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4차 군산 관리도(2022. 4. 28)
오늘은 군산 관리도를 다녀왔습니다. 관리도는 선유도를 포함하여 고군산 군도의 한 섬입니다. 청주에서 약 3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선유도까지는 연륙교가 있어서 차가 들어가지만 관리도는 선유도 바로 코앞이어도 다리가 없어서 배로 들어가야 합니다. 배 타는 시간은 고작 10분도 채 안 되었습니다.
관리도(串里島)라는 이름은 원래는 꽂지섬이라고 불렸는데, 나중에 섬이 꼬챙이 같이 생겼다고 해서 관리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합니다. 이름의 유래가 어떻건 간에 배에서 내려서 보니 산도 나지막하고 경사도 급하지 않아서 쉬운 산행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산에 오르면서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바위들이 날카롭고, 오르막 내리막이 있어서 그렇게 쉬운 산행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최종 목적지인 천공굴까지는 가지 못하고 유근형 대원 등 몇 분만 다녀오고 대부분은 깃대봉을 지나 삼거리에서 마을로 오는 코스를 택했습니다.
모든 섬이 그렇지만 만경창파를 내려다보는 경관이 멋이 있었습니다. 따뜻한 봄날이었지만 바닷바람이 약간은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상쾌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여성 대원들은 고사리 꺾느라 모두 정신이 없었습니다. 고사리 꺾을 시기는 약간 지나기는 했으나 그래도 많이들 꺾었습니다. 한 대원이 말하기를 “원주민이 다 꺾어서 별로 없다”고 하기에, 제가 원주민은 “등산객이 다 꺾어갔다고 하지 않을까요?”라고 하고 서로 웃었습니다.
보통 이런 곳에 오면 어시장에 들러 건어물도 사고, 모여서 회도 먹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오늘은 한웅동 전 회장님이 요즈음 횟값도 비싸고 먹지 않는 사람도 있고 하니 그냥 가자고 해서 바로 청주로 왔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매우 늦게 도착했을 것으로 생각하니 탁월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원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산행에는 박종완 대원이 찰떡을, 김종분 대원이 종이컵 한 박스를 찬조해 주셨고, 오창숙, 윤순기 두 대원이 새로 입회하셨습니다. 우리 목요천봉산악회가 발전하는 모습이 자라는 죽순 같습니다.
사실, 관리도는 몇 해 전에도 다녀갔던 곳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관리도에서 점심 먹으면서 생각한 것을 시로 써 두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 시를 여기에 올려 봅니다. 시의 내용은 하찮은 것도 모두 우주적 기원을 가지고 있는 대단한 존재들이라는 어설픈 철학적 멋을 부려본 것인데 읽는 괴로움을 드리지나 않나 조심스럽습니다.
어느 점심 식사의 기원 / 권재술
I
나는 지금
M87 블랙홀에서 5500만 광년
안드로메다은하에서 250만 광년
우리 은하의 중심에서 25000 광년
프록시마 센타우리에서 4 광년
태양에서 1억5천만 킬로미터
달에서 38만 킬로미터
뉴욕에서 2만 킬로미터
청주에서 200 킬로미터 떨어진
고군산군도 관리도 투구봉에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다
II
내가 앉아 있는 이 바위는
2천5백만 년 전 저 아래 깊은 바다 속에 있다가
1년에 1 밀리미터보다 느린 속도로 솟아올라
1000 미터가 넘는 산이 되었다가
몇백만 년 동안 비바람에 깎기고
이끼와 벌레에 뜯겨서
해발 175 미터인 조그만 산의 투구가 되었다
내 도시락밥의 쌀은
몇 십억 년인가 알 수 없는
까마득한 옛날에 생겨나서
몇 십억 년을 잡초로만 살다가
구석기 시대가 되어서야 곡식이 된 것인데
그 볍씨의 후손들, 그 후손의 후손들, 그 후손의 후손들이 마침내
2018년 대한민국 충청북도 오창 들판 박 씨네 논에서 자라고
오창읍 재일정미소에서 찧어져서 오창 생명쌀로 포장되어
청주 하나로마트 매장에 잠시 진열되었다가
송절동 테크노폴리스 우미린 109동 1501호 쿠쿠 전기밥솥 속에서 지어진 것이다
반찬통에 있는 장조림 쇠고기는
미합중국 켈리포니아 주 그린필드 카운티 언더우드 목장에서
3년간 철모르고 뛰어 놀던 소의 홍두께살인데
2017년 도살되어 곧바로 냉동되어 있다가
한진해운 컨테이너선을 타고 부산항에 입항하여
롯데마트에 진열되었던 것이다
III
세 살 박이 손자의 손가락처럼
꼼지락거리며 내 얼굴을 간질이는
저 아래 바다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에는
아프리카 우간다 어느 시골
새까만 얼굴을 가진 아이의
포물선 오줌줄기에 있던
바로 그 물 분자 몇 개도 섞여 있다
첫댓글 기록이사님 공부잘하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총장님!! 우찌 그리 맛깔나게 글을 쓰시나요~책 한권, 좋은 시 한편...행복한 마음으로 감동받고 나갑니다~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