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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2:13-15)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그러나 네게 두어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 이세벨의 교훈
(왕상18:19)그런즉 보내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사탄의 삼위 중 하나인 이세벨의 교훈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이세벨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이세벨에 대한 이야기는 열왕기상16장 ~ 열왕기상 19장에 기록되어 있다.
이세벨은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내(왕비)이다.
열왕기상 18장에는 아주큰 사건이 기록되어 잇다.
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과 대결하는 갈멜산의 전투이다.
그리고 이 대결의 주제는 “누가 참 하나님인가”이다
이세벨은 아합왕의 왕비로서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대결한 바알의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을 가르쳐 양성한 여자이다.
(계2:20-21)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성경에서 먹는다는 것은 말씀을 듣거나 배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인이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다는 것은 이세벨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왜 문제인가?
이는 그것이 하나님의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세벨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세벨이 가르치는 것과 이세벨에게 배우는 것이 무엇이 문제일까?
성경은 배우거나 가르치는 것을 남녀의 관계를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다.
성경은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고 하며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다”고 하고 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성 차별 주의자인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창1:26-27)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사람을 창조하되 육체적인 사람, 남자와 여자를 창조 하였다고 알고 이해한다면 이는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말씀을 오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사람 99.9999%의 사람들이 사람을 창조한 말씀으로 알고 믿는 심각한 상황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들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남자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자카르”는 사람의 남자라고 하여도 되겠지만 더 정확한 의미는 “수컷”을 말하는 말이다.
그리고 여자라고 번역한 “네케바”도 사람의 여자라고 하여도 되겠지만 더 정확한 의미는 “암컷”을 말하는 말이고……
원어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왜 수컷과 암컷이 아닌 남자와 여자로 번역한 것일까?
이는 창1:26-27을 사람 창조로 보기 때문에 사람에 있어서 수컷은 남자, 암컷은 여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번역함으로 사람들이 자카르(수컷) 네케바(암컷)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뜻을 모르게 되고 사람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한 것으로 오해하여 잘못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해하여 잘못 알고 믿는 것을 바울은 고후11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후11:1-4)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2)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3)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바울이 말하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성경의 해석과 이해가 달라지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잘못 알고 믿게 하는 것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이 이세벨 교훈이고 발람의 교훈이고 뱀의 교훈이다.
그리고 그들의 조직이 니골라 당이고……
바울은 이 말을 하면서 우리가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받아 들이고 용납하는 것이 뱀이 그 간계로 이(하)와를 미혹케 한 것과 같다고 하며 이는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자는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하와는 아담의 아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뱀에게 말씀을 배웠다.
이것이 “음행”이고 “행음”이다.
뿐만 아니라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다.
여자(암컷)는 남자(수컷)에게 씨(말씀)을 받아야(배워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이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뱀이 하와를 가르친 것은 하와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하와가 남편인 아담을 가르쳐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하게 한 것이다.
(창3: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와는 설사 뱀에게 가르침을 받았을지라도 남편 아담에게 물어 보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인 하와가 남자인 아담을 가르쳐 먹게 하였다.
이것이 이세벨의 고훈이며 이세벨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다.
무엇을 가르쳤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뱀이 한말……즉 뱀의 교훈을 가르친 것이다.
(롬1:24-32)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25)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28)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고전14:34-35)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1:26-27)
레즈비언과 호모를(동성 연애자) 말하는 말일까?
순리는 여자는 남자에게서 배우는 것이고 남자는 여자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를 다만 성경은 남녀의 관계를 비유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이에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우리의 남편은 그리스도라고……
(계21:1-2)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우리들 자신이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
이제 이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는가?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인……
이를 설명하고자 먼 길을 돌아왔다.
바알의 선지자, 아세라의 선지자……
바알은 남신이고 아세라는 여신이다.
이세벨의 상에서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인이 먹었다는 것은 이세벨이 남자에게, 그리고 여자에게 말씀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로마서에서는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 한다고 하는 것이고……
이러한 이세벨의 교훈이 오늘날 여자가 여자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남자까지 가르치는 신학 제도로 나타났다.
이세벨의 교훈인 신학제도는 많은 여자들이 여자인 이세벨에게 배울 뿐만 아니라 나가서 여자가 되어 또 다른 여자와 남자에게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순리를 버리고 역리로 씀으로 행음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뱀이 하와를 미혹하여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하는 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하게 하는 자가 뱀이고 발람이고 이세벨이고 니골라 당이다.
그들이 세운 교회가 바알 신전이고 아세라 신전이다.
(왕상18:19)그런즉 보내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우리는 갈멜산의 전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참 남편인 그리스도에게 돌아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모습으로 서야 할 것이다.
(호1:1-2)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호세아에게 음탕한 여자 고멜을 아내 삼으라는 하나님……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호세아 시대뿐 아니리 오늘날이 그렇다.
아니 더욱 심하다.
저는 이를 고발하는 것이다.
이 글로서 사탄의 삼위에 대하여 모두 썼다.
이제 세 글을 종합하여 사탄의 삼위 일체에 대하여 쓸 것이다.
여러분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감동 하심이 있기를 기도 한다.
그리고 글을 쓰는 저에게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 한다.
첫댓글 "사탄의 삼위일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 한지 한 달 정도 된 것 같다.
이제 세 편을 올리고 이어서 진정한 사탄의 삼위일체에 대하여 글을 쓰고 있다.
항상 체험하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성령)께서 어떻게 어디까지 인도하실지 기대가 크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나면 돌로 치려고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마치 스테반 집사에게 처럼
저는 지금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처럼 돌에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에게 듣고 배운다면......
이것이 간음의 본질이고 행음이기 때문이다.
사람인 랍비는 몽학선생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도록 하는데 까지만 하여야 한다.
이보다 더 나아가면 그것이 강도이고 절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릴 때 죄우에 함께 달린 강도 둘이 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달리겠는가?
낙원을 허락 받는 강도가 될 것인가?
예수니으 비난하고 죽는 강도가 될 것인가?
지금 저는 여러분에게 회개할 기회를 드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회개하기를 거절하는 것 아닐까요?
이세벨은 발람의 교훈을 가르치고 이런 이세젤에게 배운 자들이 바알의 선지자이고 아세라 선지자이다 .
그들을 이 시대에는 목사와 신부 라고 하고성경은 니골라 당이라고 한다.
그들의 교회는 벧아웬(귀신의 집) 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를 아는 이가 없다.
왜 모를까?
거의(99.999999%)모든 교회가 그런 교회이기 때문이고 참 교회가 없어서 비교 불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벧아웬이 벧렐을 오히려 벧아웬이라고 하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