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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5월 6일 금요일, 아침은 춥고 낮에는 덥다. 영상 28℃
*걷기- 25째 날
*카카벨로스(Cacabelos) ~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
*이동거리 : 26km.
*누적거리 : 623.5km.
오늘은 알베르게 문을 제일 먼저 밀고 나온다. 골목길엔 어둠뿐이다. 희미한 가로등이 골목을 밝히고 있다. 쿠아 강 위에 세워진 돌다리를 지난다.
1809년 쿠아의 전투라고 알려진 영국군과 나폴레옹군 사이에 전투가 일어난 것을 기념해서 만든 다리다. 어제 미리 살펴보았던 다리다. 긴 타원형으로 생긴 카카벨로스 박람회장을 지나간다. 어제 살펴 본 포도 압축 틀 건너편이다.
아스팔트 길을 1시간쯤 걸어가서 보니 뒤에서 동이 트기 시작한다. 까미노는 언제나 서쪽을 향하고 걷기에 오전엔 해를 등지고 걸어간다. 앞에는 달이 지고 뒤에서 해가 떠오르니 갑자기 일본 전통 시(하이쿠)가 생각난다.
우리 시조 보다 짧은 가장 짧은 시라고 알려졌다. 요사부손의 시, ‘유채꽃이여 달은 동쪽에 있고 해는 서쪽에.’ 우리가 출발하는 때와 상황은 정반대지만 주위상황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서쪽으로, 서쪽으로만 가는 길이 정말 좋다.
유채꽃도 있지만 오늘은 포도밭을 많이 지나갈 것 같다. 왼쪽에 있는 와인 농장도 지나간다. 예쁜 알베르게 집(Albergue El Serbal y La Luna)이 나타난다. 동화책에 나올 것 같은 집이다. 피에로스(Pieros) 마을에 도착했다.
도로와 함께 걷다가 금방 마을을 벗어나 오른쪽 농로 길로 걷는다. 우회전 하여 발투이예 데 아리바 마을로 진행한다. 포도밭 사이길이다. 포도밭에 해가 뜬다. 왼쪽 포도밭 사이의 흙길로 들어간다.
주택에 식수대가 있고 카미노 표시도 있다. 예쁜 시골길과 이어진다. 언덕에서 포도밭을 내려다본다. 발투이예스 개울 너머로 방치되어 있는 폐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비야프랑카 3.3km라는 표지석도 보인다. 포도나무에 새싹이 예쁘게 돋아나왔다.
포도밭 언덕 위에 있는 그림 같은 하얀 집이 눈길을 끈다. 고목 서너 그루와 함께 세워져 있다. 온통 그라피티(낙서)로 도배된 작은 창고를 지나, 포도밭 사이로 난 흙길을 밟으며 언덕을 열심히 올라간다.
돌아서니 눈 아래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 마을이 보인다. 우리나라 TV에서 방영되었던 <스페인 하숙> 촬영장소다. 비야프랑카는 11세기 카미노 프랑세스의 한 지점으로 전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곳에 마을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프랑스 순례자들이 경치가 너무 좋아 여기에 머물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초원과 숲이 많으며 그림 같은 포도나무 밭이 아찔하게 펼쳐져 있다. 오래된 전통 집, 기념품 가게, 순례자를 대하는 친절한 전통이 있는 곳이다.
맛있고 다양한 요리도 있고, 여러 개의 성당이 있어 이 마을의 볼거리다. 아구아 거리 (Calle del Agua)는 산티아고 가는 길의 특성을 많이 지니고 있는 전형적인 카미노 거리다.
거리에 늘어서 있는 수많은 귀족의 저택과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주교의 궁전도 볼 수 있다. 저마다 안에는 문장을 새긴 방패를 간직하고 있다. 또한 학자였던 마르틴 사르미엔토, 저명한 스페인 소설가 힐 이 카라스코가 여기에서 태어났다.
마을에서 나가는 길에 있는 누에보 다리 근처에는 15세기부터 한 가족이 운영해 온 오래된 여관이 있다. 근교의 코루욘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산 미겔 성당과 성이 있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의 산티아고 성당에서는 병이 들거나 지쳐 순례를 할 수 없는 사람들에 한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받는 축복과 대사를 받을 수 있게 했다. 마을 초입에서 만난 것이, 앞에 보이는 성당이 산티아고 성당이다.
