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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 평가한 보이차 고수 서영수 감독
- 한중 수교 전 중국 방문길에 매료된 보이차
- 중국국영 CCTV가 다큐로 소개한 전문가
- 차의 맛과 향기 찾아 보이차 산지 누벼
서영수 영화감독은 보이차 감정(鑑定)의 고수다. ‘보이차’의 향기와 맛에 취해 중국을 누비던 그는 어느새 ‘보이차 연구가’, ‘보이차 전문가’가 됐다. 중국 국영TV인 CC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한국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보이차 전문가로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중국을 대표하는 국영TV인 CCTV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그들의 전통차인 보이차 전문가의 한사람으로 한국인을 소개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미 4년이 지난 2015년 4월의 일이다. 주인공은 보이차 감정(鑑定)의 고수로 전업(轉業)에 성공한 서영수(1956∼ ) 영화감독이다.
그는 1980∼90년대에 영화 기획, 제작, 연출 활동을 한 충무로시대 마지막 세대의 영화인이다. 그가 ‘보이차’의 향기와 맛에 취해 배낭 메고 중국 운남성(雲南省 윈난성) 원산지를 떠돌아 다닐 때는 충무로가 영화제작 및 수입업의 개방시대로 접어들어 ‘영화인의 거리’라는 화려한 명맥이 막을 내릴 때였다. 필름이 사라진 디지털 영상기술의 영화산업은 제작자본, 배급시장, 전문 영화종사자들까지 변화와 세대교체로 판도가 바뀌던 시기였다.
그는 홀가분하게 충무로를 벗어나 틈만 나면 평소 좋아하던 차문화를 탐닉하고 다도(茶道)의 호기심을 달래는 ‘나홀로 여행’ 일정을 잡았다. 발길은 중국을 대표하는 보이차 산지로 옮겨졌다. 전설이 깔린 차마고도(茶馬古道)를 오르내리고 장엄한 명산 옥룡설산 계곡을 헤매며 인간 내비게이션이 될 즈음 비로소 현장 탐사수업을 마무리하고 ‘보이차 연구가’, ‘보이차 전문가’라는 직함을 내밀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나 한국영화 중흥기의 거장인 유현목(1925∼2009) 감독의 <사람의 아들> 연출팀에 들어가면서 청장년기의 열정을 충무로에서 소진했다. 이두용 감독의 <욕망의 늪> <낮과 밤> 등의 연출팀을 거쳐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전쟁> <서울 엠마뉴엘> 등의 영화를 연출하거나 기획, 제작하기도 했다.
일손을 놓으면 ‘뜬구름 인생’이 되는 충무로 영화인생의 남은 열정과 꿈을 보이차 연구와 다도문화 보급에 돌려 즐겁게 살아가는 서영수 감독에게 스스로가 일으킨 인생반란의 고백을 들었다.
한중 수교 앞두고 중공 다큐 제작
'보이차 전문가'로 불리는 서영수 영화감독. 차에 푹 빠진 그는 지난 10년간 1년에 서너 달을 보이차 원산지인 운남성에서 보냈다. 그는 "제대로 된 전통 멋과 맛의 다도를 전파하려고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이차 연구소도 설립해 다도교육도 진행한다./사진=인터뷰365
- 중국의 대표 국영TV(CCTV)가 그들의 전통차인 보이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서영수 감독을 소개한 것은 파격적이고 이변이다. 전문성을 공개적으로 평가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어쩌다 영화 만들던 사람이 보이차에 꽂혔는가?
"어릴 때 어른들 곁에서 공손하고 반듯한 자세로 앉아 전통 차를 마시던 다도(茶道)는 어른이 되어서도 관심이 많았다. 한중 수교를 앞두고 미리 중국문화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국책 영화 연출을 맡았었다. 당시 중공(中共)으로 일컫던 중국에 들어가면서 보이차 맛에 끌리기 시작했다. 중국 사람들이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물처럼 마시는 차가 보이차다."
- 1992년에 이루어진 한중 수교 이전에 중국(당시 중공)에 들어갈 수 있었다면 미수교 관계지만 은밀하게 양국에서 매우 특별한 임무를 부여한 것으로 짐작된다.
