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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갑자(신금)
1980년 서울의 봄 최대수혜자김영삼 1998년 물러나다.그동안 기득권을 누린 세력들이 위기를 느끼지만 잘 보존된다.
신화,핑클등 데뷔한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서 18년후 민주재집권이 이루어진다.
18년간 은거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IMF 위기를 방관할 수 없다며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에 입당해 1998년 4·2 재보궐선거에 도전, 당선되다.
그로부터 18년 역사상 처음 탄핵받아 감옥에 갇힘.
60년전아시아에서는 중일전쟁이 격화되는 중이었으나 유럽은 평온했다. 오스트리아 위기와 체코슬로바키아 위기 등으로 몇 차례 전운이 감돌긴 했으나 각국의 다양한 외교적 중재 노력으로 평화롭게 해결하여 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 .칠레강진
이병철이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하였다. 이는 삼성그룹의 뿌리이기도 하다.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으로 석유가 발견되었다.
중일전쟁이 장기화되자 일본 제국이 국가총동원법을 선포했다.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 연방국을 병합했다. 오스트리아 시민들 역시 열광적으로 합병에 찬성했다.(안슐루스)
폭스바겐 기공식.
김원봉이 조선의용대 창설
중국 국민당 장제스, 중국 내 16개 공산계 단체에 해산명령.
간도특설대 2개대대 이범익(기요하라)에 의해 조직되어 독립군 동북항일연군 토벌.
50년전 2.8일 북한 인민군창설.
이제 좌우합작은 궁지에 몰린다.미소공위무산.
1948년 4월 3일 - 제주 4·3 사건 발발
조병옥.장택상 맨얼굴 드러남.
4.4일 적산 농지유상분배14%시작.
남로당 단독선거반대 저항운동
5.5일 김구일행 귀환
5월 10일 - 남한에서, 제헌 국회 구성을 위한 첫 총선거가 실시되다.5월 14일 - 이스라엘 건국.
7월 17일 - 남한에서, 대한민국을 국호로 하는 대한민국 제헌 헌법(大韓民國制憲憲法)이 공포됨. 존 하지, 미군정 폐지 공식 선언.
7월 20일 간접선거로 이승만 당선.이시영부통령
9.9일 북한수립
10.20일 14연대 여순반란사건
아직 미군 떠나기전이다.
11월 제주도 계엄령선포.양민학살
40년전
6.25때 무너진 한강철교 재개통
실업률이 극에 달하는데 국군의 날 행사는 최대화한다.
아리랑담배 시판.
2월 25일 - 진보당이 소멸되다
30년전 1968년 베트남파병군 보급원활
미군의 베트남에 대한 미라이학살.
4.1포항제철창립.예비군창설
국민교육헌장발표
8월 31일 - 이란 동북부에 대지진, 1만2천여 명 사망.
11월 2일 -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 발생
경인고속도로개통.
1638년 4월 12일(음력 2월 28일) - 일본 - 카톨릭교인 시마바라 봉기가 장기전 끝에 진압됨.(소년탐정 김전일로 미화)
음력 12월 - 조선인조 - 세자보다 12살어린 조창원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임(장렬왕후).
김자점은 후궁조씨를 입궁시켜 왕실을 떡을 만들어버렸다.
60년전 영국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혼 곶과 드레이크 해협 발견.
이지함사망
50년전 프랜시스 드레이크, 해적당을 이끌고 카리브 연안의 스페인 상선 / 도시들을 습격하였고, 파나마 지협을 통과하는 금,은 수송대를 약탈하였으며 마젤란 햐협을 거쳐 산티아고까지 습격하였다.
칼레 해전에서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이 이끄는 잉글랜드 (영국) 함대가 이베리아 연합 (스페인) 아르마다를 화공으로 격파하였다
척계광사망.프레데리크 2세 :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국왕사망
40년전 절이도 해전.왜교성 전투.제2차 울산성 전투. 사천성 전투가 일어났다.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임진왜란이 끝났다.성혼 사망
30년전 - 조선에서 선조가 죽고 광해군 즉위.선혜청이 설립되었다.
