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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손길로 안수하기를(2272.2024.10.20.)
마8:1-4
할렐루야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힘을 얻는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치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병을 고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명령만 하시면 치료가 됩니다. 오늘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이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병을 고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와 간청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즉시로 치료됩니다. 믿으십시오. 진실로 믿고 기도하십시오. 오늘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와 사랑하는 상주감리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과 생활 현장에서 오직 예수, 오직 말씀, 오직 믿음으로 따르고 기도하고 간구하여 어떤 불치병이라도 깨끗함을 받아 평강의 은혜로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4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원하시면 나병 환자도 깨끗해짐을 확증해 줍니다. 1절‘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수많은 허다한 무리가 따르니라’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산에서 내려오실 때 수많은 무리가 따랐습니다. 그들 중에 한 나병 환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왔습니다. 나병은 현대에도 불치병이지만 하나님은 고치십니다. 2절‘한 나병 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나병 ‘레프로스’나병 환자, 문둥병자, 한센병을 의미합니다. ‘레프로스’ 비늘 모양의, 비늘에 덮힌, 딱지로 덮힌 여러 종류의 피부병을 나타냅니다. 나병은 나균 감염에 의해 피부 조직을 변형시키는 만성 질환입니다. 나병은 현대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불치병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
도는 즉시 치료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나병 환자를 고쳐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10:8절‘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질문하러 왔던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세례 요한에게 전하라고 했습니다. 마11:5절‘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열 명의 나병 환자도 한꺼번에 고침을 받았습니다. 눅17:12-14절‘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 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동시에 열 명의 나병 환자도 고치시는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불치의 병도 간단하게 고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나병 환자처럼 불치병을 고치는 방법을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을 찾아와서 간청해야 합니다. 2절‘한 나병 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주여 원하시면’ 주께서 원하시면 모든 주권이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는 고백입니다. ‘원하시면’‘델로’,‘바라다, -하고자 하다, 좋아하다, 기뻐하다’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과 능력을 인정한 겸손한 마음입니다. 모든 결과를 그리스도께 맡기는 신앙에서 비롯된 고백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여러분을 터치 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누구와 손을 잡느냐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악한자들과 결탁하여 손을 잡으면 악의 소굴로 들어가게 되고, 선한자들과 손을 잡으면 선한일을 도모하게 됩니다. 영적인 손은 더욱 그렇습니다. 마귀와 손을 잡으면 마귀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과 손을 잡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래서 폭력세계와 손을 잡았다는 것은 그 조직으로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개인이나 국가 모두가 이런 표현을 사용합니다. 우리나라가 일찍이 미국과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기에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동맹국이 되어 지금까지 친구처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손에는 보이지 않는 능력이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여러분들도 체험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감기에 걸려 열이 난다거나, 음식을 먹고 체했을 때 우리의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아픈곳에 손을 대고 ‘엄마손은 약손’이라고 쓰다듬어 줍니다. 그러면 신기할정도로 열이 내려가고, 체한 것이 풀리고 고침을 받았던 경험들이 한번쯤은 다 있었을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나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유는 그 손에 무슨 신통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분의 사랑이 나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나았던 것입니다. 만진다는 것은 서로 사랑이 전달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만나 단순하게 인사만 하지않고 손을 잡고 악수를 합니다. 그러면 훨씬 더 정감이 있고 친근감을 느낍니다. 손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손에는 사랑이 있고, 감정이 있고, 능력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악수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것도 아주 찐하게 말입니다. 사람들의 되어지는 모든 일들이 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성경에도 우리 주님께서 일을 하실 때에 주로 손을 통해서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손은 능력의 손이고, 능력 그 자체이십니다.
