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심야식당이라는 뮤지컬을 관람하고 왔다.
심야식당은 일본의 신주쿠에 있는 한 식당을
배경으로 여러 인물들의 애환을 어루만져주는 식당 주인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그 식당 주인을 마스터라고 불렀다. 이 마스터라는 주인공의 오른쪽 눈에는 흉터가 있다. 그리고 그의
식당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모두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모든 사람들이 잠잠해지는 시간 밤 12시에 문을 열고 아침 7시에 문을 닫는 그 식당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죽을까 하다가 죽지
못해서 살아가는 노총각,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애틋해 하면서 참 사랑을 찾지 못하고 스트리퍼만 구경하며
살아온 지 35년이 넘는다. 자신의 상처로 인하여 진실한
사랑을 찾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리고 동성애자로 자신을 버리고 간 건달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다가 다른 건달을 만나 그의 상처와 자신의 상처를 서로
싸매주면서 다시 새로운 만남을 이어간다.
길거리의 음악가는 재능이 있고 음악을 좋아하지만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길거리에서 노래하는 처량한 가수다. 그는 애처로운 날을 보내다가 어느 날 어떤
회사의 사장의 눈에 들어 그 회상의 광고를 만드는 일을 맡고 음반도 낸다. 그러나 그 날이 있기까지
그녀의 삶은 심야식당에서 외로움과 차가움을 견뎌야 했다.
또한 심야식당에는 언제나 다시 목마른 사랑을
찾아 떠나기를 반복하는 스트리퍼도 찾아온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고 결혼을 하지만, 다시 사랑을 찾아 떠난다.
노처녀 세 사람의 이야기도 이 심야식당을
채우는 노랫가락이 된다. 자신들의 고집을 고수하는 그들은 진실한 사랑을 찾아 오늘도 기대하며 갈망하면서
살아간다.
이 뮤지컬은 인생을 미래를 알 수 없는 것이기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나는 이 뮤지컬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사회의
사람들이 매우 외로워하면서도 과거의 상처로 인하여 고통스러워하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기에 그 상처를 알아보고 어루만져 주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다.
이 뮤지컬이 말하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생은 정말 살다 보면 그렇게 슬픈 일이 닥치기도 하고 기쁜 일이 오기도 한다. 그것을 막을 사람은 없고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다가오는 대로 맞이하는 것일 뿐. 거기에는 삶의 절대적인 가치도 없고 궁극적인 목적도 없다. 그렇게 살다가 죽는 것일 뿐. 다만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를 진솔하게 밝혀주고 있다.
이런 종류의 뮤지컬은 나로 하여금 나 혼자만
외로운 것은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상처도 나의 상처 못지 않구나 하는
것, 그리고 우리 모든 사람이 아픔 속에 신음하면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는 사실적이고 솔직한 내용을 다룬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이야기는 없다. 인생의 가치가 그렇게 무의미하게 왔다가 불꽃처럼 사그라지는 것, 불티가
하늘로 날아가는 것과 같은 무상한 것인가? 인생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가 정말 목숨을 걸고 살아야 할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 주기에는 이 세상의 뮤지컬은 너무 그 깊이가 얕으며 본질적인 해답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그것은 세상을 구원하는 진리는 위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인간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늘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에 관하여 해답을 얻을 수 없다. 다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뮤지컬이
제시하는 대답 정도가 될 것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라는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의 노랫말은 이 세상이 던지는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이다. 그러나 그 대답을 복음은 전해준다. 그리고 그 복음을 들을 귀를
얻기 위해서 교회는 심야식당과 같은 넉넉한 삶이 필요하다. 그래야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을 뿐 아니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뮤지컬을 보면서 화려해지고 세련된 문화가
서울 대학로에 넘쳐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화려함과 세련됨은 생명을 상실한 것처럼 보여
책임감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유적지를 보면 그 찬란한 문명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부터 4,000년 전에 사용한 여성들의 장신구는 오늘날의 수준에
비교해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모든 문명의 화려함과 세련됨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을 잃은 인간의 삶은 언제나 텅 빈 인생일 뿐이다. 우리에게는
지금도 우리의 진정한 구세주가 필요하다. 그 때 우리의 텅 빈 가슴은 하늘의 기쁨과 평안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충만한 생명을 주는 복음을 우리 목회자는 맡은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