"제작이 국방부 소관이었고, 안보외교와 관련되었지만 양국의 사전합의 과정을 거쳐 우리 영상제작팀이 중국에 들어가 촬영활동을 할 수 있었다. 중국을 소개하기 위한 기록 필름이었다. 나는 중국문화를 뮤직비디오 연출하듯이 내레이션을 최대한 절제해 독창적인 영상 이미지를 부각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당시 중국에서 우리 제작팀을 지원한 기관이 체신부에 해당하는 막강한 권력 실세의 핵심부처였다."
한중 수교를 앞두고 중국문화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국책 영화 연출을 담당하기도 했던 서영수 감독은 중국 국영TV인 CC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한국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보이차 전문가로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중국 CCTV방송 캡쳐/사진=서영수 제공
- 한중 수교 전부터라면, 그로부터 30여년을 두고 보이차에 친숙감을 가지고 생산지 현장을 답사하며 전문가로서의 지식을 습득해 온 집념이 놀랍다.
"친숙감이라기보다 관심을 가졌다는 말이 편하게 느껴진다. 중국문화라고 다 관심이 가고 호감을 느끼게 하는 건 아니다. 자주 방문하게 되니 그들의 일상적인 의식주 전통 생활문화도 많이 알게 되고 그 중에 그들에게 인민차(人民茶)와 같은 보이차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지난 10년간은 1년에 서너 달쯤을 운남성에서 보냈다."
- 중국을 다녀오는 사람들의 선물꾸러미에 대다수 보이차가 들어 있다. 우리 다도문화 속에 보이차가 들어와 차지하는 비중이 그 만큼 커졌다. 도대체 보이차의 특색은 무엇인가?
"보이차의 이름은 중국 운남성 지역의 보이현(普洱縣) 지명에서 유래된다. 운남성은 면적이 우리나라 4.5배 쯤 되는 히말라야 남쪽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접경의 고원지역에 있다. 그곳 소수민족들이 생산해 청나라 황실에 진상했다는 보이차는 원래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녹차, 홍차, 전차 등이 모두 보이차로 통했으나 뒤에 틀에 담아 증압 성형한 숙성 효차가 보이차의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항산화물질 플리페놀의 일종인 카테킨과 갈산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고, 갈산 함유량은 녹차의 13배에 이른다. 지방분해력이 있어서 비만방지에도 좋다는 따위가 인기를 끌게 하는 보이차의 특장이다."
품질도 가격도 천차만별 보이차
- 중국에서 구입하는 보이차는 생산자도 다양하고 가격도 차이가 많다. 가끔 차를 마시는 사람들도 맛으로 품질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가격과 품질의 차이는 무엇으로 기준을 삼고 인정이 되는가?
"제대로 설명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가장 귀한 보이차는 100년 이상된 교목형 차나무에서 채엽, 제다(製茶)한 고수차(古樹茶)로 차농원 밭에서 대량재배한 관목차와 비교할 수 없는 값어치로 거래된다. 운남성 원산지에서도 생산량에 한계가 있어서 그 가치는 관목차보다 100배, 1000배 부르는 게 값이 될 수 있다. 운남성에는 세계 최고 수령이라는 3400여년 의 차나무를 비롯해 천년이 넘는 고차수가 산재해 있다. 관목차 2~3만원짜리의 보이차 편(片)이 고수차일 때는 300~500만 원짜리가 되기도 한다. 보이차는 그밖에 차잎이 두텁고 솜털이 많은 해발 800m 이상에서 채엽한 고산차, 낮은 지대에서 자란 평지차 또는 대량재배단지에서 나온 대지차 등으로 구분된다. 간혹 재배단지에서 생산한 수입 보이차에서 중금속이나 농약잔류 문제가 대두되기도 한다."
- 비싼 보이차의 맛은 무엇이 다른가?
"약간의 떫은 맛과 부드럽고 매끄러운 느낌의 탄닌 성분이 제대로 발효, 일어나는가를 보고 평가한다. 생차는 난향과 대추향이 진하게 후각을 자극하고 몇 잔 마시면 등허리가 훈훈해지고 이마에 땀이 나오기도 한다. 숙성정도에 따라 차엽의 색깔이 연녹색에서 갈색으로 변하고 지엽은 만져도 부서지지 않고 탄력이 있어야 가치를 인정받는다."
