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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름받은 자의 권위: 클레토이스 하기오이스 (κλητοῖς ἁγίοις,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고린도는 음란과 사치의 상징인 '죄악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곳에 있는 신자들을 향해 **'성도(Klētois hagiois: 거룩하도록 부름받은 자)'**라고 선언합니다! 성도는 내 인격의 훌륭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르심'에 의해 그 신분이 확정된 자들입니다.
견고케 하시는 신실함: 베바이오세이 (βεβαιώσει, 견고하게 하시리라)
분열과 범죄가 가득한 고린도 교회였지만, 바울은 소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도다(Pistos: 신실하시도다)!" 하나님은 당신이 부르신 자들을 결코 중도에 포기하지 않으시고, 주 예수의 날까지 '견고하게(Bebaiōsei: 법적으로 확실하게 보증하고 지탱하다)' 세워가실 것입니다. 구원의 완성은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II. 파당의 죄악과 십자가의 중심성 (1:10-17)
(고전 1:10, 13)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찢어진 교회의 비극: 스키스마타 (σχίσματα, 분쟁/갈라짐)
고린도 교회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사분오열되었습니다. 여기서 '분쟁'으로 번역된 **'스키스마타(Schismata)'**는 옷감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인간의 선호도와 파벌로 찢어발기는 것은 십자가를 모독하는 가장 비열한 죄악입니다.
복음의 본질로의 회귀:
바울은 호통칩니다! "바울이 너희를 위해 죽었느냐?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십자가를 지셨다!" 사역자는 복음을 전하는 통로일 뿐, 결코 추앙받는 교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세례를 주는 일보다 **'복음을 전하는 일(Euangelizesthai)'**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이는 말의 지혜로 하지 않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십자가(Ho stauros tou Christou)'**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III. 우주의 대역전: 십자가의 도 (1:18-25)
(고전 1:18, 23-24)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말씀의 능력: 호 로고스 투 스타우루 (ὁ λόγος τοῦ σταυροῦ, 십자가의 도)
복음은 '십자가에 관한 말씀(Logos)'입니다. 이 도(道)는 우주를 두 종류의 인간으로 양분합니다. 1) 멸망하는 자(Apollymenois), 2) 구원받는 우리(Sōzomenois)!
역설적 지혜: 모리아 (μωρία, 미련한 것)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 나무에 달려 죽은 메시아는 '거리끼는 것(Skandalon: 걸림돌, 수치)'이었고, 철학적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에게 십자가는 **'미련한 것(Mōria: 바보 같은 짓, 모론/Moron의 어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포효합니다! "세상이 비웃는 그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가, 믿는 우리에게는 지옥의 권세를 파쇄하는 **'하나님의 능력(Dynamis)'**이요, 창조의 근본인 **'하나님의 지혜(Sophia)'**니라!" 인간의 가장 높은 지혜가 하나님의 가장 낮은 미련함 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IV. 비천한 자의 선택과 오직 주의 자랑 (1:26-31)
(고전 1:26-27, 31)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파격적인 선택: 엨켈렠사토 (ἐξελέξατο, 택하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면면을 보십시오. 문벌도 없고, 능력도 없고, 세상에서 비천한 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자들을 '택하셨습니까(Exeleksato)'?
이는 세상에서 스스로 똑똑하다고 자부하며 고개를 쳐든 자들을 '부끄럽게(Kataischynē)' 하려 하심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조건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만 가능함을 만천하에 선포하신 것입니다.
인간 자랑의 종말: 카우카스토 (καυχάσθω, 자랑하라)
1장의 위대한 피날레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육체도 **'자랑(Kauchēsētai)'**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의 의로움, 거룩함, 구원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운교회 전 세대 성도들이여! 십자가 군사의 유일한 구호는 이것입니다. "자랑하는 자는 오직 주 안에서만 자랑하라!"