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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안에 거하라(45)_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법(2)_왜 꼭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만 합니까?_연약함과 탄식(롬8-26-27,엡6-18)
3주 동안 부흥회를 하느라 본론에서 벗어났습니다. 본론 주일 오전에 했던 것 다 기억하고 계시지요? 성령 안에서 기도하기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기 한 번 하고 부흥회를 했습니다. 그렇죠? 그때 했던 내용도 다 기억하고 계시죠? 맨 그때 했던 내용의 핵심은 여러분은 기도할 줄 아십니까? 였습니다. 그렇죠? 우리는 기도할 줄 모른다가 답이었습니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시면은 오늘 말씀을 듣기가 심히 부하가 올라올 겁니다. 그 근거를 제가 되었죠. 그 근거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사도 바울도 기도할 줄 모른다고 그랬습니다. 그런가요? 로한스 8장 본문으로 가보도록 하죠. 26절, 2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강구하시느니 마음을 감찰하시느니가 성령을 생각을 하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들을 위하여 강구하심이니라. 거기에 26절의 두 번째 줄에 우리가 거기에 표시를 해 놓으셨나요? 안 해놨죠? 우리가 여기는 사도 방울과 로마서 교인 전부를 말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줄을 모른다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기도할 줄 안다는 뜻인가요? 모른다는 뜻인가요? 지난 시간에 함께 했습니다. 여러분도 아는 것 같습니까? 모르는 것 같습니까? 솔직하게. 예 수십 년 동안 기도를 해 오셨을 텐데 알고 기도한 것 같습니까? 모르고 기도한 것 같습니까? 그냥 막 한 것 같지 않아요? 사도 바울도 모른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 대사도도 기도할 바를 모른다고 했는데 우리라고 어찌 잘 알겠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오늘은 왜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하는가? 지난 시간에는 기도할 줄 정말 압니까?
라고 제가 여쭤봤고 오늘은 정말 왜 기도해서 오직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까? 라고 그 기도해야 할 진정한 이유가 뭡니까? 왜 꼭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내 원하는 대로 기도하면 되지 않습니까? 거기에 대한 응답입니다. 답입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26절 처음으로 가서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운다고 합니다. 첫 번째가 연약함입니다. 연약함은 뭐 같습니까? 몸이 심히 약합니까? 무력합니까? 힘이 있잖아요. 없다고 그러세요. 이런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력함이라는 것은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여기에 어떤 사건이 있어요? 지난 시간에도 제가 말씀을 드린 내용입니다만. 사건이 어떤 일이 있어요? 일 여러분? 일생 동안 이 사건과 일을 마주하면서 살죠. 크고 작은 사건이 우리 삶의 연속이잖아요. 이 사건에 대해서 내가 내 눈으로 이 사건을 볼 때 이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압니까 여러분? 그리고 이게 사건이 어떻게 흘러갈지 압니까? 왜 생겼는지 아십니까? 모르죠.
하나님은 그렇죠. 하나님은 이 사건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아실까요? 모를까요? 아시는 것 같아요? 정말 아시는 것 같아요. 내 삶에 뭔 일이 일어나는지 하나님 모르는 것 같지 않아요? 방치하는 것 같지 않아요? 어떤 것 같아요?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 여기 안에도 있을까요? 없을까요? 전지전능무 부재 없는 곳이 없다. 그리고 이 사건과 이 일 관계 모든 것 여러분 다 갖다 대세요.
삶 가운데 일어나는 사업에 있는 일부터 가정사, 개인사 모든 걸 합쳐서 그 사건과 일 안에 하나님이 계실까요? 안 계실까요? 계신 것 같아요. 그런데 여러분은 고백할 때 안 그러죠. 하나님이 계시면 되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잖아요. 그렇죠? 일어나면 안 되죠. 왜? 원치 않는 일만 잔뜩 일어나죠. 원하는 일은 잘하는 일어나고. 그렇죠? 그런데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 모든 걸 하나님이 다스린다. 인정할 수 있겠어요? 평생 내가 이렇게 수십 년 동안 기도했는데 결과가 이 꼬라지입니까? 주님 잘 된 사람은 이 꼬라지라고 안 할 거예요. 그래요?
여기는 안 된 사람만 와 있기 때문에 말이 통합니다. 일단 잘 되면 여기 오겠어요. 안 오지. 잘 된 문장이 한 분 딱 계시는데 아직 몰라요. 젊어서 저주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무설구조의 전지전능 확실합니까? 에베소스의 4장에 보면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 안에 계시고 만물을 통틀어 다 계시고 그게 하나님이라고. 그렇죠? 만물을 그로 말미암고 그로 말미암아 잊고 통치되고 그에게로 돌아간다. 이건 물론 구원을 말하기도 합니다만 만물을 말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만물도 구원을 받아야 되니까요. 그러면 더 이상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그렇죠? 그러면 하나님은 이걸 다 알고 있죠.
왜 일어나고 있는지 일어나게 하는 건 주체가 그런 것 같아요. 확실해요. 안 좋은 일도 좋은 일은 우연히 일어나고 어떤 것 같아요? 내 삶의 모든 주권을 인정하겠어요? 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겠어요? 진짜로 속으로 안 되죠. 잘. 그게 문제입니다. 거기서부터요.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돼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리고 운행한다. 창조하시고 그 창조한 만물을 하나님의 계획, 섭리 안에서 그거를 시작과 끝이 있다라는 거죠.
다 다스리고 운행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나님의 뜻에 맞게 실수함이 없고 벗어나며 그럼 내가 어떤 구덩이에 빠진 게 하나님의 뜻에 안 맞게 일어날까요? 그게 이제 안 되죠. 요셉은 하나님을 믿었을까요? 요셉이 구덩이에 빠졌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인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게 맞나? 꿈에 보여줄 때는 거창한 꿈을 보여줬잖아요. 그리고는 맨 먼저 한 게 구덩이에 처박는 거예요. 요새 원망 불편한 내용은 안 나와요. 그렇죠?
여러분을 만약에 그런 깊은 구덩이에 이렇게 끝도 안 보이는 구덩이에 빠졌을면 어떡할까요? 감사한다고요? 지금 감사한다고 그랬어요. 이렇게 거꾸로 쿡 이렇게 빠지는 거 보여요? 바지 빠질 때 이렇게 빠지나요? 쿡 이렇게 빠지지. 머리부터 떨어지면 무겁잖아요. 이게 지식이 많이 들어서 이러고 빠졌어요. 다행히 안 죽었네. 죽어버렸으면 원망할 일이 없을 텐데. 그렇죠? 안 죽었네. 그럼 어떡하겠어요? 꺼내달라고 그러죠. 하나님은 이 구덩이를 미리 파놓고 기다리고 계셨거든요.
일단 빠뜨려서 건져낸 다음에 애굽에 무조건 팔아먹어야 돼요. 하나님이 요셉을 팔아먹어야 되거든요. 그렇죠? 방요셉, 요셉, 신요셉 할 거 없이 팔아먹어야 되거든요. 아시겠어요? 요셉이라는 이름을 지으면 참 힘들어요. 담을 넘는 가지이긴 한데 이런 짧은 시간에 강력한 능력자를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여러분 걱정 안 해도 길고 가늘고 길게 가기 때문에 괜찮아요. 녀석은 여기서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꺼내달라고 했겠죠? 여러분은 어떻게 기도하겠어요? 당연히 꺼내달라고 기도하겠죠. 지금 당장 꺼내주는 게 제일 좋잖아요.
지금 당장 꺼내주시옵소서 꺼내서 아버지 집으로 다시 데려가 주시옵소서 꺼내달라는 기도는 들어주셨는데 아버지 집으로 안 데려다주고 정으로 팔아 노예로 팔아버렸네요. 그게 하나님의 뜻인데 어떡하겠어요. 여러분? 자 여러분의 요셉을 이야기하면 총리밖에 안 보이죠? 그렇죠? 그런가요? 안 아니면 이 총리를 만드는 과정에 구덩이가 3개나 있죠. 그렇죠? 삼세분이 꼭 필요하거든요. 완전수잖아요. 이걸 우리가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왜 여기에 빠져야 되는지, 왜 종노릇을 해야 되는지, 옥에 갇혀야 되는지 우리는 해석할 수 없어요. 왜요?
하나님은 창조주고 우리는 피조물이잖아요. 그래서 피조물인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절대로. 그래서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어떠한 일도 여러분이 이해할 수가 없어요. 사실은 그게 바로 연약함이라는 겁니다. 연약함이라는 거예요. 연약함의 핵심은 뭔가 하면 하나님과 분리, 죄로 인해서 분리된 인간의 육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본능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이 그런 것들이에요. 그러니까 한계가 있는 거예요. 도저히 모르는 거예요. 그걸 연약하며. 그런데 믿으면은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오기 때문에 다 아는 것 같지만 아직도 유괴에 속한 부분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건을 바라볼 때 내 눈으로 보잖아요.
