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53)움켜쥔 단추
강원도 정선 땅 첩첩산중 담비골에 단 두집이,
윗집엔 심마니 내외가 아랫집엔 사냥꾼 내외가 살았다. 그들은 친형제처럼 내것 네것이 없었다.
어느 깊은 가을날 산삼을 캐러 간 심마니가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아 심마니 부인은 쪽마루에 걸터앉아
남편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아랫집 사냥꾼이 올라와 한다는 말씀이
“형수님, 우리 집사람 여기 안 왔습니까?”
심마니와 사냥꾼 마누라가 눈이 맞아 도망쳐버린 것이다. 심마니 부인은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워
버렸는데 연놈들을 찾으러 간다며 대처로 나갔다가 3일 만에 헛걸음을 치고 돌아온 사냥꾼이
“형수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일어나 이것 좀 드세요.” 하고 음식을 권했다.
아랫집에서는 생홀아비가 윗집에서는 생과부가 분노와 한숨으로 살아가다가 눈이 펄펄 오던 어느
겨울날 밤, 사냥꾼이 술냄새를 풍기며 윗집 생과부 방으로 들어가자 그녀도 기다렸다는 듯이 품에
안겨 광란의 밤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두사람은 가시버시가 되어 새살림을 차렸다. 사냥꾼은 심마니 부인을 형수님이라
부르는 대신 여보라 불렀고 그녀도 자연스럽게 사냥꾼을 서방님이라 불렀다. 사냥꾼은 하룻밤도
거르지 않고 심마니 부인의 고쟁이를 벗겼고 그녀는 새로운 밤풀이에 심신이 들떴다.
지난 가을의 분노와 한숨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새삶이 너무 짜릿해 웃음꽃이 질 날이 없었다.
꽃피고 새 우는 화사한 봄날이 찾아왔다.
산나물을 뜯으러 산속으로 들어간 사냥꾼 새마누라는 사냥꾼이 좋아하는 곰취를 뜯으러 점점
깊이 들어가다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바위 사이 풀 속에 처박힌 시체, 그것은 사냥꾼 부인과
도망쳤다던 남편 심마니였다.
움켜쥔 오른손을 펴자 단추 하나가 나왔다.
그녀는 단추를 들고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왔다.
가을에 입던 사냥꾼의 조끼를 꺼내자 단추 하나가 떨어졌고 나머지 단추와 그녀가 갖고 온 단추는
같은 모양새였다.
사냥꾼이 방으로 따라 들어와 방바닥에 엎드려 울면서
“용서해주시오.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미칠 것만 같았소. 으흐흐흑.”
망연자실 천장만 바라보던 부인이 조끼와 단추를 들고 나가더니 부엌 아궁이 불 속에 던져버리고
방으로 들어와 배시시 웃으며 “나도 서방님 품에 안기는 꿈을 수없이 꾸었습니다.”
사냥꾼이 감격하여 그녀를 안았다. 운우가 지나고 땀을 훔치지도 않고 속치마만 걸친 채 그녀는
부엌에서 술상을 차려왔다. 사냥꾼이 하초만 가린 채 벌컥벌컥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그리고
초점 잃은 눈을 크게 뜨더니 피를 토하며 꼬꾸라졌다.
지아비를 죽인 원수를 갚았다.
이튿날 산속으로 들어간 그녀는 억울하게 죽은 심마니 시체를 수습하여 땅에 묻고 술을 따라 제를 올렸다.
사냥꾼의 시신도 수습해서 양지바른 곳에 묻고 술을 따랐다. 지아비를 죽인 원수지만 그 또한 다섯달 동안
살을 섞은 지아비가 아닌가. 거름더미 속에 파묻혀 있던 사냥꾼 부인의 시체도 찾아내 땅에 묻었다. 그날 밤,
담비골 두집엔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그녀는 어디론가 종적을 감췄다.
첫댓글 오늘도 날씨는 습하고 무덥지만,
소중한 오늘 즐겁고 행복한 수요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