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에 바람 넣기
손택수
겨우내 타지 않던 자전거에 먼지가 뿌옇다
그 사이 마흔 넘은 내 엉덩이처럼
맥없이 축 처진 타이어, 비루먹은 짐승 같다
구석에 처박아 놓았던 펌프를 젖 물리듯 타이어 꼭지에 꼽는다
창밖에선 나무들이 한참 땅거죽 속에 봄바람을 집어넣고 있다
땅거죽 속 씨앗들을 들쑤시며 언덕을 부풀리고 있다
손등 위로 도드라져나온 힘줄들이
나무줄기처럼 바람을 타고 타이어 속으로 들어간다
아래로, 아래로 바람을 불어넣으면서 돋아나는 푸른 잎들
터져나오는 살갗들, 나는 기억한다
타이어 바퀴에 착 감기던 땅의 굴곡을
꿈틀거리던 말잔등처럼 숨결을 따라 오르내리던 리듬을
그 리듬을 내 어깨 위에 싣기 위해선
적당히 바람을 뺄 줄 아는 것도 내 쓸쓸한 나이가 가르쳐 준 기술이다
너무 빵빵하면 엉덩이가 아파오므로
길바닥과 나 사이에 부질없는 긴장을 불러오기도 하므로
땅과 바퀴 사이에, 그리고 바퀴와 나 사이에 가장 알맞은 쿠션을 위해서는
부푸는 어느 지점에서 펌프질을 그만 멈추어야 한다
녹슨 몸체를 어찌하지 못하고 짓눌려 있던 타이어 거죽이
툭툭 꺾은 무릎을 펴고 일어선다
발굽이 땅을 짚는가 싶더니 장단지에 제법 힘이 실리면서
시무룩하게 내려앉아 있던 안장이 올라가는 그때
안장 위의 엉덩이도 덩달아 들어올려졌다
-《현대시학》2011, 9월호
손택수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호랑이 발자국』,『목련 전차』,『나무의 수사학』
첫댓글 지천명이 지나도록 적당하게 바람을 넣는 방법을 터득 못하고 있으니....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