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의 7할 이상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버려 “넘침을
경계하는 잔” 이라는 속뜻이 있다. 과욕을 하지 말라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물 이기도 하다.
이 배(잔)은 밑에 구멍이 분명히 뚫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물이나 술을 어느 정도 부어도 전혀 새지를 않지만, 7할 이상 채우게 되면 밑구멍으로 쏟아져 나가게 되어 있었다 한다.
이는 마치 현대의 “탄타로스의 접시”라는 화학 실험기구와
비슷한 원리인 것이었다.
현재 한국에서 계영배를 만든 분으로 전해지는 사람은
무등산의 실학자로 불리 우는 하백원(1781-1844) 과 우명옥 이다.
하백원은 전남 화순지방에서 태어나 20세까지 학문을 배우고
23세부터 53세까지 30여년간 실학연구에 몸을 바친 과학자, 성리학자, 실학자였다.
그가 만든 대표작은 양수기 역할을 하는 자승차, 계영배,
펌프같이 물의 수압을 이용한 강흡기, 시간이 되면 스스로 소리를 내던 자명종, 청기와, 유리, 벽돌 등의 제조 및 대동여지도 보다 51년 앞선
동국지도, 세계지도, 천문도 등이 있으나 현재 하백원의 계영배는 전해 지는 것은 없는듯하다.
우명옥은 강원도 홍천지방의 전설에 의하면
우삼돌(우명옥)이라는 도공이 있었는데 사기그릇을 만드는 것을 동경하여 오다 마침내 조선시대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던 경기도 광주분원으로 갔다
한다.
그는 그곳에서 그의 스승에게 열심히 배우고 익혀 마침내 스승도
이루지 못한 雪白磁器를 만들었다 한다.
그리하여 그가 만든 반상기는 왕실에 진상이 되었고 왕은
雪白磁器의 아름다움에 경탄하여 상금과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한다. 그 후 명옥의 동료들은 그가 잘되는 것을 질투하여 그를 방탕한 생활을
하게 꾀인다. 방탕한 생활은 계속 이어졌고 얼마가지 않아 그 동안 사기그릇을 만들어 모은 재물을 전부 탕진한다.
그제서야 그 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고 스승에게 돌아온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차가운 물에 목욕을 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었다.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자 그는 스승에게 조그만 한 잔을 보여주며 이 잔을 계영배 라고 하였다.
잔에 술을 가득 부었으나 술은 모두 사라져 버렸고 다시 술을
반쯤 붙자 술이 남아 있었다 한다.
스승은 그제서야 무릎을 치며 명옥이 술로 망했으니 술을
조심해서 마시자라는 뜻으로 과하게 마시지 말자라는 교훈이 담긴 것으로 깨 달았다 한다.
그 후 술잔은 의주의 임 씨라는 사람이 소유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조선시대 의주 거상 임상옥(1779-1855)이 였다. 임상옥은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큰 돈을
만들었다고 한다.
임상옥이 청부로서 조선 최고의 큰 재물을 만든 바탕은 계영배의
기운을 끊임없이 느끼고 그 교훈을 되새긴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임상옥이 우연히 계영배를 깨뜨렸는데 이상한 일은 그 잔이
깨어지던 날 우명옥도 세상을 떠났다 한다.
계영배(경계할戒, 찰盈, 잔杯)의 한자성어는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술이 일정한 한도에 차면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 즉,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한다. 계영배를 통해 오늘의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면 이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주고, 넘치면 곧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다는 교훈이다. 이는 곧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 다가 모든 것을
잃고 만다는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잔의 7할 이상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버려 “넘침을
경계하는 잔” 이라는 속뜻이 있다. 과욕을 하지 말라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물 이기도 하다.
이 배(잔)은 밑에 구멍이 분명히 뚫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물이나 술을 어느 정도 부어도 전혀 새지를 않지만, 7할 이상 채우게 되면 밑구멍으로 쏟아져 나가게 되어 있었다 한다.
이는 마치 현대의 “탄타로스의 접시”라는 화학 실험기구와
비슷한 원리인 것이었다.
현재 한국에서 계영배를 만든 분으로 전해지는 사람은
무등산의 실학자로 불리 우는 하백원(1781-1844) 과 우명옥 이다.
하백원은 전남 화순지방에서 태어나 20세까지 학문을 배우고
23세부터 53세까지 30여년간 실학연구에 몸을 바친 과학자, 성리학자, 실학자였다.
그가 만든 대표작은 양수기 역할을 하는 자승차, 계영배,
펌프같이 물의 수압을 이용한 강흡기, 시간이 되면 스스로 소리를 내던 자명종, 청기와, 유리, 벽돌 등의 제조 및 대동여지도 보다 51년 앞선
동국지도, 세계지도, 천문도 등이 있으나 현재 하백원의 계영배는 전해 지는 것은 없는듯하다.
우명옥은 강원도 홍천지방의 전설에 의하면
우삼돌(우명옥)이라는 도공이 있었는데 사기그릇을 만드는 것을 동경하여 오다 마침내 조선시대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던 경기도 광주분원으로 갔다
한다.
그는 그곳에서 그의 스승에게 열심히 배우고 익혀 마침내 스승도
이루지 못한 雪白磁器를 만들었다 한다.
그리하여 그가 만든 반상기는 왕실에 진상이 되었고 왕은
雪白磁器의 아름다움에 경탄하여 상금과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한다. 그 후 명옥의 동료들은 그가 잘되는 것을 질투하여 그를 방탕한 생활을
하게 꾀인다. 방탕한 생활은 계속 이어졌고 얼마가지 않아 그 동안 사기그릇을 만들어 모은 재물을 전부 탕진한다.
그제서야 그 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고 스승에게 돌아온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차가운 물에 목욕을 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었다.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자 그는 스승에게 조그만 한 잔을 보여주며 이 잔을 계영배 라고 하였다.
잔에 술을 가득 부었으나 술은 모두 사라져 버렸고 다시 술을
반쯤 붙자 술이 남아 있었다 한다.
스승은 그제서야 무릎을 치며 명옥이 술로 망했으니 술을
조심해서 마시자라는 뜻으로 과하게 마시지 말자라는 교훈이 담긴 것으로 깨 달았다 한다.
그 후 술잔은 의주의 임 씨라는 사람이 소유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조선시대 의주 거상 임상옥(1779-1855)이 였다. 임상옥은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큰 돈을
만들었다고 한다.
임상옥이 청부로서 조선 최고의 큰 재물을 만든 바탕은 계영배의
기운을 끊임없이 느끼고 그 교훈을 되새긴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임상옥이 우연히 계영배를 깨뜨렸는데 이상한 일은 그 잔이
깨어지던 날 우명옥도 세상을 떠났다 한다.
계영배(경계할戒, 찰盈, 잔杯)의 한자성어는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술이 일정한 한도에 차면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 즉,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한다. 계영배를 통해 오늘의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면 이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주고, 넘치면 곧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다는 교훈이다. 이는 곧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 다가 모든 것을
잃고 만다는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