- 1년에 서너 달씩 중국 운남성 보이차 원산지에 살면서 겪은 일화를 들려달라.
"내게 길잡이가 되어 준 중국의 차예사(茶藝師·차전문가)가 있다. 주지리라는 젊은 교수인데 그와 보이차 산지를 함께 다니고 형제처럼 지내며 동고동락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를 통해 보이차의 역사적 생산 배경이나 유래에 대한 지식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현지 주민들의 채엽 현장을 전전하며 눈으로 관찰하고 발견하는 과정이 더 소중했다. 에피소드가 많다. 운남성 산골에서 맛본 토속 요리 맛도 잊을 수 없다."
'보이차 전문가' 서영수 영화감독/사진=서영수 제공
- 토속 요리라면?
"운남성에는 26여 소수민족들이 산다. 손님에게 숨이 넘어가기도 전에 뽑은 산닭의 피를 마시게 한 뒤 비로소 인사를 나누는 민족도 있다. 이어서 닭 머리도 잘라 준다. 여기에 독주 대접이 따른다. 옥수수를 증유해 만든 70도짜리 옥미주를 한잔 마시면 핑 돌면서 눈에 불이 켜진다. 또 어떤 마을에서는 매미 애벌레를 살짝 구워먹는 별미 요리도 있고, 봄이 되면 죽순과 함께 대나무 벌레인 죽충을 튀겨서 먹는 사람들도 있다. 새우깡보다 더 고소하다."
- 운남성은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관광지다. 성도인 쿤밍(昆明 곤명)을 비롯해 트레킹 명소인 호도협, 차마고도, 샹그릴라, 옥룡설산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
"네비게이션이 제대로 등장하지 않았던 때에는 내가 보이차 산지의 인간 네비게이션 구실도 했다. 산속에서 길을 잃은 차량이나 중국인들이 나를 만나면 보이차 산지를 묻거나 지역의 관광안내를 받기도 했다. 고수차의 최고 명품판매회사인 중국의 우림고차방(雨林古茶房)도 나에게 보이차 산지의 정보를 물어올 때가 있었다. 운남성 산길은 포장이 안 된 옛길이 많다. 진흙탕 벼랑길이 많아 사계절 스노우 타이어를 사용해야 안전하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영화 입문
- 보고 느낀 차마고도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들려 달라.
"‘차마고도’(車馬古道)는 말 그대로 중국의 차와 티벳지역의 말을 교역하던 중국의 험준한 옛길이다. 고산지 티벳의 말은 폐활량이 평지의 말보다 높고 체력도 강인해 전쟁터에서 명마로 사랑을 받는다. 중국은 그런 말이 필요했다면, 육류 중심의 식생활을 하는 고산지역의 티벳사람들은 비타민C가 부족해 중국차가 생존에 꼭 필요한 음료식품이다. 차마고도에는 아직도 역사적인 인습이나 풍치가 남아있는 곳이 많다. 양 지역의 전략적인 물물 거래 통로였던 오래된 고원 길을 트레킹하며 옛사람들의 문화를 느끼려는 관광객들이 많다."
- 보이차는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을 믿어도 되는가?
"운남성에서 채취된 대엽종의 차엽(찻잎)을 전통 건조 발효공법을 거쳐 결함 없이 생산한 제품으로 보관상태가 양호하다면 오래된 것도 품질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습도 온도 공기 등의 오염으로 보관상태가 나쁘면 품질의 변화를 막을 수 없다. 무조건 오래된 것일수록 좋다는 말은 맞지 않다."
- 본래의 직업인 영화감독 쪽 얘기를 듣고 싶다.
"아버지가 1세대 영화평론가인 이영일·김종원, 영화감독 최하원·유현목, 그리고 최무룡 배우들과 교분을 나누며 시나리오 관련 문예잡지를 발행하셨다. 나도 영화를 전공하려 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영문학(동국대)을 전공했다. 결국 졸업하고 유현목 감독의 <사람의 아들> 연출팀에 들어갔다. 어쩌다 영화인이 된 게 아니라 영화가 좋아서 영화 쪽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다."