그래서 내 눈으로 보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경험을 가지고 이해를 하고 그 다음에 기도를 해서 이렇게 하면 좋겠다. 라고 해서 이 환경을 변화시키려고 했죠. 그렇죠? 내원하는 대로 그게 인간이 하는 기도예요. 여러분 그건 어떠한 종교에서도 똑같이 하는 겁니다. 여러분. 불교도 그렇게 기도하고요. 모든 이단들도 다 똑같이 기도합니다. 왠지 아세요? 똑같은 눈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죠. 그래서 그런 겁니다. 성령이 임했는데도 말이죠. 문제는 거기에 있어요. 그런데 이제 보세요. 혼론으로 슬슬 들어갑니다. 하나님과 나와 여기에 성령이 껴 있어요. 성령께서 여기에 껴 있다고요. 이걸 이제 잘 아셔야 돼요.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 보면 성령님은 하나님의 마음의 깊은 곳까지 다 통달 그러죠. 그러면 우리가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생겼죠.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죠.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인도하셔야 한다라는 거예요. 이 연약카밍을 해서 불신자들은 완전히 분리되어서 이거를 죽어도 모릅니다. 어떠한 종교 안에 가도 이건 알 수가 없어요. 마귀와 연합해서 지나간 사건들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는 알 수가 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 왜 그렇게 하시는가 하면 마귀의 사주를 받은 것들이 저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 거짓 예언자들 이런 것들이잖아요. 그런 것들이 왜 알아맞추기도 하고 과거의 걸 알기도 하고 미래의 걸 말해주기도 하고 이렇게 왜 알도록 두느냐 하나님이 그거는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만 가능해요. 왜냐하면은 신명기나 앞부분에 보면 하나님이 그걸 왜 허락한다고 그랬는지 나오죠. 고걸 쫓는 사람들 하나님을 쫓지 않고 마귀와 연합해서 장래의 일부분을 알길 원하고 어떤 것들을 알길 원하고 이런 것들의 사람의 마음을 마귀가 너무 잘 알아서 하나님을 안 쫓고 고걸 쫓는 사람을 내 치료고요. 성경에 나와 있는 게 너무 잔인한 것 같아요.
그건 아니죠. 왜냐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그랬는데 의지 안 하고 다른 신을 의지했잖아요. 그럼 다른 신을 의지하면 너는 그 신으로 가서 살다가 죽어라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기적과 이적, 예언 이런 거에 장래 일에 대해서 성경에는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그래요. 단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부분만 가르쳐줘요. 우리도 그래요. 그러죠? 요셉에게 너 일주일 이후에 구덩이에 빠진다. 1년 후에 종살이를 하는데 3년 동안 할 것이다. 그리고 나오면 다시 옥에 갇혀서 10년을 갈 것이다. 이렇게 해봐요. 요셉은 여기 구덩이에 빠지기도 전에 기절할 거예요. 어떡하면 잘 죽을까? 이런 고민을 할 거예요. 마귀는 요셉에게 여기서 예언할 때 너 구덩이에 빠지고 이거 말할까요? 안 합니다.
안 합니다.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 이해 가시나요? 자 문제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성령은 떨어져 있지 않죠. 물론 지금이 캐릭터가 다르긴 하지만 목표와 하는 것, 능력 이 모든 것이 다 공유하고 똑같은 거예요. 삼일체의 핵심의 내용이 그런 것들인데 하나님의 계획 섭리 하나님의 시작과 끝 이 모든 것을 같이 하고 있거든요. 만세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든지 이건 다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성령께서도 다 아시고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금 뭘 이루길 원하시는지 다 아시는 거예요. 이해가시죠? 다 모르는 우리가 연약함이라는 거예요. 이해하시나요? 그것 때문에 성령 안에서 우리가 기도해야 한다는 거죠.
구원받았긴 했지만, 재로 인해서 망가진 이 세상 육신의 몸에 한계가 있죠. 그 몸의 한계에 우리는 아직도 갇혀있긴 하잖아요. 그 몸이 겪는 모든 결핍과 고통 이런 것들을 연약함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여기에 빠지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고 아프겠어요. 그런 것까지 다 합쳐서 연약함이라고 그래요. 빠졌는데도 슈퍼맨처럼 휘 날아오르면 No problem 아닌가요? 그런데 그만한 힘이 없는 게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기 빠지지도 않겠지만, 빠지면 예 내려가다가 다시 날아오르겠죠. 그런 능력이 있나요? 우리에게 없는 게 바로 연약함이라는 거예요. 이해 가시죠? 여기서 당하는 고통은 또 좀 심하겠어요.
그런 것까지 다 합쳐서 신음하고 고통하고 아파라 다리가 부러졌나 죽겠네 이런 것까지 다 연약함이라고 그래요. 이해 가시죠? 그러니까 인간이 이 피눈물의 만물 안에서 겪는 모든 것을 다 합쳐서 연약함이라고 그래요. 그게 바로 연약함이라는 뜻이고 힘이 없다, 결핍하다, 병들고 약하다 이런 걸 다 그러니까 죄의 결과로 발생된 이 실존, 내 실존의 한계 상황을 말합니다. 그걸 우리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능력자 슈퍼맨이라도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있죠. 그걸 말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있기 때문에 여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그게 연약함이고 한계예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 딱 차면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사실은 우리 눈에 보기에 좋은 대로 판단하고 무조건 꺼내달라고 하겠지만, 꺼내달라고 했는데 예를 들어서 도적떼가 와서 막 꺼내서 옷 다 있는 거 다 뺏어버리고 죽여버리면 어떡합니까? 그렇게 꺼내주면 안 되잖아요. 그렇죠?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개는 꺼내서 이렇게 집에 가게 해달라고. 그거 이상 없잖아요. 그런가요? 그게 최선이잖아요. 하나님께 그거 최선일까요? 아니요. 하나님은 이미 모든 무릎이 그 발 앞에 무릎을 꿇도록 꿈으로 보여줬는데 계획을 그럼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은 그게 안 이루어져요. 그러잖아요.
이 단계를 거쳐 가서 총리가 되어서 죽어가는 자들을 구원해야 되는 게 요셉의 임무거든요. 보여준 꿈으로 보여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거든요. 고기 낚는 사람 낚는 어부 같아라 그러면 그 사명이거든요. 그러면 이거 피할 수 없거든요. 그럼 여기서 뭐하라고 그러겠어요? 다시 돌려놔라고 그러겠어요? 그게 우리죠. 우리가 그럼 모른다 라는 거예요. 그게 근시안이라는 거예요. 영적인 소경이라는 거죠. 내일의 일조차 모르잖아요. 지금 한순간에 밖에 일을 압니까? 모르잖아요. 극심한 고통 속에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모르잖아요. 그런가요? 나를 위해서 무엇을 구해야 할지 정확하게 아십니까? 지금 상황에서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이 여러 가지죠. 각자 다 다르지만 어쨌든 많은 환경을 맞이하고 있잖아요.
그 환경에서 내가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조차도 분별할 지혜가 없는 상태를 연약함이라고 해요. 인간은 그렇다는 거예요. 이해 가시나요? 여러분 다 아는 것 같아요. 그건 여러분 반증해보면 금방 알아요. 수십 년 동안 어떤 문제를 가지고 기도해 왔는데 아직도 그대로 있다. 그러면 그건 모르고 기도한 거예요. 죽어도 죽어도 죽고 나서라도 응답해 준다. 아니요. 얼른 잊어먹으세요. 죽고 나서 응답받으면 뭐해? 뭐하냐고 그게 뭐하고 나는 나랑 뭔 상관이 있냐고 안 그래요. 자식 잘 되게 해달라고 한 거. 그거 그런 건 좋을지 몰라도 죽고 나면 잘 되는지 못 되는지 알까요? 모를까요?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성경에 안 나와 있어요.
뭐 영원히 구천을 떠돌다가 쳐다보고 다 사기꾼들 죽으면 엄부에 가든지 여러분 낙원에 가든지 둘 중에 하나밖에 없어요. 그렇죠? 어쨌든 그런 지혜조차 없고 고통을 당장 없애달라고 해야 할지 견디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지 알겠어요? 여기 보면 보세요. 본문 오늘 8장 17절에 보세요. 자녀임은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가 함께한 후사이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받아야 한다. 고난이 같이 들어가요. 지금 이 고난을 중심으로 이 말씀이 돌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아시겠어요?
하나님의 아들을 해방되었고 양자가 되었다고 그래 놓고는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 고난을 받아야 된대요. 그러니까 최종 목적지는 영광이에요. 영광에 가는 과중에 있는 거예요. 여기가 영광이죠. 구덩이가 3개가 있는데, 이거 이거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대요. 그러면 우리 이제 첫 번째 고난에 푹 빠졌어. 그러면 이거 알고 기도하겠어요? 모르죠 여러분 그 말이에요. 그래서 여기서 내가 건져내달라고 해야 되나? 아니면 빠졌어도 안 죽고 능히 물 안 먹고 365일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되나? 아시겠어요?
아니면 좋은 사람이 지나가게 해서 건져 달라고 해야 되나 어떤 사람이라도 좋으니 일단 건져내 놓으면 좋겠다고 해야 되나? 다 아시겠어요? 모르죠 여러분 그게 인간의 연약함이에요. 그게 바로 영적인 시야의 한계. 그게 바로 우리가 바울도 모른다 라고 하는 1차적인 연약함이에요. 그러면 부차적으로 어떤 연약함이 있느냐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렇죠. 육체를 가지고 있는데, 질병, 노화의 육체적인 피로 가는 때로는 세상의 부조리, 물리적인 환경의 고통, 여기 고통, 권한 모든 걸 다 포함해서 그런 일이 닥칠 때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야 될지 모른다 라는 거예요. 노화된 노화를 극복할 수 있어요. 모른다라는 거예요. 그게 바로 약함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세상과 우리가 연합하지 못하고 계속 삐걱거리고 돌아가는 이런 것들. 그걸 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잖아요. 태풍이 몰아침을 감당해야 할 몫이잖아요. 이런 것들까지 전부 합쳐서 물리적인 고통, 인류의 제약으로 인해서 이 많은 모든 재난 이런 걸 당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게 바로 썩어짐의 종, 노릇에 해당하는 연약함이에요. 1차적으로는 아까의 부차적으로 이 육체의 한계 그다음에 세 번째로, 심리적이고 정서적으로 우리는 대개 무력합니다. 여러분 엄청 강한 것 같죠? 멘탈이 엄청 강한 것 같죠? 멘탈. 멘탈 했었죠?