산티아고 성당 (Iglesia de Santiago)은 13세기에 지어진 성당으로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가는 초기의 양식이 잘 나타나있다. 고딕 양식의 십자가상과 성년에만 열리는 정교한 용서의 문(Puerta del Perdon)이 보존되어 있다.
산티아고 순례를 가는 사람이 다치거나 부득이한 이유로 산티아고까지 순례를 못할 경우 이문을 통과하면 산티아고를 통해 얻는 은총과 같은 은총을 얻을 수 있다는 간절함에서 나온 문이다. 순례길 중 유일하게 있는 공식적인 문이다.
현대에는 성년 때 열리지만 통과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득이한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심사 후 통과할 수 있다고 한다. 레온에 있는 산 이시도르 성당의 자비의 문도 지역의 인준을 받았던지, 어떤 이유로 전해지는 것인지 모르지만 비공식적인 문이란다.
알려진 자비의 문은 이곳 두 곳이지만 이 밖에도 있을 수 있다. 용서의 문과 산티아고 성당을 표시하는 검은 비석이 성당 앞에 세워져 있다. 오른쪽 공동묘지가 있다.
조금 내려가면 검게 보이는 지붕의 최악으로 소문난 예쁜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Ave Fénix)다. 산티아고 성당 옆인데, 침실은 양호하다. 샤워실과 화장실 문 잠금장치 고장이란다. 수세식 양동이로 물 받아 물을 내린다. 화장지도 없단다.
한번 화재로 불탄 것을 가족이 기적적으로 재건했다고 한다. 서비스 엉망이라고 글을 남겨 놓았다. 순례 길에 이런 곳도 있다는 것, 좋은 체험인 것 같다. 일본어 글씨도 보인다. 왼쪽 길이 마을로 들어오는 초입으로 아래로 쭉 내려가면 마을이다.
마르케스 후작의 궁전 (Castillo Palacio de los Marqueses)을 만났다. 16세기 초 벽돌과 돌로 지어진 마르케스 후작의 저택이다. 저택의 모퉁이에 탑을 세워 궁전의 위용을 나타내주고 있다. 일부는 1808년 반도 전쟁 중에 파괴되었다고 한다.
예쁜 꽃이 화려하다. 라몬 카르니세르(Ramón Carnicer, 1789년 10월 24일 – 1855년 3월 17일)의 흉상이 있다. 스페인의 작곡가이자 오페라 지휘자로, 오늘날 칠레 국가를 작곡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어른이 왜 여기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클뤼니아코의 산타 마리아 성당 (Colegiata de Santa Maria de Cluniaco)을 만났다. 16세기 후반의 고딕 양식 건축물로 미완성된 상태로 남았다. 바로크 양식의 다양한 봉헌화와 성가대석을 볼 수 있다.
클뤼니아코란 프랑스 클뤼니에서 온 사재단 중 처음으로 이곳에 발을 들인 이들을 일컫는다. 산 프란시스코 성당 (Iglesia de San Francisco) 으로 올라간다. 오래된 수도원 터에 남아있는 성당으로 13세기 로마네스크 양식 현관이 남아 있다.
15세기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두 개의 탑은 17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수도원은 13세기 초반 여왕 도냐 우라카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저택을 기증하여 설립되었다고 한다. 돌계단 위에 견고해 보인다. 레알 광장이 나타난다.
<스페인 하숙>에서 차승원, 유해진, 배정남이 차를 마시던 광장이다. 광장 주변에 카페 테이블이 흩어져 있다. 시청사도 보인다. 2019년 3월부터 5월까지 tvN에서 방영되었던 차승원, 유해진, 배정남이 출연한 <스페인 하숙> 촬영지를 찾아간다.
산 니꼴라스 엘 레알 수도원 (Convento San Nicolas el Real)뒤에 있다. 17~18세기에 만들어진 수도원 건물이다. 내부에는 수도원의 설립자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져왔다고 하는 ‘희망의 그리스도’(Cristo de la Esperanza)가 보존되어 있다.
