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지워진 가족사진 제1화-정옥임
#1
숲 속 햇살 반 친구들과 둥글 책상의자에 앉아 있는 시무룩한 유친. 선생님이 어린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가족사진 한 장씩 가져왔죠?”
“네! 네! 네!”
“사진에 찍힌 엄마 아빠 그리기 할 겁니다.”
친구들이 사진을 보면서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린다.
#2
유친은 그리기를 멈추고 사진을 들여다본다. 가족들 눈이 왕방울 같이 커 부엉이 가족 같다. 유친이가 사진을 보고 아빠를 그리려 할 때마다 아빠가 지워진다. 곰곰 생각해도 아빠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아빠를 마주 보는 게 싫었다.
“유친 이는 아직 다 안 그렸니?” 선생님이 물었다.
“다 그렸어요.”
“그런데 아빠는 왜 안 그려?”
“아빠는 토요일에 문 꽝 닫고 나갔어요.”
#3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려다 돌아서 가온옆으로 갔다.
“가온이는 누구누구 그렸어?”
“엄마 아빠 할머니 고모요.”
#4
햇살 반 선생님이 수업을 끝내고 전화를 했다.
“유친이 어머니시죠?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 가족 그림 그리기 수업했어요.”
“유친이도 잘 그렸나요?”
“잘 그리긴 했어요. 그런데 아빠를 빼고 그렸네요.”
“왜 아빠를 빠뜨리고 그렸을까요?”
“토요일 아빠가 꽝 문 닫고 나가셨대요.”
“그래요? 오면 물어볼게요.” 유치원 노란 버스를 기다리는 엄마는 긴장이 되었다.
오늘도 유친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대며 걸었다.
#5
집에 와 유친이가 욕실에서 손을 씻고 나왔다. 엄마가 가방 속 도시락 통을 꺼내면서 물었다.
“오늘 유치원에서 뭐 배웠어?”
“그림!” 유친 이가 가족사진과 그림을 꺼냈다.
#6
“어! 아빠는 없네.”
“유친에게 뽀뽀도 안 해주고 문 꽝 닫고 나갔어.”
“아빠 그 날 밤에 들어오셨잖아.”
“아니야, 아빠는 그 날 안 들어왔어. 밖에 있어.”
“매일 함께 밥 먹고 잠자잖아.”
“엄마가 그 날 눈물 한 방울 뚝 떨어뜨렸잖아. 그 눈물이 시냇물로 변했어.”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엄마의 눈물이 커다란 시냇물로 변했고. 그 물이 발밑까지 올라왔어. 갑자기 몸이 둥실 떴어. 물살에 밀려갔어. 겨드랑에 지느러미가 생겼어. 파닥거리지 않아도 저절로 떠갔어. 얼마나 떠내려갔는지 알 수 없었어. 하늘을 올려다보았어. 달님이 환하게 웃고 있는 거야. 부엉부엉! 부엉이 우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어.”
“너 긴 이야기를 다 어떻게 기억하니?”
“토요일 있었던 그날 일이 밤마다 꿈에 나타나.”
#8
“안녕! 별님이 꾸벅 인사했어. 밤에 혼자 밖에 나와 보기는 처음이야. 내가 말했어.”
“왜 아빠 엄마는 같이 안 오셨어?”
“별님이 물었고 나는 아빠가 집을 나가 찾으러 나왔다고 말했지.”
“아빠가 집을 나가? 네가 나온 게 아니고? 별님이 물었어.”
“너 정말 시냇물 타고 날아간 거야?” 엄마가 가만히 듣고 있다 물었다.
“맞아! 이거 봐. 돌멩이도 주어왔어.” 하얀 돌을 주머니에서 꺼내 엄마에게 보여준다. 그날 혼자서 헤매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리고 그날의 꿀꿀한 기분을 아직도 떨쳐내지 못했다.
“엄마가 나를 안아줬잖아. 아가, 라고 불렀잖아.” 말없이 듣던 엄마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9
밖에서 띡띡띠릭띡띡! 현관문 비밀번호 누름 소리. 유친이가 쪼르르 현관문으로 달려간다.
“아빠 왔지 롱!”
“아빠!” 아빠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느 새 수납장으로 올라간 유친이가 현관으로 들어서는 아빠에게 덥석 안긴다. 그렇지만 곧 눈을 내리깔고 눈을 맞추지 않았다. 아빠는 왼쪽 손에 납작 가죽 가방을 들고 서있었다. 아빠팔에 매미처럼 매달린 유친, 아빠 허리를 두 다리로 꼭 감았다.
“늦는다더니.” 엄마가 말하고 웃으며 가방을 받아 옷 방에 늘 놓는 자리로 가져갔다.
“회식이 미뤄져서 우리 유친이 보고 싶어 빨리 왔징.”
#10
아빠가 유친이를 두 팔로 훌쩍 위로 추기며 물었다.
“오늘 유치원에서 뭐했어?”
“그림 그리기도 하고 도레미 송도 배웠어.”
“도레미 송 그거 어려운데!”
“유친이 잘 한다고 칭찬받았어!”