축구하다 보면 한 골 모으면 멘탈이 약하면 안 되는데 지도 약하면서 그 멘탈이 여러분 고난도의 훈련을 받고 그런 멘탈이 엄청 강할 것 같죠. 그런데 강할 것 같은데도 안 그래요. 약점이 있다고요. 거기에 노출되면 멘탈이고 먼 탈이고 다 탈나고 맙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쏜살같이 강력하게 잘 나가다가도 그냥 여자 문제에 걸리면 아무리 강력한 멘탈 거기 앞에는 힘을 못 써요. 여자들이 어떻게 울죠? 모를 텐데 남자나 알지?
예를 들어서 너무 큰 슬픔이나 절망에 빠지면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조차 할 힘도 없게 돼요. 마음이 확 무너져내려요. 그런 거 겪어보셨나요? 혹시? 그래서 죽을 힘도 없을 정도로 가보셨어요? 아무도 없어요. 저보다 사경을 헤맨 분은 없네요. 아직 제가 여러 번 죽어보려고 했어요. 진짜로. 그 정도로 사경을 아무런 의욕도 없고 멘탈이 무슨 멘탈이야. 어떻게 죽으면 잘 죽을까? 이런 생각도 못합니다. 그냥 죽긴 해야 되겠는데 이상 진도도 안 나가요. 여러분 원망 불평도 없어요. 완전히 무너져 버리면 그때까지 저는 여러 번 가봤습니다. 기도할 힘도 없고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어떻게 포기해야 될지도 몰라요.
그럼 다 때려치워버리고 죽어버리면 그만이지 말 잘하잖아요. 실제로 그 환경에 가보면요. 못합니다. 그것도 안 됩니다. 그런데 제3 한강교로 가고 이런 거 왜 일어나느냐. 그때 마귀가 확 장악해서 나도 모르게 가는 거예요. 정해놓고, 가는 건 안 쉬워요. 그건 진짜 강한 멘탈이에요. 죽을 수 있는 멘탈은 엄청난 거라고요. 거기까지 못 갑니다. 인간은 약해서 제가 옛날에 안 그랬던가요? 대학교 다닐 때 우리 남자 동기 여자친구 이렇게 집에 가니까 이러고 있더라고. 피가 한 방울 나다가 굳었어. 이러고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걷는다고 잘못 건 게 아니고 면도날이야. 잘 되는 거야. 그런데 겁나지 못한 거야. 이거 아무나 못해요. 여러분. 그 동기놈이 바람을 피웠어. 그러니까 다른 여자를 만난 거지. 그랬더니, 대구에서 올라왔어. 당장. 그래서 자취방을 습격해서 죽치고 안 가다가 한 일주일 지나려고 이렇게 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일부러 쇼했는지 모르겠는데 아까젠키 여기다 아까젠키 뭔지 알아요? 빨간 거 만병통치약이잖아. 인간은 그렇게 안 쉬워요. 그런 정도로 멘탈이 강하지 못합니다. 이런 정서적이고 심리적이고 육체적인 한계 그다음에 영적인 어떤 소경된 상태 이런 것들 통틀어 합쳐서 다 연약함이라고 그래요. 이것 때문에 보세요.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면은 성령이 그 연약함을 도우시기 때문에 그래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해하십니까? 그래서 이 모든 연약함의 뿌리는 재로부터 타락한 인류 나담에서부터 비록된 거죠. 하나님의 자녀가 돼도 이게 100% 한 번에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이 한계에 항상 부딪쳐요. 한계에 부딪치고 자신의 존재의 어떤 자존도 무너지고 존재의 어떤 힘과 능력이 한계에 부딪쳐서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고 이럴 때를 항상 옵니다. 여러분 아무리 강해도 옵니다. 그것보다 그 알 수 없는 일은 언제든지 불어닥칩니다. 그럴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한계가 있겠어요? 없죠? 당연히 그런가요?
그래서 그 절대적인 무력함, 연약함의 순간에 놀랍게도 우리를 혼자 버려두지 않고 성령이 함께 하셔서 도와주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은 우리에게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 안에 오셔서 떠나지 않도록 요한범 14장에. 그렇죠? 죽을 때까지 안 떠나요? 절대로 안 떠납니다. 영원히 함께 한다고 그랬죠. 그렇기 때문에 함께 계셔요. 우리가 이 나락에 떨어진 상태에서도 성령은 함께 계세요. 그러면 내가 여기서 기도를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이 밖의 상황을 모르잖아요. 그러죠? 여기 막 진짜 도둑 세상에 제일 악랄한 인간들이 말 타고 지금 칼 들고 지나가고 있는데, 주님 지금 바로 꺼내주시옵소서 확 꺼내면 어떡해? 올라오는데 목이 그 밖에 도적제가 지나가는 걸 아나요? 모르잖아요. 그게 우리 한계예요.
그런 걸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이 지금 함께 한다는 거죠. 이때 성령의 도심을 돕는다 라는 것은 도심을 구하라는 거예요. 내가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하지 말고 성령 인도함을 기다려 성령께서 도우실 때까지 구하라는 거예요. 그렇죠? 그리고 그 다음에 그 다음에 뭔가 그다음에 두 번째 보면 이 탄식이라는 거예요. 도우신안이 우리가 마땅히 빛바를 알지 못하나? 이 빛바를 알지 못하는 게 우리의 연약함 중에 하나죠. 기도할 줄 모른다는 거예요. 우리는 알 수가 없어요. 알면 뭐 기도할 게 있겠어요? 나가서 해결해버리면 되지. 그러지 않나요? 그거예요.
그래서 모르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간 건데요. 첫 번째는 연약함이고 이 두 번째는 바로 탄식이에요. 탄식. 누가 탄식한다고요? 이걸 잘 보세요. 성룡님이 뭔 그렇게 탄식을 할까? 이 내용이 정확하게 여러분 와닿아요. 원어로 보면 탄식이라는 단어가 뭔가 하면 좁다 압박을 받다 이런 뜻이에요. 여기 빠져 있으면 엄청 좁겠죠. 압박을 받고 이런 압박을 받더라도 그렇게 여러분 고소공포증 말고 폐쇄 공포 이런 거 느껴본 적 있나요? 어디 뭐 깡통에 들어갔어요?
잠수함 넓은데 우리 어릴 때 옛날에 시골에 바로 옆에 도랑이 이렇게 물이 많이 내려가요. 내려가면 그때 옆에 큰 강 개울이 있고 그걸 도랑으로 파서 오는데 그 위에 길이 있는데, 요만한 이런 거 있죠. 파이프라인 파이프가 아니면 뭐라고 그래요? 그걸 지하에 파서 이렇게 연결해서 이렇게 물이 내리고 해놨거든요. 우리 개구장이라 애들끼리 발가벗고 거기 조그만할 때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컴컴한데 안으로 들어가서 뭐 있나? 이렇게 들어갑니다. 물이 요만큼 이렇게 떠 있잖아요. 아래에 이만큼 머리고 재밌다고 막 들어가다 들어가다 하고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요. 눈이 땡그러운 거 봐. 그럴 때 갑자기 어? 큰일 났다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니야?
이런 이럴 때 차 하면은 뭐가 나오는지 아세요? 이게 단식이에요. 아시겠어요? 그런 거 취해 봤어요. 그러니까 이런 걸 취해 봐야 말씀이 빨리 열리고 그런 극심한 고통이나 압박 속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을 말해요. 탄식이 어떤 게 막 옥죄어 오죠.
관계나 어떤 일이나 사업이나 아니면 가정이나 가정에서도 파탄이 날 때도 있고 자녀 간에서도 파탄이 날 때도 있고 재산 때문에 막 서로 칼부림이 날 때도 있고 아니면 사업을 하다가 쾅 망해서 저처럼 숨도 쉬기 힘들 때도 있고 이러면 이게 확 내려앉으면서 이런 압박감, 고통 견딜 수 없는 그런 인간의 한계에 다다를 때가 있죠. 그럴 때 터져나오는 신호를 말해요. 말할 힘도 없죠. 그런 거예요. 오늘 동굴로 한번 들어가 보세요. 이렇게 그럴 때 마음이 짓눌려서 말로 표현할 수가 없죠. 그 환경을. 그럴 때 흘러나오는 탄식, 신음, 소리에 가까운 걸 말해요.
그런데 거기에 보면 뭐라고 써져 있는가 잘 보세요. 말할 수 없는 탄식이라 되어 있어요. 말할 수 없는 탄식. 그러니까 말할 수 없는 탄식이라는 건 뭔가 하면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큰일을 당하면 말할 말을 잃어버리잖아요. 그런 걸 말해요. 형용할 수 없는 거죠. 그건 겪어본 사람만 아는 거죠. 그러니까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답이 없는 그런 상태가 돼요. 그러니까 이게 누가 한다는 거예요? 잘 보세요.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한다는 거예요. 이거 좀 위로가 되죠. 여기에 푹 빠졌을 때 성령이 내 안에서 같이 내가 느끼는 이 똑같은 걸 느끼면서 탄식한다. 라는 거예요.
