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냉면으로 유명한 양평 옥천면 사무소를 지나 "사탄천"(沙灘川)을 따라 올라가면 "사나사"(舍那寺)라는 절이 나온다.
"용문산"(龍門山)에는 이곳 "사나사"(舍那寺)와 함께 "용문사"(龍門寺), "상원사"(上院寺)의
일제때 수난을 겪은 세 곳의 절이 있다.
"사나사"(舍那寺)는 신라 경명왕 7년(923)에 고승인 대경대사(大鏡大師) "여엄"(麗嚴)이 제자 융문과 함께 창건하고
5층 석탑과 "노사나불상"(盧舍那佛像)을 조성하여 봉안하고 절 이름을 "사나사"(舍那寺)로 하였다고 한다.
고려 공민왕 16년(1337)에 "태고왕사"(太古王師) "보우"(普愚)가 140여 칸 규모로 중건하였으며,
선조 25년(1592)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사찰이 불타버린 것을
선조 41년(1608)에 "단월"(檀越) "한방손"(韓芳孫)이 재건하였다.
영조 51년(1773)에 양평군내 유지(有志)들이 뜻을 모아 "당산계"(堂山契)를 조직하고
향답(鄕沓)을 사찰에 시주하여 "불량답"(佛糧沓)을 마련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경내에 비를 세웠다.
순종(純宗) 원년(1907)에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의병들의 근거지라하여 사찰을 모두 불태웠다.
"사나사"(舍那寺)는 조선 말엽에 일부 복원이 되었지만 6.25때 다시 전소되고 말았다.
그 후 여러 번의 재건을 거쳐 최근에는 1993년에 "대적광전"(大寂光殿)과 "지장전"을 재건하였다.
그 결과 이곳의 건물은 모두 근래에 지어진 것이고 원래 있던 유물은 거의 없다.
삼층 석탑과 그 뒤로 보이는 "원증국사탑"(圓證國師塔)
삼층 석탑이 하나 있는데 이마저도 원래 이곳에 있었던 탑은 아닌듯하다.
경내에는 "원증국사탑"(圓證國師塔 : 浮屠)과 "원증국사석종비"(圓證國師石鐘碑), 그리고
사나사(舍那寺) "불량비"(佛糧碑)가 있는데 이것이 남아있는 유일한 옛 물건인듯하다.
"원증국사탑"(圓證國師塔 : 浮屠)
이 부도는 "사나사"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고려 후기의 승려인 태고화상(太古 和尙)보우(普愚)(1301∼1382)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보우"(普愚)는 고려 말 고승으로 불교 개혁에 힘쓴 승려로 호는 태고(太古), 보허(普虛)이며,
속성은 홍씨(洪氏)이고 시호는 원증(圓證)이다.
흔히 태고(太古) 또는 "태고국사"(太古國師)라 불린다.
홍주(洪州, 현 충남 홍성군)출신으로,
아버지는 홍연(洪延), 어머니는 정씨, 해가 품에 들어오는 태몽이 있었다고 한다.
13세(1313년)에 출가하여 회암사(檜巖寺) 광지(廣智)의 제자가 되었고 얼마 뒤 가지산(加智山)으로 가서 수행하였다.
25세(1325년, 충숙왕 재위 12년)에 승과인 화엄선(華嚴選)에 급제했으나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감로사에서 고행하였다.
삼각산에 태고사(太古寺)를 지었고 1346년(충목왕 재위 2년) 원나라에 가서
하무산(霞霧山) 청공(淸珙)의 법을 이어받아 "임제종"(臨濟宗)의 시조가 되었다.
귀국하여 공민왕의 청으로 왕사가 되었으나 신돈(辛旽)의 횡포를 보다 못해 소설암(小雪庵)로 돌아갔다가
신돈(辛旽)의 참해(慘害)를 피하여 법주사(法住寺)에 은거하였다.
이후 우왕(禑王)이 왕위에 오르고 1378년(우왕 4)에 "보우"(普愚)를 불렀을 때 비로소 국사 (國師)가 되였다.
1381년(禑王 7)에 "보우"(普愚)는 "우왕"에 의해 거듭 국사로 책봉되었으나
그 이듬해인 1382년(禑王 8)에 소설암(小雪庵)에서 세수 82세, 법랍 69세로 입적하였다.
이에 왕이 향목을 하사하여 화장하였는데 100과의 사리가 나왔다.
이를 나누어 중흥사 동쪽 봉우리에 "보월승공탑"(寶月乘空塔)을 세웠으며 이 외에 석종을 만들어
양주 "태고사"(太古寺), 가은 "양산사"(加恩 陽山寺), 양근 "사나사"(舍那寺)에 사리를 나누어 봉안하였다고 한다.
부도(浮屠)는 기단(基壇)위로 종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린 돌종형태를 띠고 있다.
높직하고 네모진 기단 윗면에는 연꽃을 새겼고, 둥글고 길쭉한 탑신에는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았다.
꼭대기에는 연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이 솟아 있다.