현재는 자연사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스페인 하숙>촬영지는 작은 알베르게로 운영되고 있다. 초라한 구석의 작은 문이다. 문에는 숙박하지 않으면 들어오지 말라는 한글 글귀가 적혀 있다. 발견했다는 기쁨만 삭이고 돌아선다.
기념비에 흉상도 있다. ABANCA 은행 건물은 아주 오래되 보인다. 해시계가 붙어있는데 1822년이라는 숫자가 보인다. 광장에는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있는 작은 연못이 있다. 앨러미더공원(Jardín de La Alameda)이 나온다.
아눈시아다 수도원 (Convento de la Anunciada)도 찾아본다. 17세기에 만들어진 르네상스 양식 건물이다. 바로크 양식의 봉헌화와 색색의 대리석과 청동, 청금석으로 만든 감실이 특히 아름답다.
아눈시아다 수도원의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성 프란시스코 성인이 산티아고로 순례를 가는 동안 이곳을 지나갔는데, 이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비야프랑카 마을에 프란시스코 수도원을 세우길 원해 간절히 청했다고 한다.
그들의 부탁을 들은 성인은 사람들에게 ‘어느 날 이곳에 비둘기가 날아와 둥지를 틀을 것다.’ 라고 말하고 떠났다. 몇 백 년 후 이 예언은 이루어지게 되었다.
나폴리 부왕의 딸 마리아 데 톨레도 이 멘도사가 클라라 수도회의 수도원인 아눈시아다 수도원을 세운 것이다. 그녀가 나폴리에서 비둘기가 성령의 모습으로 그려진 수태고지의 장면이 그려진 메달을 가져와 예언은 들어맞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을 대충 둘러 본 것 같다. 이제 다시 순례길을 간다. 중세 다리를 올라선다. 다리 위에서 마을을 둘러보니 참 멋지고 아름답다. 부르비아 계곡을 흐르는 부르비아 강 위에 세워진 다리를 건너 도시를 빠져나간다.
다리 옆에 있는 순례자상은 산티아고를 향해 바라보고 있다. 중세 다리를 건너 잉태의 거리로 넘어간다. 이제 고도를 높이면서 유해진이 아침마다 달리기를 했던 발카르세 계곡 도로로 간다.
원죄없는 잉태 수도원(Convento de la Purísima Concepción)이 있다. 작은 카페 바(La Kabila)에 들어간다. 깔끔한 식당이다. 데사유노(desayunos)라는 글이 보인다. 식품 이름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데사유노는 아침식사라는 뜻이다.
영어로 아침을 breakfast라고 하듯이 des(아니다)+ayuno(금식), 그래서 금식을 깬다는 뜻이란다. 중세시대에는 아침 예배 전에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단다. 아침 예배 후 금식이 아닌 상태로 만드는 식사가 바로 데사유노라고 했단다.
보통 데사유노 메뉴는 커피 또는 차 중 선택하고 토스트 종류를 선택한다고 한다. 보카디요(bocadillo)는 스페인 샌드위치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바게트 빵으로 만든다. 빵을 가로로 잘라 사이에 하몽, 치즈, 매운 소시지 초리스, 소고기 등을 넣는다.
재료에 따라서 차가운 보카디요가 있고 뜨거운 보카디요가 있다. 보카디요에는 일반적인 샌드위치처럼 양상추나 토마토 슬라이스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대중적인 서민 음식으로 아침과 점심 사이에 간식으로 먹는 것이란다.
하몽 치즈 보카디요를 주문하고 카페라테 와 함께 먹는다. 6.1유로다. 아주 구수하고 맛있다. 예쁜 집들이 이어진다. 보도 블록 위를 걷는다.
계속 올라간다. 산티아고 187.0km, 비야프랑카는 검은 색 대리석르로 만들어진 표지석이다. 지역마다 다 다른 것 같다.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세 갈래의 길이 나타났다.
오른쪽 길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말이 있다.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다. 지도에는 노란색 길이다. 우리는 회색길인 중간 길을 선택했다. 우리가 선택한 왼쪽 길은 평평한 아스팔트 도로 길이다. 계곡을 가는 길이다.
오른쪽은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주변에 보이는 건 온통 나무뿐이고 산 위를 걷는 길이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로 길을 택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산길은 사람들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마을이 나온다.