그런데 성령이 말할 수 없는 그 탄생 시만 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이러고만 있으면 안 되잖아. 성령이 너 이제 큰일 났다. 야 곧 죽겠다. 야 이거 위로가 안 되잖아. 그러죠? 성령이 말할 수 없는 거니까. 그 말도 안 하고 그냥 똑같이 하고 있는데, 옆에서도 나. 이러고만 있으면 성령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성령이 뭔가를 여기 다시 보세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그리고 기도한대요.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어떤 기도를 한다고요? 탄식을 도구 삼아서 탄식을 통해서 성령이 기도하는데 하기는 하는데 소리가 이런 소리만 들린다라는 거죠.
이해 가세요? 어제 했잖아요. 어제 어제 했던 그 안에서 속에서 막 이런 소리만 막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그런 걸 말해요. 그러다가 갑자기 팍 울음이 터져 나온다든지 이런 걸 말해요. 내가 뭘 도대체 어떻게 구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이 환경에서 도대체 뭐가 선이지? 뭐가 옳은 거지? 어떻게 해야 맞지? 아무 생각 한 대 팍 맞으면 아무 생각 안 나잖아요. 별만 번쩍번쩍하지? 생각이 안 나잖아요. 그걸 말해요. 그게 인간의 한계잖아요. 그런데 그때 성령이 그걸 다 안다고 다 알면서 공감을 하잖아요. 공감.
공감을 하면서 거기에 대해서 똑같은 소리를 우리하고 비슷한 소리를 내는데 이게 마치 방언이 이걸 어떤 사람들은 방언으로 연결하기도 합니다만 그걸 100% 아니라고 할 수가 없어요. 방언 이전에 어떤 다른 거예요? 이 본문의 뉘앙스를 보면은 소리 내어서 어떤 미사 여구를 가지고 말하는 게 아니고 그냥 탄식이에요. 탄식, 이콜 기도예요. 그러니까 기도를 하는데 탄식이 나오는 게 기도라고요. 그런데 성령님이 우리 마음을 알고 우리 마음에 연합해서 탄식을 하는 게 기도라는 거죠. 그런데 그걸 탄식을 하는데 하나님은 탄식으로 알아듣지 않고 기도로 알아듣는다라는 거죠. 그게 성령이요. 그게 성령의 기도라는 거죠. 이해 가시죠? 말로 담아낼 수 없는 소리.
우리가 우리의 피조물의 지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예요. 그러니까 천상의 소리죠. 신성에 관한 거예요. 그건 우리 소리가 아니에요. 그런데 마치 우리가 들을 때는 우리가 탄식하는 신음소리처럼 들리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안 들리는 우리가 방언해도 뭔 뜻인지 몰라도 하나님 다 알잖아요. 마치 그런 것처럼 그 한숨 쉬는 소리 이런 것들이 성령의 깊은 공감이죠.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성경이 그렇게 지극히 인격적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지 간에 우리와 똑같은 그런 감각, 감정 그다음에 어떤 그런 의지 이런 것들까지 똑같이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느끼는 것 그대로. 그래서 여러분 외롭지 않은 거예요. 사실은. 그렇죠?
그 누구도 그거 공감을 못 해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성령은 그걸 동일하게 똑같이 공감한다는 거예요. 왜 그게 성경적으로 맞는가 하면 이 스리미니티에 보면 우리의 연약함을 채혈한다고 그랬죠. 예수님이 똑같이 채혈했다고 그랬잖아요. 온몸으로 그러죠. 성령도 마찬가지예요. 그 안에 있던 영이 우리 안에 그대로 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어떠한 것들도 이미 다 겪으신 분이고 그 안에 함께 하셨던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그 어떠한 것도 다 공감하면서 똑같이 그래서 탄식이 나온다는 거예요. 우리가 하는 탄식하고 다르죠. 성령이 탄식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로 표현이 안 되는 탄식으로 성령이 기도하는데 그게 하나님께 상달되는 거라는 거죠. 왜? 성령님이 기도한다고 그랬잖아요.
이 상황에서 기도의 핵심은 뭔가 하면 아까 17절에 말한 고난이에요. 고난이고 18절로 넘어가면 생각한 건데 현재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좋게 핵심은 영광이고 지금 현재 그래서 이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디아스포라들이 고난을 엄청나게 겪고 있었잖아요. 그리고 예수 믿는다고 핍박을 많이 받고 있는 그런 상태였고 또 연약함을 통해서 고난을 환경에서 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시는가를 사도바버리시고 말하길 원하는 거예요. 사실은. 그래서 그걸 돕는 게 성령이다. 라는 걸 말하고 있죠. 그래서 인문맥적으로 잘 보면 8장 전체 흐름 안에서 이 단어 고난, 여기 탄시키라는 단어를 보면 정확하게 우리가 짚어낼 수가 있는데, 22절에 보세죠.
22절부터 보면은 29절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고.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고 있다는 것. 뭔가에 굴복하고 있으니까 고통스럽겠죠.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오. 오지 굴복하시는 이로 말미암이니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쓰고줌의 종로를 써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피조물도 탄식하며 고통당하고 있다는 거. 이해하시나요? 왜요? 이게 죄로 인해서 저주 아래 떨어졌기 때문에 인간과 피조물이 동시에 당하는 거예요. 그게 22절 죄로 인해 고통받는 피조 세계의 신음소리죠. 두 번째 23절의 신자의 탄식이에요.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성령에 처음이건 열매를 받으면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한다고 우리도 탄식하는 거예요. 왜요? 이 고난 가운데 있기 때문에 왜 우리가 왜 탄식해요? 여러분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고 다 잘 되어 가는데도 이 탄식은 우리에게서 안 떠나요. 왜 그런가 하면은 몸을 가지고 있잖아요. 몸이 결국은 썩어지면 종, 노릇을 할 수 있고 후패해 가고 늙어가고 힘도 빠져가고 이런 것들을 다 포함해서 그리고 이 몸 자체는 죄의 지배 아래에 있죠. 제가 우리 몸을 항상 지배하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고통을 벗어날 길이 사실 없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 현재 고난이라고 해놓은 거예요. 그 고난을 어떠한 형태로든지 우리는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만사형통하던가요? 아닙니다. 여러분 만사형통 안 해요. 여기에 예를 들어서 요셉이 총리가 됐다고 해서 만사형통 할 것 같아요. 아니요. 자기 총리 자리에 앉아 있어도 자기 형제들이 와서 꼬라지를 봐요. 그걸 보면 속이 얼마나 쓰라리겠어요? 형통하겠어요? 밤에 잠도 못 잘 거라고요. 아버지 잘 계시는요. 그러니까 먹을 게 없어서 굶고 있다가 영토하겠냐고요? 아니거든요. 마찬가지. 어떤 자리에 있든지 마찬가지. 이 총리 자리에 있으면 아이고 내일도 자천당하면 어떡하지? 안 그래요. 얼마든지 그러잖아요. 우리나라는 대통령 되면 제일 걱정이 많을 거야. 고난이 얼마나 많겠어. 끝나면 바로 또 다른 코스로 가야 되잖아. 그렇기 때문에 일평생 쉼이 없을 거야. 고난할 날 여러분이 제일 땡이야.
환랑과 고난이 와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는 일을 할렐루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물 가운데 지나도 내가 안 죽어. 불 가운데 지나도 안 타게 한다. 뜨겁긴 하지만 구덩이에 빠져도 종살이 해도 절대로 매 안 맞게 해준다. 예를 들어서 매 맞아도 안 죽는다. 이런 거죠. 그렇죠? 형통하잖아요. 여러분 지금 형통하고 있죠? 아니에요. 대답 똑바로 하셔야 돼요. 뒤에 쳐다보고 있어요. 우리는 죄의 모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까 이 연역함과 결합되어 있어서 그래서 모험의 송량함을 기다리잖아요. 예수님이 재림하면 우리가 모든 걸 벗죠. 그때까지는 우리는 이게 벗어날 수가 없어요. 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지 위로가 되는 것은 성령이 함께하면서 그 어떠한 환경에서도 우리가 그걸 이길 수 있다는 능히 그것 때문에 우리는 형통한 거예요. 이해하시나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당하는 몸의 고통, 성냥을 기다리기까지가 시간이 있죠. 피조물들도 탄식하죠. 우리도 탄식하고 고통 가운데 있다라는 거고, 그다음에 26절의 성형도 탄식한다라는 거예요. 맞나요? 이게 여러분 성령이 피조물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고 있다. 라는 사실이에요. 엄청 위로가 되죠. 그러니까 여러분은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성령님이 같이 그 고통을 당하면서 속으로 신음하면서 내가 기도를 못하고 있어도 성령님은 하신다 라는 거예요. 하신다 라는 거예요. 하외.
우리에게 약속한 게 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 기도를 하시는데 탄식으로 기도를 하시는데 그 결과가 바로 28절입니다. 28절로 결과가 일어난다 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탄식의 핵심은 우리를 성령께서 멀리서 구경하시는 분이 아니고 직접 우리 탄식과 함께 하면서 멋진 말로 고고한 말로 기도하는 분도 아니고 우리가 고통 속에서 말문이 막혀서 기도할 힘도 없고 기도할 줄도 모르고 이런 상황에 있을 때 무력한 가운데 있을 때 직접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와 똑같은 그런 압박감과 고통과 괴로움을 느끼면서 신음한다. 라는 뜻이에요. 이 탄식이. 그래서 그 신음이 기도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라고 그래서 어떻게 기도할지 모르는 이 완전한 무력감 안에 지금 사도바울도 고통 가운데 있거든요. 여러 번 투옥됐잖아요. 사도바울이. 그렇죠. 매 맞고 별의별 짓을 다 했잖아요. 고통을 무지하게 많이 당했던 거예요.
