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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의 자유: 대 자유인 바울 Freedom in Romans: Paul the Great Freeman
샬롬! 하남에 있다가 군산에 와서 하루 쉬었습니다. 이곳에 있는 권사님과 집사님의 도움으로 비철 고물 정리한 것도 팔아서 생계에 보탬이 되었습니다. 한창 두 분이 전도에 불이 붙어서 열심히 전도하셔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1월 2일 새벽인데 저는 오늘 이 두 분이 나가는 교회에 출석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로마서의 자유에 대해서 같이 은혜를 나눌 것입니다. 먼저 로마서를 아래와 같이 정리를 했습니다. 이 자료는 약 7년 전의 자료입니다. 이렇게 공부하고 전하는 동안 약 7년 동안 하나님께서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무려 120개국에 다음 카페와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서 50만 명이 오천만의 로마서를 방문하고 글을 읽은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새로운 이해를 로마서에서 허락하셨지만 제가 7년 전에 올린 자료를 그대로 올리는 것은 이 자료가 지금 새롭게 이해가 된 내용과 전혀 배치가 되는 부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더 깊이 있게 로마서를 이해하게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셨으니 그 은혜가 하늘과 같습니다. 할렐루야!!
이 보신 분이 많겠지만 함께 같이 보시면서 로마서에서 바울 사도가 누린 그리고 성령의 감동으로 표현한 자유에 대해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 로마서 정리
로마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확실한 증거
| 1부 서언 | 2부 바울의 복음 2-11 | 2-3 하나님 공의의 필요성. 하나님 의, 그리스도의 희생 4 이신칭의 5-8 사랑의 확증과 자유 9-11 이스라엘 문제와 공의 | 3부 바울의 윤리와 추천서 12-16 | 12-13 성도의 윤리 14-15 권면 16 추천 |
| 부 | 장 | 키워드 | 주요 내용 | 부 | 장 | 키워드 | 주요 내용 | ||
| 1부 | 1 | 서언 | 인사. 복음의 능력. 이방인의 죄와 하나님의 의 | 9 | 이스라엘 문제 |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 섭리 | |||
| 2부 | 2 | 바울의 복음 하나님의 공의 자 유 성령 | 공의의 필요성 | 유대인의 죄. (율법, 할례) | 10 | 이스라엘의 죄와 타락 그리스도와 복음 전파 | |||
| 3 | 모두가 죄인 하나님의 공의 계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 11 | 이스라엘과 이방인 구속사의 비밀 | ||||||
| 4 | 칭의 |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음(아브라함) | 3부 | 12 | 성도들의 신앙 윤리 | 일반적 교훈 | 산제사. 몸과 지체. 은사. 평화의 윤리 | ||
| 5 | 죽음을 통한 자유 . 합력성선 | 하나님 사랑의 확증 아담과 그리스도 죽음으로부터 자유 | 13 | 권세 복종 사랑 윤리 | |||||
| 6 | 세례, 죄로부터 자유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음과 부활 | 14 | 권면 | 강자와 약자 문제 화평하라. | |||||
| 7 |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율법에 대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모세) | 15 | 일치 권면 바울의 선교 계획 | ||||||
| 8 | 생명의 성령의 법 성령의 인도로 율법의 의를 이룸, 합력성선 | 16 | 추천서 | 추천, 인사 | |||||
◈ 로마서; 하나님의 사랑과 의, 예수의 피 흘림과 대속, 부활, 성령의 역사, 성도의 의무
◈ 로마서는 인간의 죄악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의의 발현으로서의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과 이를 믿는 이에 대한 칭의와 이스라엘의 문제와 칭의 된 신자의 의무에 대해서 설명한다.
