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는 행복한 사람인가
2014-15233
민상윤
메이즈 러너를 보고 글을 쓰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듯이 여배우가 예쁘다는 감상평으로 끝냈던 나의 지난날을 반성하고 오늘은 미로, 괴물 그리고 교육 공학.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들 간의 연결 고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메이즈 러너는 독자에게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의 기로에서 이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결국 토마스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 마지막에서 그는 행복하게 웃지 못한다. 민호를 구출하고 모두가 바이러스로부터 해방된 사회를 맞이하지만 그의 표정에선 공허함이 느껴진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본고의 후반에 더 자세하게 다루고자 한다.
1. 미로, 그리버 그리고 기억이 지워진 사람들 _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강요받는 선택
이 영화엔 여러 장치들이 나오지만 그 중에서 미로와 그리버 그리고 기억 상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미로]
영화에서 미로는 뒤를 알 수 없을 만큼 크고 밖에서 보이는 미로의 안쪽은 칠흙같은 어둠으로 그려진다. 미로 내부 또한 공포 영화 못지않게 음산하게 그려냈으며 무엇보다 현실에서 절대 볼 수 없을만한 기괴한 미로의 모습에 주인공 및 사람들은 한없이 약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이미지는 영화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인간은 매우 약한 존재로 그려지고 그에 반해 미로와 도시는 매우 거대하게 그려진다. 마치 주인공의 결단과 선택이 무모함을 강조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버]
메이즈 러너 2편이 나왔을 때 이 영화에 대한 평가 중 대부분은 좀비 영화인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영화의 설정을 보았을 때는 매우 훌륭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리버를 단순히 괴물로만 그렸다면 이 영화는 좀비들을 피해 기득권 세력을 무너트리려는 영화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득권 세력이라도 바이러스에 걸릴 수 있고 한 순간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설정은 기득권 세력들의 탐욕과 나아가 인간의 나약함,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얼마나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지 그 끝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도 이 영화가 결국 ‘선택’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그리버의 공격엔 감염된다는 것이 생각해 볼 거리를 많이 남긴다. 죽지 않고 죽어간다는 설정은 소중한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볼 수밖에 없고 결국 자의식을 잃고 소중한 사람마저 공격해버린다는 설정으로 우리 안의 무언가를 건드린다. 특히 뉴트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토마스를 공격하다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었다. 그리버는 소중한 사람과 죽음 그 사이에서 인간의 극단적 선택을 이끌어 낸다.
[기억 상실]
기억 상실이라는 설정도 매우 흥미롭다. 나는 이 설정이 인종, 살아온 환경에 상관없이 그 사람이 가진 기본적인 본성만을 남겨두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또한 엘리베이터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 갑자기 이동한다는 것과 처음 등장했을 때 모두가 위에서 쳐다보고 있다는 설정은 인간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느끼는 두려움, 공포감을 보여준다.
미로와 그리버 그리고 기억 상실의 설정은 등장인물들이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본능에 충실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든다. 토마스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등장인물들이 미로 안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을 택하고 사회를 이루어 규칙을 만든다. 이런 상황에 토마스의 등장은 그동안 지속되어 온 안정성을 흔들며 영화의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된다.
2. 토마스는 어떤 인물인가, 그의 선택이 의미하는 것들
토마스의 등장은 인상적이다. 처음 글레이드에 도착한 토마스는 무작정 달린다. 그리고 이 시도는 스스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좌절되고 고개를 든 그는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살펴보면서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의 행동 속에서 우리는 다른 주인공과는 다른 삶에 대한 간절함을 살펴볼 수 있다. 이때 삶에 대한 간절함이란 안정적인 삶의 영위보단 인간으로서 사는 삶을 의미한다. 그의 대사 중 “이렇게 살 바에야 미로에서 죽겠다” 는 부분은 그의 가치관을 잘 보여준다. 그는 살기 위해 과감한 선택을 한다. 합리 모델의 전형을 보여주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의 행동은 우리가 배웠던 직관 모델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직관 모델에 따른 그의 행동이 영화 전개에서 변화를 만든다. 따라서 합리 모델에 따른 안정성 추구보다는 직관 모델에 따른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이 영화의 주제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이면에 담긴 몇 몇 요소들에 더 눈이 갔다.