퀘벡 (도시) 이 건설되었다
20년전 보헤미아 왕국의 프라하에서 제2차 프라하 창문투척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로써 30년 전쟁이 발발하였다
1618년 케플러는 '행성의 공전 주기의 제곱은 행성 궤도의 긴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내용의 제3법칙을 발표했고, '우주의 조화'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이항복.허균사망.
10년전
10년후 -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어 30년 전쟁이 막을 내렸다
크리스티안 4세 : 덴마크의 왕이자 노르웨이의 왕사망
20년후 덴마크-노르웨이와 스웨덴 사이에 로스킬레 조약이 맺어졌다.
네덜란드가 실론에 거점을 마련하여, 포르투갈과 대결하게 되었다.
30년후 봄베이에 영국령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었다.
스톡홀름에 유럽의 첫 국영은행이 설립되었다
40년후 조선에서 상평통보를 주조하였다.
50년후 - 영국의 해적 윌리엄 댐피어가 서양인 중에선 최초로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했다
영국에서 명예 혁명이 시작되었다
이듬해 126년간의 2차 백년전쟁 시
60년후 런던 화이트홀 궁전의 대부분이 화제로 소실
숙종대 역병으로 사망한 이가 2만에 이름
1278년 남송 사실상 마지막임금 단종사망한다
마르히펠트 전투에서 루돌프 1세의 신성로마제국과 라디슬라우스 4세의 헝가리 왕국의 연합군이 오토카르 2세의 보헤미아 왕국군을 상대로 격파하였다. 여기서 8만여명이 동원되어 중세 기사끼리 싸운 최대의 전투가 되었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처형당하고
합스부르크 왕조가 오스트리아 지배를 시작하였다
60년전 독일 주도의 5차 십자군이 룸 셀주크의 술탄 케이카부스 1세와 연합하여 레반트의 배후를 안정시켰다
몽골 제국이 서요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제베가 지휘하는 몽골 제국군이 쿠출룩의 서요로 진군, 종교의 관용을 베풀어 발라사군과 카슈가르에 무혈입성하여 신나이만을 멸망시켰다
무칼리의 몽골군이 태원과 평양을 함락하였다
오토4세 퇴위.
벨프 가문 출신의 유일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다. 가문의 라이벌 호엔슈타우펜 가문과 치열한 권력 다툼으로 대립왕으로 거쳐 정식으로 황제에 올랐으나 결국 역사상 최고의 권력을 휘둘렀던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가 그에 대한 지지를 거두고 호엔슈타우펜 가문으로 돌아선 후 퇴위했다.
50년전 금나라 완안진화상의 승리
40년전 몽골의 침입으로 황룡사가 소실되었다.
- 아라곤 왕국의 하이메 1세가 발렌시아를 점령하였다. 무어인들은 그라나다로 후퇴하였다.
나스르 왕조의 초대 군주 모하메드 1세 이븐 나시르가 알함브라 궁전 건설을 시작하였다.
30년전 독일 쾰른의 원래의 성당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 생트 샤펠 성당이 건립되었다.
- 쾰른 대성당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11월 23일 - 카스티야 왕국의 페르난도 3세가 무어인들로부터 세비야를 정복하였다.
알 안달루스의 나스르 왕조가 알함브라 궁전 건설이 시작하였다.
잉글랜드의 수사 로저 베이컨이 화약을 제조하였다.
20년전 유경등이 최의를 죽이고 최씨정권이 몰락하다
1255년 훌라구가 세운 일 한국에 의해 바그다드가 함락되고 아바스왕조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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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쩐흥다오가 이끄는 베트남 군이 2차 백등강 전투에서 원나라 군대를 대파하여 후퇴시켰다.
- 보린겐 전투에서 브라반트 공작 얀 1세와 쾰른 시민군이 헬데흘란트 백작과 쾰른 대주교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중세 영주 간의 전투 중 가장 큰 규모 중 하나인 이 대결로 쾰른이 자유시가 되었다
20년후 잘란드하르 전투에서 델리 술탄 알라 웃 딘이 파견한 울루그 칸이 몽골군을 대파하였다. 2만명의 몽골군이 전사했고 더 많은 수의 포로들이 델리에서 처형되었다.