낡은 건물들이 나타난다. 페레헤(Pereje) 마을이다. 중세풍의 작은 마을이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밤나무 숲은 순례자들에게 평온, 휴식, 명상을 선사한다.
중세 때 오 세이브레이로의 수도원장이 순례자를 위한 병원과 성당을 세우려고 했으나, 비야프랑카의 수사들은 자신들이 페레헤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며 반대를 했다.
결국에는 레온왕 알폰소 9세와 교황 우르바노 2세가 끼어들면서 더 격해졌지만, 최종적으로 비야프랑카 수사들이 이기게 되어, 병원 건축의 독점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중세 때 페레헤 주민은 세금과 군대 징집을 면제받았다. 그 이유는 여왕 도냐 우라카가 페레헤의 허름한 오레오(곡식 저장 창고)에서 출산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나가는 순례자를 기쁘게 해주는 꽃과 화분들이 벽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페레헤 가든이라고 칭하는 알베르게다. 스페인 국기도 있다. 폐허 수준의 주택들이 방치되어있다. 도로와 함께 계속 오르는 길이다. 페레헤 강도 보인다. 순레자 휴게소도 있다. 벤치만이 빈 들판을 지키고 있다. 트라바델로(Trabadelo) 마을이다.
알베르게 표시도 나온다. 산티아고 179.8km 표지석도 보인다. 트라바델로에서는, 검고 넓적한 돌로 지붕을 올린 전통 가옥 만날 수 있다. 트라바델로는 바위투성이의 좁은 절벽이 있는 계곡에 있다.
이러한 지형 때문에 부패한 귀족들이 순례자들을 강탈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귀족들은 순례자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통행료를 걷었고, 이를 거부하는 순례자들에게는 강도로 돌변하기도 했다.
그래서 과거에는 순례자의 발길이 뜸해졌다. 도둑떼와 귀족에게 사주 받은 강도들 때문에 순례자들이 두려워하던 트라바델로에는 현재는 찾아볼 수 없는 아욱타레스 성에 도둑과 강도들의 은신처가 있었다.
알폰소 6세와 템플 기사단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이들을 토벌하여 오랜 악습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숲길을 걷는다. 고목들이다. 길가에 원목과 판재들이 쌓여있다. 엘 푸엔테 페레그리노(Pension El Puente Peregrino)라는 바 겸 호스텔이 보인다.
입구 우측 게시판에 태극 문양과 신라면, 그리고 '한국 까미노 친구들 연합(까친연)'표지가 있다. 신라면과 공기밥, 김치반찬을 판다고 한다. 산 니꼴라스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San Nicolas)이 있다. 종탑이 있는 전원풍의 성당이다.
13~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성모자상이 있는 파사드와 바로크 양식의 봉헌화가 있다. 길가에 세워진 깔끔한 집이 몇 채 보인다. 캠핑장 들어가는 길목에서 점심 먹기를 한다. 돼지고기 수육을 해서 먹는다.
덩어리로 된 베이컨을 삶았는데 엄청 짜다. 어제 산 토마토도 꺼내서 먹는다. 잠시 쉬어간다. 계속 오르막 길이다. 멕시코 국기를 배낭에 매달고 걸어가는 단체 청년 팀이 있어 반가웠다. 1849년이라는 숫자가 보이는 성당이 나타난다.
시냇물은 정말 깨끗하다. 발카르세(Valcarce) 표지판이 나타난다. 발카르세(Valcarce) 호텔이 나타난다. 건물이 크다. 3성급 호텔인데, 5층으로 현대식 건물이다.
넓은 주차장에는 승용차가 여러 대 보인다. 건물 뒤에는 태양열 판이 만들어져 있다. 호텔 앞에는 도로와 주차장이 앞쳐져 넓다. 라 포르텔라 데 발카르세(La Portela de Valcarce) 마을 표지판이 보인다.
발카르세는 계곡 근처의 작은 마을인 라 포르텔라의 이름으로 ‘작은 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발카르세 계곡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작은 문과 같은 좁은 길을 지나야만 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산티아고 사도 순례자 상이 마을 입구에서 순례자를 반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조형물이 또 대문 기둥 좌우에 세워져 있다. 마을 유치원 인 것 같다. 당나귀와 경운기가 길에 엉켜있다.
