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安東權氏 원문보기 글쓴이: 權容鶴
세조 3년 정축(1457) 6월26일 (무오)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세조 3년 정축(1457) 9월7일 (무진) 예조에서 종묘서(宗廟署)의 정문(呈文)에 의하여 아뢰기를,
“소릉을 미처 추복하지 못하여 문종실(文宗室)에 배위(配位)가 없으니, 이는 종묘의 예에 크게 어긋나는 일입니다.” “재앙이 태묘에서 나왔으니, 하늘이 성상에게 소릉을 빨리 추복하라고 경계시킨 듯합니다.” ○ 4월. 현덕왕후를 문종대왕의 현릉(顯陵) 좌강(左岡)에 부장(祔葬)하였다. |
세조대왕실록속에는 능을 파헤쳤다는 기록은 없으니 훗날 중종대에 나타난 현덕왕후 능의 기록을 보면 눈에 보듯 알수 있습니다.
경기도 안산 소재 현덕왕후 초장지
경기도 안산 소재 현덕왕후 초장지 출토 유물
소릉 터는 1978년 단국대학교에서 부분 발굴하기 시작하였으며, 1982년 경희대학교 박물관에서 본격적으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현실(玄室)을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유물로는 석호(石虎) 2점, 난간 석주 2점, 석양(石羊) 1점, 석물 20여 점 등이 발굴되었고,
2009년 현재 소릉 터가 있던 자리에는 공단이 조성되어 있어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현릉은 동원이강 형태로 조성되었습니다.
동원이강이란 능원{原} 안에 나란한 다른{異} 두 줄기의 언덕{岡}에 왕과 왕비의 두 봉분(封墳)과 상설(常設)을 별도로 설치하는 형식을 일컫습니다.
위 사진은 문종대왕의 능침입니다.
1452년(단종 즉위년) 9월 1일에 조성되어 지금에 이렀습니다.
능지를 정할 때에는 수양대군, 왕보인, 김종서, 정인지 등의 대신을 비롯하여 풍수학랑관이 현지를 답사하고 정하였다고 합니다.
문종대왕과 현덕왕후의 능표
현릉의 비각
정자각의 단청
정자각 뒤로 보이는 현덕왕후 릉
현덕왕후 릉은 세조대왕이 능을 파헤져 내버린지 80여년 후에 남편곁에서 잠들었습니다.
정자각 단청
홍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