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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딸 #여행/김연정
10월의 어느 아침이었다.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큰방에서 TV를 보시던 엄마께서 “연정아 일로와봐라 빨리!” 하며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찾으셨다.
얼른 뛰어가 봤더니 화면 한가득 억새가 클로즈업 되어 있고 자막엔 ‘울산 간월재’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뭐꼬! 뭔 일 있는 줄 알고 놀랬잖아!!”
“저기 억새봐라~ 정말 이쁘지 않나? 이제 가을이긴 가을인갑다~ 저런데 놀러가면 정말 좋겠네~”
그러고보니 친구A는 엄마와 일본에 온천여행을 다녀왔다고 하고, 친구B는 부모님과 동남아로 휴양여행을 다녀왔다고도 했던 것 같은데...
억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엄마를 보고 있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가면 되지~ 가자! 울산이면 그렇게 멀지도 않네!”
“니가 왠일이고, 니 산에 가는 거 안좋아하잖아”
“즐기지 않을 뿐이지, 싫어하진 않는다 가자!”
큰소리를 탕탕치며 날짜를 정하고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차편을 검색했다.
그리고 며칠 뒤, 약속했던 10월 9일 아침.
남부시외버스정류장에서 7시 25분 언양행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엄마는 새벽같이 일어나 나를 깨우셨다.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던 나는 순간 내가 왜 그렇게 경솔한 약속을 했을까 씻는 내내 후회를 했지만 정말 신난 표정으로 일찌감치 등산복을 차려입고 가방을 꾸리고 있는 엄마를 보니 도저히 무를 수가 없어 결국 운동복 차림으로 따라 나섰다.
부지런히 준비한 엄마덕분에 여유있게 정류장에 도착해 언양행 표를 끊고 대합실 의자에 앉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시멘트 바닥에 몇 개의 의자, 벽에 붙은 빛이 바랜 시간표, 군데군데 글자가 떨어져 의미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어느 시절의 표어까지...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할머니 댁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했던 작은 터미널의 모습과 똑같았다. 마치 그 시절에서 멈춰버린 것 같은 풍경에 왠지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20분쯤 기다렸을까. 언양행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엔 엄마와 나,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2명과 아주머니, 아저씨 한 분씩 밖에 없었다.
승객이 너무 적어 버스운행이 취소될수도 있나 걱정을 하던 차에 버스기사 아저씨가 표를 걷으시며 “와 오늘 손님 많네~ 요즘 들어 제일 많은 것 같다”며 웃으셨다.
아저씨께 표를 건네고 시간이 되어 출발하려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헐레벌떡 뛰어와 ‘잠깐만요’하곤 표를 끊으러 들어가셨다. 아저씨는 작게 잔소리를 하셨지만 그래도 아주머니가 올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드디어 버스가 출발하고 엄마가 챙겨오신 포도와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요즘 있었던 일, 이런저런 고민들, 최근에 들었던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별 것 아닌 얘기인데도 무척이나 즐거웠다. 생각해보니 엄마와 이렇게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눠본 게 언제인가 싶었다.
원래대로라면 2시간이 안 걸려 울산에 도착했어야할 버스는 중간중간 도로공사로 인해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청도의 모든 곳을 가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청도투어를 한 뒤 울산에 도착했다.
출발한 지 3시간이 훌쩍 지난 뒤였다.
산에 올라가기도 전에 지친 기분이었다.
울산터미널에서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간월재가 있는 신불산 초입에 도착하니 휴일이라 그런지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고 먼저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호기롭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때 간월재의 높이는 900m였고,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아 검색했던 팔공산의 높이는 1192m였다.
‘팔공산 보다 낮잖아? 쉽게 올라가겠는 걸’ 싶었다.
10월 초라 단풍이 다 들지 않아서 아쉽긴 했지만 듬성듬성 남아있는 푸르름과 천천히 울긋불긋해지고 있는 산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걷는 도중 멋진 풍경이 나오면 멈춰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바위에 앉아 과일도 깎아 먹으며 쉬엄쉬엄 올라갔다.
2시간쯤 올랐을까.
나의 생각과는 달리 꼬불꼬불한 오르막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단순히 수치로만 생각하고 검색을 게을리 했던 탓이었다.
하지만 그 동안 올라온 게 아까워서라도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우리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묵언수행을 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위쪽에서 사람들이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다왔구나!
나무로 된 계단을 밝고 올라서자 눈앞이 탁 트이며 끝도 없는 억새밭이 펼쳐졌다.