토마스는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 극 중에서 “너는 너무 정이 많아서 문제야” 라며 브랜다가 총을 건네는 장면과 트리사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망설이는 그의 모습은 인간적이다. 이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토마스는 완벽한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알고 그 목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하는 존재다. 민호가 잡혀갔으니까 민호를 찾으러가자는 그의 대사와 다음날 혼자 그를 구하러 가려는 모습에서 우리는 매력을 느낀다. 우리 모두가 그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을 토마스는 한다는 점에서 카라트시스를 느낀다.
그가 생각대로 모든 것을 다 이뤄냈다면 이 영화는 진부했을 것이다. 본고의 서두에서 토마스의 공허함에 대해서 지적했다. 이 영화는 직관 모델에 따른 행동이 결국 문제를 해결하지만, 그것에 대해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진 않다는 느낌이 든다. 그는 선택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을 잃는다. 트리사의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3. 트리사는 배신자인가, 죽어야만 했을까
영화를 본 후에 트리사는 꼭 죽었어야 할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트리사가 만약 살았다면 이 영화의 결말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우선 트리사라는 인물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 가자. 나는 솔직히 트리사를 보면서,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가 3편에서 민호에게 회개를 하고 미안함을 느끼는 부분과 토마스를 만난 후에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내가 그녀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꼭 죽었어야할까에 대해 더 답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인류를 구한 셈이 아닌가. 영화의 전개를 극대화하기 위한 설정이었을 수 있지만, 그녀는 스스로 뛰어 오르기를 포기한다. 이 장면에서 합리적 선택을 했음에도 그녀 스스로 죄책감, 미안함을 버티지 못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이 트리사의 죽음이 던지는 첫 번째 물음이다. 과연 합리적인 선택, 옳은 선택은 좋은 것일까.
두 번째 트리사의 죽음은 어떤 선택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트리사가 죽지 않고 살았다면, 토마스와 그녀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엔딩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 토마스의 얼굴엔 담담함이 묻어난다. 그가 처음 미로를 탈출하면서 바래왔던 목표를 이루었고 모두가 행복한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면에 공허함을 느낀다. 특히 뉴트의 편지를 읽는 장면에서 그러한 감정은 극에 달한다. 그의 선택은 좋은 선택이었을 수 있지만, 과연 그가 행복할까는 또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4. 묵묵히 걸어가는 토마스와 공허함
나는 토마스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느꼈던 생각은 ‘나였어도 저렇게 하고 싶다’라는 것이었다. 좋게 해석하면, 나도 저런 선택을 할 수도 있었겠다는 것이고 달리 해석하면, 현실에선 그래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직관 모델을 배우고 토마스처럼 행동하고 싶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그것을 가로 막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그간 내 안에 자리 잡은 합리모델이라 생각한다. 극 중에서 트리사의 의견에 끄덕이는 내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느꼈다.
다시 영화 초반부로 가보자. 나는 등장인물 중 토마스처럼 생각한 사람이 없진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선순위의 차이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잘못된 선택이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토마스의 선택이 옳다고 답을 내리기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 해결에 있어서, 그의 가치관은 직관 모델의 문제 해결 가능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끔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결말에 그가 느끼는 공허함은 역으로 직관 모델에 따른 문제 해결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트리사 이름을 돌에 새기고 묵묵히 다시 갈 길을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그가 과거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니라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후회를 남기고 왜 그랬는 지를 묻지 않는다. 그저 그가 앞으로 해 나가야 할 것, 그가 현재 닥친 것을 누구보다 간절히 지켜내려는 사람이다. 그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어쩌면 그 모습이 우리가 지금 갈망하고 달려가고 있는 인생의 결말에 마주할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첫댓글 영화의 결말에 그려지는 토마스의 공허함... 그 공허함은 어쩌면 감독이 그려낸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민상윤 님의 감정이 토마스의 얼굴에 이입되어 느껴진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비장함으로 비춰졌을 수도 있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