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픽션]
서울의 달빛 아래, 책상 위에 흩어진 원고들을 바라보며
서울의 밤은 여전히 밝았다. 고층 빌딩에서 쏟아지는 불빛과 네온사인이 거리를 뒤덮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달빛은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달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비추며 아무 말 없이 그들을 지켜보았다. 종로의 좁은 골목 어귀에서, 한 젊은 작가 지망생이 카페 창가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호는 오늘도 글을 쓰기 위해 하루를 버텼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안정된 직장을 찾는 대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길은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다. 생계는 늘 불안했고, 성공은 먼 이야기였다. 그런 그의 앞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이 펼쳐져 있었다.
강호는 고개를 들었다. 카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에게 일상 속의 무기력을 떠올리게 했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택시를 잡으려 손을 드는 직장인, 그리고 가로등 아래 고단하게 휘청거리는 중년 남자. 그들은 저마다의 무게를 짊어진 채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늘 그러했다. 서울은 찬란하게 빛나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고요히 스러져갔다.
"왜 이렇게 글이 안 써지는 걸까."
강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책상 위에 흩어진 원고들을 바라보았다.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 지 3년이 흘렀지만, 그가 쓴 것이라곤 거절당한 출판 제안서 몇 장과 무수한 실패작뿐이었다. 하루하루 버티며 글을 썼지만, 그의 노력은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동료들이 하나둘씩 안정된 직장을 찾아갈 때, 그는 혼자 남아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주변의 걱정과 실망 섞인 시선이 그의 어깨를 더 무겁게 했다.
"이렇게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그는 자신에게 묻곤 했다. 삶은 가혹했다. 월세를 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그것마저도 빠듯한 상황에서 글을 쓰는 시간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매일 출판사로부터 날아오는 거절 메일은 그의 마음을 갉아먹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호는 글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것만이 그가 가진 유일한 꿈이었으니까.
서울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카페의 불빛이 어둑어둑해지자 강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노트북을 가방에 넣었다. 그는 혼자서 걷기 시작했다. 종로의 골목길을 지나, 남산이 보이는 곳까지 걸었다. 그곳에서 그는 늘 달을 바라보았다. 달은 그에게 유일한 위로였다. 아무도 그의 글을 알아주지 않았지만, 달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달빛은 변하지 않네.”
강호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달빛 아래서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겪는 고통과 애환을 생각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학생, 생계를 위해 야근을 끝내고 지하철 막차에 몸을 싣는 직장인, 그리고 길가에서 작은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노부부까지. 그들은 모두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그들과 자신이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도 그들처럼 삶의 무게에 짓눌리면서도 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비록 그의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는 그 꿈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생존을 위해 싸우고, 그는 글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강호는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 공원의 벤치에 앉아 달빛을 바라보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더 이상 막막함에 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글 속에 자신이 겪은 고통과 애환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서울의 밤거리, 지하철에서 느꼈던 숨 막히는 압박감,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거운 삶을 글로 풀어냈다.
강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달빛 아래에서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실패와 좌절, 그리고 그 안에서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말이다. 그것은 곧 그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는 비록 지금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언젠가 그의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달이 서서히 하늘을 가로지르며 지고 있었다. 서울은 여전히 잠들지 않았지만, 강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는 글을 마무리하며 미소 지었다. 그가 오늘 쓴 글이 얼마나 좋은 평가를 받을지는 몰랐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포기하지 않고 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서울의 달빛 아래, 강호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환, 그리고 자신처럼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언젠가 이 달빛처럼, 그의 글도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서울의 밤은 깊었고, 달빛은 여전히 그를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