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초등학교
장동은 긴골, 진골에서 왔어요. 계족산 자연휴양림가보셨죠?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계족산 북쪽 능선을 타고 죽 거슬러 올라가면 왼쪽 사면으로 좁고 긴 분지가 나와요. 거기가 바로 긴골, 사투리로 진골 한자로 장(長)동.
이곳 장동에는 1966년에 개교한 전교생 66명의 농촌학교가 자리잡고 있답니다.
이곳 장동은 옛날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맞대고 있던 전략상 요충지로 산정상부에 돌로 성을 쌓았어요. 특히 이곳은 신라에서 백제 부여로 보내는 식량 수송로 상에 있는 지리적 요충지로 백제부흥기 인근의 질현성과 더불어 백제 부흥군의 활동 거점으로 알려져 있어요. 특히 이들의 방해로 신라로 부터의 식량 수송이 원활하지 못해 부여에 고립된 당군이 극도로 굶주리게 되자 신라군이 이를 토벌하기 위해 출동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계족 산성은 예전에도 비교적 온전한 형태의 산성이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대대적인 복원과 보수를 거쳐 온전한 형태의 산성을 갖춰놨어요. 그러나 여전히 성문과 성루는 복원하지 못하고 다만 성문자리만 표식을 남겨놓았어요.
산성(山城) 이야기
성(城)은 위치나 재료, 형태 등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누는데 우선 쌓는 위치에 따라 평지성과 산성으로 나눌 수 있어요. 평지성은 말 그대로 평지에 쌓은 성으로 해미읍성이나 고창읍성 낙안 읍성 등 주로 지방의 조그만 도시를 둘러쌓은 성을 말해요. 이곳은 지방 행정의 중심지로 주로 목사나 군수 더러는 관찰사의 집무실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산성은 산에 쌓은 성으로 주로 군사적 요충지에 만들었어요. 남한산성, 계족산성, 삼년산성 등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는 산성을 많이 쌓았어요. 산성은 쌓는 비용과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외적의 침입에 대해 방어하기 유리한 장점을 갖고 있어요.
또한 이 산성은 쌓는 형태에 따라 포곡식산성과 퇴뫼식 산성으로 구분하는데, 포곡식 산성은 비교적 규모가 큰 산성으로 성안에 계곡을 포함하고 있어요. 그래서 계곡(溪谷)을 포함(包含)했다 해서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라고 해요. 반면 퇴뫼식 산성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산의 정상부근이나 7~8부 능선에 돌이나 흙을 둘러 성을 쌓는 방식 이예요. 퇴뫼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퇴뫼’의 ‘뫼’는 산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 이예요. 그러니까, 산에 테를 두른다는 뜻인데 이런 퇴뫼식 산성은 규모는 포곡식에 비해 작지만 적이 점령하기 무척 어려운 난공불락의 산성이라고 해요. 계족산성이 이런 퇴뫼식 산성의 대표적인 예가 되겠지요.
또한 성은 쌓는 재료에 따라 흙으로 쌓은 토성, 돌로 쌓은 석성으로 구분해요. 아득한 옛날 사람들은 처음에는 주로 마을 둘레에 흙으로 작은 토성을 쌓아 외적의 침입을 막았지만, 차차 규모가 커짐에 따라 돌로 튼튼한 성을 쌓게 되었어요. 삼국시대 초기 백제와 신라에서는 주로 토성을 많이 쌓았어요. 그러다가 후에 점차 석성을 쌓기 시작했어요. 때론 토성으로 쌓은 성위에 돌로 다시 쌓기도 했어요. 우리가 잘 아는 공주 공산성이 토성위에 다시 돌로 쌓은 석성 이예요. 기록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그렇게 한 것 같아요. 그러나 보은 삼년산성이나 부여 석성은 처음부터 돌로 쌓은 성이예요. 그래서 부여 석성면은 면내에 석성이 있다 해서 면 이름조차 석성면이라 할 정도예요.
이 석성면에 있는 석성은 기벌포에서 논산을 거쳐 부여로 오는 길목인 백마강 동쪽 사면에 있는 성으로 백제 부여 도성을 방어하는 외곽 거점성 이었어요. 황산벌에서 계백장군과 5천 결사대가 신라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사이 백제 수도 방위군이 총 집결하여 백마강(금강의 다른 이름)을 거슬러 올라오는 당군과 결전을 벌인 장소이기도 하지요. 지금은 파진산 이라 불리 우는데, 파진산(破陣山)! 뭔가 감이 오지요? 그래요 백제 수도 방위군이 당군과 결전을 벌이다 진이 깨져 패한 산이란 뜻이지요. 이곳은 백제 멸망의 아픔을 지니고 있는 산이지요. 비록 당군에 패해 진은 깨졌지만 세월이 지나도 성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후세 사람들이 돌로 쌓은 성이 있는 마을이라하여 석성면......