괼하임 전투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알브레히트 1세가 독일의 왕인 나사우 가문의 아돌프를 전사시켰다.
- 폴커크 전투에서 에드워드 1세가 지휘한 잉글랜드 군이 윌리엄 월레스의 스코틀랜드 군에 승리하였다.
- 알브레히트 1세가 독일의 왕이 되었다
30년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2세가 프랑스의 왕녀 이사벨과 결혼하였다.
- 에드워드 2세가 대관식을 치렀다
독일의 왕 하인리히 7세가 신성로마제국황제로 선출되었다.
룸 셀주크 튀르크가 멸망하였다.
헝가리 왕국의 앙주 - 카페 왕조가 시작되었다
40년후 파우가르트 전투에서 노르만 - 잉글랜드 군대가 에드워드 브루스를 전사시키며 스코틀랜드 - 아일랜드 군을 격파하였다
유럽에 역병이 돌아 가축이 대거 폐사하였다
50년후 - 필리프 6세가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하며 발루아 왕조의 시작되었다. (백년전쟁의 단초)
- 카셀 전투에서 프랑스 군대가 플랑드르반란 지도자를 전사시키고 농민군을 궤멸시키며 반란을 종결시켰다.
- 천순제(원)가 상도에서 즉위하였다 죽고 원문종 즉위.
60년후 - 최초로 함포가 사용된 해전이었다고 기록된 아르네무이덴 해전에서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함대가 격돌하였다
고묘 덴노가 아시카가 다카우지에게 쇼군 칭호를 내려 무로마치 막부가 설립되었다
정몽주 탄생
918년 7월 24일 - 태봉의 시중(侍中)인 왕건(王建)이 역성혁명을 일으켜서 폭군 궁예(弓裔)를 처단하고, 18년된 태봉을 무너뜨리다.
7월 25일 -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즉위, 연호를 천수(天授)로 정하다
바로 환선길이 반역하는 사건이 난다
왕건도 그를 믿었기에 자신의 보호하는 궁성 수비를 맡겼는데
또한, 마군장군 복지겸이 환선길의 역모사건을 알고 미리 태조에게 알렸으나 태조는 확실한 증좌가 없다며 거부할 정도였다
하지만, 환선길은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왕건 측에 붙어서 자신의 상전인 궁예를 죽이는데 협조하고 다시 후회라도 한 듯 왕건에 대해 역모를 꾸민다
이흔암의 역모사건(918년)도 발생한다.
왕건은 그야말로 중앙 권력만 쥐었을 뿐 변방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하였다.
60년전 발해 대건황 858년 겨울,오효신(烏孝愼) 등 104인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50년전 포르투갈 왕국의 전신인 포르투갈 백작령이 성립되었다. (포르투 일대)
40년전 에딩턴에서 웨식스의 왕 알프레드 대왕이 이끄는 앵글로 색슨군이 데인족 바이킹군들을 성공적으로 격퇴하였다. 이후 식량 부족으로 항복을 선언한 데인족의 왕과 알프레드 대왕 사이에 웨드모어 조약이 맺어졌다. 이 조약으로 영국의 땅 일부를 바이킹에 할애하게 되었다.
30년전 외드가 서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독일왕 카를3세 사망
압달라 이븐 무함마드가 후우마이야 왕조의 에미르로 즉위하였다.
20년전 외드죽고 - 샤를 3세가 서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10년년
10년후 루트비히 3세 :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사망
20년후베트남의 응오꾸옌이 이끄는 베트남군이 오대십국중 하나인 남한의 군대를 격퇴하였다.
발해의 유민 열만화가 서경압록부에서 거란에 대항해 정안국을 건국했다.
거란이 현 베이징에 남경 석진부를 설치하였다
30년후 나이지리아의 은리 왕국이 세워졌다. (~1911년)
유지원 : 오대십국시대 후한의 초대 황제사망
40년후 고려 전기의 학자 쌍기의 건의에 따라 최초의 과거제가 실시되었다
50년후 고려의 대표적인 불상 중 하나인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완성되었다
실리스트라에서 키예프 대공국군이 제1차 불가리아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60년후 오월이 패망하였다.