시선이 닿는 곳은 모두 억새였다.
우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그 풍경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에 힘들게 일어났던 것, 남아 있던 감기기운, 3시간이 넘는 버스여행, 끝없이 이어지던 오르막길의 피로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듯 했다.
아직 10월 초라 억새가 만개하진 않았지만 바람에 누웠다 일어났다하며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억새는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엄마는 억새가 정말 예쁘다며 연신 감탄을 하고 계셨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마치 짠 것처럼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올라갈 때 먹었던 김밥과 과일, 군것질은 모두 잊고 휴게소로 들어가 컵라면과 구운계란을 샀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앉을 곳을 찾았지만 북적이는 인파에 좀처럼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엄마께서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해 테이블에 앉아 있던 커플에게 양해를 구하고 합석을 하게 되었다.
과묵한 남자와 인상좋은 여자 커플은 드문드문 말을 이어가며 컵라면을 먹고 있었고 엄마와 나는 한껏 들떠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에는 거기 가자 거기!! 돌탑 많은데!!”
“거기가 어딘데?”
엄마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산의 이름에 미간을 찌푸리고 골똘히 생각하고 계셨는데 그동안 아무 말도 없이 컵라면만 먹던 과묵한 남자분이 툭 ‘마이산’하고 대답했다.
과묵하지만 친절한 남자분 덕분에 우리는 순간 와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본격적으로 억새 구경에 나섰다.
은빛물결처럼 넘실거리는 억새도 장관이었지만 억새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돗자리와 도시락을 준비해 가족들끼리 모여 앉아 밥을 먹는 사람들, 산악자전거를 세우고 컵라면을 먹고 있는 산악자전거 동호회원들, 색색깔 등산복을 입고 단체 사진을 찍고 있는 등산회 회원들, 셀카봉을 꺼내 사진을 찍는 연인들,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아이들까지..
나는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며 나무계단 위에서, 억새밭에서, 휴게소에서, 간월재 표지석 앞에서 등 눈에 띄는 모든 곳에서 아낌없이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한참이나 억새밭을 누비며 엄마와 풍경을 사진에 담은 뒤 내려갈 채비를 했다.
올라오기는 어찌어찌 올라왔는데 내려갈 일이 정말 까마득했다.
벌써부터 다리가 후들거리는 기분이었다.
억새가 너무 예쁘다며 돌아가는 길을 아쉬워하던 엄마와 팔을 쭉 뻗어 함께 셀카를 남기고 다시 길을 나섰다.
신기하게도 올라올 때 봤던 사람들을 내려갈 때 다시 만났다.
버스를 같이 타고 왔던 대학생들과 과묵한 남자․인상좋은 여자 커플,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던 아저씨들... 아장아장 걸어 올라왔던 아이는 아빠의 등에 업혀 잠이 들어 있었다.
“힘들었지만 저렇게 예쁜 풍경을 보니 보람 있네, 다음엔 마이산 가자”
“등산은 일년에 한번만 하는 거야”
엄마와 손을 잡고 친구처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잠깐 앉아 쉬기도 하고 초콜렛을 먹기도 하며 달달 떨리는 다리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루하게 이어지던 길이 끝나고 초입의 산악문화센터가 보였다.
‘다왔구나’ 다리가 탁 풀렸다. 피로가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처음 버스가 섰던 곳으로 갔다.
표지판은 없었지만 우리보다 먼저 온 다른 등산객 몇몇이 타고 왔던 버스가 섰던 그 근처 바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따로 버스 시간표도 없고 택시도 보이지 않아서 한참을 기다려야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오래지 않아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올라 의자에 앉으니 잠이 쏟아졌다.
집으로 돌아갈 일이 걱정이었다.
‘또 3시간 넘게 걸리는 거 아냐?’
들뜬 마음에 올 때는 버스 여행을 즐길 수 있었지만 피곤한 지금은 도저히 3시간의 버스여행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휴대폰을 꺼내 다른 차편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울산역에 KTX가 섰다. 시간이 빠듯하기는 했지만 타기만 하면 동대구역까지는 1시간정도였다. 다행히 도로는 한산했고 버스가 울산역 앞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와 나는 빛의 속도로 표를 끊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몇 초 후 기차가 도착했고 우린 KTX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난 아침이었다.
TV에는 억새가 한창이라며 다시 한 번 간월재가 등장했다.
그 때와는 달리 만개한 억새가 화면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눈이 마주쳤고 빙그레 웃었다.