그럴 때마다 사도바울은 알았던 거예요. 기도를 안 했는데도 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걸 알았던 거예요. 그게 뭔가 하면 28절이에요. 28절이고 29절이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데까지 갑니다. 이게 바로 아까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다 생각. 그런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그래서 그 영광을 향하여 달려가는 길에 이 고난이 있는데, 고난 가운데 성령이 함께 하시면서 신음하고 탄식하는 것은 그 목표치로 가도록 계속 그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 신음하면서 기도한다는 거죠. 그러면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렇게 이루어가는데 그게 영광이라는 거예요. 거기까지 간다.
그게 말로 그리스도의 형상 일곱 날이에요. 여섯 날에서 일곱 날로 가는 걸 말해요. 결과는 그거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완전한 무력감 안에서 성령께서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인간의 언어를 초월한 깊은 탄식으로 거기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걸 신음으로 소리를 치고 있다라는 그런 뜻이에요. 하나님께. 들려지는 기도 소리를 하는 거죠. 우리를 대신해서 중보하고 계세요. 그래서 중보자가 성령이 계시고 그 아래로 내려가면 우리를 위하여 중보할 수 있는 예수님이 또 있어요. 그 아래로 내려가면 또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중보한다고 나옵니다. 좀 이따가 보도록 하고요.
그래서 이 탄식의 단어의 핵심은 바로 우리와 함께 똑같은 고통을 나누는 순간 성령이 인간을 초월한 언어로 하나님께 말하는 걸 말해요. 성경이 탄식을 통해서 기도한다라는 게 이 탄식이 바로 탄식을 도구나 통로로 삼아서 기도한다. 이런 뜻이에요. 그래서 성경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를 위하여 강구중보하실 때 인간의 논리적인 말이라 문장으로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그걸 이해할 수가 없어요. 말할 수 없는 탄식. 그 자체가 기도라는 거예요. 기도의 언어고 수단이라는 거죠. 그래서 초월하는 부분이고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도심을 구하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제가 기도할 때.
예수의 피로 씻고 파레시아 해서 그 앞에 잠잠이 있으라고 그랬잖아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읍시다. 성령님 내 기도를 도와주소서 내가 연약해서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그때 26절을 말해야 돼요. 여러분 내가 마땅히 연약함으로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령이 도우시고 탄식함으로 나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신다고 하셨으니까 그대로 지금 기도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해야죠. 그럴 때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 안에서 친히 기도를 하시는 게 소리로 들려옵니다. 우리 입을 통해서 나타나요. 실제로 나타납니다. 그게 내 안에서 갑자기 탄식이 터진다든지 이런 것들이에요. 이건 나중에 실습을 계속 할 거예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하는지도 제가 다시 정확하게 말씀을 드릴 거예요. 어제는 그냥 시험사무소 해본 거예요. 물론 그 전에서 계속 저는 그렇게 했지만, 이해 가시죠? 그래서 탄식을 통해서 기도한다는 게 이게 신학적인 의미가 바로 탄식을 매개체로 해서 한다는 건데 그 의미가 바로 은어를 초월한 기도의 매개체가 탄식이라는 거예요. 극심한 고통과 혼란 가운데 있을 때 바로 이때 우리는 기도를 잘 못할 때가 많죠. 기도 줄이 안 잡힌다고 해. 쌓고 그러잖아요. 기도를 아무리 하려고 해도 잡생각만 나고 기도도 안 되고 1시간 내내 앉아 있는데, 뭘 했는지도 모르겠고 이런 것들부터 시작해서 있잖아요. 기도에 줄을 담는다면서요. 줄이 내려옵니까? 이렇게 바로 그런 뜻이에요.
예를 들면 어떻게 할지도 몰라서 이렇게 끙끙대고 있는데,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나면서 기도가 후르륵 된다든지 뭔가 구할 생각도 안 했는데 이걸 구하려고 막 구하는 기도가 나온다.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기도 해본 적 있죠. 그래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이웃집 순희가 생각이 나서 아우 저 순희 어떡하면 좋아요. 주님 이런 거 해왔죠. 아메 그런 걸 말해요. 그게 바로 성령이 하는 기도 중의 하나예요. 그거는 우리의 생각에 작용을 하잖아요. 연약함을 돕는 거예요. 예를 들면 우리의 한계를 벗어나서 그 순이의 생각을 하나님이 알고 순이의 생각대로 기도하도록 순이는 지금 연약해서 널브러져 있어. 그래서 우리를 통해서 대신 기도하게 만드는 거예요. 순위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게 그런 거예요.
예를 들어 그러면 내가 그렇게 연약해 있을 때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네. 그게 성령이 그 안에서 감동해서 기도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갑자기 기도하거든.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고, 싶은 생각들이 올라오고 하죠. 그런 거예요. 그럴 때 무시하면 안 돼요. 여러분. 이해가시나요? 한 예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어떤 부르짖거나 말할 수 있는 그런 상태도 아니고 연약하고 고통스럽고 뭔 말을 해야 될지도 이어갈지도 못하게 기도하다 보면 금방 끝나버리죠. 1분도 안 걸리죠 여러분. 그렇죠. 그래서 그거 가지고 계속 주문보험 주문보험 주문보험 하면서 이렇게 방언하면서 한 30분 채우고 됐다. 이렇게 아주 아 맨 하고 집에 가죠. 그러지 않나요? 하는 거 있어요. 여러분 그래서 중원부원 할 확률이 진짜 많은 거예요. 그래서 중원부원 허수가 한 거예요.
30년 동안 35년 어떡하면 좋아요. 그런 거예요. 바로 그때. 바로 그때 여러분 위로를 드리겠습니다. 성령께서 세련된 말로 기도하는 게 아니고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신원과 탄식이 터져 나오는 것. 그게 기도라는 거예요. 그게 성령이기도 해요. 아버지께 올린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나와 고통이 일체되는 거예요. 성령이. 그러면 성령은 이 고통의 환경에서 하나님이 뭘 이루려고 하시는지 다 알기 때문에 능히 그 뜻에 맞게 기도하겠죠.
그러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라는 거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재 권한당하는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빌 바를 잘 모르는데 성령이 연약함을 도와서 탄식함으로 기도한 결과가 바로 27절에 하나님의 뜻대로 성령이 간과하는 중부 기도고 그 결과가 바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고 뜻대로 부르시면 유분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모든 이 환경을 통해서 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성령이 기도하는 거예요. 탄식이 바로.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의 뜻은 그 다음에 이거죠. 이게 이루어지게 기도한 거예요. 우리는 다음에 종으로 팔려갈 거라고 기도하겠어요?
우리가 주님 종으로 팔아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겠어요? 승령님이 막 탄식하는 데 보면은 종으로 가게 그 결과가 열거라는 거예요. 그럼 또 그 결과가 열거라는 거고, 그 다음에 이거예요. 왜? 여기서 꿈을 해몽하잖아요. 누가 여성행위하죠? 이렇게 가는 거예요. 이게 바로 합력하여 선이에요. 그런데 선인데 총리가 선이 아니고 총리가 됨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입에고 패고 출에고 패서 가나안으로 가는 구원의 여정에서 수임 받는 거죠. 그래서 목표는 구원이죠. 여기 목표는 하나님의 형상을 이론화, 예수굴 시대 형성화되는 게 구원이고 그래서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권한, 이 환경, 고통, 괴로움, 모든 사건 이게 전체적으로 합력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
우리는 합력해서 내 뜻을 이루려고 성령이 역사하는 줄 알았지. 그건 해석이 잘못된 거야. 이해하십니까?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소통하는 방식을 아시겠어요? 직접 언어적으로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와 공감하면서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하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필요 없죠. 뭐야? 확인해야 될 것 같아요. 그거는 이제 다음 시간에 구체적으로 더 하기로 하고 어쨌든 요약하자면 성령께서 광고하실 때 말할 수 없는 탄식을 기도의 통로이자 언어로 사용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거예요. 우리가 그렇게 탄식할 때 속으로 앓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가 있을 때 상달되도록 탄식한다는 거예요. 이해 가시죠.