※ 로마서 기록 목적(하나님의 의와 십자가, 사랑의 확증, 성령과 성도의 의무)
| ◈ 1장 11절 신령한 은사의 나눔과 견고케 함 1) 하나님께서 버려둔 자들의 죄악 (1-2장 16절) / 바울이 골육의 친척을 위한 심정 2) 유대인들이 범하는 죄악들(2장 17절) /전도와 선교의 원리 3)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다. 하나님의 의, 의의 실현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3장) 4) 하나님 사랑의 확실한 증거 아들의 죽음과 부활: 칭의, 자유, 세례, 부활, 합력성선, 사랑. (4정-8장) 5) 유대인들의 궁극적인 구원 계획, 이방인의 겸손 (9-11장) 6)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12장) 7) 성도들의 시민 윤리(13장) 8) 보다 연약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14장) 9) 로마 방문 계획(15장) 10)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들어가기 위하여 / 문안과 인사 ▷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을 미혹하는 사람들에게서 떠나라! (16장 17-20) ▷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16장 19절) |
※ 로마서 초점;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의, 그의 아들의 죽음과 성령
| 초점 | 죄와 하나님 사랑 | 예수와 구원 (칭의) | 성령의 법 | 하나님 주권 | 성도의 의무 |
| 구분 | 하나님 사랑과 의 인간의 죄와 십자가 | 하나님 은총의 승리 | 의로운 삶을 위한 성령의 인도와 합력성선 | 이스라엘 문제 | 성령과 의의 실천 |
| 본문 | 롬 1-3장 | 롬 4-5장 | 롬 6-8장 | 롬 9-11장 | 롬 12-16장 |
| 주제 | 교리 편(주와 함께 죽고 살게 되었음을 반드시 믿어야 함) | 실천 편 | |||
| 죄의 종 | 의의 종: 이신칭의. 생명의 성령의 법, 합력성선 | 신자의 의무 | |||
| 장소 | 고린도. A.D 57년 | ||||
로마서 : 믿음을 의로 여기시는 하나님/ 생명의 성령의 법에 의한 자유와 인도, 합력성선
※ 죄와 율법 믿음의 관계
| 구분 | 죄 | 율법 | 믿음 |
| 의미 | 빗나감, 율법, 계명, 명령을 어김 | 하나님의 명령, 10계명, 모세 5경, 613계명, |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의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증거 |
| 성질 특징 기능 | 아담의 범죄로 시작됨 죄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 과 인간의 관계를 파괴함 모든 사람이 죄인임 율법이 있기 전에 존재함 율법이 없으면 없는 것 같음 율법으로 존재가 드러남 죄의 삯은 사망이다. 죄가 모든 인간의 왕 노릇 함 |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질서 무엇이 죄인지 밝혀 줌 모세를 통해서 옴 선민 이스라엘의 법 율법의 규정을 어기면 죄 순종과 불순종의 상과 벌 인류 최초의 완전한 법 세상 모든 법의 기준이 됨 | 믿는 데로 이루어짐 불가능을 가능케 함 알 수 없는 것을 알게 함 하나님의 존재, 만물의 창조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인정 아담, 노아로부터 시작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 됨 수많은 믿음의 선진이 존재 |
| 예수님과 관계 | 죄를 미워하심 죄 문제 해결을 위해 오심 피 흘리심과 십자가 대속 죄로부터 자유함을 부여하심 |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자 율법의 요구를 직접 성취 아직도 유효함 율법으로부터 자유 부여함 | 믿음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 믿음의 대상이 되신 예수 믿음으로 신자는 의를 인정 믿음으로 행함 반드시 필요 |
| 이를 통한 로마서의 간결한 설명 | 바울이 로마서를 기술할 때 한민족은 문자생활을 하지 못하였고 고조선과 동맹 왕국의 법인 살인, 간음, 도적질에 대한 법이 중국의 서적인 한서 지리지로 전해진다. 모세의 율법은 이보다도 약 1500년 전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졌는데 지금 우리가 읽는 구약의 모세 5경이다. 모세 5경은 현 어느 나라 국가의 법 보다 훨씬 공동체가 조화를 이루며 행복하게 사는데 우수하다. 구약이 없는즉 이스라엘을 제외한 국가나 단체는 독자적으로 법을 만들어 질서를 유지했는데 함무라비 법이요 중국의 고대 법전이요 고조선 8조 법금이다. 그리고 불교와 유교, 불교, 이슬람의 종교를 통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해 왔다. 그리고 각국의 법도 발전하고 사정에 맞게 변화되어 현재 각국의 헌법과 각종 하위법의 체계를 갖추고 국가와 사회,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법을 위반하는 것이 죄이다. 즉 법의 존재로 죄가 발생한다. 형법에서는 이를 “죄형법정주의라 하여 법 없으면 죄 없다”라는 대원칙으로 세워놓고 있다. 