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8일 - 이별
아내가 많이 지쳤다. 거기에 해수부의 계속 된 압박에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던 것 같다. 법 없이 살던 사람이, 공식 국가기관에서 계속 압력을 주니 더럭 겁도 났을 것이고. 나도 이제 역풍으로 어려운 항해가 될 아덴만과 험난한 인도양을 건널 생각을 하니, 10일 이상의 장거리 항해에 리나가 걱정 됐다. 나의 인식 부족으로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다. 나는 세계일주 항해가 뭔지 잘 몰랐던 것이다. 아마 나와 같은 꿈을 꾸는 많은 분들도 실제적인 세계일주가 뭔지 감을 잡기 어려울 것이다. 그냥 국내 항해를 좀 길게 하는... 절대 아니다.
일단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다른 나라 공적기관에 매번 조금씩 다른 형식의 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물과 식량, 디젤유를 사야하며, 카드가 됐다, 안됐다. ATM이 되다, 안 되다. 에이전트는 공식 사기꾼, 기타 패거리가 비공식으로 돈 뜯으러 달려들고, 추위와 더위, 벌레와 모기. 강한 햇살. 끊임없는 배 수리. 수리 부품은 한국과 환경이 전혀 달라, 구하기 어렵고. 만약 부품을 구입하고 배달을 받으려면 기본 15일, 게다가 제대로 올지 안 올지 장담하기도 어렵다. 엔진 등 크고 주요한 부품이 고장 나면, 한 달 이상 기다릴 수도 있다. 게다가 역풍, 싸이클론, 태풍, 바다 쓰레기, 등등 다양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머나먼 바다의 어느 마리나 또는 앵커리지에서 우두커니 태풍이 끝나길 기다려야 한다.
배도 다르다. 우리가 아는 메이커의 배들로 항해하는 세계일주 항해 선장들은 거의 없다. 다 자작이거나, 메이커를 알 수 없고, 20년 이상 된 배들이 많다. 그런 배를 저렴하게 사서, 큰 연료통, 워터메이커, 풍력 발전기, 솔라 패널 설치하고, 태풍이나 바람을 피해가며 2~3년씩 느긋하게 항해한다. 기본적으로 배에서 물과 전기가 자급자족이다. 은퇴한 사람들은 은퇴자금으로 세계를 돌고, 젊은이들은 돈 떨어지면 현지에서 일해 돈 벌어 가며 세계일주 한다, 일단 2~3년씩 바다를 떠 돈다는 게 한국인의 정서와 잘 맞지 않는다. 6개월, 1년. 딱 목표를 세우고 항해하는 방식은 세계일주 항해와는 거리가 있다. 세계일주 항해란, 기본적으로 기한을 정하지 않는다. 미국선장 윌리엄이 새로운 배를 샀다고 자랑한다. 1970 Southern Ocean Shipyard Gallant 53. 130,000 유로다. 대개 이런 배로 세계일주를 하는 거다.
아내와 리나를 한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해외지킴이센터에 카톡을 하고 도움을 받는다. 비행기 시간과 예약, 공항 픽업, 발권까지 친절히 도움을 주신다. 그동안 여러 방면으로 압박한 해수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아내와 리나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카톡으로 알린다. 가족 세계일주 세일링은 해수부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실패다. 이제 제네시스를 가지고 한국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오후 3시. 지부티 주재 한국 해군 장교님이 아내를 픽업해 주기로 했다. 아이와 아내의 짐을 챙기고, 텐더로 부두까지 나른다. 아차, 아내가 핸드폰을 놓고 왔다. 먼저 아내와 리나를 부두에 안전하게 내려두고, 나는 다시 가서 텅 빈 배에 오른다. 마음이 납덩이같다. 아내의 핸드폰을 찾아 다시 부두로 오니, 해군장교님이 기다리고 있다. 고마운 인사를 하고 차에 리나를 태우기 전에 안아주고 뽀뽀한다. 어느새 나는 울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오열하고 있었다. 이런 게 생이별이다. 아프리카 지부티. 흙먼지 이는 부둣가에서, 19개월 어린 딸을 부여잡고 한동안 울었다. 나는 리나를 차에 태우고, 울었다. 해군 장교님이 차마 출발을 못하신다. 떠나는 차를 바라보며 서서 울었다. 차가 보이지 않자, 나는 부둣가 수도에서 세수를 했다. 이제 나 혼자다. 정신 바짝 차리고 밤새워 야간 견시도 해야 한다. 나도 안전하게 고향에 돌아가야 한다.
일단 아내와 리나는 모두 참 잘했다. 나도 정확히 몰랐던 세계일주 항해 중, 지중해와 홍해 구간을 무사히 마친 거다. 아내는 멀미를 견디며 야간 견시를 교대해 주었고, 리나는 지금까지 건강히 잘 있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일을 한 거다. 둘 다 너무나 고맙다. 강릉까지 안전하고 건강하게 잘 가기를 기도한다. 12시간 후면 인천공항이다. 나는 3개월 후에 도착할 거다.
오후 3시 30분. 나는 제네시스에 돌아오자마자, 일을 시작했다. 오전 9시에 배달된 디젤 통들을 단단히 묶었다. 아프리카의 뙤약볕 아래 웃통을 벗고, 땀을 쏟으며 일을 마치고 선실로 들어갔다. 리나와 아내의 널브러진 옷들을 모두 캐리어에 담는다. 이제 한국까지 다시 열 일이 없는 캐리어다. 선실 바닥에 떨어진 리나의 장난감을 치우다. 그만 서서 한참을 흐느낀다. 기가 차다. 어떻게 가족이 아프리카에서 생이별을 해야 하나?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내일 출항에 맞도록 짐을 치우고, 아차 싶어 늦은 점심을 먹는다. 물 말은 찬밥에 김치다. 오늘은 다른 게 목구멍으로 들어가지 않을 듯 싶다.
오후 8시에 아산이 내가 부탁한 배터리 연결 케이블을 가져 왔다. 30달러다. 비싸지만 고생했다. 판매제품이 아니라 어디서 만들어 온 거다. 오후 9시에 마지막으로 도크에 가서 물을 공급받고, 출국스탬프와 포트 클리어런스를 마친다. 다시 앵커리지로 돌아와 내일 출항의 항로를 확인중이다. 리나는 한국행 비행기에서 자고 있을까? 한국서 맛난 것 많이 먹기를 기도한다.
독일 선장 마르코가 나의 안전을 위해 보내준 홈페이지다.
http://svsoggypaws.com/files/index.htm
<= 여기서 각종 항해 정보를 얻으면 된다
https://www.metoc.navy.mil/jtwc/jtwc.html
<= 전 세계 일기 예보
첫댓글 힘내셔요, 안전항해 기원합니다
안전항해 기원합니다.
어려운 결정을 하셨습니다.
힘내시고 차근차근 전진 하는게
답인 것 같습니다.
안전 항해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