우리나라에 한동안 미투운동이 일어나서 목회자들도 성도들과 악수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목회자들이 성도님들이 아플 때 손을 얹어 기도하는 안수기도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도 여러분이 목사님과 악수하는 것이 미투운동으로 연결한다고 하면 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예배후에 악수한다는 것은 믿음의 손을 잡아보는 것, 삶에 거칠어진 손을 잡아보는 것, 기도하는 손을 잡아보는 것이다라고 생각을 해주면 참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목사님이 손을 잡고 악수하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의 손을 꼭 잡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악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주면 참 좋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손 내밀면 마음껏 잡아 흔들겠습니다. 미투로 신고하면 하지 못합니다. ㅎㅎㅎ
그리고 우리 성도님들의 아픈 곳에 손을 얹어 기도합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이 예배시간에 제가 설교후에 단체로 하는 안수기도도 하나님이 역사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 안수기도 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아픈 곳을 위하여 간절히 안수하며 기도하는 것은 주님의 손이 성도들의 아픈곳에 손을 얹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손을 전혀 대지 않고도 얼마든지 치유하실 수 있고, 말씀만 하셔서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 손을 대셨습니다.
눅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인 성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장례행렬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나인 성에 살던 과부가 외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유일한 희망이었던 외아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계시던 예수님께서 장례행렬로 다가가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의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눅7:14절‘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그 당시 유대인의 정결법에 의하면 유대인이 죽은 자의 관에 손을 대면 안 됩니다(민19:11). 예수님께서 율법을 모르셨을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관에 손을 대지 않고도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의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고 병을 짊어지십니다. 마8:17절‘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분명한 것은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어떤 이들을 일일이 고쳐주셨습니다. 한 나병환자(2-4절), 한 백부장의 하인(5-15절), 베드로의 장모(14-15절), 귀신들린 자들(16,28-34절) 등입니다.
1.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오면 손을 내밀어 고쳐주셨습니다.
현대인들의 가장 큰 고민중에 하나는 과연 누가 이 손을 잡아 줄것인가 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자기의 손을 만져줄 자를 찾습니다. 사랑에 목이 마른자는 자기만 사랑해 주는 손을 찾고, 돈에 목이 마른자는 큰손을 찾으며, 권력이 필요한자는 권세자의 손을 찾아 다닙니다. 질병에 걸린자는 치유하는 손을 찾으며, 실패한자는 위로의 손을, 절망중에 있는 자는 소망의 손을, 처녀는 총각의 손을, 총각은 처녀의 손을 찾습니다. 물론 성도는 주님의 손을 찾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우리에게 내어 미는 손은 우리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이손 저손을 만지고 찾아봐도 결국은 문제를 더욱 꼬이게만 합니다. 솔직히 권력자의 손을 한번 만져본들, 아니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인기 있는 연예인들의 손을 한번 만져 본들 달라진게 뭐가 있던가요? 더러운 세균만 묻어온다고 하여 손을 깨끗하게 씻습니다.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문둥병자도 자기를 고쳐줄 수 있는 손을 찾기도 하고 치료하는 손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어떻게 고쳐주셨습니까? 때로는 손을 내밀어 대심으로써 고쳐주셨고, 3절‘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15절‘그의 손으로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때로는 말씀만 하심으로써 고쳐주셨습니다. 13절‘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 대로 될지니라 하시니’그 결과는 모두 어떠했습니까?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손을 대시거나 말씀만 하시든지 간에 상관없이 모두 그 즉시 고침을 받았습니다. 당사자가 직접 찾아와서 간구해야만 고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지인이 대신 찾아와서 간구해도 고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5-6절‘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예수님은 특히 누구의 경우를 놀랍게 여기시면서 칭찬하셨습니까? 백부장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이스라엘 중에 그만한 믿음을 가진 이를 보신 적이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10절‘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했습니다.
도대체 그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와 같은 칭찬을 받을 수 있었습니까?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도 이만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말씀만으로도 능히 고침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합니다. 7-8절‘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이렇게 마8장에는 병을 고쳐주는 장면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9:25절‘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했습니다.
민5:2-3절에, 레13:45절을 보면 율법에는 나병이 들면 자기 집에도 성전에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완전한 격리입니다. 율법을 이기지 못하면 나오지 못합니다. 물론 나병환자가 특별히 죄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성경은 죄가 무엇인지 나병을 비유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죄의 부담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하면 술 끊고 나가겠다. 변화된 다음에야 나가겠다고 핑계를 댑니다. 교회 나온 성도들도 바로 살지 못한 죄의 부담을 갖습니다. 양심과 율법이 우리 심령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놓습니다. 답답하고 괴롭고 눌리고 아픕니다.