산 에스테반 데 고르마즈에서 후우마이야 왕조 군대가 레온 왕국의 라미로 3세 지휘의 군대를 대파하였다
558년 클로타프 1세 즉위(~561), 프랑크왕국 재통일.
558년 세워진 아바르제국은 훈족의 멸망 후에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의 유목민 ‘아바르 족’이 헝가리의 ‘판노니아’(Pannonia) 평원지대에 세운 나라입니다. 이들은 당시 이 지역에 정주하던 슬라브족을 거느리고 이란의 ‘사산 왕조’(Sasan)와 연합하여 비잔틴 제국(동로마제국)을 위협하는 거대한 세력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때 폴란드와 체코 그리고 슬로바키아와 오스트리아 지역의 서슬라브족은 이들과 대립하여 크고 작은 전쟁이 이어졌습니다.
60년전 소보권이 남제 6대 황제가 되었다. 성왕아들 부레쓰천황즉위
50년전 클로비스 1세가 프랑크 왕국의 수도를 파리로 정하고 가톨릭교를 국교로 삼았다.
테오도리쿠스 대왕이 동고트 왕국군을 보내어 프로방스 지역의 프랑크족을 축출하고 서고트인들의 영토였던 셉티마니아를 탈환하였다
전해 오진천황후손인 케이타이 천황이 일본 제 26대 천황이 되었다
40년전 유스티누스 1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35년전 무령왕 잠들다.목관 전축분으로
기존 양식이 아니고 중국 양나라양식이다.
30년전효명제 : 북위 제 9대 황제 사망
북주의 시대가 오고있다
효선제 : 진(육조)의 4대 황제사망
20년전 백제의 성왕이 도읍지를 웅진에서 사비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었다.
불교가 일본 민간에 전래되다.
10년후 랑고바르드족이 북부 이탈리아에 랑고바르드 왕국을 세웠다.
황초령,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졌다
20년후 신라가 백제의 알야산성을 공격하였다.
신라의 진지왕이 중국의 진(육조)에 사신을 보내 수교하였다.
30년후바흐람 추빈이 이끄는 1만 2천명의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돌궐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북부 이탈리아에서 랑고바르드족의 군대가 군트람이 이끄는 부르군트 왕국의 침략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40년후 고구려-수 전쟁 : 영양왕이 고구려군을 이끌고 수나라의 요서 지방을 공격하여 고구려-수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후 수문제가 수나라군 30만명을 동원하여 수륙양면으로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전염병과 장마, 태풍에 의한 피해 등에 의하여 고구려군에 대패한 뒤 퇴각하였다.
사산 제국이 예멘의 히미야르 왕국울 정복하였다
50년후 비잔티움 제국령 카르타고의 총독 헤라클리우스와 그의 아들이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포카스를 상대로 한 반란을 일으켰다.
호스로 2세가 이끄는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아나톨리아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보스포루스 해협까지 진출하였다
60년후 618년 이연이 황제로 즉위하며 당나라가 건국되었다
198년 여포가 인과응보로 죽는다.
하비 전투(下? 戰鬪)는 서주의 하비를 두고 조조가 여포와 싸운 전투로 조조가 이 전투에서 승리해 다시 서주를 되찾고 여포는 처형된다.
여포는 금주령을 내리지만 부하 후성이 술을 마시자 곤장을 때리고 불만을 품은 후성은 송헌, 위속과 음모를 꾸민다. 후성은 새벽에 적토마를 훔쳐 조조에게로 투항하고 하비성의 전투가 새벽부터 한낮까지 계속된다.
결국 송헌과 위속은 여포가 자는 사이에 여포를 잡아 조조에게 바치고 곧 여포의 부하 진궁, 고순, 장료 등이 잡혀온다. 조조는 먼저 고순을 처형하고 진궁을 살려두려 하지만 진궁은 스스로 죽음을 택해 처형된다.
그리고 여포 역시 사형이 내려져 교수형으로 처형되고 이 중 유일하게 장료가 살아남아 조조의 부하가 된다
60년전 138년 -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안토니누스 피우스를 후계자로 정하고 죽음
50년전 고구려의 차대왕이 태조왕의 맏아들 막근태자를 살해하였다.