<복사>
10월의 어느 아침이었다.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큰방에서 TV를 보시던 엄마께서 “연정아 일로와봐라 빨리!” 하며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찾으셨다.
얼른 뛰어가 봤더니 화면 한가득 억새가 클로즈업 되어 있고 자막엔 ‘울산 간월재’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뭐꼬! 뭔 일 있는 줄 알고 놀랬잖아!!”
“저기 억새봐라~ 정말 이쁘지 않나? 이제 가을이긴 가을인갑다~ 저런데 놀러가면 정말 좋겠네~”
그러고보니 친구A는 엄마와 일본에 온천여행을 다녀왔다고 하고, 친구B는 부모님과 동남아로 휴양여행을 다녀왔다고도 했던 것 같은데...
억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엄마를 보고 있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가면 되지~ 가자! 울산이면 그렇게 멀지도 않네!”
“니가 왠일이고, 니 산에 가는 거 안좋아하잖아”
“즐기지 않을 뿐이지, 싫어하진 않는다 가자!”
큰소리를 탕탕치며 날짜를 정하고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차편을 검색했다.
그리고 며칠 뒤, 약속했던 10월 9일 아침.
남부시외버스정류장에서 7시 25분 언양행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엄마는 새벽같이 일어나 나를 깨우셨다.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던 나는 순간 내가 왜 그렇게 경솔한 약속을 했을까 씻는 내내 후회를 했지만 정말 신난 표정으로 일찌감치 등산복을 차려입고 가방을 꾸리고 있는 엄마를 보니 도저히 무를 수가 없어 결국 운동복 차림으로 따라 나섰다.
부지런히 준비한 엄마덕분에 여유있게 정류장에 도착해 언양행 표를 끊고 대합실 의자에 앉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시멘트 바닥에 몇 개의 의자, 벽에 붙은 빛이 바랜 시간표, 군데군데 글자가 떨어져 의미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어느 시절의 표어까지...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할머니 댁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했던 작은 터미널의 모습과 똑같았다. 마치 그 시절에서 멈춰버린 것 같은 풍경에 왠지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20분쯤 기다렸을까. 언양행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엔 엄마와 나,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2명과 아주머니, 아저씨 한 분씩 밖에 없었다.
승객이 너무 적어 버스운행이 취소될수도 있나 걱정을 하던 차에 버스기사 아저씨가 표를 걷으시며 “와 오늘 손님 많네~ 요즘 들어 제일 많은 것 같다”며 웃으셨다.
아저씨께 표를 건네고 시간이 되어 출발하려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헐레벌떡 뛰어와 ‘잠깐만요’하곤 표를 끊으러 들어가셨다. 아저씨는 작게 잔소리를 하셨지만 그래도 아주머니가 올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드디어 버스가 출발하고 엄마가 챙겨오신 포도와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요즘 있었던 일, 이런저런 고민들, 최근에 들었던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별 것 아닌 얘기인데도 무척이나 즐거웠다. 생각해보니 엄마와 이렇게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눠본 게 언제인가 싶었다.
원래대로라면 2시간이 안 걸려 울산에 도착했어야할 버스는 중간중간 도로공사로 인해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청도의 모든 곳을 가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청도투어를 한 뒤 울산에 도착했다.
출발한 지 3시간이 훌쩍 지난 뒤였다.
산에 올라가기도 전에 지친 기분이었다.
울산터미널에서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간월재가 있는 신불산 초입에 도착하니 휴일이라 그런지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고 먼저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호기롭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때 간월재의 높이는 900m였고,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아 검색했던 팔공산의 높이는 1192m였다.
‘팔공산 보다 낮잖아? 쉽게 올라가겠는 걸’ 싶었다.
10월 초라 단풍이 다 들지 않아서 아쉽긴 했지만 듬성듬성 남아있는 푸르름과 천천히 울긋불긋해지고 있는 산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걷는 도중 멋진 풍경이 나오면 멈춰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바위에 앉아 과일도 깎아 먹으며 쉬엄쉬엄 올라갔다.
2시간쯤 올랐을까.
나의 생각과는 달리 꼬불꼬불한 오르막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단순히 수치로만 생각하고 검색을 게을리 했던 탓이었다.
하지만 그 동안 올라온 게 아까워서라도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우리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묵언수행을 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위쪽에서 사람들이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다왔구나!
나무로 된 계단을 밝고 올라서자 눈앞이 탁 트이며 끝도 없는 억새밭이 펼쳐졌다.
