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버트 스트리플링"(Alfred Burt Stripling)은
영국의 "론서스톤"(Launceston)에서 1838년 12월 13일에 태어났다.
영국과 청나라 "상해"에서 경찰로 근무하였다.
1883년에 초대 인천해관장(海關長)으로 임명되었다.
"설필림"(薛必林)은 "알프레드 버트 스트리플링"(Alfred Burt Stripling) 한자식 표기이다.
1883년 6월 16일 그의 나이 45세에 인천에 도착하여 초대 인천 해관세무사를 맡아 2년 3개월간 근무하고
1885년 "묄렌도르프"(Paul George von Möllendorff : 穆麟德)가 조선해관 총세무사직에서 해임되자,
"스트리플링"은 후임인 "메릴"(Henry F. Merrill : 墨賢理)의 부임 이전까지 총세무사 직을 대리하였다.
해관원(海關員)을 그만 둔 이후에는 조선의 광산을 개발하는 데 적극 관여하였으며, 1896년에 경무청 고문관에 임명되었다.
1900년 1월 주한일본 임시공사 "야마자 엔지로"(山座圓次郞)는 "스트리플링"이
경인철도 선로에 면한 약 250,000평에 달하는 자신의 땅을
일본 정부에 매각하기를 희망한다고 보고한 것으로 보아 富를 상당히 모은것으로 보인다.
1904년 3월 18일 66세의 일기로 사망하여 양화진에 안장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