여기서 잠깐 동아시아 3국의 성을 비교해 보면, 중국은 평지가 많은 나라이므로 도둑이나 외적을 막기 위하여 일찍부터 성곽 도시와 도성이 발달하였어요. 나관중의 삼국지연희에서 보듯이 중국은 주로 평지에 있는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도시를 둘러싸는 식의 평지성을 만들었어요. 간혹 진시황처럼 엉뚱하게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기도 했지만요. 하지만 이 만리장성의 방어력은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요. 성이란 우선 성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 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인데 이 만리장성은 옆으로 죽 늘어놓은 형태의 성이다보니 어느 한곳만이라도 뚫려 버리면 그대로 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마는 단점이 있어요.
반면 일본은 좁은 섬나라로 고대에 다른 민족과의 큰 싸움이 적어 성이 그리 많이 않았어요. 기껏해야 봉건 영주가 머무르는 곳에 거처의 목적으로 성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백제 멸망 후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인 들에 의해 해안가에 방어적 목적으로 성을 쌓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는 고대국가 초기부터 방어에 유리한 산에 성을 쌓았어요. 특히 고구려의 초기 도읍지라 전해오는 오녀산성 같은 경우는 산정상부에 말 그대로 난공불락의 산성을 쌓았어요.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구려의 산성은 그 오랜 시간 관리하지도 않고 방치해 놨는데도 거의 무너지지 않고 건재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그 견고성과 기술력에 그저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있지요. 비사성, 현도성, 개모성, 안시성, 환도산성 등등.... 고구려는 산성의 나라 라고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더구나 우리나라는 중국에 비해 돌이 많은 나라이니 돌로 성을 쌓아 석성이 많아요. 특히 고구려는 거의 모든 성이 석성이예요. 반면 중국은 천지가 황토다 보니 이 황토로 벽돌을 만들어 벽돌로 쌓은 성이 많지요.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이 벽돌로 쌓은 대표적인 도성이지요.
이렇다 보니 동양 삼국의 무기 또한 각 국의 실정에 맞게 발달했어요. 중국은 평지가 많다 보니 주로 평지에서 싸웠어요. 일반 병사야 주로 뛰어다니며 싸웠지만 장군들은 거의 말을 타고 싸웠어요. 말을 타고 같이 말 탄 적과 싸우는 데는 아무래도 칼보다는 창이 유리하겠지요. 그래서 예로부터 중국은 무기로써 창이 발달했어요. 장비의 장팔사모, 관우의 청룡언월도, 여포의 방천화극, 모두 긴 자루가 달린 창모양의 무기예요.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말을 탄 적과 싸우기엔 칼보다 긴 자루가 달린 무기가 유리 하겠지요.
이에 비해 일본은 성이 많지 않아요. 더구나 일본은 말이 무척 귀한 나라예요. 말은 지금으로 치면 탱크와 맞먹을 정도의 막강한 무기라고 보시면 되요. 더구나 보병 입장에서 보면 말을 탄 적군이 높은 말 안장위에서 강력한 무기로 내리 찍는 모습은 말 그대로 공포 그 차체가 아니겠어요? 상상해 보세요.
그러나 일본은 말이 아주 귀한 나라였어요. 그래서 말은 장군 그것도 고위급 장군이 아니면 아무나 못타는 귀한 무기였어요. 그러다 보니 싸움은 주로 땅에서 서로 칼을 가지고 일대일로 싸우는 단병접전이 이루어졌고 자연스레 칼이 주 무기가 되었어요. 더불어 칼을 만드는 기술도 발전하고 나아가 칼을 숭상하는 문화가 생겨났지요.
그런데 영화나 소설 등을 보면 일본 무사들은 칼을 여러 자루를 허리에 차고 다니잖아요. 우리는 그것을 보며 역시 일본 무사들은 칼을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숭상하는 구나하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그게 그런 게 아니 예요. 지금이야 일본의 제철 기술이 발달하여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철제품을 만들지만 예전의 일본 제철 기술은 형편없었답니다. 따라서 칼도 상대와 싸우다 보면 쉽게 부러져 버렸어요. 그러니 칼을 하나만 갖고 다니다간 싸움 중에 낭패를 보기 쉽잖아요. 그래서 예비용으로 서너 개씩 더 갖고 다녔다고 해요.
반면 우리나라는 산성이 많은 나라예요. 따라서 싸움도 주로 공성전이었어요. 쳐들어오는 적을 성벽위에서 막아내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성벽위에서 적을 물리치기에는 칼과 창보다는 활이 훨씬 유용한 무기라 할 수 있지요. 따라서 우리나라는 그 어느 나라보다 무기로써 활이 발달하게 되고 자연스레 모든 국민이 활을 가까이 하고 활을 잘 쏘는 민족이 된 거예요. 예부터 우리 민족을 동이(東夷)족이라 하잖아요. 이때의 夷자가‘큰활이’예요. 오늘날 올림픽이나 국제 양궁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쓰는 것은 물론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도 있지만 우리 민족의 몸속에 우리 조상님들의 피가 흐르기 때문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