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가 내일(5일)정오면 끝난다.오늘이 13일째다.지루한 집콕 생활에서 벗어나 외출(?) 허가를 받았다.만기출소를 하루 앞둔 죄수의 짧은 가석방 같다.외출이라고 해 봤자 2시간이내다.집에서 수지구 보건소로 걸어가 검사를 받고 곧장 돌아오는 외출이다.중간에 다른데 들리거나 하면 안된다.전화기에 깔린 앱으로 나의 움직임이 체크되기 때문이다.다른 데로 빠지면 처벌이 뒤 따른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위한 조치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그러나 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완전 노출돼 감시 받는 느낌이라 좀 씁쓸하다.사실 이미 우린 알게 모르게 이런 감시체계 아래서 살고 있다.전화기,신용카드,컴퓨터,인터넷,폐쇄회로 등 거미줄 처럼 얽혀 있는 IT망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이들 IT기기 사용을 통해 나의 행동반경,취미,활동 등 모든 것이 체크돼 상업용으로 활용되고 있다.시시때도 없이 날아오는 스팸광고나 전화가 이를 말해준다.조지오엘의 1984년이 남의 일이 아니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빠졌다.고작1시간 20여분의 짧은 외출이지만 더없이 좋았다.아마 죄수가 출소를 할 때 이런 기분일 것이다. 비록 13일밖에 안되는 기간이지만 자유를 잃고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다 외출을 했으니 말이다.공기 부터 다른 것 같다.상큼하기 이를 데 없다.폐부 깊숙이 들여 마신 공기가 온 몸 구석구석을 깨끗이 씻어내는 느낌이다.가파른 산을 땀 뻘뻘 흘리며 오르다 만난 옹달샘에서 마시는 물 맛이다.온 몸이 맑아지며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다.
보건소로 가는 길 가로수는 단풍이 한창이다.물감을 확 뿌려 놓은 듯 알록달록하다.거리는 단풍 잎과 낙엽,사람,차량으로 어우러져 말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다.먼데 갈 것도 없다.요즘 우리 주위 온 동네가 다 이렇다.삼천리 금수강산이 헛말이 아니다.주위의 이런 풍광이 너무 흔하고 친숙해 그 가치를 잘 모를 뿐이다. 세계적인 유명 관광지에 가봐도 사실 별것 아니다. 알프스 산록의 그림 같은 풍광을 예찬하지만 우리 주위에도 그런 곳이 많다.
이런 저런 생각과 주위를 둘러보며 30여분 걷다 보니 어느새 수지구 보건소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그런지 고작 30분 걸었는데 다리가 좀 후들거리는 느낌이다.구청 뒤 야외선별진료소에서 다시 검사를 받았다. 귀국 다음날(10월23일)1차 검사에 이어 두번째다.65세 이상은 감염우려가 커 2번을 받아야 한단다. 검사는 검사원과 내가 완전히 투명 칸막이로 분리된 1인용 간이 검사소 안 에서 이뤄졌다.검사원은 칸막이 구멍을 통해 내 쪽으로 튀어 나온 두개의 비닐 팔 속으로 손을 넣어 나의 코와 입 두 군데서 가검물을 채취했다.의료요원의 감염을 막기 위해 검사원과 피검자와 직접 접촉을 차단한 조치다.그러나 피검자들은 사방이 닫힌 좁은 공간을 차례로 드나들며 검사를 받아 좀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내 앞의 피검자 중 감염자가 없으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피검자가 들어갔다 나오면 소독을 한다지만…
검사를 마친 뒤 집으로 곧장 돌아왔다. 오는 도중 “귀하는 격리장소를 이탈한 것 같다”는 문자가 왔다. 내가 검사를 받기 위해 외출한 것이 자기네 전산에 입력이 안된 탓인 것 같다.검사 받으라고 문자를 보낸 측과 앱을 체크하는 쪽이 제대로 연결 되지 않은 탓이리라.꼼꼼한 역학조사나 방역망에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기분은 씁쓿하다.감시 받는데 좋아할 사람이 있겠는가. 내일(11월 5일) 낮12시면 지루한 14일간의 격리가 끝난다. 물론 오늘 검사결과가 음성으로 나와야 하지만...결과는 내일 오전 통보된다….
사족:5일 상오 9시30분.코로나 검사결과 음성이란 통보를 받았다.그래도 정오까지는 외출 금지란
다. 12시 28분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란 문자와 함께 용인시장 명의로 격리해제 통보
서가 왔다.드디어 만기출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