바울도 율법이 없으면 죄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죄가 존재해서 모세의 율법 전에 사는 사람들도 아담과 같이 죄를 짓지 아니한 사람도 사망이 왕 노릇 했다고 한다(롬 5;13-14). 그 죄는 아담으로부터 비롯되어 모든 인류에 미치는 죄이다. 오직 이스라엘 민족만 선택되어 구약의 방법대로 제사를 통해서 죄 문제를해결하고 있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로마가 다스리던 때 예수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 오신 것이다. 4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사역과 피 흘리심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인류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의의 나타남이다.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의 자신의 사역을 다 마치신 후 사도행전의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시며 승천하셨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기록대로 성령께서 오셨다. 사도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아 아시아와 유럽에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로마서에서 복음으로 오는 의에 대해 율법과의 관계를 설명하며 기록했다. 복음과 율법의 대비는 이스라엘에 해당하는 설명이고 율법 없는 이방인은 죄로부터의 자유이다. 그런데 율법이 있는 이스라엘도 역시 죄인이라는 것이다. 이는 율법을 통해서 의를 이루고자 하는 이스라엘의 실패를 설명하는 것이다. 율법이 있으면서도 순종하지 아니하는 이스라엘을 책망하고 그리고 남겨진 자들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먼저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신자를 대상으로 쓴 편지이지만 지금의 모든 크리스천과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편지이다. 구약성경의 율법이 없이 사는즉 각자의 법체계로 사는 사람에 대한 죄악 된 모습에 대해 너무나 생생하게 설명한다. 이런 죄는 각국의 법에는 편입되지 아니한 인간의 내면의 죄에 대한 모습들도 있는데 이 역시 죄이다. 결국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과 모든 타 민족이 죄에서 자유하게 되고 의롭게 되는 유일한 길을 설명하면서 이를 믿음에서 오는 의로 칭하고 이는 민족과 관계없이 예수를 믿는 모든 자에게 차별 없이 적용됨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이스라엘의 율법 이전에 아브라함에게서 나타났음을 강조하고 이스라엘을 믿음의 세계로 초대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아들을 통한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과 합하여 세례 받은 우리가 죄와 율법에 대해 죽음으로 이로부터의 자유를 설명한다. 그러나 의로움과 자유함을 가진 신자가 이렇게 의롭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도 삶을 살다 보니 자신 속에 두 가지 싸움이 있음을 진솔히 인정하고 육신이 선하게 살려는 마음을 이기고 죄로 사로잡아옴을 보며 곤고한 자라 자신을 한탄한다. 그러나 신자가 예수 안에 있으면 절대로 정죄함이 없음을 고백하며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을 법을 이기고 우리를 해방했음을 선포한다. 그리고 성령 받은 자신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살기만 하면 율법의 요구를 의를 이룰 수 있음을 설명한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사람의 피조물과 함께 신음함을 설명하며 이 세상의 아무것도 믿는 이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설명하고 의롭게 된 자의 성령의 인도를 받는 구체적인 삶을 국가, 사회, 교회, 이웃 간에서의 법의 준수와 사랑의 실천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신비를 또한 설명하며 하나님의 지혜의 부요함을 찬양한다. 결국 로마서 18장은 1-8장까지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 죄인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발로로 예수님의 온 인류 구원의 대속과 이를 믿음으로 오는 의와, 의의 칭함을 받았지만 실제의 삶에선 죄에 사로잡히는 바울의 탄식과, 예수 안에서 정죄함이 없음과, 예수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과, 세례의 의미와 부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의 의를 이룸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룸과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과 9-11장의 이스라엘의 구원의 신비와 복음 전파, 12-16장의 성령의 인도를 받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으로 국민으로서, 사회인으로서, 교인으로서의 법의 준수와 하나님과 이웃에 사랑의 실천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 ||