그러면 이제 여러분 결론에 다다랐어요. 아까 26절의 성령께서 연약함을 도우시는 것이 28절에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선은토부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걸 말해요. 논리적으로 연결이 어떻게 되는가 하면은 장의 핵심 구조가 거기 안에 쫙 문맥적으로 쫙 연결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28절, 26절과 28절 사이에 독립된 두 개가 아니고 거기에 28, 27절이 딱 끼어서 이렇게 한 문장에 이렇게 연결해서 흐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26절과 28절은 원인과 결과야. 그러니까 기도의 응답이라는 논리적으로 그렇게 흐르고 있는 거예요. 고통. 피조물의 고통, 그다음에 피조된 인간의 고통, 성령이 함께 고통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결과 기도를 하는데 하느님의 뜻대로 성령이 탄식하면서 기도했는데 결과가 28절이라는 거예요. 18절 이해 가시죠? 그게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끊어질 수 없는 고리가 그렇게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26절과 28절 사이에 27절이 딱 들어가 있는데, 이게 바로 두 27절, 8절을 연결한 다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3단계로 딱 정확하게 구분되어서 성형의 중복 의도가 이루어지는 걸 볼 수가 있는데, 이게 탄식이라는 거고, 탄식으로 그걸 하고 계신다라는 거예요. 단식을 통로 삼아서 이해 가시죠? 단식을 통로 삼아서 이 부분을 여러분 계속 공감해야 돼요.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간에 성령께서는 그걸 하고 계신다라는 거예요. 그럴 때 우리가 기도할 때 거기에 우리가 몰입되어 갇혀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님이 마치 기관차라면 우리는 거기에 뒤에 객차에 타는 거하고 똑같은 거예요. 이해하시나요? 그게 성명 안에서 기도하는 거예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고 내가 주도적으로 하면 무엇이 선인지 알아요? 이 사건이 왜 일어나고 어떤 결과로 가야 선인지 아십니까? 내 사업을 망한 이유가 어디로 가야 하나님의 뜻인지 왜 망하게 한 건지 왜 망할 사업을 하게 한 건지 이런 걸 다 아는 분은 하나님이잖아요. 그 과정 전체도 성령이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래서 성령의 인도암, 기도암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다스리고 승리하는 하나님의 뜻 안으로 가게 된다는 걸 말해요. 안 그러면 여기서 내가 요셉이 꺼내라도 엉뚱한 데로 가버리면 어떡합니까? 그건 아니잖아요. 우리는 그렇게 기도한다. 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 인생이 자꾸 쳇바퀴 돌듯 돈다는 거예요.
광역에 40년 동안 돌아온 것처럼 계속 돌면서 하나님을 배신하잖아요. 하나님을 반항하잖아요. 그러죠? 제 인생이 꼭 그렇더라고. 될 만하면 될 만하면 실패하고 그걸 보니까 광야에 도는 거하고 똑같더라고요. 나는 내 생각대로 사업이 잘 되고 성공하는 게 목표고 무조건 기도할 게 그것밖에 없잖아요. 그래야 가족도 먹여 살리고 체면도 회복하고 암에. 그렇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게 아니더라는 거죠. 사업을 성공해서 목회하게 하는 게 아니더라는 거죠. 그러니까 저는 계속 그렇게 기도했으니까 어떻겠어요?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고 뱅뱅 그렇게 들어온 그래서 한 번 넘어졌을 때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어요? 그것보다 더 좋은 건 뭐겠어요? 넘어지기 전에 미리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런데 여러분 지금부터 이제 된 거잖아요. 지금부터 더 이상 넘어질 일이 없는 거예요. 아메 넘어져도 절대로 낙심 안 한다. 그렇죠? 실패 안 한다. 반드시. 일어서서 목표를 향해 가게 돼 있다. 그게 하나님이죠. 그래서 우리가 고난과 연약함 속에 있을 때 여기 계속 고난이 주제로 해서 내려가잖아요.
그리고 27절 이하에 나중에 30절 이하에 가면은 어떠한 것에서도 우리를 끌어낼 수 없다는 것까지 결론으로 가요. 그게 결론이에요. 결국은 그 안에 성령이 껴 있다는 거예요. 우리와 함께 고통을 나누면서 탄식하면서 그걸 구하는데 하나님의 승리에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계속 우리와 함께하면서 그렇게 간다는 거예요. 구하면서. 그래서 우리는 빗나갈 수가 없어요. 넘어지고 한 바퀴 더 돌고 두 바퀴 돌고 했지만, 결국은 여당을 건너가죠. 그런데 그게 40년이 걸렸네. 40년이 40년 권한의 세월이니 4년도 있고 3~4개월도 있고 내 시간도 있고 걱정하지 마세요. 나에게 딱 맞게 딱 맞게 40년 곱하기 이하면 곤란합니다. 죽기 전에 안 돌아오면 안 되잖아. 어쨌든 이 고난 연약함 속에 있을 때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모릅니다. 이걸 인정하세요. 제발.
지금 내가 처한 환경에서 내가 이렇게 해결하면 좋겠다. 그거 빨리 내려놔야 돼요. 제가 그것 때문에 십수년을 돌았다니까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다 고통스럽게 만들면서요. 저 자식부터 시작해서 가족들, 어머니, 형제자매들 자나 깨나 저 자식 때문에 내가 잠을 못 자지 않겠어요? 꿈에도 나타나가지고 이러고 있더라는 거죠. 외국에서 실패했을 때 어머니를 꿈으로 다 알고 계시더라고.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그러니까 그럼 그때 똑바로 정신 차렸으면 좋겠는데 나는 똑바로 정신 차리고 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놀랍게도 제일 신앙생활 잘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실패의 연속이 뭐 잘하는 거예요? 그게 개판이지. 세상말로 아닌가요? 주변에 보면 완전히 개판이지 주변 사람들이 보면 저 찌질 같은 놈 맨날 교회만 다니면서 젖고라지여 그래 그 시간에 일이나 하지. 바보 같은 놈 폐지나 줬지 가서 그런 말 들었어요. 폐지 줍는 게 맞았어. 사실은. 말인지 모르십니다. 우리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고통을 없애달라고 기도하죠. 내게 원하는 대로 바꿔달라고 하죠. 그게 옳은 것 같아요. 여기부터 출발해야 됩니다. 나는 그걸 옳은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피조물에 불과하다 라는 것을 내 한계를 제발 인정하세요.
그리고 이걸 통해서 하나님이 뭘 이루기를 원하실지 나는 모른다 라고 인정하세요. 요셉이 여기서 알았겠어요. 물론 그게 총리인지는 모르잖아요. 자기는 해와 달, 별이 볏단 11개가 절한다고 해서 그게 에굽에 가서 총리 될 상이라고 자기가 해석할 수 있을까요? 모르죠. 절대로 모르죠. 그래서 여기 빠져 있을 때 이게 왜 일어나는지 까마다 모르는 거예요. 우리는 그걸 인정해야 돼요. 여러분. 인정해야 돼요. 그러면 어떡하겠어요? 성령이 도우신다고 했으니까 성령이 도움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어요? 그래서 27절로 연결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 뜻대로 성령이 친히 간과한다고 탄식하면서 그 하나님 뜻대로 이 구덩이에서 하나님 뜻대로 성령이 간과한대요. 그럼 내가 여기 내 뜻대로 간과하는 건 바보 아니에요.
정말 어리석은 거잖아요. 제가 예를 들어서 브라질에서 사업에 실패 딱 했을 때 이걸 알고 있었더라면은 얼마나 좋았을까요? 30년이라는 세월을 아마 낚았을 거예요. 거기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데 거기서 나는 또 칠전팔기 할 수 있다. 내가. 안 나오는 거 한번 듣고 또 힘을 내봅시다. 우리 그러면서 또 으샤으샤 하고 해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그러면서 기도를 열나게 헛손질 제가 한 기도였어요. 여러분 기도 잘하고 계시죠? 어떤 것 같아요?
그래서 27절로 연결돼서 성령이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다 알기 때문에 그 하나님 뜻대로 기도한다라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그때 기도가 안 나오면 그냥 탄식하세요. 탄식할 때 성경이 그 탄식 소리를 듣고 같이 탄식하면서 성경이 하는 탄식은 달라요. 하나님께 하는 기도라고 그게 하나님께 하는 기도인데 하나님 뜻대로 하는 기도네. 우리는 탄식하면 내가 절망해서 탄식하지만 하나님 그 절망을 기도로 바꾸는데 다른 탄식이에요. 그래서 성령도 탄식하는데 보니 결과가 이제 28절로 가는 거죠. 이해 가시나요?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라는 단어가 직역을 하면 하나님을 따라 라는 뜻이에요. 하나님을 따라. 우리는 내 뜻대로 짧은 기회를 지혜를 가지고 막 강구하고 해달라고 몸부림을 치고 삿대질을 하고 밥을 굶고 별의 별짓을 다 하죠. 아무리 굶어보세요.
되는가 여러분 아무리 굶으면서 여기서 집에 가게 기도해 보세요. 죽을 때까지 굶어 죽을 때까지 해도 안 됩니다. 40일이 아니고 80일을 굶으면서 기도해도 안 돼요. 이미 정해져 있어요. 코스는 여기로 가기로 우리 인생의 어떤 부분도 이런 게 정해져 있는 거라고요. 왜? 하나님은 시간 밖에 영원해서 내 인생의 시작과 끝, 만물의 시작과 끝을 다 알고 계시잖아요. 뭘 다른 걸 구하겠어요. 그런데 우리는 타락한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타락한 본질로 보이는 걸 내 원하는 대로 바꿔서 이루는 게 내 이 저주받은 자 몸을 남아 있는 몸이 하는 원암이거든요.
그래서 그대로 기도하는 거예요. 그거는 하나님의 뜻에 안 맞을 확률이 거의 많아. 그래서 많은 기도를 통해서 했는데도 그래서 안 된 거예요. 시간 막 보낸 겁니다. 여러분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배했어요. 저도 그랬어요. 다시는 여러분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오늘 이 시간 이후로요.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에 완벽하게 맞춰서 기도합니다. 완벽하게 일치 100% 응답함에 그래서 말씀 안 해서 기도하는 게 그거예요. 내가 너희 아내 말씀이 너희 아내고 하면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게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건 성령은 성부 하나님과 별개로 활동하시는 게 아니죠. 그런가요?