40년전 양기는 환제가 상을 주어 남들보다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158년에 여름 5월 29일에 일식이 일어나 태사령 진수가 소황문 서황을 통해 일식이 일어난 변고의 허물이 양기에게 있다고 하자 양기는 낙양 현령에게 지시해 진수를 잡아다가 고문해 옥에서 죽게 만들었으며, 이 일로 환제가 양기에게 화를 냈다. 도요장군 진구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고 진구가 나라의 권위를 손상시키고 공적, 명예를 독차지해 호족들이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헐뜯어 소환되게 만들어 끝내 죽게 만들었다
30년전 전해 당고의 옥을 치룬 환제죽고 - 영제가 후한 12대 황제가 되었다.
- 후한의 현도태수 경림이 고구려를 공격하자 이에 고구려 신대왕이 스스로 항복하여 현도에 복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년전 남흉노 선우 도특약시축취는 장민과 함께 안문으로 나아가면서 세 군대가 선비족을 공격했는데, 단석괴가 삼부의 대인에게 명해서 무리들을 거느리고 나아가서 싸우게 하자 맞서 싸웠지만 패했다. 178년에 사망해 호징이 뒤를 이어 선우가 되었다.
10년후 카라칼라 로마의 망조를 재촉
왜가 신라를 공격했으나 이음(利音)이 이를 막아내었다.
- 장판 전투 : 조조가 10만의 병사를 이끌고 장판파에서 유비를 공격하였으나 장비가 이를 막아내었다.
- 적벽 대전 : 조조가 중국 통일을 위한 남정에 나서 형주를 점령하였으나,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이 양쯔강 남안에 자리잡고 있는 적벽에서 조조의 대군을 격파하였다. 적벽의 대패로 조조는 형주를 떠났으며, 조인에게 남군을 맡겼다
20년후 전해 카라칼라 처형됨.
유비에 맞서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한중으로 향한다.- 유비가 한중으로 진격해 양평관에 주둔한다
백제군이 신라의 장산성을 공격하였으나 패하였다.
- 엘라가발루스가 할머니인 율리아 마이사에 의해 로마 제국의 황제로 추대되었다
30년후 가정 전투의 패배로 제갈량의 제 1차 북벌이 실패로 끝났고, 지휘관 마속은 처형당하였다.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이 위나라를 치는 제 2차 북벌을 전개하였다(진창성 공성전). 촉나라군은 진창성을 공격하였으나 학소의 진창성 수비에 가로막혀 북벌이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자 철수하였다.
상용에서 일어난 위나라 맹달의 반란이 사마의에게 진압당하였다. 맹달은 사로잡혀 참수되었으며, 그 머리는 낙양으로 보내져 불태워졌다
사산 왕조의 아르다시르 1세가 이란 북부의 파르티아잔당을 일소하였다.
40년후 연왕 공손연이 위나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의가 이를 토벌하고 공손연을 처형하였다
푸피에누스, 발비누스가 원로원의 추대를 받아 로마의 공동 황제가 되었다.
50년후 중천왕이 고구려 제12대 왕이 되었다
고이왕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다
창고를 풀어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다
60년후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의 기독교 박해로 인하여 교황 식스토 2세를 포함한 많은 수의 기독교 사제들이 순교하였다
bc163년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아들 탄생
60년전 진시황이 왕전에게 60만의 군사를 주어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이에 초나라의 항연은 결사적으로 이를 막아내려 하였으나 약 1년간의 전쟁 끝에 항연이 이끄는 초군은 전멸당하고 초나라의 왕 부추가 사로잡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연은 계속 저항했고 항연은 창평군을 새로운 초나라의 왕으로 옹립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창평군은 왕전, 몽무의 공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60년후 이베리아를 침공한 킴브리족과 테우토네스족이 합류하여 이탈리아를 침공하려고 하자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리구리아인들과 동맹을 맺고 게르만족의 침공에 대비한다
기원전 523
초의 간신 비무극이 평소에 세자 건(建)을 미워하여 제거하고자 함. 초평왕은 비무극의 간계에 넘어가 세자 건의 비로 맞이한 진애공(秦哀公)의 누이 맹영(孟嬴)을 몰래 자신의 부인으로 취하고 세자 건(建)에게는 잉첩(媵妾)으로 따라온 제나라 여자를 맹영인 것처럼 속여 혼인시킨 뒤 성부(城父) 땅을 방어하도록 쫓아보냄. 맹영은 왕자 진(珍)을 생산
좀다른 하원갑자
1818년 목민심서 발행
2월 5일 - 칼 14세, 스웨덴 국왕으로 즉위.12월 3일 - 일리노이 주가 21번째 미국의 주가 됨.