그런 우리가 영적인 의미에서 나병환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너는 죄인이라 정죄해도, 그러기 때문에 나는 용납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그러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다면서 회개하면서 더 담대히 율법을 이기며 나와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영원한 영광으로 구원하신 그 은혜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예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율법을 알고 계셨음에도 나병 환자에게 손을 대셔서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손을 대지 않고도 얼마든지 나병을 고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나병 환자의 몸에 손을 대셔서 고쳐주셨습니다.
2.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지고 나오면 손을 대시며 고쳐주십니다.
오늘 이 시대에 약하고 병들고 상처입은 영혼들에게 누가 다가서서 선뜻 손을 잡아 줄수 있을까요? 하지만 세상에서 상처입고 절망중에 낙담하고 있는 영혼들에게 다가 오셔서 손을 잡아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은 우리가 형통하고 잘나갈 때, 다가와 손을 내밉니다. 그리고 병들고 힘없고 이용가치가 없으면 매정하게 손을 뿌리치고 떠나갑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가 약하고 힘들고 병들고 지쳐있을 때, 실패하여 낙담 할 때,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고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 주님은 다가 오셔서 손을 내어 미십니다.
찬송가 509장의 가사를 한번 읽어 보십시다.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그손 못자국 만져라 고된일 하다가 힘을 얻으리 그 손못자국 만져라 그손못자국 만져라 그손 못자국 만져라 주가 널 지키며 인도하시리 그 손못자국 만져라’
계속 4절까지 읽어 보십시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사람에게 상처받고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까? 영혼이 지치고 지쳐서 도저히 살 가망이 없습니까? 주님의 손을 놓지 마세요. 이 시간 아무 기쁨도 없고 소망도 없는 세상의 손을 과감하게 놓으세요. 그리고 주님의 손을 힘있게 잡으세요. 절대 그 손을 놓지 마세요.
본문에는 나병 환자가 등장합니다. 나병은 그 당시 저주받은 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병에 걸리면 마을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전염성과 저주받은 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나병 환자는 가족이 있어도 가족 품에 안길 수가 없습니다. 나병 환자는 자기 집이 있어도 자기 집에 머물 수가 없습니다. 나병 환자는 자기가 자라고 살던 동네가 있어도 그 동네에서 이웃과 함께 살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이 이와 같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너무 차디찬 세상 속에서 정해진 틀에 의해 움직이며 살아왔습니다.
나병환자가 나와서 절했습니다. 2절‘나아와 절하며’여기 ‘절하며(프로세퀴네이)’ 는 직역하면 ‘무릎을 꿇다’ 입니다. 무릎으로 예수님에게 최대한의 존경과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서 이미 소문으로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메시야 앞에 엎드려 경의를 표했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예배 신앙을 가르쳐줍니다. 이처럼 늘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이 임하십니다. 이것이 믿을 뿐 아니라 시인하는 것으로 죄에서 벗어나고 구원을 누리는 길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할 때 성령이 임하여 그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백부장 고넬료와 같이 열심히 하나님을 경외하세요. 그러면 예수의 복음만 믿어도 성령이 임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어도 경외함이 부족하다면 누릴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이 한 가지만 부족해도 굴러가지 않습니다. 잠16:6절‘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드린 만큼 거룩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하셨고, 베드로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깊은 산속에 살아서 게임이라고는 땅에 그림을 그려놓고 땅따먹기 하는 게임, 자치기, 돼지 오줌보로 공차기, 등등하고 여자들은 고무줄놀이, 그리고 냇기에 발가벗고 수영하고 놀기, 한 가족이 한 방에서 뒤엉켜서 자면서 자란 추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기계와 함께 게임을 한다든지 대화도 핸드폰으로 한다든지 다 혼자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친구와 함께 웃고 떠들고 몸 부딪히며 하는 게임이 아닌, 혼자서 기계를 통해서 말초신경만 자극되는 게임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또 공부한다고 어릴 때부터 엄마 떨어져서 어린이 집에 보내집니다. 그리고 똥오줌만 가리면 그때부터 따로 자기 방에서 떨어져서 잡니다. 밤에 자다가 무섭다고 엄마 방에 가면 쫓겨납니다. 그리고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학교 이외에 학원 다니느라 친구들과 뛰놀 시간조차 없이 기계처럼 움직이며 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걸어나오다가 학생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학원은 몇 개나 다니냐고 했더니 보통은 2-3개입니다.