위의 자료는 제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도표는 성종현 교수님의 신약 성경 연구를 참고했고 뉴욕 성경 공부 자료도 참고를 했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이신칭의 중심의 내용이 아니라 로마서를 더욱 큰 면에서 편견이 없이 정리했음을 밝힙니다. 너무나 이신칭의에 초점을 맞추면 더욱 큰 하나님의 사랑과 의, 생명의 성령의 법의 승리, 합력 성선과 같은 이신칭의가 나오는 더욱 근본적이도 더 큰 주제를 놓칠 가능성이 있기에 저는 이렇게 정리를 한 것입니다. 앞으로 천주교나 개신교의 로마서의 연구는 완전히 새롭게 정리가 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굳게 믿습니다. 이를 오천만의 로마서는 선도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누리는 자유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의 가장 큰 차이는 성령을 받고 받지 않음에 있고 또 예수님을 통한 죄의 용서와 용서가 없음에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은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를 받고 성령께서 선물로 오셔야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모든 초대 교회 성도는 이 부분에 있어서 문제가 없고 로마에 사는 성도도 역시 그렇습니다. 아볼로는 신학자요 성경 연구가 이었지만 성령이 없이 전도하다가 브리스 길라 아굴라를 만나서 성령에 대해서 설명도 듣고 성령도 받아서 더욱 힘 있게 제사장 등에게 예수님을 전했으니 가장 저자가 불분명한 히브리서의 저자로 유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회개가 되지 않았다면 자유도 없고 로마서도 없습니다. 다른 당시의 율법학자와 같이 예수님께 대적하고 예수를 믿는 성도를 박해하다가 죽고 이름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는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음에 있습니다.
바울이 누린 자유 중에서 가장 큰 자유는 물질로부터 자유입니다. 소유가 많아서 자기 마음대로 쓰고 싶은 곳에 쓸 수가 있어서 자유한 것이 아니라 물질이 아예 아무것도 없기에 물질로 무엇을 할 마음의 엄두도 내지 않았기에 자유로운 것입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고 그렇게 예수님과 같이 들판에서 살다간 사람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일을 해서 자신이 먹을 것을 벌어서 살았기에 자유합니다. 누가 물질로 돕고 누가 먹을 것을 제공하고 집과 필요를 주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그 사람의 의견이나 바램을 무시하기 어렵기에 자유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바울을 이렇게 얽어맬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 사람에게서 물질에게서 자유롭게 살았으니 자유를 누리면서 즐겁게 산 것입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집과 땅과 많은 사례비와 퇴직금 그리고 각종 혜택으로 점철이 된 대형 교회 목사는 절대로 자유하지 못합니다. 장로 권사 혹은 성도의 눈치를 보느라 너무나 바쁩니다. 예를 들어서 세상이 불의로 가득 차고 공산주의가 판을 쳐도 무슨 말을 하면 좌파 성도가 내 쫓으려고 하니 끽 소리도 못하고 전해야 할 시간에 전해야 할 메시지도 절대로 전하지 못하고 그들의 종이 되고 예수님의 종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의 모습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십억 집과 땅과 사례비에 늘 마음이 갑니다. 어디 자유가 있습니까? 절대로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쉬지 않고 가고 자유는 누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참된 진리도 절대로 전하지 못하고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이요 얽매인 사람이요 예수님의 종이라기 보다 물질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에 따라서 할 말도 못 하는 자가 어찌 예수님의 종이라 자처합니까? 역사가 이들을 무익한 종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따라서 장로와 권사가 물질의 노예로 사니 한국의 모든 문제가 여기서 생깁니다. 이 부자유에서 자유하게 하려고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모든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이웃에 나누고 자신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부자는 절대로 하나님과 사람을 전심으로 섬기지 못합니다. 