60년전 청나라가 유목제국 준가르를 멸망시켰다.
린네가 이명법을 고안하였다
50년전 항해사 제임스 쿡이 호주대륙을 탐사하였다
30년전
8월 8일 - 프랑스의 국왕 루이 16세가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부회를 다음년 5월에 개최하기로 결정. 1614년 이후 무려 165년만에 삼부회가 개최되게 된다.
20년전 프랑스 혁명전쟁: 프랑스군이 베른을 점령
- 나폴레옹이 카이로를 점령.
10년전 틸지트 강화의 뒷처리를 위해 에어푸르트에서 나폴레옹과 알렉산데르 1세가 회담을 갖다.
- 지지부진한 이베리아 반도 전쟁을 해결하고자 나폴레옹이 직접 친정을 단행하다
30년후 조선의 대학자 김정희의 제주도 유배가 풀려났다.
과달루페-이달고 조약 체결.: 마치니가 이끄는 혁명군이 로마 공화국 수립 선포.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발표. 1848년 혁명 시작?
40년후 프로이센 왕국의 빌헬름 왕세제가 중풍에 걸린 형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를 대신해 섭정을 실시하였다
다윈이 자연선택설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50년후 메이지 덴노의 왕정복고령으로 일본 제국이 탄생했다.
일본에서 무진전쟁이 발발했다.
-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47개만 남기고 모두 다 폐쇄시켰다.
60년후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 산 스테파노 조약이 체결되다. 이 조약은 발칸반도의 세력균형을 둘러싸고 유럽 강대국 간 분규를 야기하다.발칸반도의 분쟁을 둘러싸고 강대국 간의 의사조정회의인 베를린 회의가 열리다
1457년 9월에 일어난 넷째 동생 금성대군이 단종복위계획을 세운다. 동생 금성대군, 순흥부사 이보흠 등이 또다시 단종 복위 사건을 일으키자 금성대군과 관련자들을 모두 처형하였다.
60년전 정도전, 남은 등이 요동 정벌을 주장하고, 조준은 이에 반대했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삼국이 칼마르 동맹을 성립했다
50년전 지기스문트가 헝가리-폴란드 연합군을 이끌고 보스니아를 공격하였고, 도보스 전투에서 보스니아의 왕 트브르트코 2세가 지기스문트에게 대패를 당하였다
이성계사망, 덴마크가 고틀란트 섬을 점령하였다.
영락대전이 완성되었다.
정화가 조선의 처녀 3백명을 영락제에게 바쳤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지기스문트가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용 기사단을 창단하였다.
30년전 백년 전쟁 당시 잉글랜드군 사령관인 솔즈베리 백작 4세 토머스 몬터큐트가 오를레앙 공격 도중 심각한 부상을 당하였다.
이츠코아틀이 아즈텍 제국의 초대 황제에 즉위하여 테노치티틀란 건설을 시작하였다
20년전 페루에서 잉카 제국이 건국된다.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이 자동 물시계 옥루를 만들었다
10년전 오스만 제국과 헝가리 왕국 사이에서 벌어진 제2차 코소보 전투가 오스만 제국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세종대왕이 동국정운을 반포하였다.
30년후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폭풍의 곶 / 카포 다 보아 에스페라나)에 도달하였다
40년후 무오사화
다 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였다.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가 캘커타에 도착하며 인로 항로를 개척하였다.
50년후 포르투갈과 이슬람 함대 간의 디우 해전이 벌어졌고, 포르투갈이 승리하여 인도 무역권을 확립하였다
60년후 런던 조약이 맺어져 서유럽에 일시적인 평화가 찾아왔다.