어른들은 밀림 같은 사회 속에서 생존경쟁을 하면서 살아남기에 바쁩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 속에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나 그런 장소가 흔치 않습니다. 서로가 몸을 부디끼고 함께 하는 시대가 지나갔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런 인생들을 친히 찾아와 주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까지 오신 예수님만 하여도 너무나 감사한데, 우리 예수님은 친히 그 손길로 우리를 만져주십니다. 외로움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만져 주십니다. 세상 살아가느라 힘든 우리의 육신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 하는 우리의 연약한 육신도 만져주십니다. 삶이 힘들고 어려워 힘에 겨운 걸음을 걷고 있는 우리의 곁에 다가오셔서 함께 손잡고 걸어주시는 동행자 예수님이십니다. 지금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에게 우리 예수님께서 그 손을 펴서 붙잡아주시고 어루만져 주시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병들어 죽게 되어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던 중 12년 동안 하혈을 하던 여인이 예수님께로 다가옵니다. 이 여인은 감히 예수님의 손길조차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여인은 예수님의 은총을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깃에 손을 댑니다. 예수님의 손길도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의 옷깃만 만졌을 뿐인데 이 여인이 12년 동안 안고 살았던 질병이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주님의 은총이 간절하게 필요했습니다. 이 여인은 그 사모함이 믿음으로 행동하게 했습니다.
막5:28절‘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이 여인의 사모함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을 것을 믿는 믿음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여인 못지않게 주님의 은총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성도여러분들도 이 여인과 같은 사모함이 간절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손길이 아니라 그 옷깃만 만져도 놀라운 은총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토록 사모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음성도 들려주시고, 따뜻한 손길로 만져주실 것을 믿습니다.
3.주님의 손길로 어루만짐을 받게 되면 회복된 삶을 살게 합니다.
주님의 손은 능력의 손입니다. 회복의 손이요,치유하는 손입니다. 주님이 만지시면 못고칠질병이 전혀 없습니다. 비록 추하고 더러운 내 손이지만 주님이 잡으시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문둥병자에게 손을 친히 내미셨습니다. 문둥병자의 무엇을 보시고 손을 잡아 주셨을까요?
주님의 손에는 우리가 상상할수 없는 능력이 있습니다. 현대목회 임상학에 보면 환자의 손을 잡거나 얹고 기도하면 굉장한 사랑과 동정심과 용기와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오늘 문둥병자는 주님이 손을 내밀어 만지시고 깨끗함을 받으라고 명하시매 즉시 깨끗해졌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문둥병자에게 접촉함으로 인해 전달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은혜요,복음의 능력입니다.