시선이 닿는 곳은 모두 억새였다.
우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그 풍경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에 힘들게 일어났던 것, 남아 있던 감기기운, 3시간이 넘는 버스여행, 끝없이 이어지던 오르막길의 피로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듯 했다.
아직 10월 초라 억새가 만개하진 않았지만 바람에 누웠다 일어났다하며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억새는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엄마는 억새가 정말 예쁘다며 연신 감탄을 하고 계셨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마치 짠 것처럼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올라갈 때 먹었던 김밥과 과일, 군것질은 모두 잊고 휴게소로 들어가 컵라면과 구운계란을 샀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앉을 곳을 찾았지만 북적이는 인파에 좀처럼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엄마께서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해 테이블에 앉아 있던 커플에게 양해를 구하고 합석을 하게 되었다.
과묵한 남자와 인상좋은 여자 커플은 드문드문 말을 이어가며 컵라면을 먹고 있었고 엄마와 나는 한껏 들떠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에는 거기 가자 거기!! 돌탑 많은데!!”
“거기가 어딘데?”
엄마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산의 이름에 미간을 찌푸리고 골똘히 생각하고 계셨는데 그동안 아무 말도 없이 컵라면만 먹던 과묵한 남자분이 툭 ‘마이산’하고 대답했다.
과묵하지만 친절한 남자분 덕분에 우리는 순간 와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본격적으로 억새 구경에 나섰다.
은빛물결처럼 넘실거리는 억새도 장관이었지만 억새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돗자리와 도시락을 준비해 가족들끼리 모여 앉아 밥을 먹는 사람들, 산악자전거를 세우고 컵라면을 먹고 있는 산악자전거 동호회원들, 색색깔 등산복을 입고 단체 사진을 찍고 있는 등산회 회원들, 셀카봉을 꺼내 사진을 찍는 연인들,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아이들까지..
나는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며 나무계단 위에서, 억새밭에서, 휴게소에서, 간월재 표지석 앞에서 등 눈에 띄는 모든 곳에서 아낌없이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한참이나 억새밭을 누비며 엄마와 풍경을 사진에 담은 뒤 내려갈 채비를 했다.
올라오기는 어찌어찌 올라왔는데 내려갈 일이 정말 까마득했다.
벌써부터 다리가 후들거리는 기분이었다.
억새가 너무 예쁘다며 돌아가는 길을 아쉬워하던 엄마와 팔을 쭉 뻗어 함께 셀카를 남기고 다시 길을 나섰다.
신기하게도 올라올 때 봤던 사람들을 내려갈 때 다시 만났다.
버스를 같이 타고 왔던 대학생들과 과묵한 남자․인상좋은 여자 커플,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던 아저씨들... 아장아장 걸어 올라왔던 아이는 아빠의 등에 업혀 잠이 들어 있었다.
“힘들었지만 저렇게 예쁜 풍경을 보니 보람 있네, 다음엔 마이산 가자”
“등산은 일년에 한번만 하는 거야”
엄마와 손을 잡고 친구처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잠깐 앉아 쉬기도 하고 초콜렛을 먹기도 하며 달달 떨리는 다리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루하게 이어지던 길이 끝나고 초입의 산악문화센터가 보였다.
‘다왔구나’ 다리가 탁 풀렸다. 피로가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처음 버스가 섰던 곳으로 갔다.
표지판은 없었지만 우리보다 먼저 온 다른 등산객 몇몇이 타고 왔던 버스가 섰던 그 근처 바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따로 버스 시간표도 없고 택시도 보이지 않아서 한참을 기다려야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오래지 않아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올라 의자에 앉으니 잠이 쏟아졌다.
집으로 돌아갈 일이 걱정이었다.
‘또 3시간 넘게 걸리는 거 아냐?’
들뜬 마음에 올 때는 버스 여행을 즐길 수 있었지만 피곤한 지금은 도저히 3시간의 버스여행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휴대폰을 꺼내 다른 차편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울산역에 KTX가 섰다. 시간이 빠듯하기는 했지만 타기만 하면 동대구역까지는 1시간정도였다. 다행히 도로는 한산했고 버스가 울산역 앞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와 나는 빛의 속도로 표를 끊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몇 초 후 기차가 도착했고 우린 KTX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난 아침이었다.
TV에는 억새가 한창이라며 다시 한 번 간월재가 등장했다.
그 때와는 달리 만개한 억새가 화면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눈이 마주쳤고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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