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4:8-9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는 악마의 등을 구해야 하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악마의 등이라 하는 것은 도망가는 마귀를 의미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의미 합니다.
7절에는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시고 8절에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마귀를 대적하면 도망할 것이며 마귀가 도망갈 때 마귀의 등을 볼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찾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실 것이며 우리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 때나 어디서나 찾으면 만나는 주 하나님일까요?
성경은 엡2:13,에서 말씀합니다.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무슨 말씀일까요, 우리는 본래 외지에 있던 사람들인데 그리스도의 피를 인하여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길이 열려졌다고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 하신다고 했습니다.(히2:11)
그러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어찌해야 하나요?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그리스도의 피로 씻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즉 교제가 할 수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손이라는 말은 위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성결을 말씀합니다. 과거에는 놋대야에서 손을 씻고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번제단에서 피를 만지거나 더러운 것을 만졌을 때 그 손을 씻어야 성소에 들어갔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죄를 가지고 예배에 자리에 들어 올수 없음을 말씀합니다.
딤전1:8절에는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은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문자적으로 받는 다면 두 손을 높이 드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것보다는 하나님께 항복의 의미 죄의 고백, 즉 회개를 의미합니다. 즉 회개의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손은 회개의 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한자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뜻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자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더러운 손이나 피 묻은 손을 그대로 들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사59:1-2에도 너희기도를 듣지 못함은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한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잠언에는 우리의 마음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마태는 “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했습니다. 여기서 청결이라는 것은 한마음을 의미 합니다. 혹은 단순한 것을 의미 합니다. 청결의 반대는 더러움인데 두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마음, 두 얼굴을 가진 자를 더럽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본 문에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결이란 다른 의미로 순결을 의미합니다.
의심과 믿음사이에서 머뭇거리는 것,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 세상과 하나님사이에 서있는 자들을 두 마음을 품은 자로서 그 마음을 오로지 하나님께로만 열라고 하십니다. 바로 아가서에서 덮은 우물, 봉한샘이 되어 오직 주님께 열어 드리는 마음을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마귀는 늘 상 우리의 마음을 갈라놓아 두 마음이 되게 합니다. 이것이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4:10)는 말씀은 우리가 지켜야 할 본질입니다. 우리가 말씀 안에서 은혜와 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마땅히 하나님만 따르고 섬기려는 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도 섬기고 물질도 따라가고 영혼이 구원받기 위해 주님도 믿고 섬기지만 육신의 복과 쾌락을 위해 세상과 짝하는 모습, 그래서 말하기를 세상에서는 부자처럼, 그리고 죽어서는 나사로처럼, 인간의 지혜로는 대단한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 스스로 복의 장애물을 설치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그 모델이 누구입니까?
솔로몬입니다. 그는 초창기엔 일천번제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자였지만 그러나 그는 인간의 방법으로 나라를 안정시키겠다고 정약결혼을 하다가 결국은 나라가 우상덩어리가 되고 살아서 하나님으로부터 경고를 받지만 돌이키지 않고 죽었습니다. 그 결과 그의 후대에서 나라는 쪼개지고 나라가 쇠퇴해 가는 비극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두 마음을 품고 가는자의 종국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도 진정으로 주님의 은총을 받아 누리기를 원한다면 두 곳에 다리를 걸치고 가는 어리석음을 버려야겠습니다.
(눅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약 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약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약 4:9)“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 이 말씀은 인생의 가치관을 바꾸라 하십니다.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자 라는 인생관을 내 안에 심령의 천국을 이루지 못했음을 인하여 너희 애통하라고 하셨습니다. 물 심판이 임박하였는데 그들은 시집가고 장가가고 먹고 마시고 그러다가 물 심판이 닥치자 그대로 떠밀려 죽어가는 것을 소돔과 고모라 땅에 불 심판이 임했는데 롯의 사위들은 그의 말을 농담처럼 듣고 그의 아내도 두고 온 재산에 마음을 빼앗겨서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는 비극이 왔습니다.
이런 무지를 보면서 우리는 울어야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땅에 종말의 시간은 변함없이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는 시간이 멈추어 선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야곱을 아십니까? 야곱을 우리는 압니다. 그는 라헬을 위하여 7년을 봉사하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 밤에 그의 아내가 된 사람은 레아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레아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야곱처럼 속고 살지는 않습니까?
마지막 날에 주님의 심판대에서 주님을 위하여 이렇게 살았다고 하는데 그때에 보니 그 모두가 나를 위한 삶이었다면 하나님나라의 확장이 아니라 나를 위한 확장이었다면 그때에 후회를 해도 늦게됩니다. 우리는 회개하지 않은 죄를 슬퍼해야 합니다. 죄 가운데 빠져 죽어가는 영혼들을 바라보며 애통해야 합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세속에 물들어 사는 자신을 자녀를 위해 이웃을 위해 우리는 울며 기도해야 합니다.
기적, 축복, 은혜중심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신앙으로 바꾸어져야 합니다. 나의 관심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의 관심이 나에게 있는 것이 가치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시 119:136)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하나님을 모욕할 때 우리는 울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들이 웃고 즐길 때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울어야 합니다.
끝으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롬 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승리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의 손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성결케 하고 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독선은 벗어 내고 예수의 피로 우리의 아집은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내고 시국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자신을 위해 기도하여 천국을 누리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