우리 주님의 손길은 우리의 질병만 고쳐주시는 손길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손길은 우리의 육신의 연약함도 만져주셔서 치유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 깊숙한 곳까지 그 손길의 온기가 전해질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의 몸에 손을 대셨을 때 그들의 나병이 나았을 뿐만아니라 그들에게 또 다른 은총이 임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손길로 어루만짐을 받게 되면 감사가 회복된 삶을 살게 합니다. 본문 4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고쳐주신 후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 당시 율법에 따라 나병 환자가 치유되었을 때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예물을 드리도록 되어 있었던 것을 행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 속에는 단순히 절차를 행하라는 의미 이상의 의미가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리라고 한 것은 율법의 이행을 말씀하심과 동시에 감사를 하나님께 돌리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질병이 사람에게 불행이지만, 그 당시 나병은 특별히 더 불행한 병이었습니다. 고칠 수 없는 병이었기 때문이며, 저주를 받은 병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병을 치유 받았다면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이 순간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가족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절친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 자기가 나병에 걸린 것을 무시하고 동네에서 내쫓았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병을 치유 받은 사람이 가장 먼저 달려가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보고 싶은 가족에게 가는 것, 자기를 그 동안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치유 받은 것을 자랑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들을 앞으로 절대로 만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 만나서 보여주고 자랑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로 가서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의 손길로 베푸신 은총은 우리가 좋아하기만 하는 은총이 아닙니다. 주님의 손길로 베푸신 은총은 우리로 하여금 감사하며 살게 하시는 은총입니다. 내가 좋아하기만 하는 은총은 우리 삶에서 너무 쉽게 잊혀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아는 은총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도 감사하게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오면서 주님의 손길이 얼마나 우리를 어루만져주셨는지 헤아릴 수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강력한 권능의 손길로, 때로는 은밀한 손길로 우리를 어루만져주셨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그 손길로 인하여 받은 은총이 너무 쉽게 잊혀지고 맙니다. 주님 손길의 따뜻한 온기가 우리에게서 너무 쉽게 식어지고 맙니다. 주님의 손길로 우리의 질병이 나았을 때, 주님의 손길로 우리가 위로를 받았을 때, 주님의 손길로 우리 삶에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손길로 베푸신 은총이 우리 삶에 더 풍성한 은총으로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본문 4절‘예수께서 그에게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드려서, 사람들에게 증거로 삼도록 하여라’했습니다. 나병에 걸리게 되면 제사장에게 진단을 받게 됩니다. 나병으로 진단이 내려지면 그 사람은 가족과도 함께 할 수 없고, 동네에서 함께 살 수 없습니다. 나병이 치유되면 마찬가지로 제사장에게로 가서 나병이 나은 것을 진단받게 됩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그 동안 나병환자로서 겪었던 모든 서러움과 억울함과 불편함과 마음의 상처까지도 다 회복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를 고쳐주시고 제사장에게 가서 나병을 치유 받았다는 증거를 가지고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보여주라고 하셨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모든 질병은 다 마찬가지로 몸이 아프면 몸만 아픈 것이 아닙니다. 마음도 함께 아프고, 삶도 함께 지치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봐서 알지만, 우리 인생이 하루아침에 드라마의 제1막에서 제2막으로 바뀌는 것처럼 바뀌지는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가 치유 받은 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님을 아시고 제사장에게 보여 모든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치유 받은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손길은 우리의 마음도 치유하시고, 우리의 삶까지 회복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손길로 어루만짐을 받은 사람은 항상 그 삶에 당당함이 묻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입증해 주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을 통하여 이제는 더 이상 나병환자가 아님을 입증한 사람은 곧 하나님께서 입증
한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입증해주신 사람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괜찮다고 말씀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인정하노라.’고 말씀해주신 사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든, 누구 앞에서든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살아갈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그 손길로 우리의 어깨를 두드려주십니다. 예수님의 손길로 상주감리교회 예배 참석한 모든 성도들의 마음도 어루어 만져주심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고달프고 어렵더라도 주님의 손길로 성도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시면서 힘을 더하여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고쳐주시고 새롭게 해주실 것입니다. 치료하시고 깨끗케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영혼의 문둥병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간 예수님 앞에 나아가 주님의 은혜를 간구합시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이렇게 간구할 때 주님께서는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며 친히 ‘손을 내밀어 우리 육신과 영혼을 만지실 것’입니다. 그 분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더러운 죄악과 욕심이 씻기고, 절망과 분노가 씻기고, 그 위에 은혜의 새 살이 돋을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주님의 손길은 위로와 치유와 회복의 터치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 설교후 안수기도 할 때에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고백하셔서 주님의 손길이 여러분에게 터치가 되어서 깨끗이 치료함을 받고 주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으시고 여러분에게 위로와 치료와 회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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