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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헌종 6) 평안남도 암행어사 서유훈
어사 서유훈이 평안남도의 산골에서 겪은 이야기.
어사 서유훈은 과중한 세금에 시달리는 화전민의 고통을 목도하고 이를 시정할 것을 조정에 건의한다.
암행어사 서유훈은 역졸 한 명과 사노를 데리고 평안남도를 암행 중이었다.
평안도는 산이 많고 지형이 험해서 한 고을에서 바로 옆 고을로 이동하는데도 험준한 산을 넘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도 종종 있어서,
인근 지리에 밝고 산을 잘 타는 역노를 차출하여 앞세우고 다녀야 했다.
이번에 차출한 역노는 몸집은 튼실한데 겪어보니 눈치가 어둡고 둔해서 불안했다.
머리가 나쁘면 발이 고생한다더니, 역노는 몇 번이나 산 능선까지 올라가서 방향을 가늠해보고 다시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이쪽입니다. 이번에는 틀림없습니다요.”
가르키는 방향은 칡덩쿨 사이로 난 좁은 노룻길이었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자 평평한 분지가 나타났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는 잘 일궈진 옥수수밭이 있었다.
기장, 팥, 감자들이 자라는 작은 밭도 보였다.
“누군지, 잘 알뜰하게 가꾸었습다요.”
사노가 탐스럽게 익어가는 옥수수를 바라보며 감탄을 했다.
산중에서 두 번이나 길을 잃고 헤매는 바람에 벌써 해가 뉘엿뉘엿 했다.
산중의 밤은 해가 기운다 싶기 무섭게 도둑처럼 불시에 닥친다는 것을 아는 어사는 말했다.
“해 떨어지기 전까지 산을 넘기는 틀렸다. 보아하니 근처에 농가가 있을 것 같으니, 거기서 하룻밤 묵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밭 사이로 난 길을 조금 걸어 들어가자 너와지붕을 인 오두막이 한 채 보였다.
오두막 문 앞에서 먼산바라기를 하던 여인네가 어사일행을 보고 기겁을 해서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노가 문을 두드려도 여인은 문을 걸어 잠근 채 꼼짝하지 않았다.
잠시 난감해서 어사일행이 서있는데 집 뒤 산에서 한 사내가 달려 내려왔다.
사내는 어깨에 한아름은 될법한 칡뿌리를 메고 있었다.
“뉘시오?”
“산길을 가는 나그네요. 하룻밤 쉬어가고 싶은데.”
어사일행을 꼼꼼히 살펴본 사내는 이윽고 공손하게 말했다.
“오두막이라서 방이 한 칸 뿐입니다. 정재간이라도 괜찮으시다면 쉬어 가시지요.”
집안으로 들어가니 만삭인 사내의 아내는 아직도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한 표정이었다.
햇옥수수를 쪄서 내놓고는 다시 오두막 구석으로 가서 몸을 웅크렸다.
“산에 가끔 도적 떼가 출몰해서 안사람은 겁에 질려있습니다.”
햇감자와 햇옥수수는 달게 먹은 어사가 인사치레 삼아 말했다.
“두 내외가 꽤 나이 들어 보이는데, 자손이 좀 늦었군요.”
그러자 사내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사실은 아이들이 있었습지요. 하지만 큰놈은 마마로 잃고 밑에 둘은 몇 년 전 흉년에 굶겨 죽이고 말았지요.
막내둥이 사내놈만은 살려야겠다 싶어서 산으로 들어왔는데,
작년에 그놈이 산 속에서 호환을 당하고 말았지요.
찢어지고 피 묻은 옷 조각이 숲에 널려있는 것만 보았지요.”
“저런! ”
어사는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이제 새 아이가 태어나고, 또 곡식도 알차게 영글었으니, 감사할 일입니다.”
어사의 위로에 사내의 얼굴은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산 속에 들어오면 굶어죽지는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깊은 산중까지 세금과 양반님네들의 횡포가 따라오니 못 당할 노릇이지요.
도적 떼가 무섭고 산짐승이 무섭고 외로움이 무섭지만, 탐관오리의 횡포만 하겠습니까?”
“아니, 이 깊은 산중까지 올라온단 말인가요?”
“산에 불을 지르고 만든 농토나 자갈밭은 어떤 곳은 3년에 한번 경작하고 어떤 곳은 5년에 한번 개간합니다.
원래 정해진 경계도 없고 파종하고 수확하려면 반드시 곱절의 노력을 들여야만 평지의 농토와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수해를 만나 물에 휩쓸려버리거나 산사태가 덮어버려 영원히 본래의 상태를 회복할 수 없게 되어도
세금을 감면해 주는 경우가 없습니다.
농사도 짓지 않는 땅에 세금을 매겨서 납부를 요구하고 농사도 짓지 않는 호구(戶口)에 전세(田稅)를 징수합니다.
간악하고 교활한 향리들은 또 더 나아가서 마음대로 농간을 부리는데
새롭게 개간해서 아직 장부에 수록되지 않는 농지에 대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세금을 징수해서 공용에 보태지 않고 훔쳐먹습니다.
여러 해 동안 농사를 짓지 않고 묵혀두어서 세금 징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땅은 관에서
세금 수량을 감면해 주지만 향리들이 몰래 사사로이 거둬갑니다.
또 세금을 징수할 때는 반드시 쌀로 납부하도록 합니다.
1일경의 농지에 거의 4두의 세금을 매깁니다.
척박한 땅에 이렇게 많은 세금을 내게 한다면 화전민들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
정재간 벽에 움을 파고 밝힌 우등불이 그을음을 내며 타고 있었다.
“곡식만이 아니라 봄여름가을 할 것 없이 산에서 나는 온갖 것을 다 요구합니다. 그
저 좀 편한 때는 산에 눈이 쌓이는 한겨울 뿐이지요.”