아프리카 노예 매매가 시작되었다
1098년 보두앵이 십자군 본대에서 이탈, 에데사를 침략해 에데사 백국을 세우다.보에몽이 안티오키아를 점거하고 안티오키아 공국을 세우다.
60년전사라고사 토후국을 통치하던 투지비 가문이 쫓겨나고 후드 왕조가 세워졌다.
비잔틴 제국군이 일시적으로 시칠리아 동부 (메시나 ~ 시라쿠사) 일대를 회복하였다. (~ 1043년)
50년전 잉글랜드를 침략한 바이킹 군대가 격퇴당하였고, 생존자들은 플랑드르로 달아났다. (잉글랜드에 대한 최후의 바이킹 침공)
- 동 아나톨리아 고원에서의 카페트로우 전투에서 비잔티움 제국과 조지아 왕국의 연합군이 셀주크 제국군에게 패하였다
30년전 비잔틴 제국의 로마누스 4세로 즉위하였다.
- 시리아에서 진도 9.0의 대지진이 발생하여 안티오크가 심하게 파괴되었다
20년전 멜리히슈타트 전투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대립왕 루돌프를 패배시켰다
키에티가 노르만족에게 점령당하였다.
송나라의 철강산업이 연간 12만 5천 톤을 생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영국은 19세기에 달성)
10년전 현존 최고의 대학인 볼로냐 대학이 설립되었다.
송나라의 심괄이 당대 과학기술을 집대성한 몽계필담 저술을 완료하였다. (활판 인쇄에 대한 첫 언급)
30년후 금나라에게 수도 카이펑이 함락된 이후 송나라가 양저우에 임시 정부를 설립하였다
포르투갈이 실질적인 독립을 얻었다.
대월 리 왕조의 신종이 즉위하였다.
참파가 베트남을 공격하였다.
40년후 대월 리 왕조의 영종이 즉위하였다.
금나라와 남송 당국이 일단 화의에 합의하였다.
독일의 왕 콘라트 3세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50년후 - 2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에 다다른 후 아크레 회의가 열려 다마스쿠스를 공격하기로 결정한다.
: 다마스쿠스에서 십자군이 장기 왕조 군대에 패배한 뒤 퇴각하였다.
포르투갈의 왕 아폰수 1세가 이슬람 세력이 점령하였던 아브란트스를 정복하였다.
무와히드 왕조가 세비야를 점령하였다
60년후 프랑스 공주 마가렛이 출생 후 바로 잉글랜드에서 3살인 헨리 왕자와 약혼하였다. 벡셍 지방이 지참금으로 와서 앙주 - 플랜태저넷 왕조의 강역이 확대된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제 2차 론칼리아 제국 의회를 열어 북 이탈리아의 자치 도시 (코뮌) 들에 대한 자신의 지배권 회수를 주장하였다.
738년롬바르드 인들이 동로마의 이탈리아 총독부가 위치한 라벤나를 점령하였으나 동로마-교황 군에게 쫓겨났다.
세바르가 불가리아의 칸이 되었다
60년전 신라의 승려 의상이 범어사. 운암사, 한천사를 창건하였다
40년전천문령 전투에서 대조영이 이끄는 고구려유민과 말갈족들이 이해고가 이끄는 당나라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걸사비우와 걸걸중상이 전사하였다. 전투 이후 발해를 건국할 기반을 닦게 된 대조영은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였다
30년전 일본 최초의 유통화폐인 화동개진이 주조되었다.
흑해 부근에서 불가리아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20년전 .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의 종전)
펠라기우스가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아스투리아스 지방에서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총독이던 무누자의 군대를 몰아내고 기독교 왕국인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세우면서 아스투리아스의 초대 왕이 되었다. (코바동가 전투)
10년후
20년후당나라에 귀순했던 사사명이 13만 병력을 모아 범양에서 당나라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
당나라의 하남 절도사 최광의 휘하의 병력이 사사명이 이끄는 반란군에게 격파당하였다.
아랍인 해적과 페르시아인 해적들이 당나라의 광저우를 약탈하고 파괴했다.
30년후 프랑크 왕국의 왕 피핀 3세가 죽은 이후 그의 두 아들인 카롤루스와 샤를이 왕국의 영토를 분할 상속하였다.