절대로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물질에 목을 매시지 말기 바랍니다. 인생은 겨우 100년이요 우리는 영원히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부디 모든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성도에게 나누어 주시고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장로 권사에게 그렇게 사세요 당당하게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누리는 대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자본주의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누리는 길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도리어 재력이 있는 사람은 대형 교회 목사로 부르심을 받으면 영광으로 알고 매달 교회에 사례비는 받지 말고 도리어 수백만 원씩 헌금을 해서 교회를 살리고 가난한 교인을 세우기 바랍니다. 이런 풍토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는 모든 사도가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서 교회에 두고 가난한 성도를 먹였습니다. 본을 받기 바랍니다. 한국 대형 교회 목사 즉 1000명의 목사의 재력을 파악해 보시기 바랍니다. 수 조가 넘을 것입니다. 얼마나 못 된 자들이 목사로 초대 교회 사도나 바울의 삶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면서 목사로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할 말도 못하고 삽니까?
로마서를 올바로 알면 이들이 이렇게 보여야 합니다. 이들이 전하는 로마서는 이런 부분을 절대로 전하지 못합니다. 일생을 믿음 생활을 하면서 들어야 할 말도 듣지 못하고 성도로 사십니까? 분발하시고 용기를 내시고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목사로 세워져도 목사 답지 못하면 예수님께서도 책망하십니다. 저는 제 본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은행에서 나온 후 약 42년을 가난하게 살고 이렇게 살면서 나누면서 살았습니다. 이렇게 산 제가 죽지 않았고 이렇게 로마서를 온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 되어서 바울의 자유를 논하는 것입니다. 자유가 없는 자들이 자유를 논하면 뭐합니까?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모든 문제는 이렇게 물질의 노예가 된 교회의 지도자의 문제입니다. 어찌 초대교회 사도와 같이 살지 못하고 바울과 같이 살지 못하면서 성경을 논하고 설교를 합니까? 모든 성도는 그렇게 가난하게 사는 목사의 가르침을 받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내가 죽을 때 그렇게 산자가 예수님과 천국에 먼저 간 나누면서 사랑하고 산 성도를 만날 기쁨과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부자로 두 손에 거머 쥐고 산 자들은 죽음이 오면 목사 장로 권사를 했더라고 죽음이 두렵고 이 땅에서 이렇게 이렇게 더 살고 싶은데 반드시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죽음이 찾아 옵니다. 우리는 정말로 죽음을 기쁘게 맞아야 합니다. 죽음이 기쁜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고난이 끝이 나고 영원한 안식에 들고 사랑하는 예수님과 성도를 만나는 일이 기쁨이 되지 않고 무슨 일이 될 수가 있습니까? 우리의 육체는 우리 영혼을 담는 집으로 있는데 허물어 지는 때 우리 영혼은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서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이 자유를 우리는 기대하고 고대하고 기쁨으로 맞아야 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축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5장 6장 7장에서 죽음으로부터 자유, 죄로부터 자유, 그리고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차례로 설명합니다. 먼저 두 가지 자유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를 받을 때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믿을 때 누릴 수가 있습니다. 즉 우리가 죽었음을 믿어야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함께 못이 박히고 죽었음을 믿어야 함을 옵니다. 아니 내가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고 생각도 하고 행동도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내가 죽었단 말인가 하고 받아 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분의 이름의 물세례를 틀림없이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성경 말씀이 진리가 되니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믿으면 우리가 죽은 것이 됩니다. 