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벽을 허무는 권세” (마 7:28~29)
“28.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할렐루야! 사랑하는 MD 사역자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위대한 산상수훈 가르침이 끝난 직후,
그 자리에 모인 수많은 무리가 받았던 거대한 영적 충격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 7:29)
당시 유대 사회의 종교 지도자였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매일 성경을 가르치고 율법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들의 말에서 아무런 생명도, 영적 권위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절망의 담벼락’을 쌓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조항을 들이대며 정죄하고 심판하니,
백성들의 마음에는 죄책감과 단절의 어두운 그림자만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구주 예수님의 말씀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완벽한 MD(Mediator, 중재자)로 오셨습니다!
그분의 메시지는 영혼을 치유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를 다시 연결하는 ‘생명의 다리’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권세가 무엇인지 세 가지 대지로 나누어 살펴보며,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정한 MD 사역의 정신을 뜨겁게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율법의 정죄를 깨뜨리는 ‘사랑과 수용’의 권세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영성은 한마디로 “기준에 맞지 않으면 쳐내고 심판하라”는 단절의 영성이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의 법에 갇혀, 정작 눈앞에서 고통당하고 신음하는 인간의 아픔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참된 중재자(Mediator)이신 예수님은 율법의 껍데기가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본심, 즉 ‘사랑과 자비의 정신’을 온 천하에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며,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셨습니다.
사랑하는 MD사역자 여러분,
예수님은 세리와 창녀처럼 버림받은 영혼들을 향해 거리를 두거나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향해 “율법의 정죄 앞에 좌절하여 가만히 있지 말고, 내게로 오라(O-man-i)!” 하고
따뜻한 초청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이 말씀은 고압적인 명령이 아닙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함께 짊어지기 위해 죄인들의 삶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오신,
진정한 ‘사랑의 징검다리’로서의 선포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마음속에 받아들일 때,
'내가 변하는 복' '사람이 붙는 복' '범사가 잘되는 복' '기도응답의 복'의 역사가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둘째, 삶의 눈높이로 다가가는 ‘소통과 공감’의 권세입니다
당시 서기관들은 고답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지식을 자랑했습니다.
“위대한 랍비가 이렇게 말했다, 저렇게 주석했다”라며
평범한 성도들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말로 영적 소외감과 무력감만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원천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생각과 전통이라는 외적인 권세를 빌리지 않으셨습니다.
직접적이고도 독창적인 신적 권위로 말씀을 선포하시면서,
동시에 철저하게 민중의 눈높이로 내려가는 ‘찾아가는 소통’을 하셨습니다!
백성들이 매일 눈물과 땀을 흘리는 일상의 삶 속에서 가장 친숙한 언어를 길어 올려
천국 복음을 연결해 주셨습니다.
밭을 가는 농부에게는 ‘씨 뿌리는 비유’로 마음의 밭을 일깨우셨고,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는 어부에게는 ‘그물 비유’로 영혼 구원의 가치를 연결하셨습니다.
망가진 모습 그대로 돌아온 자식을 위해 동네 어귀까지 버선발로 마중 나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탕자의 비유’를 통해 아버지의 애끓는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을 살리는 진정한 MD의 언어입니다!
내 기준을 강요하며 높은 단상 위에서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처지와 눈높이로 내려가 공감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그 사람의 깨어진 인생에 이어주는 소통의 권세를 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무너진 관계를 재건하는 ‘창조적 중재’의 권세입니다
예수님의 설교가 가졌던 가장 강력한 권위의 핵심은, 단순히 말의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의 변화와 관계의 회복을 일으키는 창조적 역사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떠합니까?
가정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수많은 사람이 자기만의 완악한 기준을 세워두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을 높이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 담벼락 뒤에서 얼마나 많은 영혼이 상처받고 외롭게 고립되어 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MD 사역자로 부르신 이유는,
바리새인처럼 높은 자리에 앉아 옳고 그름만을 따지는 인생의 심판관이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사랑을 가지고, 믿음으로 바라보며, 무너진 관계의 다리를 재건하는
‘창조적인 중재자’가 되라고 부르신 줄 믿습니다!
갈보리 십자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영원한 생명의 다리를 놓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이제 우리의 언어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내 주변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해 손을 내밀며,
“주님의 품으로 오라”고 따뜻하게 소통하십시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리고, 단절된 곳이 이어지며,
하나님의 치유와 위대한 부흥의 역사가 불일듯 일어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단과 기도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바리새인처럼 내 기준과 율법의 잣대로 남을 판단하고,
이웃과의 사이에 높은 담을 쌓았던 우리의 연약함과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예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 마음의 벽을 허물어 주시옵소서!
진정한 중재자로 이 땅에 오셔서 생명의 다리가 되어주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이웃의 아픔을 온전히 공감하고 그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연결하는
신실한 MD 사역자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밟는 땅마다,
우리가 만나는 영혼마다 닫힌 마음이 열리고 무너진 관계가 눈부시게 회복되는
창조적인 기적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