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럭 끝에서 삼라만상 이치 깨치리…”
<36> 이참정에게 보내는 대혜선사의 답장 ①-3
[본문] 지난날 들려준 말에 “이치로는 한꺼번에 깨달아서 그 깨달음을 의지하여 같이 녹아버리지만 사면(事面)으로는 한꺼번에 제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차례대로 제거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가나 서나 앉으나 누우나 절대로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 나머지 고인들의 가지가지 차별한 말씀이나 글귀도 모두 진실한 것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또한 헛것이라도 여기지 마십시오. 오래오래 순숙하여지면 자연히 자기의 본심에 묵묵히 계합할 것입니다. 반드시 따로 수승하거나 기특한 것을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강설] 이치로는 부귀영화와 돈과 명예와 주지자리나 종정자리가 다 허망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이 그와 같은 일을 당하면 캄캄해서 처음 아는 일인 것처럼 행동한다. 초월의 경지는 자신과는 상관도 없는 것처럼 기를 쓰고 덤빈다.
그러므로 대혜선사는 “사면(事面)으로는 한꺼번에 제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차례대로 제거해야 한다. 그러니 가나 서나 앉으나 누우나 절대로 잊어버리지 마십시오”라고 당부한 것이다.
이·사 겸비하고 선·교 겸수하라
선정·지혜 쌍수하면 본심에 계합
불법을 좋아하고 참선을 하며 도를 닦는 일은 인생의 가치관을 최고의 경지에 두고 사는 삶이다. 초연하고 탈속한 삶이다. 그런데 부귀영화와 돈과 명예와 주지자리나 종정자리를 좋아하여 기를 쓰고 덤비는 것은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는 일이며 사람들을 속이는 일이다.
옛 사람들이 이르기를, “개가 코끼리 가죽을 뒤집어쓰고 스스로 코끼리라고 가장하는 것과 같다”라고 표현했다. 평생 참선공부를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끈기 있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면의 일은 결코 돈오(頓悟)가 아니다. 오랜 세월동안 세상사를 초월한 인생관을 구축해 두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좌선을 하는 한편 부처님의 경전이나 고인들의 어록을 오랫동안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이와 사를 겸비(兼備)하고 선과 교를 겸수(兼修)하고 선정과 지혜를 쌍수(雙修)하여야 한다. 그래서 대혜선사는 “오래 오래 순숙하여지면 자연히 자기의 본심에 묵묵히 계합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대혜선사는 이와 같이 결코 돈오돈수(頓悟頓修)만을 주장한 사람이 아니었다. 때로는 돈오돈수를 말씀하시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돈오점수(頓悟漸修)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수행의 중도란 무엇인가. 선과 교를 어디에도 치우치지 말고 겸하여 닦는 일이다.
[본문] 옛날 수료 화상이 등나무를 캐는 곳에서 마조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如何是祖師西來意)입니까?” 마조선사가 말했습니다.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그대에게 일러주리라.” 수료화상이 막 가까이 가니 마조선사가 가슴을 밀치며 넘어뜨리니 그대로 넘어졌습니다.
수료화상이 얼른 일어나서 박수를 치며 가가대소하였습니다. 마조선사가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그렇게 웃는가?” 수료 화상이 말하였습니다. “백 천 가지 법문과 한량없는 미묘한 의미를 오늘 조그마한 터럭 끝에서 철저히 근원까지 알았습니다.” 마조선사가 곧 더 이상 그를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강설] 옛 고인들의 예를 이끌어 왔다. 먼저 수료화상의 예를 들었는데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곧 사람을 밀치어 넘어뜨린 일이다. 수료화상은 그 작은 동작 하나에 크게 깨닫고 껄껄 웃었다.
스스로 설명하기를 “백 천 가지 법문과 한량없는 미묘한 의미를 오늘 조그마한 터럭 끝에서 철저히 근원까지 알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만 안 것이 아니라 이 우주 삼라만상의 이치와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를 그 작은 동작 하나에서 다 알았다고 하였다. 참으로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그대로다.
[출처 : 불교신문 201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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