그러면 살아 있는 나는 무엇입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입니다. 내가 죄에 대해서 죽어야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부자 목사 장로 권사에게 예수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이 부자로 사는 것이 죄를 짓는다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성도나 이웃에게 나누어 주로 나를 따르라 하실 때 내가 죽는다는 것은 내 고집 판단 염려를 접고 예수님의말씀대로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물질로부터 죄로부터 자유가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신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이렇게 따르지 않고 불순종하면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죄가 살고 내가 살고 예수님께서 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예수님과 함께 부활도 하게 됩니다. 두 손에 가득 쥔 재물이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집과 차와 사례로 부자로 산 사람이 즉 예수님의 명령에 불복하고 주와 함께 죽지 못하면 부활도 당연히 없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한국 80년의 평안은 모든 면에서 자유를 누리면서 살기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물질이 주는 유혹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자유주의가 우리 시대의 풍조가 되어서 마음껏 가져도 온 세상을 한 명이 다 가져도 법적으로 뭐라 하지 않기에 이를 악용해서 누가 뭐라 하지 않으니 이 유혹에 오직 한 가지 유혹에 넘어가서 부자로 살면 틀림없이 이런 세상이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하고 장가 가지 못하고 약자로 살고 사람 취급 받지 못하고 일생을 일을 해도 집도 땅도 없이 사는 한국의 약 3000만 명의 원성이 다 이런 세상을 만든 주범에게 가니 영적으로 대형교회 목사 10000명에게 가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런 세상을 죽어도 만들지 말아야 하는데 이런 세상을 만드는데 선봉으로 살았으니 즉 이렇게 살면서 나를 따라서 부자로 사세요 하고 권장했기에 이런 세상을 즉 헬 조선을 만들었기에 이들이 주범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부분에 성경의 기록대로 그대로 믿고 죽음에서 죄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라고 자유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외칩니다. 죄의 노예가 되지 말고 의의 노예가 되라고 죄의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외칩니다. 육을 따라서 살지 말고 성령을 따라서 사라고 외칩니다. 이제 성령을 따라서 사는 삶이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원리를 설명을 드립니다. 모든 분께 로마서 7장 6절을 다 풀어서 설명을 이미 드렸습니다. 보신 분은 다 이해가 되리라 믿습니다. 이는 바울 사도의 두 가지 삶의 대조로 설명이 됩니다.
잘못 알고 잘못 믿음으로 바울 사도는 율법을 지금의 서울대 법대 교수와 같이 잘 배우고 이 율법대로 살면 의롭게도 되고 천국에도 간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삶이 지상 최고의 삶으로 알았으니 지금의 유대인이 똑 같이 2000년을 살면서 바리새인으로 우리의 의와 비교가 됩니다.예수님을 모르고 성령이 없으면 이렇게 사는 것이 옳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단도 이렇게 성령이 없이 분별력이 없이 자신이 아는 것이 옳다고 믿고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법학자를 예수님께서 사도로 삼기 위해서 다시 오셔서 자신의 본래 하나님의 모습을 보이시니 바울이 눈이 멀고 말에서 떨어지고 말도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하게 됩니다. 기세 등등하게 예수님을 믿는 성도를 잡으로 가다고 진짜 예수님께서 오시니 정신이 나가고 혼이 나가게 된 것입니다. 마치 욥이 잘 났다고 뻐기다가 하나님께서 오시니 바로 굴복하는 것과 같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직접 사람에게 오셔서 사람을 종으로 삼는 경우도 있으니 12사도는 다 예수님을 뵈옵고 그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그리고 혼이 나간 바울은 아나니야를 만나서 그분(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그간의 흉악한 죄를 다 용서 받았습니다.
