뚝 솟아 있는 것과 같았다.
그는 부처님을 보고 곧 환희심(歡喜心)을 내어, 여래께서 계신 곳에서 그 다섯 송이 꽃을 들고 정광여래께서 있는 곳으로 나아가 한쪽에 머물렀다.
그때 초술 범지가 정광(定光)부처님께 아뢰었다.
‘원컨대 이것을 받아 주소서.
만약 세존께서 지금 수결(授決:授記)을 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여기서 목숨을 끊겠나이다.
살기를 원하지 않나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범지야, 그 다섯 송이 꽃을 위없는 등정각에게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범지가 아뢰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저를 위해 보살이 행해야 할 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정광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행해야 할 법은 애욕을 없애는 것이니라.’
그때 범지가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감히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른 사람에게 보시할 수는 없고
모든 부처님은 진인(眞人)의 어른이라
또한 감히 남에게 보시할 수 없다.
해와 달은 세상을 골고루 돌아다니는 것이라서
그 두 가지도 보시할 수 없지만
나머지는 다 보시해야 하나니
마음에 결정 내리면 어려울 것이 없네.
그때 정광부처님도 또한 이런 게송으로 범지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말한 것과 같은 그런 보시는
여래가 말한 보시가 아니다.
억 겁 동안 괴로움을 참으며
머리ㆍ몸ㆍ귀ㆍ눈을 보시하라.
또 처자와 나라와 재물도 보시하고
수레와 말과 종들까지 보시하라.
만일 그런 것을 다 보시할 수 있다면
나는 곧 너에게 수기를 주리라.
그때 마납(摩納)이 다시 이런 게송을 말하였다.
마치 불이 훨훨 타오르는 큰 산을
억 겁 동안 머리에 이고 참고 견디면서
도를 향하는 마음 무너지지 않으리니
원컨대 지금 곧 수기를 주소서.
그때 정광여래께서는 잠자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때 그 범지가 손에 다섯 송이 꽃을 들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정광여래께 뿌리면서, 아울러 이렇게 말하였다.
‘이 복[福祐]으로 말미암아, 다음 세상에 꼭 정광 여래ㆍ지진ㆍ등정각처럼 되게 하시어, 조금도 다름이 없게 하소서.’
그리고는 곧 머리를 풀어 진흙길 위에 깔고 아뢰었다.
‘만일 여래께서 저에게 수결(授決)을 주시려거든, 지금 곧 제 머리털을 밟고 지나가십시오.’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그때 정광여래께서는 범지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곧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다음 세상에서 석가모니[釋迦文] 불ㆍ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 될 것이다.’
그때 초술 범지에게는 함께 공부를 하던 담마류지(曇摩留支)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여래의 곁에 있다가, 정광부처님께서 초술 범지에게 수결을 주고, 또 발로 머리털을 밟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까까머리 사문(沙門)이 어떻게 차마 발로 이 청정한 범지의 머리털을 밟고 지나간단 말인가?
이것은 사람으로서 할 행동이 아니다.’”
[6]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야야달 범지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그렇게 알지 말라.
왜냐하면 그때의 야야달은 바로 지금의 백정왕(白淨王)이고,
그때 8만 4천 명의 범지 상좌는 바로 지금의 제바달두이며,
그때 초술 범지는 바로 지금의 나이니라.
그때 범지의 딸로서 꽃을 판 여자는 바로 지금의 구이(瞿夷)이고,
그때의 사당 주인[祠主]은 바로 지금의 집장(執杖) 범지이며,
그때 입으로 좋지 않은 소리를 내는 행(行)을 지은 담마류지는 바로 지금의 담마류지이니라.
그리고 또 담마류지는 수없이 많은 겁 동안 늘 축생(畜生)이 되었다가, 최후로 받은 몸이 큰 바다의 물고기가 되었는데, 그 몸의 길이가 7백 유순(由旬)이나 되었었다.
그는 거기서 목숨을 마치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는, 선지식(善知識)들과 함께 종사(從事)하고 항상 선지식을 친근히 하면서, 여러 착한 벗과 함께 일하고 항상 착한 벗과 가까이 친하면서, 여러 가지 착한 법을 익혀서 모든 감각기관이 통하고 영리해졌다.
그런 까닭에 나는, ‘참으로 오랜만이다’라고 말하였던 것이고,
담마류지 또한 스스로,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오랜만입니다’라고 아뢰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항상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행을 잘 닦아 익혀야 한다.
모든 비구들아,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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