성부께서 세워놓으신 거대한 구원 계획. 에베소스 1장. 섭리 아니 섭리가 아니고 경륜 그렇죠? 이코노미아 아멘 오이코스 노미아 그거에 따라서 기도하는데 그게 보정하는 게 성령이죠. 그리고 나를 확 소유하고 그대로 기도하는 거예요. 결국은 거기로 가는 거예요. 우리가. 그래서 만물을 다스리는 그 안으로 들어가게 하겠죠. 결국 그게 우리에게 가장 복된 일이기 때문에 그래서 성려께서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성부의 구원 계획을 완성시키는 거죠. 결국은 그걸 안 벗어납니다. 경륜과 섭리에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 계획을 거기다가 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는 거예요. 우리는 다 아는 것 같지만 다 모릅니다.
사도바울도 모른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방언으로 그렇게 기도를 많이 했다고 방언으로 기도할 때 그런 깨달음이 엄청 많이 오기 때문에 그러기도 하고 그다음에 이제 28절 3단계로 가면 성령의 기도에 대한 성부의 응답이 바로 28절이에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데 28절의 주체는 하나님이에요. 28절의 주어가 하나님이라고요. 하나님이 이 모든 일어난 사건, 모든 일에 여러분이 원하는 걸 다 넣으면 돼요. 지금 당하고 있는 모든 걸 다 넣으면 된다고요. 시련과 고통, 환경의 문제, 이 모든 문제를 거기다 다 넣으세요. 그게 모든 것이에요. 그래서 그 모든 것을 주물주물럭 주물럭 주물럭 해서 선을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라는 거예요. 어떻게?
성령이 탄식함으로 기도했는데 그게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기도고 그러기 때문에 그렇게 이룬 게 28절 이라는거죠. 그래서 여기서 선이라고 우리가 잘못 배운 게 바로 그런 거예요. 상황이 내 입맛에 맞게 술술 풀려가는 게 선인 줄 알았죠. 그래서 압력하여 선을 이루잖아. 걱정하지 마. 기도하면 되지 뭐 이렇게 했죠. 새빨간 거짓말이요? 아님 아닌가요? 아시겠어요? 합력하여 절대로 내 뜻대로 안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죽어도 안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그러면 여러분 지금까지 기도 안 했습니다. 할 필요가 없어. 30년 동안 안 되는 기도 계속하고 있잖아요. 소용없는 거예요. 그거. 뭔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래서 들어보세요. 그 다음에 이제 29절에서 그게 궁극적인 선이 뭔지 말해요. 나와요. 이 수구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을 말해요.
결국 구원의 완성을 말하죠. 우리는 결국 그쪽으로 가게 돼 있어요. 성령이 하나님과 별도로 나와. 한편이 되어서 내 원하는 걸 속속들이 다 알면서 감정을 공유하면서 복권번호도 가르켜주고 내일 왼쪽 가면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이런 거 다 가르쳐 이런 거 하는 성경님이 아닌 걸 아시겠죠? 이제 에베소스 1장이 보증하신 것은 바로 해외선에서 1장 10절이에요. 그리고 1장 22절에서 23절 그걸 말하는 거예요. 그게 우리의 우리 삶에 최선의 가장 행복하고 가장 기쁘고 가장 완벽한 부분이 바로 그거예요. 우리를 그 속으로 인도한다고요. 그런데 내가 하는 걸 모든 걸 다 막아버리고 인도하느냐? 아니에요. 내가 하는 모든 일 가운데서도 그 안으로 들어가도록 한다는 거예요.
이해하시겠죠? 그걸 하셔야 돼요. 그래서 무조건 내가 원하는 걸 다 막아버리고 사업하는 것 다 망치게 해버리고 그런 하나님이 아니에요. 제가 가야 할 길은 사업에 성공해서 복음을 전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사업을 안 하게 하고 교회를 하기 위해서 복음을 지나게 한 길이었기 때문에 저를 그렇게 망하게 한 거지. 여러분 그럼 무조건 사업을 다 망해야 하는 것마다 안 된다. 그러면 내가 목사 돼야 되나? 이런 생각을 하시면 이미 곤란한 거예요. 그게 내 생각이에요. 내 생각. 그래서 하다 해도 해도 안 되면 내가 목사 돼야 합니까? 이렇게 물어보세요. 그러면 물어보면 되지. 구덩이에서 주님 내가 목사 되라고 일부러 이렇게 구덩이에 빠뜨렸나요? 이렇게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닌가요? 쉽죠? 너무 간단하죠? 아메 권한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고난이 있죠.
장가를 못 가도 고난이 심한가? 아직 외로움에 고난이 있구나. 그렇구나. 누구나 없는 게 없어. 그렇죠? 뭐 이렇게 흐뭇하게 웃고 그래요. 남의 잘 되는 건 내 행복이고 그래요. 그 모든 것에 여러분의 지금 관계되어 있는 모든 사건을 다 거기다 넣으세요. 그리고 성명이 어떻게 기도하시느냐. 그게 내 마음을 합쳐야 돼요. 그거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 하기로 하고요. 어쨌든 이 28절까지 해서 논리적으로 결론을 내고 우리는 연약해서 내 삶에 일어나는 고난, 모든 것, 모든 것, 그것이 어떻게 선이 될지 알지 못해서 신음하세요. 신음하시라고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하지 마시고 신음하세요. 주님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말하기 싫거든? 울기만 하세요. 울기 싫거든요.
울기 싫거든요. 응 이렇게 하세요. 응. 응. 응 이렇게 갈 거예요. 이해가시죠? 응. 응. 응만하세요. 아 하면서 뭐가 말이 나와요? 실제로 그런다니까요. 제가 농담하는 게 아니고 진짜로 그래요. 성경이 탄식한다잖아요. 탄식 소리가 나온다니까요. 나를 통해서 탄식하는 게 들려요. 들린다니까 도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지 들린다니까요. 어떨 때는 그게 공감하는 성령님이에요. 여러분 농담 아닙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고난 속에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에 완벽하게 긍긍한다니까요. 탄식한다니까요.
하나님의 아버지께서는 그것도 큰 소리를 듣고 아 이거구나 이렇게 알고 이렇게 간다고 하나님의 뜻에 딱 맞춰서 간다고 그러면 여러분 끊끔하면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이제 받아들이면 되는 거죠. 이해 가세요? 아 이건 반드시 일어나야 되는 일이구나. 그래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일은 반드시 일어날 일만 일어나요? 안 일어날 일은 절대 안 일어납니다. 여러분 아시겠어요? 그걸 아셔야 돼요. 하나님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 분명히 일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성령의 탄식하는 기도에 응답해서 내 삶의 모든 부정적인 면, 긍정적인 면, 좋은 면, 안 좋은 면, 괴로운 면, 기쁜 면.
다 끌어모아서 하나의 완벽한 조각을 만들어내는데 29절이에요. 28절을 거쳐서 29절이에요. 최후의 모습이 바로 그거예요. 그래서 28절의 모든 것은 바로 우리의 고난과 시련부터 다 포함해서 우리의 모든 것은 우리를 망가뜨리기 위해서 있는 게 아니에요. 결국은 아시겠어요? 철저하게 아셔야 돼요. 하나님의 섭리를. 망가뜨리기 위해서 있는 어떤 치명타가 아니고 성령님의 탄식과 개입을 통해서 결국은 하나님의 선을 조각해내는 한 조각의 부분이라는 거예요. 이해 가십니까? 그걸로 탈바꿈 된다는 거예요. 결국 이해 가시죠? 이 부분에 여러분 위로를 받으셔야 돼요.
그리고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부분은 절대로 나 혼자 동떨어서 이렇게 망망대해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그런 삶이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이미 소유하고 내 안에 계시면서 이 모든 것을 보증하기 위해서 와 계시기 때문에 그 보증하기 위해서 일어날 일들을 항상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강구하신다니까요. 나는 몰라도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되는 게 바로 이 연약함과 그 연약함을 도우시면서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하기 때문에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또 하도록 하죠.