100% 예수님을 뵙고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죄악 중의 죄악인 것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죽어서 사라진 분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부활하셔서 여전히 살아계시면서 하나님으로 계신 것을 직접 보았기에 예전과 같이 사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죽어도 옛날로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선물로 오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를 거듭나게 하시고 새롭게 창조를 하십니다. 그래서 늘 언제나 바울 사도께서 성도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하신 것입니다. 자신이 경험도 없이 거듭나지도 않았으면서 새로운 피조물이라 절대로 외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구약 즉 자신이 그렇게 자신있게 알던 다 안다고 믿던 모세 오경이 모두가 다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며 예표가 됨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내주와 충만을 늘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사니 성령께서 가장 큰 사랑의 실천, 복음을 일생을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20년을 이렇게 살다가 로마서를 기원후 약 57년 경에 고린도에서 로마로 쓴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논한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3장 31절에 믿음 생활을 한다고 율법을 폐하느냐 절대로 아니라 굳게 세운다고 하셨고 율법을 완성한다고 로마서 13장 8-10절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 3-4절에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성령을 통해서 이룬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과거와 같은 율법 중심의 삶을 살지 않는데 믿음 생활을 그렇게 하는데 위의 말씀은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이 역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아무나 다 이해가 되는 내용이 아닙니다. 역설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따라서 살지 않는데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룬다고 하니 이를 어찌 이해합니까? 이것이 바로 성령의 사역입니다. 성령께서 자신의 인도를 받는 모든 성도를 다 이렇게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학생이 공부를 할 때 점수를 의식해서 고득점 하는 비법대로 공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공부지만 성적은 연연하지 않고 공부가 좋아서 미쳐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부에 대한 열심과 공부에 대한 즐거움이 전혀 공부에 대한 부담도 없이 고득점으로 연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같은 목적이 있지만 서로 가는 길이 너무나 다릅니다. 같은 율법의 완성이란 목적이 모든 성도의 숙제로 있습니다. 이를 절대로 모르면 지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성도의 사는 목적이 율법의 완성임을 모르는 모든 사람은 지옥에 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누가 이렇게 말을 합니까? 제가 무슨 자격으로 합니까? 저는 절대로 아니고 지옥에 가고 천국에 가는 것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시는 분 즉 예수님께서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3.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받으리고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끝이 나고 성령께서 오셔서 성도를 거듭나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를 받게 하심으로 위의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인데 우리 힘으로 자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도우심 대로 살지 않고 육으로 살면 즉 자기 마음대로 살면 절대로 위의 말씀을 성취하지 못하고 지옥에 갈 수도 있으니 제가 1000명의 부자 대형 교회 목사를 지옥에 갈 사람이라고 하는 데에는 이런 성경의 이해를 바탕으로 주장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초대 교회 성도와 사도와 같이 되어 나누고 베푸는 일에 능하고 절대로 부자로 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잘 이해해서 성도에게 지옥에 가지 못하게 하고 모든 성도를 일생의 목회를 통해서 성령을 받게 합니다. 가장 중요한 목사의 사역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도가 그대로 순종해서 성령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성령이 없는 사람이 성도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할 수는 죽어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즉 브리스 길라 아굴라를 만나기 전 아볼로와 같은 성경 연구가 박사가 너무나 많은 세상입니다. 목사로 신학자로 있습니다
신앙은 절차가 있고 이를 지키는 일이 너무나 중합니다. 먼저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을 믿고 회개를 해야 합니다. 회개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하던 악한 행실을 모두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의 세례를 교회에서 받습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이 사람의 과거에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에게 약속된 성령께서 틀림없이 오시고 이 사람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이 사람들이 초대 교회 성도요 바울이 믿는 사람이라 표현을 한 것입니다. 이 내용을 저는 경험으로 체험적으로 이해를 하고 도표를 아래와 같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다시 이렇게 이해를 하고 도표를 그렸습니다. 지금의 제 이해입니다.