- 할리우드 시나리오조합의 정회원이 된 것은 언제인가?
"1985년부터 이두용 감독이 <욕망의 늪> <이상한 관계> <낮과 밤> 등을 연출할 때 조감독으로 참여했다. <낮과 밤>은 세계일주 로케이션 작품이다. 그러다가 1987년 이두용 감독이 미국에서 연출, 상영한 액션영화 <침묵의 암살자>의 영문 시나리오를 그곳에서 발표해 미국 시나리오조합의 회원으로 가입이 되었다."
안성기 배우와 함께한 서영수 영화감독(사진 왼쪽). 영화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전쟁', 인기TV프로 '길따라 맛따라' 등을 연출했다. 미국 시나리오조합 회원이기도 하다. 서 감독은 현재 보이차 전문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영화인이라는 직업을 잊은 적도 없고 버리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사진=서영수 제공
- 미국에서 영화 작업을 할 수 있었다면 운명도 바뀔 기회가 아닌가?
"세계 영화 시장을 이끌어 가는 할리우드에서 영화 활동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경쟁력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영화 수업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LA에 있는 영화교육의 명문 AFI에 입학하려 했으나 시민권이 없으면 입학이 어려워 단기 과정을 수료하고 포기했다. 1984년도에 뉴욕대(NYU) 입학허가를 받고 등록을 준비 중에 현진영화사 김원두 사장의 신작 영화 연출 요청을 받고 포기한 과거가 있다. 영화인으로 살면서 평생 씻어 버리지 못한 앙금이다."
-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영화 기획, 연출 , 제작 등 다양한 활동을 했고 한 때 TV 프로그램 연출로 분주하게 활동하지 않았는가?
"내가 연출한 TV 프로 <길따라 맛따라>는 식생활을 주제로 한 ‘먹방’프로의 원조가 된 인기 프로였다. 그로부터 음식과 관련된 프로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화감독에게 TV프로그램 연출은 장외의 아르바이트 정도 활동일 뿐이다. 서한샘 씨를 MC로 기용해 <노래는 나의 인생>(MBC TV)도 연출해 한동안 인기를 모았지만 영화 쪽에서는 이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 서 감독의 영화 <가자 장미여관으로>는 타계한 마광수 교수(연세대 / 소설가)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당시 화제가 된 것 같다.
"내가 연출한 <가자 장미여관으로>는 원래 원작자인 마광수 교수가 데뷔 작품으로 연출하다가 중도에 포기한 영화였다. 제작 영화사의 요청으로 내가 다시 출연배우와 연출 패턴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 만들었다. 그런데 개봉하는 날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터졌다. 그날 우리 사회도 긴장된 탓인지 거리에 택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산하고 영화관을 찾는 사람도 없었다."
- 제목만 보면 상업성에 치중한 애정 흥행영화 같다.
"시립가무단장인 설도윤을 영화로 불러내 에로티시즘을 담론화 시켰지만 정사에 치중하지 않고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성의 환타지에 치중한 작품이었다. 이어서 <사랑전쟁> <서울 엠마뉴엘>을 만들면서 김원희·김상중·김문희·나한일이라는 배우들이 주연 배우로 주목을 받았다. 한 때 오태석 연출의 연극 <어머니>를 제작해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냈을 때도 내 인생에서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 지금 보이차 전문가로 진로가 달라졌다. 이제 영화는 관심 밖인가?
"보이차연구소를 만들어 다도교육도 하고 있다. 우리의 다도는 일본 색깔의 다도가 스며있는 경우도 있어서 제대로 된 전통 멋과 맛의 다도를 전파하려고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영화인이라는 직업을 잊은 적도 없고 버리지도 않았다. 기회가 된다면 중국 험산준령 차마고도를 헤매면서 보이차 고수로 사는 인물을 소재로 한 자전적 인생 스토리의 영화 한편을 만들고 싶다. 그냥 꿈이라 해도 죽을 때까지 그 꿈을 버리지 못하고 살 것 같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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