오늘 우리가 명심해야 될 것 바로 하나님과 성령이 함께 가시면서 결국은 하나님의 가장 선한 뜻 새롭게 나를 창조하는 그리스도 형상으로 바꾸는 그리스도 형상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만물을 다스리는 그 지점에 그리스도 안에 있죠. 이 모든 일을 위해서 모든 것이 조각처럼 하나님 안에서 합력되는 거예요. 모든 일이 나를 새롭게 창조하는 그 사욕에 합력하도록 하나님이 성역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행하신다라는 것. 우리는 그걸 모르죠. 오늘 일어나는 이 일이 나를 새롭게 하는 그 일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압니까? 모르잖아요. 그래서 성경 안에서 기도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 탄식하는 기도에 우리 마음을 합쳐서 함께 가야 되는 거예요.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고, 결과가 20초 구절이기 때문에 여기에 내 생각대로 모든 것을 바꾸고 변화시키려고 한다고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묵상을 해보세요. 얼마나 어리석게 되는지 모르잖아요. 알지도 못하면서 기도한다. 라는 거예요. 성령께서는 다 알고 탄식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다 아는 성령께 내 마음을 얹으세요. 그게 어제 잠깐 했던 그런 기도예요. 마무리를 하죠. 성령은 내 원함을 도우러 오신 분이 아니에요. 하나님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나를 도우시는 분이 아시겠어요? 엄청나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게 최선인가요?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는 게 최선인가요? 전자. 우리는 전자잖아. 그게 최악이 되면 어떡할래요. 최악이 되면 우리는 그게 최승이 될지 최악이 될지 몰라요. 그런데 어떻게 그게 최승일 거라고 장담을 하면서 기도에 많은 시간을 밥을 굶어가면서 졸라대고 찔러대고 난리입니까? 그래서 인생을 실패하는 겁니다. 고통 가운데 헤매는 겁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는 게 제일 빠릅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 삶을 맡기는 게 가장 완벽합니다. 아멘
1. 성령 안에서 기도
1-1. 연약함과 기도
- 기도할 줄 모른다고 사도 바울도 했음
- 우리는 기도할 줄 몰라도, 기도를 해야 함
- 내 원하는 대로 기도하면 안 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함
- (중요) 내 연약함을 인정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함
- 사건과 일이 우리 삶의 연속이며, 하나님의 전지전능 무서움
1-2. 하나님의 무수한 능력
-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모든 주권을 인정하심
- 좋은 일만 일어나고, 원하는 일은 잘 이루어짐
-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심할 수 없음을 의미
-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함
- 구원을 받은 만물도 구원되어야 함
1-3. 요셉의 연약함
- 하나님이 빠뜨려서 건져내고, 팔아버리는 것에 분노함
- 총리 쥐로 지목된 요셉, 3개의 구덩이를 가졌음
- 연약함은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이 가진 모든 본능을 의미
- 요셉의 연약함은 우리의 연약함과 같음
2. 믿음의 연약함
2-1. 믿음의 인식과 기도의 중요성
- 믿음은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오기 때문에 가능함
- 그러나 유괴한 부분이 남아 있어, 기도를 통해 환경을 변화시키려 함
- 인간의 기도는 모든 종교에서 똑같이 행하는 행위임
- 성령은 우리의 기도를 인도하며, 우리의 믿음을 이끌어가야 함
- (중요) 연약한 믿음으로 인해 사건을 이해하고, 기도로 개선해야 함
2-2. 믿음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뜻
- 믿음의 연약함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범위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 하기 때문임
- 마귀는 거짓 예언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의심하게 만듦
- 하나님은 허락하시는 범위 내에서 우리의 믿음을 이끌어가심
-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알 수 없으며, 이는 연약함의 결과임
- 우리는 믿음으로 장래를 볼 수 있지만, 그 믿음을 이끌어가는 것이 중요함
2-3. 믿음의 실천과 고난의 수용
- 믿음의 실천은 연약한 믿음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임
- 믿음은 우리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의존함
- 우리는 믿음의 대상이 되어 고난을 겪는 것을 받아들여야 함
-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시작과 끝이 우리의 믿음을 이끌어가심
- 믿음은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가는 과정임
3. 영적 연약함
3-1. 영적 시야의 한계
- 우리가 모르는 영적 시야의 한계를 이야기함
- 바울도 모르는 영적 시야의 한계를 인식했다고 밝힘
- 우리의 연약함은 1차적이고, 육체적 한계와 물리적 환경의 고통으로 인한 것임
- 육체적, 정서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영적인 한계도 생김
- 우리의 멘탈이 강해 보이지만, 약점이 있음
3-2. 탄식의 연약함
- 성령은 우리에게 연약함을 도우시기 때문에 기도해야 함
- 우리의 연약함은 재로부터 타락한 인류의 비롯에서 비롯됨
- 인류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도 영적 연약함은 100% 회복되지 않음
- 영적 연약함은 살아가면서 발생하며, 항상 부딪쳐야 함
- 성령은 우리에게 함께하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심
3-3. 기도와 탄식
- (중요) 연약함과 탄식은 우리가 기도할 줄 모름을 의미함
- 성령이 함께하시면 기도할 줄 몰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음
- 성령의 인도함을 기다리는 것이 탄식임
- 탄식은 '압박을 받다'는 뜻으로, 고소공포증과 유사함
- 연약함과 탄식은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의지해야 함을 의미함
4. 인간의 고통과 성령의 위로
4-1. 고통과 압박 속에서의 신음
- 큰일이 발생하거나 파탄이 날 때, 사람들의 신음이 탄식으로 나타남
- 이때, 터져 나오는 신음은 관계, 사업, 가정 등 어디든 생길 수 있음
- (중요) 그럴 때, 자신의 신음이 어떻게 터져 나올지 알 수 없음
-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답이 없는 상태가 됨
- 그에 대해 성령이 느끼는 감정을 듣기도 함
4-2. 탄식과 기도의 공통점과 차이점
- 성령이 내 안에서 탄식하면서 동일한 소리를 냄
- 성령은 소리로 기도하지만, 성령이 기도하는 소리가 핵심임
- (중요) 탄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음의 소리로, 공감을 통해 이해
- 그러나 고난의 상황에서 성령의 탄식이 기도로 이해됨
- 이는 성령이 기도에 사용되는 것이 아닌, 기도를 통해 고난을 겪는 것임
4-3. 고통을 통한 성령의 위로
-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며 고통 받음
- 고난을 겪을 때, 피조물과 함께 탄식하며 고통 받음
- 성령에 처음이건 열매를 받으면, 우리도 속에서 탄식함
- (중요) 몸의 썩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죄의 지배 아래에 있음을 깨닫게 됨
- 따라서 고난을 겪는 것에 대한 신음은 죄를 인정하고, 성령에게 고백하는 것과 같음
5. 기도의 방법과 기도의 중요성
5-1. 기도의 본질과 특징 이해
-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것임
- 기도는 개인이 직접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통해 이루어짐
- 기도를 통해 우리는 성령님과 함께 용감한 시험을 이겨낼 수 있음
- 기도는 믿음의 연장이며, 믿음은 우리의 힘으로는 어려운 시험을 극복할 수 있음
- (중요) 기도하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믿음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됨
5-2. 기도의 중요성과 역할
- 기도는 우리의 믿음과 간절한 소망을 표현하는 수단임
-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믿음의 길을 열어줌
- (중요) 기도는 우리가 힘든 시험을 견디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힘을 줌
-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게 함
- 기도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게 됨
5-3. 탄식의 역할과 기도
- 탄식은 기도의 중요한 요소로, 극심한 고통과 혼란 속에서 기도를 드림
- 탄식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겪는 고난을 통해 기도의 깊이를 더욱 높여줌
- (중요) 탄식은 우리의 기도를 성령님을 통해 중보하여 하나님께 전달하는 도구임
- 성령은 탄식을 통해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그의 기도를 중보하고 하나님에게 전달함
- 기도는 탄식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함
6. 성령의 기도와 구원의 이해
6-1. 성령의 기도와 고통의 관계
- 성령은 세련된 말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깊은 곳에서 신원과 탄식이 터져 나옴
- 이 기도가 성령의 동작이며, 이를 통해 아버지께 올려짐
- 고통은 성령이 이 환경에서 하나님이 이루려 하시는 뜻을 알게 하여 기도하게 하는 것
- (중요) 기도를 통해 현재 권한당하는 가운데 성령이 연약함을 도와 탄식함으로 기도한 결과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짐
- 이 기도 결과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우리의 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
6-2. 성령의 뜻과 기도의 결과
- 성령은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함
- 이는 성령이 연약함을 도와 탄식함으로 기도한 결과임
- 이 결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기도하는 것이 바뀌게 됨
- (중요)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려는 목표를 가지며, 이를 위해 필요한 과정을 겪음
- 결과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통해 기도하게 됨
6-3. 성령의 인도와 우리의 기도
-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고통을 나누며 탄식함으로 기도하게 됨
-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하게 됨
- 성령의 인도가 성공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승리하게 됨
- (중요) 반대로, 성령의 인도가 실패하면 우리는 실패하거나 더 큰 목표를 향해 가야 함
- 이처럼 우리는 기도를 통해 성령의 인도를 따르며 모든 것을 다스리고 승리하게 됨
7. 기도와 성령
7-1. 실패를 통한 깨달음
- 실패를 반복하면 결국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김
- 주변의 실패와 비난에도 교회를 다니며 믿음을 지키고 싶어 함
-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눈앞의 고통을 없애달라고 기도하는 것임
-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해야 함
- 사도바울은 자신의 계획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음을 인정하고 기도함
7-2. 성령의 도움
-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도록 도와줌
-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을 탄식하며 완전히 맞춰주심
- 우리는 자신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함
- 사도바울은 방언으로 기도할 때 깨달음을 얻음
- (중요) 성령은 성부, 하나님이 되어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력하도록 기도하심
7-3. 기도의 결과
- 성령은 하나님과 별개로 활동하지 않고, 우리가 기도하도록 이끔
-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해야 함
-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합력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
- 성령은 우리의 계획을 막아버리고, 우리를 그 속으로 인도하심
-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결국 구원의 완성을 얻게 됨
8. 고난 속에서의 기도와 성령의 역할
8-1. 내 생각과 목사의 직분에 대한 고민
- 목사가 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의 갈등을 논의함
- 고난과 외로움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면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함
- (중요) 내 생각과 목사의 직분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함
- 목사가 되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이나 이유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 제시
- 목사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존중함
8-2. 기도와 고난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
- (중요)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거치면서 고난을 인식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함
- 다른 사람의 성공이 나의 행복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함
- 모든 사건에 관계없이 내 마음을 합쳐야 함을 강조함
- (중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내 삶에 일어나는 일의 중요성과 가치를 인지함
-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고민과 고난을 받아들임
8-3. 탄식하는 기도와 하나님의 뜻
- 성령이 고난 속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방식을 아시며 그를 통해 우리의 삶을 이끌어간다는 설명함
- (중요) 성령이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을 아시며, 그것이 우리를 이끌어가는 방향을 결정함
- 우리가 기도하면서 겪는 고민과 갈등을 이야기하면서도, 기도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강조함
-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기도와 탄식에 대한 이해를 제공함
- 성령이 우리를 위한 강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 중요성을 설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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