율법에서 자유하게 하면서 율법을 완성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를 사하시고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를 율법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인도하십니다. 제가 전하는 이 내용이 천주교 개신교를 하나로 묶는 새로운 성경의 이해입니다. 지금까지 다 이해가 되신 분은 절대로 흔들리지 마시고 올바른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도 자신의 경험대로 아래와 같이 성령을 받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가 엄청난 축복입니다. 먼저 죄를 용서받습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과 화목할 수가 없는데 죄가 용서가 되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려을 받을 수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이 땅에서 멋있게 천국의 백성으로 살고 죽어서 천국에 가면 상이 있습니다. 영생이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 예수님을 믿으면 오는데 무슨 일로 한 백년 사는 이 세상에서 재물에 탐을 내고 천국도 누리지 못합니까?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죄도 흠도 없으신 분이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게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조롱과 수치를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게 받았고 자신이 택한 민족 이스라엘에 받았습니다.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고난과 고통을 겪으시면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어찌 믿지 않는 사람과 같이 물질이나 밝히면서 살 수가 있습니까? 회개는 이런 과거의 믿지 않는 삶을 청산하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로 사는 것이 말합니다. 이것이 로마서 1장 17절에서 말하는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제가 이런 내용을 도표로 모두가 이해가 쉽게 정리했습니다. 제가 임의로 노력으로 깨닫은 내용이 아니라 성령께서 쉬지 않고 조금씩 오랜 세월에 걸쳐서 알게 해 주신 것을 저는 나누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염려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죄에 대해서도 죽은 자로 반응했고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따라서 산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보니 모든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다 이룬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말씀대로 천국에서 큰 자가 된 것입니다.
천국은 이렇게 성도가 살 때 이 땅에 건설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오늘도 믿고 주일이나 교회에 가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모든 면에서 자유합니다. 큰 자유가 있습니다. 이 자유를 성령의 인도로 완성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자유는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의 인도로 살 때 비로소 누리가 됩니다. 이런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있는 곳이 이 땅에 천국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리고 온 세상의 크리스천이 이렇게 되어서 형제와 같이 사랑하며 사는 곳이 이 땅의 천국입니다. 세상의 작은 물질과 명예와 자랑에 빠져서 이런 위대한 사명을 놓치는 성도가 한 명도 없어야 합니다. 성령 받은 전도자 목사 모든 믿음의 사람은 이렇게 성도를 인도할 것입니다.
위대한 성령님은 우리를 이렇게 완벽하게 도와서 예수님의 명령도 완수하고 천국을 이 땅에 건설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이 위대한 선물을 회개가 없어서 못 받고 성경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못 받고 예수님의 성령을 받으라는 명령에 불복해서 못 받고 성령도 없는 신학자 목사의 꾀임에 빠져서 못 받고 홀로 이 혼탁하고 무서운 세상에서 사는 것이 가장 불행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이는 이런 원리에 대해서 조금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선물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시급하고 능력이 많은 선물을 받지 않고 사는 것은 예수를 믿는 가장 큰 축복을 놓친 것입니다. 재물이 큰 집이 많은 월급이 명예가 혹은 이 땅에서 성공하고 부자로 사는 것이 성령을 받는 길이 아니고 도리어 성령과 멀게 합니다. 회개가 성령을 받게 합니다. 회개는 예수님을 믿고 모든 것을 다 받은 자로 믿고 모든 세상의 일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성령께서 약속대로 베드로와 같이 바울과 같이 오십니다. 저도 그렇게 성령을 받고 약 33년 전도하면서 그 경험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진정한 성공은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사는 것입니다. 가장 큰 승리이며 성공입니다. 이 성공을 위해서 모든 세상 것을 버리시는 모든 성도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절대로 가난이 나를 죽이고 이웃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나누지 않고 사는 것이 나도 죽고 이웃도 죽게 하는 것입니다. 이 죽음의 길에서 오늘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자유에 대해서 바울의 로마서를 통해서 살펴 보았고 바울이 누리는 대 자유를 보았습니다. 모든 성도가 이렇게 자유를 누리게 복을 주시고 성령을 사모하게 하시고 회개할 마음과 힘을 주시고 이 불의한 세상을 속히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정의롭게 되면 세상도 정의롭게 될 줄로 믿습니다. 부디 저희를 정의롭게 하시고 정의에 목이 마르고 갈급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세상의 모든 교회가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하고 하나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