- 카롤루스 대제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아우렐리우스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이 되었다
40년후 코르도바 토후국을 공격하기 위한 원정에서 돌아오던 프랑크 왕국군이 바스크족의 기습에 당하였고 이 전쟁 도중 군사지도자 롤랑이 전사하였다. (론소보 전투, 후에 롤랑의 노래의 배경이 됨)
50년후 독서삼품과가 시행되었다
카롤루스 대제가 바이에른 지방을 점령하고 프랑크 왕국에 병합하였다. 아바스 왕조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378년 훈족이 트라키아를 침략하다.
동로마측 발렌스는 고트족을 과소 평가하고 공격주장을 받아들여 고트족과 전면전을 벌였다. 378년 8월 9일 벌어진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는 로마군의 완패로 끝났다. 이 격렬한 전투에서 발렌스는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고 로마군의 3분의 2가 괴멸했다.
60년전 전조 제 3대 황제인 유총이 사망하고 유찬이 제위를 이어받았으나, 주색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였다가 외척인 근준에게 살해당하였다. 이후 유요가 전조 제 5대 황제가 된다. 유요는 석륵을 조공으로 임명하여 근준을 공격하게 하였다. 근준은 패배한 뒤 얼마 안 가 내분으로 인해 살해당하였다
50년전 석호가 후조군을 이끌고 전조를 공격하였고, 전조 제5대 황제 유요가 이에 반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유요는 이 여세를 몰라 낙양을 포위하였으나 곧 석륵의 군대에 반격을 당해 크게 패배하여 포로가 된 뒤 처형당하였다. 이후 유희가 전조 6대 황제가 된다
석륵은 후조건국
40년전338년에 모용황이 영지 이북의 여러 성을 공략하자 단란이 이를 추격했다가 매복당해 크게 패해 수천 명이 죽으면서 단부선비는 크게 몰락하게 된다.
30년전 황이 죽고모용준이 전연 제 2대 황제가 되었다
20년전
10년전
10년후 마그누스 막시무스가 테오도시우스 1세의 부하들에 의해 처형당했다.
걸복건귀가 서진 제2대 군주가 되었다.
바흐람 4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20년후난한이 후연의 황제 모용보를 살해하고 후연 3대 황제가 되었다.
- 난한이 모용성을 따르는 군대에게 살해당하였고 이후 모용성이 후연 제4대 황제가 되었다.
모용덕이 남연을 세우고 남연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30년후 로마의 스틸리코장군이 음모로 살해되어 서로마멸망의 길이 열림
50년후 가이세리크가 반달족의 족장이 되었다.
아르메니아의 아르사케스 왕조가 끝나고 아르메니아가 사산조 페르시아에 병합되었다
60년후 사산 제국이 유목 민족에 맞서 캅카스 동부 고갯길인 데르벤트에 거대한 요새를 세웠다
18년 고구려 대무신왕 즉위대해주류왕(大解朱留王)이라고도 한다. 왕후는 부여 갈사왕의 손녀인 해씨부인(解氏夫人)이고, 성은 고(高), 휘은 무휼(無恤)이고,추모왕의 손자이자 유리명왕의 셋째 아들이다. 동부여와의 전쟁에서 대소왕을 전사시키고 동부여를 복속시켰으나, 동부여는 다른 곳으로 천도하여 왕위를 이어갔다
60년후로마의 아그리콜라 장군이 웨일스 북쪽에 살던 오르도비치 족을 토벌하였다.
파코루스 2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60년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군대와 옥타비아누스, 히르티우스(Aulus Hirtius)의 군대가 맞붙었다. 히르티우스는 이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이 전투 이후 옥타비아누스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사이에 평화 조약이 맺어지고,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가 제 2차 삼두정치 체제를 수립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즉시 원로원파 척결 명령을 내렸다
BC 343년,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의 초청을 받아 마케도니아의 수도인 펠라로 간다. 필리포스는 13세인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의 선생으로 그를 초청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가 섭정이 되는 18세까지 가르친다. 많은 사람들은 선생과 제자로서의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그 동안 숱한 추측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