부도를 세운 시기는 가까이에 서 있는 탑비에 고려 우왕 9년(1383)에 문인 달심(門人 達心)이
이 부도와 탑비를 건립했다는 기록이 있어 고려시대임을 알 수 있다.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舍那寺 圓證國師 石鐘碑)
원증국사의 탑비(塔碑)는 높이 1.67m, 비신의 높이 1.02m, 너비 0.69m.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3호 이다.
고려 말기에 "사나사"를 중창한 "원증국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으로, 경내의 산신각 옆에 서 있다.
검은 색의 점판암(粘板岩)을 다듬어 비신(碑身)을 만들었고,
화강암으로 장방형의 비좌(碑座)를 양쪽에 세우고 그사이에 비신(碑身)을 끼워넣어 비(碑)를 고정하고,
위에는 밑을 모깎이한 화강암 덮개돌을 얹어 비신(碑身)을 보호하고 있다.
전면에는 윗부분에 "원증국사석종명"(圓證國師石鍾銘)이란 7자가 전서체로 큼직하게 가로로 음각되어 있고,
비신에는 비신의 주연부(周緣部 : 가장자리)를 따라 2줄의 음각선이 새겨져 방곽(方廓)을 이루며
그 안에 20행으로 이루어진 비문이 새겨 있다.
비신의 뒷면에는 상,하 2단으로 나누어 16행의 비문을 새기고 있는데
비의 건립에 동참한 사람들의 명단 곧 조연기(助緣記)가 그 내용을 이룬다.
이 "탑비"는 비의 재질이 무른 점판암이어서 현재 기단, 비신의 일부 그리고 덮개돌 등이
파손되고 비문(碑文)을 완전히 판독할 수는 없으나,
비문(碑文)은 정도전(鄭道傳)이 짓고, 글씨는 재림사(梓林寺) 주지였던 선사(禪師) "훤문"(諠聞)이 썼으며,
1386년에 보우(普愚)의 제자 달심(達心)이 건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비문(碑文)을 완전히 판독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내용으로 판단된다고 한다.
龍門崒嵂 (용문줄률) 용문산 높게 솟아있고
漢水漣漪 (한수연의) 한강은 잔잔히 흐르네
克生異人 (극생이인) 이 기운이 특별한 사람낳았으니
王國是師 (왕국시사) 고려 왕국이 국사로 받들었네
臨濟之傳 (임제지전) 臨濟가 전한 佛法을
式克肖之 (식극초지) 잘 본받아 국사에 봉해져
縣陞爲郡 (현승위군) 익화현이 양근군으로 되니
民安以嬉 (민안이희) 군민들이 편안하고 즐거워하도다
惟師之德 (유사지덕) 국사의 德을
郡人之思 (군인지사) 양근 군민들이 사모하여
承事舍利 (승사사리) 사리를 받들어 모시니
如師在玆 (여사재자) 국사가 여기 계신듯하구나
有礱石種 (유롱석종) 돌을 갈아 만든 석종비에
勒我銘詩 (늑아명시) 내가 지은 비명을 새기고
留鎭山門 (유진산문) 이 '사나사'에 두어
傳示後來 (전시후래) 후인들에게 전하노라.
이러한 형식의 비(碑)는 고려말에 조성된 여주 신륵사의 "보제존자석종비"(普濟尊者石鍾碑, 보물 제229호)와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보물 제230호) 등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한 시대에 유행하였던 형식적 특징을 보인다.
여주(驪州) 신륵사(神勒寺)의 "보제존자석종비"(普濟尊者石鍾碑)
여주(驪州) 신륵사(神勒寺)의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사나사(舍那寺) 불량비(佛糧碑)
사나사(舍那寺) 불량비(佛糧碑)는 사나사(舍那寺) 경내 남쪽 주차장 옆 풀숲에 위치하고 있다.
사나사(舍那寺) 불량비(佛糧碑)뒷면.
팔작지붕 옥개석ㆍ비신ㆍ자연석 비좌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하고 총탄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1775년(영조 51년)에 양근군에 경내의 당상관(堂上官 정 3품이상의 고위관리)이상을 지낸 사람들이
당상계(堂上 契)를 결성하고, 주사(酒社)를 열어 태평한 시대에 사는 것은 임금의 은혜이며, 이것을 주관하는 것은 부처이니
시주를 하여 부처의 자비심을 구하고자 사나사의 영세불공(永世佛供)을 위해
불량답(佛糧畓)을 시주하고 그 일을 기념하여 비를 세웠다고 한다.
불량답(佛糧畓)이란 부처님께 시주하는 밭이라는 뜻으로, 절에 소속되는 밭으로 "불향답"(佛餉沓)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 일을 기록하고자 사나사 불량비를 세웠다.
비문은 전면ㆍ후면 두 곳에 새겨져 있다.
전면에는 양근군에 거주하는 당상관을 시주 이상의 품계를 받은 사람들이 계를 만들어
사나사에 불량답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후면에는 시주한 사람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건립 시기가 양근군의 읍치가 옥천에서 양평읍으로 옮겨간 1747년(영조 23년)과 가까운 시기이고,
당시 군내 유력자 명단 및 시주한 구체적 사항 등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양평 지방사회의 경제적, 사회적인 상황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비신은 높이 1.5m너비 0.65m 두께 0.2m. 개석은 높이 0.6m,너비 1m, 폭 0.6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