아침에 어사 일행이 오두막을 떠나려는데 산아래 마을의 양반 집 마름이 노비 둘을 데리고 들이닥쳤다.
“꿀과 꿩을 잡아 바치라는데 왜 소식이 없는 게냐?”
그들은 무조건 집 뒤짐부터 하였다.
“누구요? 누구길래 남의 집을 뒤지는 거요?”
사내가 소리치자 마름이 호통을 쳤다.
“네 이놈! 남의 산에서 곡식을 갈아먹고 사는 도둑놈아!”
“우리는 관아에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이 산은 우리 최참판 영감마님의 산이니라!”
어사가 듣기에도 이는 거짓이었다. 이 큰산이 개인의 소유일 수는 없었다.
말다툼을 하는 사이에 노비가 정재간에 있던 칡뿌리를 메고 나왔다.
마름이 익은 옥수수를 가리키자 노비들은 그것들을 꺾어서 자루에 담기 시작했다.
힘들여 일군 곡식들을 빼앗기자 사내의 눈에 불길이 일었다.
사내가 최참판네 노비들에게 달려들자 그들이 사내를 땅바닥에 매다 꽂았다.
이를 본 역노가 노비의 멱살을 잡자, 한바탕 몸싸움이 벌어졌다.
사나운 노비들은 어사까지 들어서 내동댕이칠 기세였다.
“이 놈들! 멈추지 못할까?”
어사가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비록 행색이 누추해 보이기는 하지만 말과 노비 둘을 거느린 양반이었다.
마름은 어사에게서 남다른 위엄을 느꼈음인지 성난 노비들을 수습해서 물러났다.
하지만 어사로서는 화전민을 착취하는 토반들의 횡포를 생생하게 목격한 셈이었다.
직접 당하고 보니 그 억울한 심정을 깊이 이해할 것 같았다.
수내마을 최참판이라. 내 관아에 들어가면 이를 기필코 추궁하리라.
무사히 산을 내려와 관아에 출두한 어사는 가장 먼저 화전민의 세금 장부를 가져오게 하여 조사하였다.
의외로 장부의 내용은 빈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산을 넘어오면서 꽤 많은 화전민들을 만났지만 장부에는 그들의 존재가 아예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무거운 세금에 등골이 빠지고 있으니...
이는 필시 아전들이 장부에 올리지도 않고 저희들 마음대로 세금을 거두어 착복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게다가 토반들까지 그들을 착취하고 있음에랴.
어사는 관련 아전들을 문책하고 장부를 바로잡을 것을 명령했다.
수내마을 최참판의 마름과 노비들을 잡아들여서 양반을 능멸한 죄로 곤장을 쳤음은 물론이다.
또한 한양에 돌아온 어사는 별단에 화전민의 고충을 지적하고 그 치유책을 제시하였다.
“의정부에 지시하여 감사에게 서면으로 명령을 하달하여 유실되어 농지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땅에 대해서는 영원히 세금을 면제시키고 세금이 너무 많은 경우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그 수량을 감면해 주어서 저 신음하고 있는 나머지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져 떠도는 경우가 없게 하십시오.”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 :: 호환마마 어원, 뜻
안녕하세요! 오늘도 단어의 어원, 뜻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관용어구 처럼 많이 쓰이는 단어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는데
바로 호환마마 어원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호환마마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나요?
보통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라고 많이 사용되는데
대체 호환마마가 무엇이기에 무서움, 두려움의 상징이나 기준처럼 사용되는 말일까요?
호환마마 어원에 대해 살펴보려면 먼저 호환과 마마를 따로 두고 이야기를 해야합니다.
우선 호환이 무엇인지 부터 알아보죠!
호환은 한자로 虎患(범 호, 근심 환)으로
호랑이에 대한 근심정도로 생각하면 되는데
말 뜻 그대로 호랑이에게 피해를 입은 것을 말합니다.
최근에는 호랑이를 보려면 동물원에 가야하기에 호랑이로부터 피해를 입는 일이 많지 않지만
과거 조선시대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호랑이의 습격을 받는 일이 종종 있었답니다.
태종때에는 경상도에서만 석달 동안 수백명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고 하며
숙종때에는 강원도에서만 300여명이 물려죽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밤중에 호랑이가 내려와 집에서 키우던 말이나 소들이 물려 죽는 일은
그보다 더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 당시에는 호랑이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이러한 호환을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적어
'호환'이 두려움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답니다.
그렇다면 마마의 어원, 뜻은 무엇일까요?
마마는 단순히 한자로만 풀수는 없답니다.
마마가 뜻하는 것이 바로 천연두이기 때문이죠.
마마라는 것은 벼슬아치의 첩을 높여 부르는 말로
왕을 부를때 상감마마라고 부르는 것 처럼 극존칭의 높임말입니다.
이러한 마마라는 이름이 천연두에 붙은 이유는 그만큼 무서웠기 때문이죠.
그 당시에는 천연두에 대한 대처 방안이 없어 천연두는 공포의 존재였죠.
그래서 민간에서는 천연두를 피하고 싶어 높여부르면 피할 수 있을가까하여
마마라는 존칭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이렇게 호환마마 어원은 호랑이에게 피해를 입는 것과 천연두를 뜻하는 것으로
당시 가장 두려워햇던 두 가지입니다.
즉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 라는 것은 죽는 것만큼이나 나를 힘들게 히는 것을 뜻하는 말로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세금',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암행어사' 등의
말로 사용되었다고 해요.
지금은 그리 많이 사용되는 단어는 아니지만
우리의 역사와 민속의 삶이 담긴 단어이니만큼
없어지지 않도록 사용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