마을을 떠나는 길에 도로를 벗어나면 밤나무 그늘과 지저귀는 새소리가 자연을 갈망하는 순례자를 반긴다. 산 후안 바스티스타 성당이 나온다. 세례자 요한 성당(Iglesia de San Juan Bautista)인데 도로보다 낮은 곳에 세워져 있다.
암바스메스타스(Ambasmestas)마을이 나온다. 발보아 강과 발까르세 강이 합류하는 곳에 자리 잡은 마을로, 울창하고 그늘진 숲이 있어 더위로 고생하는 순례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마을이다.
카르멘(Iglesia del Carmen) 성당이 있다. 성당에 식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맑은 강물이 부럽다.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 마을 표지판이 또 나타난다.
고가 도로가 머리 위로 지나간다. 목련꽃이 화려하고 풍성하게 피었다. 마을에 도착했다. 발카르세 계곡에서 가장 큰 마을인 베가 데 발카르세는, 편의시설이 더 많이 갖춰져 있다.
이 마을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대부분은 오 세브레이로까지 가는 가파른 길을 힘차게 출발하기 위해 이곳에서 묵기로 결정한 순례자들이다.
두 개의 요새 유적과 성 때문에 전설이 가득한 중세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마을이다. 우리의 목적지다. 작은 성당( Parroquia Santa Maria Magdalena)을 지나 길을 건너니 우리 숙소(Albergue El Paso)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다. 냇가에 만들어진 숙소는 작은 시냇물을 흐르게 해 놓았다. 리셉션에는 톱 종류를 많이 걸어 놓았다. 친절한 주인이 우리에게 방을 정해 준다.
입구에 화장실이 있는 8인실 방이다. 2층 침대는 깨끗하다. 아래 6번 침대에 짐을 풀었다. 요금은 12유로다. 환히 빛나는 따듯한 오후, 햇살이 뜨거워 빨래하기 좋다.
속내의와 양말을 빨아서 널었다. 침낭도 펼쳐서 잔디 위 빨래줄에 널었다. 햇살이 아주 좋다. 뜨겁다. 도랑물에 발을 담그니 시원하다.
식당을 찾아 송어(Trucha 투루차) 요리를 먹어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식당은 문을 닫았다. 오후 3시 까지 하고 저녁 7시부터 또 문을 연단다.
고맙게도 Meson 식당은 문을 열고 영업을 하고 있다. 순례자들을 위한 조치인 것 같다. 송어요리를 주문했다. 3단계로 나온다. 먼저 빵과 포도주(또는 물)가 나온다.
그리고 야채가 나오고 주메뉴인 송어 튀김과 감자칩이 나온다. 조기 한 마리 튀긴 것 같다. 아이스크림이 후식이다. 13유로를 지불했다.
동네 한 바퀴를 둘러 보기로 했다. 작은 성당( Parroquia Santa Maria Magdalena)에 들어가 도장을 찍었다. 아담하고 시원한 성당이다.
마을 가운데 발카르세 강이 흐른다. 다리를 건너간다. 대나무 숲이 길게 있다. 마을 광장에는 시청사(Ayuntamiento de Vega de Valcarce) 건물이 있고 그 앞에 마스크를 쓴 커다란 목각 조형물이 있다.
통나무를 사용한 전통 가옥도 있다. 마을 주변에는 사라신 성 (Castillo de Sarracín)도 있단다. 사라신 성은 마을의 남쪽, 밤나무 숲 사이 경사에 위치해 있었다.
현재에는 모두 형체를 알기 힘든 석재와 검은 돌기와만 남아 있단다. 사라신 성은 10세기 아스토르가의 영주였던 사라신 백작의 성이었다.
한편 베이가 성은 11세기에 돈 네사노 구데스테이스라는 봉건 영주의 소유였다. 그는 주민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고, 순례자들에게 보호비로 통행료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 영주는 알폰소 6세에 의해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숙소 남자 주인이 직접 만들었다는 오르호 술을 주어서 동료들이 모두 취했다. 단순한 일상이 반복된다.
먹고 자고 걷고.... 별 탈없이 걸을 수 있으니 감사하다. 내일도 또 같은 일을 반복하겠지만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