“그래? 별 몇 개 받았어?”
“다섯 개. 선생님이 아주 잘 한다했어!”
“유친이 정말 좋았겠다.”
#11
그대로 안고 마루로 들어온다.
“이제 그만 놔 줘라. 아빠 힘들어.”
“아니야, 울 아빠는 힘 세, 아빠는 대왕이야. 대장님이야.”
아빠가 유친이의 입술에 뽀뽀 했다. 아빠 냄새가 났다. 시큼한 대장 냄새다. 로봇 팔 긴 두 다리, 빳빳한 머리카락, 삐죽삐죽 꺼끌꺼끌한 수염자국 유친이는 두 다리로 아빠 허리를 더 꽉 껴안았다.
#12
땀을 줄줄 흘리면서 팔을 풀어 스르륵 유친이를 바닥에 내려놨다. 유친은 아직도 조잘댈 말이 많이 남아있는지 졸졸 옷 방 까지 따라간다.
“아빠 씻고 나올게.”
#13
아빠는 욕실로 들어가고 유친은 욕실 앞에서 문을 두드린다.
“아빠 이것 봐. 유치원에서 만든 악기야.” 두두두 박자 치는 소리!
“기다려 다 씻었어.”
“아빠 빨리 나와.‘ 유친이는 욕실 문을 똑똑 치며 한참을 더 서 있다 돌아섰다.
아빠가 옆에 있으면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떨어져있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14
아빠 기다리다 잠든 유친. 토요일 이후로 잠이 들면 꿈을 꾸었다.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 엄마와 아빠가 다투고 있다. 유친이가 부엌으로 나가자 피자가 바닥에 엎어져 있고 아빠가 곧장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갔다. 꽝 소리에 유친이가 몸을 움찔했다. 엄마가 멍하니 문 쪽을 바라보고 있다. 닫혀 있는 회색 문에서 성난 커다란 짐승이 나타날 것만 같다. 커다란 엄마의 큰 눈에서 그 날처럼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졌다.
‘어, 엄마의 눈물이 넓은 시냇물로 변했어.’
물이 점점 불어나 발밑까지 차올랐다. 갑자기 몸이 둥실 뜨더니 물살에 떠밀려갔다. 캄캄한 밤, 팔을 파닥거리지 않아도 저절로 흘러갔다. 얼마나 떠내려 왔는지 알 수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님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별들이 쫙 깔려 있었다.
#15
‘안녕!’ 별님이 인사했다.
‘밤에 혼자 밖에 나와 보기는 처음이야.’
‘왜 아빠 엄마는 같이 안 나오셨어?’
‘아빠가 집을 나가 찾으러 나왔어.’
‘아빠가 집을 나가? 네가 집 나온 게 아니고?’ 갑자기 물살이 세지더니 벼랑 아래로 곤두박질했다.
“살려주세요. 으아악!”
#16
허우적거리는데 문소리인지 무슨 소리가 들리고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자고 있어요?”
“유친이 꿈꿨나 봐. 잠꼬대 하네!”
“여보, 당신도 책상 위에 가족사진과 그림 봤지?” 부엌 쪽에서 엄마의 말소리가 들렸다.
“아빠에게 많이 실망했나 봐.”
“그래서 겁이나요. 유별나게 아빠를 좋아하는 녀석이 참.”
“유친이 앞에선 큰 소리 내고 그러지 맙시다.”
“아이가 놀랐나 봐요. 상담 받아야 되는 거 아니냐고 유치원선생님도 걱정했어요.”
"나와 눈을 맞추지 않아. 갑자기 눈을 깜빡거려. 일종의 틱 장애 현상같아."
유친이는 잠이 깼지만 자는 척했다.
#17
“부엉부엉.” 아빠가 손나팔을 만들어 부엉이 흉내를 냈다.
“유친아! 일어나. 밥 먹자.”
유친이가 눈을 비비며 마루로 나온다. 책상 위에 늘어진 유치원 수첩이랑 그림을 벌써 보았지만 처음 보는 것처럼 물었다.
“이거 유치원에서 그린 가족사진 그림이야? 할머니이고 엄마 이건 너고. 똑 같이 그렸는데 아빠는 없네?”
“왜 그 날 엄마에게 화냈어?”
“사과하고 싶었는데 반대로 했어.”
“가온이도 그러는데! 잘못하고 화 내. 센 척 한 거야?”
“맞아. 아빠 유친 이에게 혼나고 싶어! 아빠 좀 안아 줄래?”
#18
유친이가 엉성하게 아빠를 안는다.
“나도 가족그림 볼 때는 아빠가 불쌍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화 내지 않을 게. 벌써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했어. 유친이 아빠 끼워줄 거지!”
“생각해 볼게.”
“고마워!”
“아빠 먼저 그리려 했어.” 유친이가 크레용을 찾아 들고 아빠의 눈을 마주 바라보며 다가온다.
끝
첫댓글 홍재숙 선생님 감사 합니다. 올리는 법 성공했습니다.
ㅎㅎㅎ 성공 축하합니다. 그런데 저도 기계치예요.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 쓰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