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설작업에서 배운다
밤새 눈이 내렸다. 눈이 모든 연결을 차단해 버렸다. 막혀서인지 세상이 온통 창백하다. 그대로 둘 수는 없다. 길은 연결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눈을 치우는 수 밖에 없다. 눈을 치우는 데도 순서가 있다. 제일 먼저 제설도구가 있는 창고까지 길내기다. 그 다음 진입로를 치워야 한다. 세상과 연결이 먼저다.
길의 눈치우기가 가장 쉽다. 중심부에서 양쪽으로 밀어치우면 된다. 눈을 쌓고 또 쌓아서 이동시켜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제설작업 전 예열과정으로 안성마춤이다.
이어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운다. 눈대중으로 가늠해보니 20센치 남짓 된다. 습기를 머금고 있어 무겁고 들러붙는 성질까지 있다. 강설량에 따라 제설도구 선택이 달라진다. 지금은 넉가래가 아니라 눈삽이라야 한다. 마당 양쪽에 건축물이, 한쪽은 석축면으로 막혀있어 남은 한 쪽으로 눈을 버려야 하는데 그 쪽은 관목 생울타리라 많은 눈을 버리기에는 마땅치가 않다. 손수레, 함지박 등 가용자원을 써서 아랫밭 쪽으로 버리기로 했다.
습관대로 먼저 눈을 군데군데 모으게 했다. 눈무더기 몇 개 만들면서 보니 모으는 것보다 버리는 작업량이 클 것 같다. 분업을 시켰다. 좀더 하다보니 눈무더기 만드는 작업이 불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강설량이 많아 굳이 모아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전부 내다버리는 작업으로 바꿨다. 두번 눈삽질을 한번으로 줄였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이들 얼굴이 다행이라는 기색이다. 더 일찍 알려줬으면 수고를 더 줄일 수 있었잖느냐 생각할까?
중간에 티 타임. 따뜻한 생강차와 오미자차를 마셨다. 사진 속의 시선이 모두 한 곳을 향하고 있다. 거기에 잣나무 큰 가지가 부러져 나뒹굴고 있다. 이런 습기 머금은 눈에 침엽수가 횡액을 당하곤 한다.
풀을 뽑을 때나 눈치우기를 할 때나 하는 말이 있다. "제초(제설)는 풀을 뽑는(눈을 치우는) 일이 아니다. 풀(눈) 없는 면적을 넓혀가는 작업이다." 여간해서 고쳐지지 않는 부분이다. 대개 풀을 뽑으며 흙으로 풀을 덮고, 눈을 치우며 발로 눈을 밟는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공부는 모르는 것을 없게 하는 것이다." 즉 모르는 어휘, 이해안되는 문장, 어려운 문제 따위를 찾아 적거나, 외우거나, 이해하고 나가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진도에 더 관심을 갖기 쉽다.
일이나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시간과 공력을 많이 투입한다는 말일까? 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성과가 드러나지 않을 때 낙담한다. 하지만 각자의 경험에 따른 주관적인 판단이다. 밭두렁 두 줄을 하고서도 힘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 줄을 하면서도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설정한 한계는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공부보다는 일을 통해서 자신을 더 쉽게 발견한다.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정성이 부족한지, 방법이 서툰건지, 두루두루 연결하는 생각이 부족한 건지가 드러난다. 조금씩 조금씩 바로잡히고 나아지는 모습을 본다는 건 큰 즐거움이다.
눈 치우기 작업을 끝내니 점심이다. 점심 후에 두 시간 정도 놀게 했다. 눈은 끔찍한 것으로 기억되어선 안된다. 눈은 아름다운 것이니까.
눈 치우느라 고개 한번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다. 다 치우고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천지가 하얗다. 산백눈백구름백!^^
첫댓글 한동안은 설국의 아이들이 되겠는데요.^^
뒷정리..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ㅠ
밑에서 세번째 사진 앞 뒤가 정말 다르네요. ㅋㅋ 뒷정리가 말끔하지 못하니 이건 제대로 눈을 치운 것이라고 할 수도 없군요... 풀을 뽑을 때처럼 언제나 생각을 해야겠어요... ㅠ
몸공부를 하면서 놀랐던 것은 공부를 할때 나왔던 습관이 그대로 바깥에서 나온다는게,,,정말 놀라워요.ㅠ
공부나 일 모두 세상과 연결시키는데 목적이 있는듯 해요
연결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듯? "목적이 있는듯 해요"가 "수단으로 삼는 듯해요"로 들리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가 맞다면 세상 즉 사회 속에 있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
이미 사회 안에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굳이 공부나 일로 연결시키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
자신을 위해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옛날 히피문화에 심취한 젊은이들이 그걸 거부하긴 했지만.... 이슬처럼 사라졌어.
그러네요...그냥 제 자신을 위해 받아들여야 겠어요.
그래~ 자신과 관계된 일로 받아들이는 관점이 아니고, 자신과 단절된 세상을 관찰하는 관점을 붙들고 있을 때
'어떻게 그런 해석이...." 하게 되는 일이 생기는거지.
관점이 문제일 듯. 자신의 관점이 유연해지기를....
요즘 사람들 복장터지게 하는 '유체이탈 어법'이 바로 '나와 무관' 관점에서 나오는 거잖아.
그걸 따라하다 보면 망가지거나 유명해질껄? 왓두유원트?
그런 식으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요ㅋㅋㅋㅋ저와 항상 관계 시켜 생각하는 관점을 길들여야 겠어요
항상 뒷정리가 중요하네요... 습관이 무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